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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전다방
김서령
골목을 걷다보니 문득 배가 고프다. '북경반점'. 흘림체로 써둔 붉은 간판이 허기를 자극했다. 두어 시간 동안 목욕탕에서 진을 빼고 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나는 괜히 북경반점 앞 골목을 한 번 더 돌았다. 다시 식당 근처에 섰을 때 공중전화 부스로 들어가 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손님들의 목소리가 왁자해서 그냥 끊어버렸다. 남은 오십 원으로 조 양에게 전화를 했다. 배고프지 않아? 자장면 사줄게.
자장면은 빨리 나오지 않았다. 단무지를 지분거리는 나를 보며 조 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 있지?
아니. 나는 끝음절을 길게 빼며 고개를 저었다. 배시시 웃는 내가 더 못 미더웠는지 조 양의 얼굴이 걱정스럽다. 덜그럭 소리를 내며 탁자 위에 놓여진 자장면을 나는 오래도록 먹었다. 두어 가닥을 입에 물고 천천히 끌어당겨 입 속에서 오물오물 씹었다. 먼저 다 먹은 조 양에게 한 젓가락 가득 덜어주고도 한참을 먹었다. 자장면이 찝찔했다.
- 시간 있는데 머리라도 해라, 언니.
조 양은 흘러내린 내 옆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며 안쓰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레스토랑 유리문에 비친 내 머리가 푸석하다. 조 양이 우리 가게를 그만두고 옮겨간 레스토랑이다. 파마를 하지 않은 지 한 달 반이 넘긴 했다. 시계를 보니 한 시다. 마담 언니는 주일이면 꼬박꼬박 교회에 나갔다. 일요일에는 오전 손님이 많지만 언니는 그것을 포기하고 세 시에야 다방문을 열었다. 나라도 아침 일찍 문을 열면 되는 것을 마담 언니는 하지 못하게 했다. 그래도 이걸 붙인 집인데. 그녀는 다방 입구에 붙여진 '남춘천 순복음 교회 신도의 집' 이라는 스티커를 만지며 아쉽지만 오전 손님들을 그냥 돌아서게 했다.
조 양을 들여보내고 미장원에 들를까 하다가 다방으로 와버렸다. 창문을 열고 빗자루로 한 번 쓸어내고 나니 정수리에서부터 땀이 조로록 흐른다. 손을 대어보니 머리에 비라도 맞은 것 같다. 대걸레를 빨아다 다방 구석구석을 박박 문질러 닦았다. 텔레비전에서는 어제 제대로 못 봤던 주말연속극의 재방송이 한참이다. 나는 대걸레를 화장실 귀퉁이에다 가져다놓고 텔레비전 쪽의 자리에 앉았다. 신발을 벗고 의자에 올라앉아 좀 편하게 기대보려니 등받이가 낮다. 자리를 옮겨 텔레비전을 모로 보고 앉아 수족관에다 머리를 기댔다. 이끼가 가득 낀 수족관의 물은 머리를 차갑게 식혀주지도 못한다. 물고기도 몇 마리 없다.
중앙동에서 다방을 하던 마담 언니가 이곳으로 옮겨올 때 나는 그만둘까 생각도 했었다. 역 앞이라는 것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다. 시내 변두리에는 그나마 단골 장사라 얼굴만 적당히 익혀두면 어려울 것이 별로 없었지만 역 앞은 거의 뜨내기 장사였다. 한 번 들르고 마는 다방에 손님들이 정을 붙일 리 없었다. 드나드는 사람은 많다 해도 영 내키지가 않는 일이었다. 마담 언니는 울상을 지으며 나를 잡았다. 너두 알잖아. 나, 낯선 사람 싫어하는 거. 다른 애 데리구 와서 또 언제 정들고 그러니. 장 양아, 응? 마담 언니가 중앙동의 다방을 판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나도 계속 그곳에 남아 있자고 뻗댈 수는 없었다.
마담 언니의 애인은 시인이었다.
