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으로 이사하고 보니 제일 힘든 일이 서울 나들이다. 지하철도 잘 연결되어 있고, 광역버스도 있고, 자동차를 운전해서 다닐 수도 있는데, 어떤 방법을 택하건 집 문을 나서서 돌아올 때까지 보통 다섯 시간이 소요된다. 그러다 보니 한 시간 일 보러 서울 간다는 건 용기가 안 난다. 그래서 보통 두 세 가지 할 일이 있을 때 서울 나들이를 간다.
요즈음 다니면서 여신도회 전국연합회 일할 때를 자주 생각하게 된다. 매달 열리는 실행위원회 회의를 위하여 제주도부터 전라 경상 충청 강원 경기, 전국에서 오시던 분들이 얼마나 고마웠던가. 서울에서 가까운 인천에 살면서 지금 내가 느끼는 어려움보다 더 큰 어려움들을 기꺼이 감수하며 매달 회의에 참석해 주셨던 분들의 얼굴이 하나하나 떠오른다. 이제는 80이 다 넘으셨을 분들을 한번 순회방문이라도 해서 보고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다.
며칠 전 꼭 서울 가야만 해결할 일 두 가지를 과제로 가지고 집을 나섰다. 일마치고 돌아오는 길. 편하게 집에 오려고 광역버스를 탔다. 광역버스는 우리아파트 뒤 초등학교 앞에서 내리기에 많이 걷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고속도로에 들어서 잘 달리는가 싶더니 차가 움직이지 않고 주차장처럼 도로에 가득하다. 그렇게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갔다. 두어 시간 지나 정체가 풀려 지나다 보니 차 두 대가 불에 홀딱 다 탄 것이 보인다. 다행히 사람은 다친 것 같지 않다. 느릿느릿 움직인 차가 고속도로를 벗어나 내가 내릴 정류장에서 도착해서, 내리려고 일어서는데 오금이 펴지지 않는다. 간신히 버스에서 내렸다. 천천히 걸어도 영 편치 않다. 공원을 지나 후문 쪽을 향해 가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 어린이 놀이터에 아이들이 신나게 노는 게 보인다. 후문 쪽 놀이터는 꼬맹이들 놀이터다. 내가 사는 601동 옆에 있는 놀이터는 이름부터 모험놀이터다. 이곳은 초등학교 이상 중학교 아이들도 떼를 지어 와서 놀고 가곤 한다. 시간이 어린이집 파한 뒤라서 그런지 꼬맹이 놀이터에 아이들이 가득하다.
간신히 놀이터까지 걸어가 그 앞에 놓인 눕는 의자로 다가가 “끙” 하고 앉았다. 아이들 돌보며 엄마나 할머니들이 쉴 수 있도록 여러 형태의 의자들을 만들어 놓아서 엄마들끼리 이야기도 나누고 아이들과 앉아서 간식도 먹는 곳이다. 마침 엄마에게 물 먹으러 왔던 네 살 쯤 되어 보이는 꼬마가 내가 내는 소리를 듣고 나를 빤히 쳐다본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무 힘들어서 하늘 보고 의자에 누웠다. 나를 쳐다보던 꼬맹이가 다가와 누워 있는 나를 내려다본다.
“너도 눕고 싶어? 그럼 내 옆에 누울래?” 하며 자리를 내주었다. 그랬더니 싫다고 하면서 자기는 다른 의자에 앉겠다고 손짓을 하고 물러갔다. 어쨌거나 누우니 편했다. 며칠 동안 우중충했던 하늘이 말간 맨얼굴을 내미니 세상이 다 밝았고, 아이들이 내는 소리는 날아갈 듯이 맑고 가벼웠다. 집도 다 왔으니 조금 누웠다 갈 생각이었다. 의자도 사람의 누은 곡선에 맞게 만들어 놓아서 아주 편했다. ‘아 좋다!’ 하늘 보며 누워 있는데 꼬맹이 얼굴이 다가와 다시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왜 할머니가 또 보고 싶었어?”하고 일어나 앉으니 빙긋 웃으며 뒷짐 지고 있던 손을 내게 내민다. 주위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토끼풀꽃 한 송이와 민들레꽃 한 송이를 아주 수줍게 내게 건네어 준다. “와! 이거 할머니한테 주는 선물이야? 아이구 고마워라.” 하고 활짝 웃었더니 머리 위로 손을 올려 하트를 그린다. 나도 두 손 올려 ‘사랑해’ 하고 답하니 너무 좋아한다.
그 꼬마를 따라 다니며 흉내 내던 더 작은 여자아이도 똑같이 꽃 두 송이를 내게 주었다. 셋이 같이 두 손 올려 하트를 만들고 서로 보며 웃었다. 주위에 있던 엄마들이 모두 박수치며 웃었다.
두 꼬마에게서 프러포즈 받은 날! 와 이 할머니 이제 날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