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 체험기 8 – 경진년(2000년) 여름 단기수행
- 체험기 1
- 여름수련을 마치고 - 가모소레 신장식님(41세, EBS PD)
집에 도착하여 한숨 돌리고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정든 동료들과 속히 소식을 전하고 싶어 글을 올립니다.
모두들 불편한 일없이 잘
마치고 헤어져 참 좋았습니다. 서로 좋은 인연이 되어 만난 줄 압니다.
사람을 만나는 일이 이럴 땐 참으로 좋습니다.
글을 쓰며 얼굴들을 떠올려보니
각자 자기 일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으로 떠오릅니다. 이렇게 모두들 좋은 마음을 나누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앞으로 사이버 나라에서
좋은 세상을 꾸미며 우리의 이상을 나누면 더욱 좋겠지요? 우리에게 내재된 밝은 태양의 나라를 찾아서
말입니다. 바나리를 통해 마고의 세상을 나눌 누이, 님들을
알게 되어서 반갑습니다.
이번 여름 단기 수련회를
통해 수행문화를 그런 대로 이해하고 또 다른 과제를 나름대로 안고 왔습니다.
- 체험기 2
– 텅빈 얼굴, 텅빈 웃음 – 바라엄마 김영순님(40세, 주부)
열심히 따라 배우느라 구슬땀을
흘린 도반 여러분, 또한 나로 인해 불편을 겪었을 내 딸 하바라와 식구들께 이 단아한 아침 향기로운
차 한잔씩을 정성껏 올립니다.
저와 도반 여러분들은 아마도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서로의 사랑이 필요했던가를 확인하였을 겁니다.
정신차릴 수 없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리는 강의 내용을 주워 담느라 3박 4일이 언제
지나갔는지…… 어느덧 헤어짐의 시간이 다가왔고, 다시 접해야
할 피안의 세계를 걱정하며 애써 웃음지었습니다.
수련원을 떠나 봉암사의
대법당에서 운 좋은 4시간의 출가를 맛보았습니다. 부처님을
향하여 예를 갖춘 후, 그 동안 미처 대하지 못하였던 교재를 읽어 나갔습니다.
아! 어쩜 이리도 완벽한가? 글자의 알맹이들이 톡톡 튀어나오며 이마와
가슴을 마구 두들겼습니다.
미리 숙지한 채 이 만남이
이루어졌더라면…… 수행의 본질을 담을 준비 없이 어찌 이 수련에 임하였을까…… 고요하고 적막한 도량에 엎드려 흥분과 참회를 거듭하였습니다.
돌아오는 길. 평소 같으면 아름답다고 느꼈을, 올림픽 도로를 따라 이어지는 서울의
야경을 무심히 지나치고 있었습니다. 이래서는 안되지……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할 걸 압니다.
텅 빈 얼굴, 텅 빈 웃음으로 다시 만날 날을 고대하며……
- 체험기 3
– 단기 여름수행을 다녀와서 – 김종훈님(33세, 변호사)
처음 수련회에 가겠다고
마음을 먹을 땐, 그 동안 방기해두었던 공부 또는 수련을 다시 한 번 새로이 다져보고 점검해보자는 생각이
컸습니다. 그리고,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위한 것이니 그리
깊이 들어가거나 어렵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생각은 틀린 것이었습니다. 제가 이쪽 수련을 접해온 약 2년
가까운 기간에 알아왔던 대부분의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가장 크게 느끼고
발견한 것은 크게 두 가지 갈림길이 제 앞에 놓여있으며 그 중에서 어떠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문제는 그 동안 공부에 연을 대고
있는 과정에서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느껴오고 있던 부분이었는데, 지금까지는
애써 외면하고 그 결정 시기를 유예해왔을 뿐이었습니다. 육체 또는 말기를 중심으로 하는 삶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그와 같은 삶을 버리고 마음 또는 심기(또는
원기)를 중심으로 하는 삶, 즉 하늘의 법(천도)을 따르는 길을 갈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번 수련을 통해 제 앞에 뚜렷이 갈라져있는 두 개의 길 입구를 보았으며, 당장 그 선택을 하게 되지는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하여야 한다는 점을 너무도 분명히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이번 단기수련은 그다지
쉽지 않았습니다. 수련을 안 해온 이유가 제일 크겠지만, 이런
저와는 달리 다른 처음 하시는 분들은 오히려 별 무리 없이 따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진지하게 질문을
하셨으며, 제대로 배워가고 싶다는 의지로 충만하셨습니다. 비록
서로들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서로에 대한 이해와 재미있는 몇 분들의 노력으로 지내는 동안 상당히 즐겁고 기뻤습니다. 또 때로는 고통스럽고, 힘들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효과는 배가되어
저에게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수련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어떤 측면에서는 버렸습니다. 그냥 규칙적으로 일정 시간을 할애해 일정 내용의 동작들을 꾸준히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그를 통하여 저 자신의 몸과 마음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가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스스로 이루어지는 시기까지 보이지 않게 규칙적이고도 진지한 노력을 전개해보겠습니다.
