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나 (Athena,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 Minerva)
아테네
그리스 신화에서 아테나(Athena, 로마 신화에서는 미네르바 Minerva)는 제우스와 지혜의 여신 메티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런데 그 탄생의 과정이 흥미롭다. 제우스는 이치의 여신 테미스로부터 장차 메티스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그를 대신해 신들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고 난 뒤, 임신한 메티스를 삼켜버렸다. 그런데 메티스의 산달이 가까워질수록 제우스는 심한 두통에 시달리게 되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에 제우스는 대장장이 신 헤파이스토스를 불러다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내리치라 명했다. 마침내 헤파이스토스가 이를 받든 순간, 제우스의 깨진 머리 틈 사이로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를 든 아테나가 함성을 지르며 튀어나왔다고 한다. 아무리 신화라지만 참으로 가공할만한 수준의 상상력이 아닐 수 없다.
지혜의 여신 아테나
어쨌든, 이렇게 태어난 제우스의 딸 아테나는 올림포스 12신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고, 제우스 뱃속에 그대로 남은 메티스는 결국 아들을 낳지 못하는 바람에 제우스의 권좌는 계속 유지될 수 있었다. 아테나의 기이한 탄생 이야기는 여신이 관장하는 분야 및 특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우선 어머니인 지혜와 총명의 여신 메티스의 피를 물려받은데다 아버지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가 인간의 지력을 담당하는 지혜의 여신이 된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17세기 네덜란드의 판화가이자 화가인 헨드리크 골치우스(Hendrick Goltzius)가 그린 [미네르바]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올빼미와 책이 갑옷을 벗은 여신의 오른편과 발치에 놓여져 있다. 어둠 속에서도 또렷한 시야를 자랑하는 올빼미는 무지를 밝힌다는 뜻에서 지혜의 여신 아테나(미네르바)와 함께 등장한다.
GOLTZIUS, Hendrick
Minerva
1611
Oil on panel, 214 x 120 cm
Frans Halsmuseum, Haarlem
Gustav Klimt
Pallas Athena
1898. Oil on canvas
75 x 75 cm
Historical Museum of the City of Vienna, Vienna, Austria
물론 골치우스의 작품에는 여신이 쓴 투구라든지, 들고 있는 창, 그리고 그녀의 왼팔을 받치고 있는 방패 아이기스와 그 아래 갑옷의 일부도 보인다. 흉갑으로도 쓰이는 아이기스에는 영웅 페르세우스가 바친 메두사의 머리가 박혀 있다. 무기와 갑옷이라면 당연히 전투를 떠올리게 되고, 이로써 여신이 인간의 지혜 외에도 전쟁 분야 역시 주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긴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완전 무장한 상태이지 않았던가. 그러나 전쟁의 여신으로서의 강한 이미지를 음미하려면 골치우스의 작품보다는 19세기 오스트리아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의 [미네르바]를 참고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듯하다.
