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산상제님께서는 마음이 부자유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러 오셨습니다. 상극시대에 부자유스러웠던 대표적 유산이 '종지기'입니다. 내가 남의 종이 되건 남을 나의 종으로 거느리건, 서로간에 관계의 부자유와 마음의 부자유를 가져옵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후천 상생시대를 여는 천지공사를 보시면서, 제자들에게 종지기 근성을 버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하루는 공사를 보실세 방문을 열어 놓으시더니, 허공을 향하여 천음(天音)을 크게 하사 가라사대 "어찌 이러할 수 있으리. 남에게 의뢰하는 근성을 벗어날 것이며 남의 종지기 근성을 벗어나라. 어찌 사람의 인격으로서 이러할 수 있으리요." 하시고 문을 닫으시며 공사를 계속 보시였다 하니라. (정영규의 천지개벽경 pp250-251)
마음을 깨친 진리의 눈으로 보면 모든 사람이 다 귀한 법입니다. 마음을 닦아 상생의 마음문을 열지 못했기에, 남을 업신여기고 비하하는 종지기의 언행이 나오는 것입니다. 종지기의 언행이 계속 쌓이다 보면, 서로간의 인격에 깊은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증산상제님께서는 종들에게까지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존경을 표하셨습니다.
@ 증산상제님께서는 비록 미천한 사람을 대할 지라도 반드시 존경하시더니, 형렬의 종 지남식에게도 매양 존경하시거늘, 형렬이 여쭈어 가로되 "이 사람은 나의 종이오니 존경하지 마소서." 상제님 가라사대 "이 사람이 그대의 종이니 내게는 아무 관계도 없느니라." 하시며 또 일러 가라사대 "이 마을에서는 어려서부터 숙습(熟習)이 되어 창졸간(倉卒間)에 말을 고치기가 어려울 지라도, 다른 곳에 가면 어떤 사람을 대할 지라도 다 존경하라. 이 뒤로는 적서(嫡庶)의 명분과 반상(班常)의 구별이 없느니라.” (대순전경 p102)
증산상제님께서는 천지의 환경을 상생으로 바꿔 놓으시고, 천하창생들로 하여금 마음을 닦아 지심대도술의 후천 상생시대를 열어가도록 하셨습니다. 상생의 마음을 닦은 만큼, 억압하고 구속하는 종지기의 언행이 사라지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상생의 언행이 나옵니다. 권력을 통해, 재력을 통해, 기타 이러저러한 이유로, 누가 누구를 구속하고 구속당하는 부자유한 상극의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상생의 시대는 마음의 구속을 벗어난 대자유의 시대입니다.
비록 증산상제님께서 고수부님과 더불어, 천하일가의 상생의 시대를 열어놓으셨다고 해도, 자유는 아무런 노력없이 그냥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동물의 성정을 버리지 못해, 서로간에 종지기의 상극문화에 습관들여져 왔습니다. 천지부모님을 만나 종지기 근성을 버리고 서로간에 인격을 찾아야 합니다. 천지부모님을 만나, 부자유했던 마음이 자유로운 마음이 되기 위해서는, 마음을 닦고 닦아 상생의 마음을 드러내야 합니다. 천지부모님의 마음과 하나된 상생이라야, 종지기 근성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천지부모님은 천하를 일가로 하는 상생의 자유시대를 여셨습니다.
첫댓글 천지부모님께서는 벽 없이 인간과 신명도 소통할 수 있는 신인합일의 세계를 여셨습니다.
마음의 벽을 쌓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인 것 같습니다.
종지기 근성을 버리고 상생의 마음으로 닦아서
대자유의 태을도인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진리가 독기 살기에 막혀 부자유스럽고 억지로 복종하게 되었습니다.
진리가 그대로 행사되어야 자연스럽고 자유롭습니다.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존경하는 진리의 사랑을 실천하겠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알듯 모를듯 확연히 이해되진 않았던 경구였지만,
진리도, 자유도, 진리가 자유케 한다는 표현도, 다 좋았습니다.
태을도인의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부터
진리를 만난 기쁨과,
앞으로 열리는 후천 태을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릴 기대감으로,
지금껏 희망을 품고서 사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