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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베를린올림픽에서의 우승 한국인이 최초로 참가한 올림픽은 1932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이다. 권태하와 김은배가 일본 국적으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마라톤경기에 출전하여, 김은배가 6위에 입상했다. 올림픽이 끝난 후 권태하는 미국에 남았고, 손기정은 정식 마라토너가 되어 세계를 제패하는 꿈을 꾸었다. 마침내 손기정은 1936년 베를린올림픽의 마라톤 종목에 남승룡(조선인), 시오아쿠(일본인)와 함께 일본 국적으로 출전하여 2시간 29분 19초의 세계신기록으로 우승했다. 한국인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나 손기정은 우승국의 기를 게양하고 국가를 연주하는 올림픽 시상의식을 몰랐기 때문에 마라톤 시상식에서 기미가요가 울려 퍼지고 일장기가 올라가자 우승을 빼앗긴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3위를 한 남승룡 역시 시상대 위에서 침울하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남승룡은 손기정이 들고 있는 월계관수 묘목이 가슴의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기 때문에 무척 부러웠다고 한다. 둘은 베를린에서 일본선수단이 세계 귀빈을 초대해 마련한 축하파티는 참석하지 않고 같은 시간 안중근 의사의 사촌인 안봉근의 집에 초대받아 갔다. 손기정은 그곳에서 생애 처음 태극기를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바로 가슴에 달지 못한 우리나라 국기였다. 손기정은 마의 2시간 30분의 벽을 깨고 당당히 금메달리스트가 되었지만 국내로 돌아온 그를 중심으로 우리의 민족주의가 강화될까 우려한 일본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일본의 감시와 더불어 더 이상 일장기를 가슴에 달고 경기에 출전하고 싶지 않았던 손기정은 후계자를 양성하는데 온힘을 쏟았고, 광복 후에는 안암동 자택에 ‘마라톤 선수 합숙소’를 만들며 한국 마라톤 제 2의 황금기를 열었다. “조국 땅에서 구김살 없이 달릴 수 있는 젊은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달리는 것을 누가 막겠는가!”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올림픽에서 우승하는 후배 마라토너를 그토록 바라던 손기정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마라톤 종목에서 황영조가 우승하자 “오늘은 바로 내 국적을 찾은 날”이라며 기뻐했다.
승리의 전리품 히틀러는 독일 제국주의와 아리아인의 우수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자 베를린올림픽을 성대하게 개막했다. 우승자에게는 메달과 우승상장, 월계관수 묘목을 수여했으며 머리에는 월계관을 씌웠다. 현재의 메달은 목에 거는 형태지만 당시에는 메달을 케이스에 넣어서 금박종이 재질의 우승상장과 함께 수여했다. 월계관은 고대 그리스에서 경기의 승리자에게 월계수 가지와 잎으로 둥근 테를 만들어 씌우는데서 비롯되었는데, 그리스의 월계수는 독일에서 자라기 힘든 수종이어서 참나무종으로 대신해 순결한 독일 여성이 손수 월계관을 제작했다. 손기정이 마라톤 우승 후 받은 금메달, 우승상장, 월계관은 등록문화재 제489호로 지정되어 현재 손기정기념관에서 전시중이다. 월계관수 묘목은 손기정체육공원에 식재되어 거목으로 성장했다. 특히 그리스의 마라톤평야에서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치고 얻은 승리를 아테네에 전하기 위해 약 40km를 달려와 승전보를 전하고 절명한 필리피데스를 기리기 위한 마라톤은 모든 경기가 끝나는 대회 최종일에 열려 올림픽의 꽃으로 불리며 올림픽의 상징이 되었다. 때문에 손기정은 마라톤 우승자에게 특별히 수여되는 필리피데스 조각상과 고대 그리스의 청동투구를 부상품으로 받았다. 하지만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에서는 ‘아마추어 선수에게는 메달 이외에 어떠한 선물도 공식적으로 수여할 수 없다’는 규정을 근거로 손기정에게 청동투구를 수여하지 않았고, 당시 일본선수단은 청동투구를 독일에 남긴 채 귀국했다. 손기정은 훗날에야 이 청동투구가 부상품임을 알게 되어 각고의 노력 끝에 1986년 8월 9일 베를린올림픽 50주년 기념행사에서 돌려받았고, ‘이 투구는 나의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것’이라며 국가에 기증하여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청동투구는 역사적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1987년 서구 유물로는 처음으로 보물 제904호로 지정되었다.
손기정기념관과 소장 유물 손기정기념관은 일제강점기 세계를 제패해 우리 민족의 긍지를 높인 손기정의 뜻을 기리고 한국마라톤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손기정의 모교인 양정고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손기정 탄생 100주년인 2012년 10월 14일에 개관하여 ‘손기정 정신’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그러나 2만 3천 여 점의 소장품 등록 작업과 연구가 예산 및 인력부족으로 작업이 더딘 상황이다. 얼마 전 손기정이 베를린올림픽에 참석하기 위해 탔던 동경-베를린행 열차의 표가 국내언론을 통해 공개되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시베리아 횡단열차에 관심이 집중되는 요즘에서 그 가치가 밝혀진 것이다. 시대의 아픔을 고스란히 겪었던 손기정이 애틋하게 모았던 소장품의 가치평가와 연구가 필요하다.
글. 김송이 (손기정기념관 학예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