언니가 처음 그의 시가 실린 문예지를 펼쳐들었을 때, 그리고 그의 사진과 당선소감을 보았을 때 조 양과 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 하는 사람인데? 그가 가고 난 뒤 마담 언니에게 우리가 물을 때면 언니는 시 써, 하고 수줍게 대답을 했었다. 우리가 그 말을 제대로 들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차라리 마담 언니가 자신을 따라다니는 한일토건 김 사장이나 만나기를 바랐다. 앙똥한 사람이긴 하지만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광어회나 생갈비를 먹을 수도 있는 일인데.
마담 언니는 그의 시가 당선된 문예지를 대여섯 권 다방에 가져다 두었다. 김 사장을 비롯한 헤실바실한 몇이 추근덕거리는 기색이 있을 때면, 언니는 문예지를 펴들었다. 얼굴이 가무대대하던 언니는 그때, 겨우 서른 살이었다.
시인은 선해 보이는 인상을 가지 있었다. 그는 텔레비전도 보이지 않는 구석자리에 앉아 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시인이 아니었다면 한없이 왜소해 보였을 몸매와 키가, 또 그만큼 가량가량한 언니와 고개가 닿을 만큼 가까이 마주앉아 있는 모습이 조 양이나 나에게는 얼마나 부러웠던지. 나는 때로 문예지를 빼들고 화장실에 가 앉은 채로 그의 시를 한참 들여다보기도 했다. 언니에게 들키기라도 할라치면 언니는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어머, 얘 좀 봐 시를 왜 화장실에 가져가. 그리고는 책을 탈탈 털어 다시 카운터 위나 수족관 위에 깨끔히 올려두었다.
그의 시집만 따로 꽂아둘 작은 책장을 준비해야겠다던 마담 언니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등단을 하고 만 이 년이 지나도록 그의 시는 어디에도 다시 발표되지 않았다. 구석자리를 좋아하는 시인을 위해 언니는 칠십만 원을 들여 벽 쪽 자리마다 칸막이를 치는 공사도 했지만 그렇다고 시가 다시 실릴 리는 없었다. 언니는 섭섭해했지만 티를 내지는 않았다. 시인은 늘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노트에다 무언가를 끄적거려 언니에게 읽어주기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다. 언니는 비교적 행복해했다.
- 얼굴이 되게 안 좋네.
배달을 다녀온 조 양이 주방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누구, 입모양만 내보이자 조 양이 구석자리를 가리켰다. 시인이 책을 읽고 있었다. 언니는 카운터에 앉아 전화를 받으면서 가끔씩 시인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얼굴이 마주칠 때마다 환하게 웃어보였다. 나는 계란 노른자를 동동 띄운 쌍화차를 준비했다. 테이블 위에 쌍화차를 놓자 그가 나를 쳐다보았다. 조 양 말을 들어서인지 휘늘어져 보이기도 했다.
- 얼굴이 안 좋다네요, 우리 조 양이.
그는 웃을 듯 말 듯 표정을 지으며 잔을 들었다.
- 노른자는 터뜨려야 돼요?
그의 목소리는 가래가 끓는 듯 약간 걀걀댔다. 칸막이에 기대 서 있던 내가 대답을 하려 할 때 마담 언니가 들어섰다. 언니는 화들짝 놀라서 그가 들고 있던 쌍화차 잔을 빼앗았다.
- 쌍화차말구, 맨날 마시잖아. 물커피. 물커피루 줘.
언니는 고개를 빠르게 저으며 나에게 쌍화차 잔을 돌려주었다.
- 아이구, 아무 거나 마시면 어때? 일부러 생각해서 준 건데.
내가 심술을 냈지만 언니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잔을 든 내 등을 밀었다.
바쁜 일인 있다며 며칠 동안 오후 내내 자리를 비우던 마담 언니는 어느 날 다방문을 부서져라 열고 들어와 미처 카운터 안으로 들어가지도 못하고 주저앉았다. 언니 손에 우연찮게 잡힌 전화기가 바닥으로 떨어져 수화기 끝 언저리가 부서졌다.
- 어떡허니. 어떡허니, 장 양아.