- 체험기 4
– 수련회를 다녀와서 – 천은복님(35세, 정신문화연구원)
제가 이번 수련회에 참여한
이유는 더 이상 길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완전히 무기력한,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 그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깨끗하게 한 경계를 넘은 사람이라고 제 스스로 인정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정말 크게 한 방 맞았지요. 그토록 가혹하게, 또 그토록 정확하게 나의 에고를 건드린 이는 처음이었습니다.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지적들이었지만, 허전했습니다. 그리고
허망했지요. 왜냐하면 문제는 알지만 해결책이 없었으니까요. 할
일은 산더미 같은데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넋 놓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수련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신청해놓고도 가기 전 날까지도 망설였지만, 가도
후회하고 안가도 후회한다면 가보고 후회하자라는 결론을 내렸지요. 실망할 각오를 하고 간 셈이지요.
전에 수바마니 님을 잠깐
뵌 적이 있었는데, 그 때는 좀 무섭고 딱딱한 사람이라고 느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보았을 때는 너무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모든 얼굴의 근육이 다 이완된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긴장한 근육이 없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많은
수행자들을 보아왔지만 그런 얼굴은 처음이었지요. ‘수련해서 저런 얼굴,
저런 눈 빛을 가질 수 있다면, 한 번 해볼만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그때 잠시 했습니다. ^^ 그러나 저는 끝까지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서 며칠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모든 고민이 사라졌습니다. 이유를 모릅니다. 굳이 설명하자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몸이 변하면서 마음이
변한 모양이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오래 전 처음 발심했던 그 때의 염원이 여기까지 이끌어온
듯 합니다. 그 동안 여기 저기 다니며 실망하고 좌절하면서 내가 바라는 그런 길은 없을 거라고, 그래서 잊어버리고 포기했던 것들 것 다시 꿈꾸어봅니다. 이 길이
끝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아름다운 꿈을 꾸는 형제자매들과 한 세상 더불어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해갑니다. 몸이 바뀌면 마음이 바뀐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끼는 하루하루입니다. 빨리 이 비가 그치기를 기다립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이미 가을이
와 있겠지요. 찬란한 가을 하늘.
같이 수련했던 분들이 떠오릅니다. 왠지 본 듯해서, 자꾸만 어디서 보았을까 생각하게 만들었던 사람들. 맛있는 복수박으로 뜨거운 여름날 더위를 잊게 해주신 분들. 함께
있다는 그 자체로서 힘이 되어주신, 모든 도반들께 감사 드립니다. 조만간
또 뵙기를……
- 수련 강평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면 삶이란 어디에 있는가?" 아라가비 박현님(2000.08.19)
바니하!
여름수행을 다녀온 분들의
이야기를 기쁜 마음으로 지켜보며 글 올리기를 좀더 늦추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백양사에서 무차선회無遮禪會가
열리는 날이라 거기에 한 번 들러볼까 하다가 그렇지 못하고 한가지 소회나 올리려고 이렇게 마당에 들어왔습니다.
만약 무차선회에서 제가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면 저는 이렇게 한마디만 했을 것입니다.
“이 자리에 그대로 머문다면
삶이란 어디에 있는가?”
저는 선가의 선문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색즉시공이요 공즉시색이니 공과 색이 맞닿아 하나됨의 벼락소리로 돌아오는 것이 참으로 ‘선’이거니와 저는 역대조사의 선문답에서 그런 벼락소리 울리는 일을
그다지 ‘보지’ 못한 탓입니다.
