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2.16 17:56일자 글 일부 수정합니다.
"아니 가뜩이나 밀양 사건으로 흉흉한데 웬 18금 소설이냐!"
그렇게 말씀해주시는 회원분들에게는 그저 송구스럽다는 말씀 밖에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채털리 부인의 사랑』은 D.H. 로렌스의 원작은 그대로 살리되 그 '강조점'은 전혀 다른, 이른바 재해석된 '버전'이니 '속단'을 잠시만 보류해주셨으면 하고 감히 청합니다.
크흠, 그야 어떻든 간에….
저는 괴유가 여성 독자분들에게 어느 정도 인기가 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저의 경우에는 똑같이 '섬세한' 성격이라도 개인적으로 무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 반면 괴유는 매우 마음에 드는 구석이 많습니다.
남정네들 속성이 그렇겠지만 대개의 경우 '꽃돌이'에게 그다지 유쾌한 감정을 가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바람의 나라』에서 적어도 세 명 정도는 예외를 두고 있습니다.
괴유는 그 중 한 사람이지요.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신체적으로 괴유가 유리한 점도 있기는 할 것입니다.
우선 꽃돌이 타입의 얼굴이 주기 쉬운 연약한 인상을 보충해주는 것이 다른 사람보다 유난히 큰 키라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다일까요?
제가 보기에 그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 용이와의 대전에서 괴유와 무휼이 각각 용이에게 보여 준 자세를 보며 저 나름의 '꽃돌이 감별'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람의 나라』제9권에서 용이가 시원스럽게(?) 고구려를, 좀 더 정확하게는 무휼을 질타할 때 괴유가 보인 반응은 담담하면서도 한 치의 어김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더구나 용이에게 하는 말을 살피면 괴유의 성격을 대강은 알 수 있습니다.
"나는 물론, 싸움의 상대로서의 적에겐 용서가 없지만, 너같이 뛰어난 자를 좋아한다. … 이름이 무엇이냐?"
장수의 본분을 잊지 않으면서도 마치 적에게 '배려'라도 하는 듯한 어투입니다.
저는 괴유가 기본적으로 상냥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오죽하면 적인 용이조차 "네가 내 사정까지 챙겨 줄 이유가 없다."라는 말을 했을까요.
그렇다고 그가 '연약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답지 않게 '장황한' 발언이지만 "물론, 싸움의 상대로서의 적에겐 용서가 없지만"이라는 말까지 써가며 공사구분에 있어 확실한 태도를 보여 주고 있지요.
이에 비하면 앞에서 소개해드렸지만 무휼은 아무리 제왕이라는 신분을 감안해도 아니 감안하니까(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더 어처구니 없어질 때가 적지 않습니다.
용이가 "왕 자리에 눈이 어두워서…" 운운 할 때 무휼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쓸 데 없는 말은 그만 둬라."
남정네 입장에서 보면, 또한 무휼의 그 컷과 함께 보면, 그리고 감정을 좀 더 많이 붙여 말한다면 절구질로 타작하고픈 충동마저 느끼는 대사였습니다.
용이 입장에서 보면 '전혀' 쓸 데 없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마음에 안 들면 제왕답게 짤막한 한 마디만 보내 주면 그만이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았느냐?"(용이의 장광설에 대한 답변)라던가 "입으로 싸우느냐?" 정도 말만 던졌어도 충분히 납득했을 것입니다.
한데 "쓸데 없는…" 어쩌고 하는 무휼의 말은 구구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무휼에 대해서는 이미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올렸지만 이 장면만 보아도 왜 괴유가 화려하지는 않지만『바람의 나라』최고의 로맨티스트 후보로서 손색이 없는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기야 제왕과 상장군이라는 직위 차이를 고려해볼 필요가 있기는 합니다.
아무래도 행동과 언행의 자유는 상장군 쪽이 근사하나마 더 많겠지요.
그렇다고 괴유가 마로나 용이의 경우처럼 감정이라는 흐름을 타고 움직이는 사람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예를 들어 해오녀 문제에 있어서도 그는 시종일관 굳이 무휼같은 '냉정'함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침착'하게 사태에 대처합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카와사키 미에코가 재해석한 '만화고전'『채털리 부인의 사랑』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저는 카와사키씨가 원전의 이면을 꼼꼼히 재해석하여 참 면목을 나타낸 여주인공 코니의 상대역이자 남주인공인 올리버 멜러즈의 캐릭터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카와사키 씨의 말을 인용합니다.
