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조선을 침범하면서 남해 바다에 깊숙히 숨어 있어 해군 기지의 적임지라고 알고
최고의 군항을 만들기 위해 농촌자연 부락 수십개를 쓸어 버리고 미국 워싱톤 다음 2번째로
"계획 도시"를 만들었다. (시청홈페이지에는 기록이 없었다.)
시가지 중심에다 둥근 로타리를 만들고 8방으로 길이 갈라지게 만들고 골목들은 전부 직선화 했다.
이 모양이 일본군 해군 깃빨을 상징한다. 빨간 동그라미에 햇발이 비친 는 것 처럼..
해방 후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의 해군의 핵심 기지로 쓰인다.
한때는 3군 사관학교와 육군 대학이 있었고 조그마한 비행장도 있어 6,25때 낙동강 까지 적에게
빼았겼을 때는 미군 전투기와 한국 공군이 이 비행장에서 직접 출격도 했다,
일본은 진해를 영구히 자기 땅으로 만들기위해 일본의 국화인 사쿠라(벚꽃)나무를 집중 적으로
심고 그들은 즐겼다.
해방이 되자 일본의 국화라고 많이 베어버리기도 했으나 "왕벚꽃" 일본의 국화이지만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것이 밝혀지면서옛명성을 되찾고자 다시 어린 묘목을 심어서 지금과 같이 조경했다.
나의 고향은 진해시가지에서 4km정도 떨어진 낙후된 농촌지역인 이동이란 곳이다.
고등학교 2년때 인근의 마산에서 3.15 사태가 나고 곧이어 4.19. 5.16..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자 말자 군에 입대하고 제대 후에도 객지에서 살았다.
고향에 대한 향수를 항상 가슴에 담고 살았다. 몇년 전 부터는 2년에 한번 쯤 다녀오지만 변한
것이 하도 많아 오히려 허전한 마음만 담고 오기도 한다.
2006년 3월 30일에 진해를 다녀 오면서 찍은 사진을 정리하여 올려 봅니다.
소니 W5. 350만화소 소형카메라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