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일서 3 - 사랑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 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9-13)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19-21)
① 크리스찬의 주된 관심사는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그리고 깊이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크리스찬인 거예요! 크리스찬은 크라이스트, 곧 그리스도 예수를 구주로 믿고 마음에 모셔들인 사람입니다. 좀 어려운 말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이예요! 한편 하나님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예요! 그러니 크리스찬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그리고 깊이 알아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가치관을 지닌 사람이요, 예수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② 왜 설교 서두에 이런 말을 하느냐 하면 여러분이 성경에 대해서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설교와 성경공부에 임하라는 뜻에서예요! 저는 8월달에 들어와서 요한일서를 본문으로 설교를 하고 있어요! 그래서 여러분이 요한일서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그 내용을 아는 것에 대해서 즐거워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③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저의 설교를 두 가지 패턴으로 정리할 수 있어요! 하나는 여러분의 상황에 맞춰서 필요하다 싶은 설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자연히 주제 설교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성경 그 자체를 설교하는 것인데 이것은 여러분이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 않아요! 왜? 나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다고 할테니까요!
④ 저는 대부분의 설교를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 성경 본문을 풀이하는 패턴으로 했어요! 그래야 여러분이 들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해에 들어와서는 성경 그 자체에 대한 설교를 자주 하고 있어요! 왜? 여러분이 전역해서도 볼 수 있는 것은 성경책이니까요! 주제 설교는 잊혀지더라도 아니, 모든 설교를 잊는다 하더라도 성경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말씀드리건대 여러분이 성경, 곧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고 궁금해하지 않으면 귀에 들리지 않아요! 바라옵는 것은 기독교 입문서와 같은 요한일서를 여러분이 관심을 갖기 바랍니다.
⑤ 자, 그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갈텐데 저는 요한일서를 네 번의 설교에 담으려고 네 가지의 주제를 생각했어요! 물론 나만의 생각이 아니라 이상근 목사님의 성경 풀이 책, 곧 주석을 참고했어요! 그 네 가지의 주제는 사귐과 경계와 사랑과 영생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 세 번째로 ‘사랑’에 대해서 말씀드리려 합니다.
⑥ ‘사랑’이라고 하니까 너무 많이 들은 말이라 더 들을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들 수 있어요! 하지만 들어보세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요일4:9) 아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셨는데 그 이유는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 이로써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잖아요!’
⑦ 다음 10절의 말씀은 좀 더 설명이 된 내용이예요!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4:10) ‘하나님이 우리를 살리려 자기의 독생자를 보내셨는데, 우리를 어떻게 살리려 하셨는가?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이 사랑이 아니고 무엇이겠어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하시려고 자기의 아들을 대신 죽게 하신 것입니다. 아멘!’
⑧ 그래서 주시는 교훈은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입은 자로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사랑 받은 자만이 사랑할 수 있어요!’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먹는다잖아요! (이 때에 적합한 말은 아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해본 말이예요!)
⑨ 다음 12절의 말씀은 결론적인 그리고 놀라운 은혜의 말씀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요일4:12) 아멘! ‘우리는 하나님을 볼 수 없어요! 그런데 느낄 수는 있어요! 언제?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아멘!
⑩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어요! 그것은 바로 신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은 바로 성령님! “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요일4:13) ‘우리가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게 되는 것도, 그래서 하나님을 느끼게 되는 것도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멘!
⑪ 쉬어가는 의미에서 유머 한 마디, 중국집 아들이 학교에서 돌아와서는 “엄마! 오늘 국어 시험 봤어” 그러자 엄마가 물어봅니다. “다 맞았어?” “아니? 한 개 틀렸어” “머가 틀렸는디?” “보통 의 반대말...” “그래서, 뭐라고 썼는디?” “곱배기” “그래? 맞았는디 왜 틀렸다고 했을까? 선생님이 뭘 모르는 거 아니여?”
⑫ 본문 말씀을 이어서 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4:19) ‘그렇죠! 사랑을 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윗분이 먼저 사랑하는 거예요!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아무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그 사랑 받음을 아는 자들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⑬ 다음 20절의 말씀은 논리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음을 잘 설명하고 있어요!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볼 수 없는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느냐는 논리이죠!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이라는 겁니다!’
⑭ 이제 결론의 말씀으로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일4:21) 여러분, 사랑을 어떻게 하는 줄 몰라서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그래서 다시 한번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말하는 다섯 가지의 사랑의 방법을 말씀드립니다. 첫째 관심을 갖는 것, 둘째 책임을 느끼는 것, 셋째 존중하는 것, 넷째 이해하는 것, 다섯째 주는 것! 여기에 한 가지 더하고 싶은 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랑을 하고 사랑을 느낄 수 있어요!
⑮ 행복한 가정을 위해 사역하는 정동섭 교수는 ‘사랑의 다섯 가지 언어’를 이야기했는데 정확히 말하면 ‘사랑의 다섯 가지 표현’이예요! 첫째 적절한 스킨십, 둘째 사과 혹은 격려의 말, 셋째 선물, 넷째 봉사의 손길, 다섯째 시간을 함께 보냄!
⑯ ‘형제 사랑’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오해의 여지가 있어서 요즘 많이 회자되는 ‘동성애’에 대해서 한 말씀 드려야겠어요! 우선 성경에서 말씀하는 ‘형제 사랑’을 ‘동성애’로 생각해서는 절대 안될 말씀이구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서로 성적인 사랑을 나누게 하신 것은 종족 보존이라는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종족 보존만을 위해서 성적인 사랑을 나누라는 것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이 둘은 떼려고 해도 뗄 수 없는 거예요! 이 둘을 떼어내서 생각하니까 불륜이고 혐오가 되는 거예요! 불륜이나 동성애는 종족 보존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래서 잘못이라는 말입니다. 이 점을 깊이 유념해야 합니다.
⑰ 사도 요한은 당시에 교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그노시스(영지)주의자들을 경계하라고 요한일서를 썼는데 영지주의자들의 잘못 세 가지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않고 단지 뛰어난 한 인간으로 봐요! 둘째, 자기들은 영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그래서 그 영혼이 구원을 얻기 때문에 몸으로 어떤 죄를 지어도 그 죄가 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죄가 죄 되지 않는다는 거예요! 셋째, 영적 지식을 갖고 있는 저들만의 교만함인데 그 교만함으로 교회 안의 다른 형제들을 무시했어요!
⑱ 그래서 사도 요한은 사귐의 진정한 의미를 가르쳤고 그 사귐에 방해되는 것들을 경계하라고 했고 이제 핵심적 내용으로 하나님 사랑과 형제 사랑이 이어져야 함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으로는 영생, 곧 영훤한 생명에 대해서 말씀하실 것인데 오늘의 메시지는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⑲ 사랑을 어떻게 하라구요? 첫째 관심을 가져주세요! 그러나 지나친 관심은 간섭입니다. 둘째 서로 책임을 집시다! 셋째 서로를 존중합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부터 공손하게 해야 하겠죠! 넷째 이해해주세요! 영어로 UNDER-STAND, 직역하면 ‘아래에 서다’인데 존중이라고 하면 더 좋을 듯 싶습니다. 그래서 한자어로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더 정확할 듯 싶어요! ‘입장을 바꾸어서 생각해본다’는 겁니다. 다섯째 주는 것입니다. 필요로 하는 것들을 힘닿는 대로!
⑳ 요한일서의 다른 구절 한 절을 읽고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