터키의 백두대간 토로스 산맥을 따라서 안탈야로
토로스 산맥은 해발 2000~3500m .터키 남서부 지중해 기슭까지 뻗어 있는 산맥
산악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띠엄띠엄 부락이 형성되어 있어,지루함을 덜어 주었다.
북으로 독일까지 이어진다는 고속도로가 산맥 경사면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다.
카파도키아에서 안탈야까지 서남쪽으로 장장 9시간 달려갔다.
우리가 탄 전용 버스안에서 산악지대 풍광을 카메라에 담았다.심심해서...
터키 여행중 오늘이 가장 힘든 날이었다.
끝 없이 이어지는 광활한 광야
방목되고 있는 양때를 자주 볼 수 있었다.
양이 많기로 세계 5위안에 든다고 하니,역시 유목민의 후예답지 않은가~~
2시간 간격으로 휴게소에 둘렀고, 휴게소에서의 중식은 나무랄 데 없이 좋았다.
휴게소엔 틀림 없이 매장이 풍성했고,공짜 식품 시식코너가 있어 이것저것 집어 먹었다.
터키 전통차를 대접받으며...물론 적당히 매상을 올려 주었다.우리 일행 멋쟁이 들~~
우리 팀 30명 중 유일한 남자 친구,여행 메니아 염사장
마침내 지중해의 꽃. 항구도시 안탈야 도착.
터키의 국부 아타튀르크 광장. 4월22일이 터키에서는 어린이 날. 행사 준비가 한창.가는 날이 장날~~
행사장에 경찰과 군이들,경비가 삼엄하다.
광장에서 내려다본 구시가지. 오래된 터키 전통 가옥들이 밀집해 있다.
광장에서 내려와 10여분 만에 항구에 도착.바람 한점 없는 잔잔한 날씨.
유람선이 소리 없이 들어 오고 있다.
5시간 소요 유람선 투어를 하면 지중해 주변 섬들과 동굴 그리고 수중도시를
볼 수 있다는데,우리 일정에는 없었다.아쉬움만...이렇게 힘들게 왔는데.
30명 의견을 모으기란 쉬운 일이 아니였다.포구에는 유람선과 낚시배들이 한가롭게
정박해 있는 모습이 그림 같다.
푸른 산과 그림 같은 바다가 어울어진 항구 도시 안탈야
지중해로 나가는 관문으로 편안한 여름 휴양지로 손색이 없다.
터키인 뿐만아니고 유럽인들 특히 독일 사람들이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름다운 항구가 보이는 한 카페에서 카푸치노를~~
성곽.안탈야는 기원전 2천년경 페르가몬 왕 안탈로스 2세에 의해 조성된 도시.
그의 이름을 따서 안탈리아로 명명.그런데 현재 터키가 '안탈야'로 개명했다고 한다.
비좁고 꼬불꼬불한 구시가지 거리
안탈야의 상징 '하드리안 문'은 안탈야 구시가지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대 로마의 흔적이다.
기원후 130년 이곳을 정복한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를 기념하기 위해 세원진 문
항구 가까운 곳에 있는 성곽 안에 있는 이 문은 3개의 아치와 4개의 고린도식 기둥이 돋보인다.
애들을 대리고 가족 소풍 나온 터키 아줌마들
성곽이 있는 구시가지에서 신시가지로 나왔다.
활기찬 거리 모습
거리의 악사
고등어 케밥으로 점심후. 재래시장으로 가기 위해 전용 버스에 올랐다.
재래시장
각양각색의 히잡을 쓴 터키 아줌마들.서민이 애용한다는 재래시장이란다.
벽걸이 양탄자
6천 '리라'를 부른다.1'리라'가 우리돈으로 8원이니까.우리 돈으로 약 4만8천원 되는 샘이다.
2만원 정도면 사려고 했는데,흥정이 잘 안돼 그만두고, 다른 점포를 기웃거리다 비슷한
것을 단 돈 7달라에 샀다.수지맞은 기분~~얼쑤!
오스만제국시대
아나톨리아 서부에서 일어난 오스만 투르크족은 14세기 소아시아 외에 발칸반도까지
영토를 확대하였으며, 1453년에는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여 비잔틴제국을 멸망시켰다.
그 뒤 오스만제국은 소아시아에서 마지막까지 남았던 흑해 연안의 트레비종드왕국을
누르고 콘스탄티노플을 이스탄불로 개칭하여 수도로 삼아 서아시아·북아프리카·동유럽에
걸친 대제국으로 발전하였으나, 16세기 술레이만 대제 시대에 전성기를 이룬 뒤, 19세기
에는 그리스·이집트의 독립을 허용하는 등 차츰 쇠퇴하였다.
제1차세계대전 때는 독일·오스트리아에 가담하여 패배하였다. 연합국은 세이블조약으로
터키의 분할을 꾀하고, 그리스는 아나톨리아 서쪽에 침입하였다. 그러나 1922년 M.K.
아타튀르크의 외교와 전략으로 이들을 타파, 1923년 로잔조약에 의해 현재의 영토를
확보하였다.
공화국 발족 이후
1923년 앙카라를 수도로 정하고 터키공화국이 발족되었다.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는
정교 분리, 로마자 채용, 태양력 채용 등 여러 방면으로 근대화정책을 추진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중에는 중립을 지키다가 그 말기에 독일·일본에 선전포고하였으며
1952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는 등, 반공·친서방 노선을 취하였다.
언어와 문자
언어는 터키어가 공용어이다. 문자는 8세기부터 1928년까지 아라비아문자를 썼으나
그 뒤 아타튀르크의 제안으로 29문자로 이루어진 로마자를 채택하였다.
한국과 터키와의 관계
터키는 6·25 때 UN 참전국이다. 현재 남북한 동시 수교국이며, 1957년 3월 수교,
6월 터키 주재 한국공관이 설치되었다. 1974년 문화협정, 1976년 항공협정,
1977년 통상진흥 및 경제기술협력협정을 체결하였으며 이스탄불에 총영사관이
설치되었다. 1992년 6월 주한 터키공관이 설치되었다. 1999년 터키 대지진 당시
구조대를 급파하고 유상지원하였다. 북한과는 2001년 1월 수교하였다. 터키의
대한수입은 6억 9708만 달러, 대한수출은 1억 3033만 달러(2001)이다. 2003년
교민 394명, 체류자 580명이 있다. (출처:World History Web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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