오늘의 선문답, 거기에는 몸과 마음의 갈라섬이 있고, 마음과 마음의 갈라섬이 있어, 듣고 있노라면 ‘사랑구슬’ 누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마른 토악질이 날 지경입니다. 석가모니께서 보신다면 옆에서 함께 그렇게 하실 것입니다.
수행자라는 권위와 위선에
찌든 승려들, 이미 빌어먹지 않는 수행자들, 수행을 하는
것이 저것들밖에 없는 줄 알고 내리까는 심중무인의 갇힌 눈빛, 해맑으면 된다는 생각에 젖어 사는 어리석음의
동안들!
저는 묻고 싶습니다. 열반길 허공에서 이미 몸 버린 스승을 만났으나 그 스승의 몸을 보기 위해 불철주야 가리지 않고 뛰어온 마하가
사파의 길에는 환경이 없었으니, 그 길이 찰나인지 아닌지를 묻고 싶습니다.
살보다도 빠른 길, 그러나 환경 조차 떨쳐버린 머무르지 않는 길, 바로 그 길에 참
생명이 있습니다. 이것은 위대한 그 어떤 스승들이 다시 와도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그것이 바로 알파요 오메가라는 예수님의 길이요, 엎어져도 넘어져도
떠나지 않는 공구 님의 길이요, 수많은 설법에도 불구하고 한마디 설법한 바 없다는 석가모니 스승의 길입니다.
환경이 떨어진 그 길을
보라는 것이 선일진대, 선문답을 하는 이가 오늘 한 자리에 모여서 무엇을 한단 말입니까? 오늘 불교가 해야 할 선문답은 단 한가지입니다.
“무엇을 할꼬”
“절간의 문에 한 빛도
들이지 말라”
아무튼 번잡스런 이야기는
그만 하겠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 이야기를
말머리로 삼은 데는 제 나름의 까닭이 있어서입니다.
얼마 전 한여름에 ‘천통회’라는 모임을 흩었습니다. 왜냐? 공부의 길이 선의 길과 다르지 않아 머무르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모임이
모아진지 1년하고도 반, 그 사이에 이미 모임을 모임으로
보고 그 모양새와 운영에 안착의 기운이 드러난 탓입니다. 안착의 기운이 드러나면 환경을 떠나 일하고
수행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환경을 문제 삼는 부질없는 이야기가 나오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일을 자주
이야기하게 되며 이미 머무른 지 오래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참 삶의 길을 떠난 것입니다.
공부하는 벗(동무들이 아님, 동무는 딸린 이요,
벗은 함께하는 이)들이 모임을 내놓으면, 그
모임은 마구니가 이끌어도 그만이요 한임이 이끌어도 그만입니다. 환경을 떨치고 자신을 다시 해가면 그만입니다. 오로지 다시 함을 위해 모울도뷔를 할 따름입니다. 환경은 공부의
동무지 벗이 아닙니다. 공부는 오로지 찰나간에 이루어지는 긴 여행일 따름입니다.
이번에 여름수행을 다녀오신
분들께 제가 드리고 싶은 이야기도 바로 이것입니다.
“머무르지 마십시오. 부질없는 번뇌의 집에서 머뭇거리는 이가 무슨 생명을 보겠습니까?”
오늘이 새롭고 내일이 새로운
것조차 놓아버리고 찰나의 긴 길을 즐겁게 웃으면서 가볼 일입니다.
- 모울도뷔 창간호(2000년 9월)
첫댓글 2000년도에 저는 태백에서 근무하는 바람에 잠시 수행 참가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때는 천통 보다는 바나리가 더욱 익숙한 이름이었지요.
1999년 개벽인 선언을 하고 모울도뷔 계승 운동도 전개했지요.
지금은 없어졌지만 banary 홈페이지도 만들고 수행결과를 여기 홈페이지에도 올리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지유명차 홈페이지죠.
신장식 님이 지금은 57세, 지유명차 분당 정자점을 경영하고 계십니다.
facebook에서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EBS PD, 국악, 보이차, 배드민턴, 바둑 등이 key 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