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첫 장편소설 [[황산강]]을 주 2회 정도로 연재할까 합니다.
1부 아수라장, 2부 코피, 3부 모순, 4부 내 속에 하나의 우주, 5부 더덕 냄새, 6부 한없이 가벼운 사랑
후지코는 갈래머리를 했다. 솜 넣어 누빈 새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물을 들인 옥양목 솜치마를 입었다. 꺼먹고무신이 아니라 흰 코고무신을 신었다.
황산강 2부 코피(5회)
후지코는 갈래머리를 했다. 솜 넣어 누빈 새하얀 옥양목 저고리에 검정 물을 들인 옥양목 솜치마를 입었다. 꺼먹고무신이 아니라 흰 코고무신을 신었다.
후지코 엄마는 쪽머리에 은비녀를 꽂았다. 하얗게 눈부신 흰 옥양목 치마저고리에 누빈 회색 솜두루마기 차림이다. 하지만 흰 버선에 흰 고무신을 신은 것은 엄마랑 같았다.
엄마가 엊저녁에 시집올 때 신었던 흰 고무신을 잿물로 박박 씻은 덕을 본다.
후지코를 불러볼까 했다. 하지만 그랬다가는 내외하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혼날 거다. 그냥 엄마 걸음에 맞추어 걸었다.
엄마는 일부러 천천히 걸었다. 엄마보다 더 좋아 보이는 옷을 입은 후지코 엄마랑 인사하고 싶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금세 원래 걸음대로 빨라졌다. 그래서 좀 가까워지면 멈추어 서서 괜히 뒤를 돌아보았다. 원동 장터 사람들이 원동천이라 부르는 범내를 우두커니 멀리 내려보기도 했다.
저만큼 앞서가는 후지코 엄마 은비녀가 아침 햇살에 반짝반짝 예뻤다.
“엄마, 나중에 내가 엄마 은비녀 사줄게.”
“응, 뭐라꼬?”
“나중에 엄마 은비녀 사줄게.”
“오늘 우리 종우가 핵교 간다꼬 아침부터 존 소리만 하네. 엄만 은비녀 없어도 좋아. 핵교 슨상님 말씸 잘 드꼬 공부 잘해서 우리 원동 민서기 해쓰마 원이 업것따.”
새동네를 지나 장터말까지 왔다.
우리처럼 소학교에 입학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후지코처럼 치마 입은 여학생들도 드문드문 보였다. 엄마가 다른 여학생 보느라 한눈팔다가 소학교 정문 앞에서 후지코 엄마랑 딱 마주치고 말았다.
“후지꼬 엄마, 진지 드셨능교.”
내가 먼 산을 슬쩍 보는 엄마를 툭 치며 얼른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엄마가 당황스레 인사를 건넸다. 그런데 후지코 엄마는 고개만 까딱했다.
후지코 엄마가 나를 잠시 내려다봤다.
“종우, 머리 깎았구나. 애기 시님 같다. 그래도 그라이 좀 똘방해 보인다.”
그러고는 돌아서 후지코를 끌고 운동장 쪽으로 들어섰다. 후지코는 제 엄마를 닮아서 살결이 유난히 희었다. 뽀얀 살결 덕분에 어디서나 눈에 띄었다. 후지코가 제 엄마 몰래 내게 손을 살짝 들어서 아는 체했다. 이내 병아리 새끼처럼 제 엄마를 따라갔다.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소학교에 입학했더니 배우지도 않은 조선어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지(일본) 글자도 조금 떠듬거렸지만 읽고 뜻을 알 수 있었다. 소학교 1학년 때 배우는 내용을 나는 다 알고 있었다. 숫자는 물론 더하기, 빼기, 심지어 곱하기, 나누기, 분수 계산까지 다 할 수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불렀다. 더하기, 빼기, 곱하기, 나누기 문제와 분수 문제를 내어 풀어보게 했다.
신동, 천재가 났다고 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기 시작하면 잠시 속이 메스꺼웠다. 머릿속에 뭔가 안개 같은 것이 잔뜩 낀 것 같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안개가 스러졌다. 메스꺼움이 가라앉았다.
