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협지는 20대까지는 와룡생 무협지를 주로 읽다가 '영웅문'이 나온 후로는 김용의 무협지만 읽었습니다. 와룡생 무협지는 만화방에서 빌려보든지 한밭도서관에서 빌려봤었습니다. 만화와 무협지를 산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빌려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김용의 무협지도 사지는 않고 어떻게든 얻어걸리는 대로 읽었는데, 퇴직한 후에 논산 열린도서관에서 김용의 무협지를 신청해서 김영사판 김용 무협지를 다시 읽었습니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 '소오강호', '천룡팔부', '녹정기'를 읽었으니 김용의 대표작은 거의 다 읽은 셈입니다. 열린도서관에는 한국 작가들의 무협지도 있어서 몇권을 읽었는데 도저히 읽을 수준이 안되서 읽다가 짜증이 나고 머리가 아퍼서 다시는 한국 무협지는 읽지 말아야지 했었습니다.
웹 소설과 웹툰을 연재하고 있는 <네이버시리즈>라는 앱에서 비가 작가의 '화산귀환'이라는 환생물 무협소설이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해서 내돈 들어서 '화산귀환'을 지금까지 보고 있습니다. '화산귀환'은 오늘 현재 조회수가 4억 8800만이나 되는 베스트셀러 입니다. 이 '화산귀환'은 김용의 무협지 수준은 아니지만 볼만하고 나름 재미있는 무협소설입니다. 몇년전 부터 웹 소설은 주인공이 미래나 과거로 다시 태어나는 환생물이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얼마전에 방영되었던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도 원작이 환생물 웹소설이었습니다.
'화산귀환'을 재미있게 읽고 있어서 비가 작가의 또 다른 환생물 무협지를 연무도서관에서 읽었는데 별로였습니다. 사실 '화산귀환'도 수준이 높은 소설은 아니어서 '한국 무협지가 그럼 그렇지'하고 실망했고 연무도서관에 한국 무협지가 엄청 많이 있었지만 읽고 싶은 마음이 또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한국 무협작가 중에 좌백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좌백의 무협소설을 한번도 읽은 적은 없었습니다. 연무도서관에 좌백의 작품이 두개가 있어서 별 기대를 하지 않고 읽었는데 놀라운 작품이었습니다. '비적유성탄'과 '하급무사'라는 작품이었는데 문장이 뛰어나고 장면 묘사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등장인물 모두 다 개성이 있고 쓰레기 처럼 사라지는 인물들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놀란 것이 무림세계의 검객, 무사들의 실생활을 실감나게 묘사해서 그럴 듯 하다고 공감했습니다. 김용의 무협지에서는 주인공들이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협객들은 돈이 모두 풍족해서 일상 생활에서 쪼들리게 사는 경우가 없습니다. 그러나 좌백의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생활에 아주 무능합니다. 무공을 익혔지만 그것으로 할 일이 별로 없습니다. 무술이 뛰어나다고 해서 누가 밥을 주지 않고 재워주지 않습니다. 무술로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별로 없습니다. 먹고 살려면 부자들의 경호원이나 장사치에게 삥이나 뜯는 조폭(무협지에서 말하는 흑도)이 되야합니다. 표국의 호위무사가 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 빽이 있고 안면이 있어야 가능해서 그냥 무공이 뛰어나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아니면 포졸이라도 되면 좋겠지만 이것도 뇌물과 빽이 있어야 채용될 수 있어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좌백 무협지의 주인공들은 먹을 거리를 걱정하고 할 수 없이 막노동을 합니다. 꽤 뛰어난 무공을 가진 무사가 자존심때문에 경호원같은 것은 못하고 막노동도 못하고 구걸도 못하니 그냥 굶다가 쓰러지고 맙니다.
좌백의 두 소설을 재미있게 읽어서 찾아보니 네이버시리즈 앱에서 '혈기린 외전'이라는 좌백의 무협소설이 있어 구입해서 읽어보니 역시 재미있었습니다. 주인공을 스치듯 만나는 사람도 나중에 어떤 역할을 하게되는 치밀한 구성을 갖고있습니다. 마치 리얼리즘 현대소설을 읽는 듯 합니다. 주인공은 복수를 위해 온갖 고난을 겪지만 복수를 하고나니 그저 허망할 뿐입니다. 기존의 무협지에서 복수에 성공해서 해피엔딩이 되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현실에서는 복수를 해도 달라질 것이 없는 것이 실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