"산지기 멜러즈에게 (콘스탄스 채털리 부인이) 처음으로 안겼을 때 마음속으로 잘했다고 감동까지 했다. 그것은 채털리 부인이 멜러즈에 의해 성의 쾌락을 알았기 때문이 아니라 여성의 마음을 이해하고 남자로서 진정한 사랑을 준 멜러즈의 '부드러움'을 알았기 때문이다."
저는 카와사키 씨의 이 말이 마치 괴유를 위해 만들어 낸 해석이 아닌가 싶습니다.
괴유처럼 멜러즈의 경우에도 이름난 귀족은 아니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 장교 신분으로 활동한 인물이고 바닥생활이라면 바닥생활을 하지만 그 인격이 천박하지 않습니다.
나름대로 능력과 기개가 있고 천박하지 않으면서도 삶의 밑바닥에서 출발하고 있는 멜러즈나 괴유는 그들의 상대역이라고 할 수도 있는 클리포드 채털리나 무휼 및 대소 왕과 대비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형적인 영웅담과도 일치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괴유가 인기를 끌 수 있는 요소를 가진 것도 모자라 로맨티스트로의 자질이 충분하지 않을까요?
더구나 그의 사랑은 이지나 궁극적으로는 호동의 경우처럼, 그리고 굳이 억지로 혐의를 둔다면 무휼처럼, 사람을 희생시키는 그러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굳이 가희의 입장에서 보자면 괴유가 책망 받을 부분도 없지는 않겠지요.
그렇다 해도 괴유가 하는 말이 궁색하게 들리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야! 괴유가 헛짓하는 바람에 세류의 주작이 죽었잖어! 그것도 희생 안 시키는 사랑이더냐?"
이렇게 되면 또 제가 할 말은 없어집니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도 괴유의 행동을 가만 살펴보면 역시 그의 남정네다움에 빠져들고 맙니다.
남정네답다고 우락부락하고 용맹스러운 그런 이미지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라면 반대지요.
남들 보기에 세류가 씩씩했을 때 괴유는 자신의 감정을 철두철미하게 억제합니다.
사랑하면서도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이는 쉽지 않지요.
꼭 정확한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흔히들 여성의 인내력과 지구력은 남정네의 4배라고들 합니다.(물론 근력은 반대로 남정네들이 세다고 합니다만.)
괴유에게 이 공식을 곧이곧대로 적용시킬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그가 자신의 감정을 억제하기 위해서 무진장 애를 쓴 것만큼은 변함없는 사실이겠지요.
그러다가 세류가 자신의 주작까지 던져가며 그녀의 마음을 보이고 또한 그녀가 주작의 상실로 몹시 약해졌을 때 괴유는 오히려 남정네의 약점을 보이는데 결코 주저하지 않습니다.
무휼을 이야기 할 때도 말했지만 남정네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것은 험한 말로 '두 쪽 차고(회원분들께 정중히 용서를 구합니다.-_-;;) 사랑하는 여인을 지켜주지 못할 때'입니다.
한데 9권 138쪽에서 괴유는 주저하지 않고 남자의 약점을 가장 사랑하는 여성에게 열어둡니다.
입장이 다른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무휼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을 개결함의 극치입니다.
생각하면『바람의 나라』전체편을 통해 괴유만큼 고루 갖춘 장수도 드물 것입니다.
그는 일생 전업무사 및 장수로서 자신의 역할을 다했고, 신하로서 또 연인으로서 한점 티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무휼·용·대소 등이 각기 빼어남도 많았으나 또한 흠될 곳도 있어 공적인 관심 못지 않게 비난도 많이 받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실로 복된 로맨티스트의 일생이 아니었을까요?
회원 적곡 마로가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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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유:『바람의 나라』최고의 로맨티스트?(2)『채털리 부인의 사랑』과 연관?
적곡 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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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2.16 17:5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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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자분께서 이렇게 괴유의 매력을 정확히 짚어주시다니, 놀랍습니다!
괴유 만세!!! 괴유 만세!!! 괴유 만세!!! (만세 삼창)
그렇죠...그는 상냥하고 섬세한 남자입니다. ^^*
흑발냉미남강력지지자인 제가 여지없이 무릎을 꿇어버린 몇 안 되는 흰 머리 남자입니다(...). ㅠ_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