새로 배운 것은 다 이해했다. 문제까지 척척 풀 수 있었다. 마치 내 속에 내가 아닌 다른 내가 있는 것 같았다. 그 다른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내게로 건너올 때 메스꺼움이나 어지럼증이 생겨나는 모양이었다.
1학기가 끝나기 훨씬 전에 월반했다.
나는 곧 2학년 수업을 들었다. 2학년 수업도 너무 쉬웠다. 선생님들 중 몇 분이 다시 3학년으로 월반시키자고 했다. 그런데 교장 선생님이 2학기 수업 따라가는 것 보고 하자고 해서 2학년에서 수업을 들었다.
월반했더니 짝지가 나보다 네 살 많은 범돌(호석)이 형님이었다. 범돌이 형님은 시오리 밖 멀리 황산강 위쪽 마을 중리에서 다녔다. 산수(수학)와 내지말(일본어) 시간에 내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날 어린 동생처럼 돌봐주었다.
그 범돌이 형님이 학교에서 쫓겨났다. 수업료를 석 달째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늦봄부터 여름 내도록 가뭄 때문에 논밭이 바싹바싹 탔었다. 보리 수확이 반토막이었다.
게다가 늦여름에 장마로 물난리가 났다. 물 좋은 곳에만 살아남았던 나락까지 큰물에 다 쓸려 가버렸다. 늦게 메밀을 뿌렸지만 메밀도 거둘 게 없었다.
우리도 우리 먹을 것은 고사하고 도조(소작료) 낼 일이 깜깜했다. 아버지, 할매, 엄마 한숨이 끊어지지 않았다.
나도 범돌이 형님처럼 수업료를 석 달째 내지 못했다. 범돌이 형님처럼 다른 형님들, 친구들 여럿이 석 달째 수업료를 내지 못해서 학교에서 쫓겨났다. 수업료가 석 달 이상 밀린 학생 중에 월반했던 나만 남았다.
결국 나도 오늘은 교무실에 불려갔다. 교장실에도 불려갔다.
“존우 군, 차무 마으무니 아프다네. 다룬 친구드루 다 아니 대는데 존우 군만 특뵤루 대우 몬하네. 부모니무 오시소 나준에라도 낸다고 약속으루 하몬 사무학뇬, 아니면 사학뇬으로라도 오루로준다고 전하게.”
책보를 메고 털레털레 걸어 집으로 왔다. 월사금을 오늘까지 내지 않으면 학교에서 쫓겨날 것이라는 말을 아침에 했었다.
아버지는 산에 나무하러 가고 집에 없었다. 엄마는 사립짝에 우두커니 기대어 선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나를 보던 눈이 빨개졌다. 코를 훌쩍이다가 때가 시커멓게 탄 행주치마에 코를 ‘팽’하고 풀었다.
작은방 문이 열리며 할매가 내다봤다. 그 사이로 ‘옵빠, 옵빠’하며 종미가 밖으로 나오려고 했다. 할매는 내게 오려고 발버둥치는 종미를 꽉 끌어안은 채로 아무 말도 안 했다.
엄마가 헛간에 가서 다래끼를 찾아 어깨에 멨다. 호미를 손에 쥐고 사립문을 나가서 안골 쪽으로 올라갔다.
이 겨울에 산나물도 없는데 산에 간다고 뭐가 있을까. 안골 끝머리에서 토곡산으로 더 올라가면서 그래도 혹시나 사람들 눈에 띄지 않은 도라지나 잔대, 복룡, 토복룡 같은 것이 남아 있는지 찾을 것이다. 다래끼 안에는 조선낫도 있을 것이다. 정 없으면 송구라도 벗겨 오고, 그도 안 되면 땔나무라도 조금 이고 올 것이다.
할매가 종미를 안고 문 옆으로 비켜 앉았다.
책보를 작은방에 던져 넣었다. ‘옵빠’가 좋다고 매달리는 종미를 할매한테 떼어 놓았다.
벌써 며칠째 점심은 건너뛰었다. 아침, 저녁으로 보리 밥풀도 몇 개 들어 있지 않은 멀건 시래기죽 한 그릇씩 먹은 게 다였다. 뱃가죽이 등뼈에 붙은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