클림트 특유의 장식성과 황금빛 색채가 돋보이는 이 작품에서 관람자를 사로잡는 것은 무엇보다 투구 아래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여신의 눈이다. 그녀의 신비한 눈동자와 굳게 다문 얇은 입술이 묘하게 선정적이면서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과 공포를 자아낸다. 여신의 오른손 위에 서 있는 작은 사람의 형상은 승리의 여신 니케를 클림트가 그만의 방식으로 변형시킨 것이다. 황금빛 창을 든 여신의 팔 뒤쪽 어두운 벽면에 그녀의 눈동자를 닮은 올빼미의 부릅뜬 눈이 희미하게 보인다. 클림트는 이 작품을 그가 이끌던 분리파(Secession) 전시회에 출품했다. 여기엔 무지와 악덕을 몰아내는 전쟁의 여신을 수호신 삼아 오스트리아의 보수적인 구세대 미술 관행을 타파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공격적인 아레스, 냉철한 이성의 아테나
이런 면에서 볼 때, 아테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또 다른 전쟁의 신인 아레스(Ares, 로마 신화의 마르스 Mars)와 구분된다. 다소 무식하고 난폭한 성향의 아레스가 공격적이고 파괴적인 전쟁을 주도하는 반면, 아테나는 지략과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채 기술과 문명의 산물인 도시를 보호하고 방어하는 역할을 맡는다. 조화와 이성을 최고의 덕목으로 여긴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아레스보다는 아테나 쪽이 더 선호되었던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따라서 고대 그리스의 서사 시인 호메로스(Homeros)의 [일리아스(Ilias)] 에 소개된 이래 미술 작품의 주제로도 인기 있었던 트로이 전쟁에서의 아레스와 아테나의 대결 장면에서 포악한 전쟁의 신은 평화를 수호하는 전쟁의 여신에게 항상 밀리는 형상으로 나타난다. 물론 여기서 아테나는 그리스 원정군 편이었고 아레스는 아프로디테와 함께 트로이 군대 편이었다는 정황도 고려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TINTORETTO
Minerva Sending Away Mars from Peace and Prosperity
1576-77
Oil on canvas, 148 x 168 cm
Palazzo Ducale, Venice
DAVID, Jacques-Louis
The Combat of Mars and Minerva
1771
Oil on canvas, 146 x 181 cm
Musée du Louvre, Paris
고대 그리스의 도시 국가 아테네는 이러한 지혜와 전쟁의 여신 아테나를 수호신으로 받들었다. 아테네라는 도시 이름 역시 여신의 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와 관련된 일화로 전해지는 것이 아테나와 바다의 신 포세이돈(Poseidon, 로마 신화에서는 넵투누스 Neptunus)의 대결이다. 두 신이 서로 이 도시를 놓고 다투자, 도시민과 구경꾼들은 ‘누가 더 도시에 이로운 선물을 주는가’로 수호신을 결정하기로 했다. 그러자 포세이돈은 삼지창으로 땅을 찔러 바닷물 샘(또는 포세이돈과 함께 종종 사나운 파도를 일으키며 등장하는 백마 또는 흑마)을 솟게 했고, 아테나는 아크로폴리스 언덕에 올리브 나무를 자라게 했다. 사람들은 올리브 열매가 샘물보다 더 유용하다고 판단했고, 도시의 수호신 역할은 아테나 차지가 되었다. 프랑스 화가이자 판화가 노엘 알(Noel Halle)의 작품은 바로 이 장면을 묘사한 것으로, 푸른 망토를 걸치고 포세이돈을 내려다보고 있는 아테나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보인다.
노엘 알 [아테네 마을의 이름을 정하기 위하여 논쟁하는 미네르바와 포세이돈] 18세기경
캔버스에 유채, 46cm×35cm, 마르탱 남작 미술관
여러가지 기술과 공예의 신
아테나는 지혜와 전쟁의 신, 도시의 수호신일 뿐만 아니라 기본적으로 방직, 도예, 목공, 금세공 등 수공업을 중심으로 한 여러 가지 기술과 공예의 신이다. 이는 모두 도시 국가의 문명과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필수 조건들이다. 이러한 아테나에게 기술로서 도전한 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아라크네라는 리디아 처녀였다. 아라크네는 뛰어난 베짜기와 자수 실력을 자랑했는데, 그 솜씨가 어찌나 좋았던지 주위에서 아테나 여신에게서 전수받았을 것이라고 수군거릴 정도였다. 그러나 이 말이 아라크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여인은 감히 아테나와의 솜씨 대결을 제안했다. 노파로 분장한 여신은 점잖게 아라크네를 타일렀으나 소용없었다. 본때를 보여주리라 마음 먹은 아테나는 결국 아라크네와 베짜기 시합을 벌이게 된다.
VELÁ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y
The Fable of Arachne (Las Hilanderas)
c. 1657
Oil on canvas, 220 x 289 cm
Museo del Prado, Madrid
VELÁZQUEZ, Diego Rodriguez de Silva y
The Fable of Arachne (Las Hilanderas) (detail)
스페인 바로크 회화의 거장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가 그린 이 장면에는 고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에 나오는 아라크네의 일화를 토대로 화가 특유의 상상력과 의도가 복합적으로 어우러져 있다. 화면의 앞 부분은 화가가 살던 시기, 일종의 궁중 부속 타피스트리 공방에서 당시 행해졌던 작업들이 그려져 있다. 이어서 뒷부분에는 투구를 쓰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있는 아테나와 맨 오른쪽에 유일하게 시선을 관람자에게 돌리고 있는 한 인물인 아라크네가 벽에 걸린 자신의 나무랄 데 없는 타피스트리 앞에 서 있다. 여신은 아라크네의 아름다운 작품을 보고 분노했다. 자신에 필적하는 그녀의 솜씨에 먼저 마음이 상했고, 두 번째로는 인간으로서 감히 신들의 치부를 드러내는 장면을 적나라하게, 그것도 너무나 생생하게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로 하여금 하나의 현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는 점에 치를 떨었다.
르네 앙투안 우아스 [아라크네를 변신시키는 미네르바] 1661년경
캔버스에 유채, 108cm×141cm, 베르사이유와 트리아농궁
아라크네는 아테나 여신의 아버지이기도 한 신들의 제왕 제우스가 황소로 변신해 님프인 유로파를 납치해가는 장면을 신기에 가까운 솜씨로 직조해냈던 것이다(참고로 아테나는 자신을 비롯한 신들이 위용을 뽐내는 모습과 함께 네 귀퉁이에는 신에게 도전했던 인간들의 비참한 최후를 묘사했다). 여신은 즉시 손에 들고 있던 씨실과 날실을 엮었던 갸름한 북으로 아라크네의 타피스트리를 찢어 버리고 그녀의 이마를 내리치며 신들을 모욕한 죄를 물었다. 그리고 치욕스러움에 달려가 목을 매려던 아라크네를 거미로 변신시켰다. ‘아라크네(Arachne)’는 그리스어로 ‘거미’를 뜻한다고 한다. 스스로 죽지도 못한 여인은 그 이름대로 거미가 되어 대대손손 자연의 실을 잣는 신세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TIZIANO Vecellio
Rape of Europa
1559-62
Oil on canvas, 185 x 205 cm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Boston
인간의 지혜를 주관하고 기술과 문명을 후원하며 도시, 즉 국가의 수호신으로서 역할을 담당하는 아테나가 정작 한 인간에게는 어째서 이렇듯 가혹했던 것일까? 대체로 그리스 신화에서 신에게 도전하고 신을 거역한 인간들은 참혹한 결말을 맞았다. 피리 솜씨 하나로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대적했다가 산 채로 살가죽이 벗겨지는 끔찍한 벌을 받은 마르시아스, 아폴론과 아르테미스를 낳은 레토보다 아들 7형제, 딸 7자매를 둔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말했다가 자식들을 모두 잃게 된 테바이의 왕비 니오베 등 수많은 예가 있다. 그런데 결국 신화 역시 인간이 만들어낸 이야기 아닌가? 그렇다면 왜 인간은 스스로 신의 영역과 인간의 영역을 구분해 놓은 것일까? 아니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어디까지가 신의 영역이고 어디까지가 인간의 영역인가? 오늘날의 인간에게 그 구분은 모호해진 지 오래다. 어쩌면 애초부터 그 경계는 없었던 것이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말이다.
글 출처 : 네이버 캐스트 (이민수)
PERUGINO, Pietro
Apollo and Marsyas
c. 1495
Wood, 39 x 29 cm
Musée du Louvre, Paris
TIZIANO Vecellio
The Flaying of Marsyas
1576
Oil on canvas, 212 x 207 cm
State Museum, Kromeriz
LEMONNIER, Anicet-Charles-Gabriel
Apollo and Diana Attacking Niobe and her Children
1772
Oil on canvas, 141 x 112 cm
Musée des Beaux-Arts, Rou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