입에서는 통곡 같은 소리가 비져나왔지만 눈물이 흐르지는 않았다. 손님 몇이 마담 언니를 이상스레 쳐다보았다. 내 손에 이끌려 쪽방으로 가면서 언니는 수족관 위의 문예지를 가슴에 꾸덕꾸덕 모아 안았다. 책에서 먼지가 일어 언니의 검은 모직 원피스에 보풀처럼 달라붙었다.
- 암이래....... 그이가 암이래.
언니는 책을 가슴에 안은 채 절을 하듯 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안구 저쪽으로 고여 있던 눈물이 그제야 새나오기 시작한 건지 몸부림 끝에 노란 장판 위로 처박은 얼굴에서 철벅철벅 소리가 났나.
일어나 앉은 언니는 구석으로 밀쳐져 있던 이불자락을 집어 책에 묻은 물자국을 닦아냈다. 조 양이 라면냄비를 들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는 신문지를 집어 언니의 발 앞에 깔았다. 언니는 후루륵 입술에 힘을 주어 라면가닥을 빨아당기고는 있었지만 정작 입 속으로 들어가는 양은 얼마 되지 않았다. 젓가락에 야무지게 감기지 못한 라면은 맥없이 냄비 속으로 흘렀다.
- 내가 병원에 가 있어야 하니까, 니들이 인제 많이 바쁠 거야.
조 양은 걸레를 집어 언니가 연신 흘려대고 있는 라면 국물을 닦았다.
- 장 양 너, 나 없다고 양 사장네 배달 안 가고 그러믄 혼난다.
나는 끄덕였다.
- 양 사장이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너두 알잖아. 니들이 월급이 많으니까 배가 불러서 그래. 팁도 준달 때 잘 받아두고 해. 것도 한때야.
나는 조금 너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언니는 마스카라가 번진 눈을 흘겨 나를 바라보았다.
-팁 주는 놈이 그냥 주겠어? 기집애, 너무 튕겨두 미워. 좀 간살맞게, 응? 알았지, 장 양아.
나는 알았다니까, 하고 소리라도 칠 심산이었으나 언니의 말 끝자리가 잦아드는 게 울음기가 ane은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시인의 병치레가 육 개월이 지나갈 때쯤 다방의 잔고는 거의 바닥상태였다. 조 양과 내가 번갈아가며 오후 네 시 직전에 은행에다 입금을 시키곤 하던 것을 언니는 그만두라고 했다. 통장과 도장을 챙겨 은행으로 가는 것이 번거로웠던 것인지 언니는 가끔씩 다방에 冗?카운터를 휑하니 털어갔다. 어쩌면 우리가 넣는 족족 홀랑 빼가는 것이 민망해서였는도 모를 일이었다. 언니는 시인에게 가져 갈 잣죽을 한 그릇 덜어 주방에다 남겨두고 가기도 했고 때로는 울콩이 송송 박힌 찰떡을 몇 조각 두고 가기도 했다. 주방 아줌마는 찰떡을 입에 넣고 우물거리면서 엽차잔에 손가락으로 커피를 조금 집어 스푼으로 휘휘저었다. 내가 흘겨본대도 개의치 않았다. 보리차가 다 떨어진 걸 어째. 마담 언니가 다방 일을 제쳐놓기 시작한 뒤로 그녀가 보리차를 끓인 것은 세 번도 되지 않았다. 나! 는 냉큼 다방 근처의 가게에 쫓아가 보리차 한 봉지를 사 왔다. 지가 주인이야, 하는 소리가 쟁반을 들고 나가는 내 뒤통수에 제법 크게 꽂혔다.
주방 아줌마를 내보내고 오토바이를 태워주는 용진이도 내보냈지만 형편은 별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월세도 밀리기 시작했다. 마담 언니가 눈에 띄지 않자 발길을 끊은 손님도 꽤 되었다.
- 보증금이 적은 곳으로 가야겠어.
언니는 라면을 먹던 손을 느리게 놀리며 말했다.
군인은 아까뚜터 하늘색 공중전화를 붙들고 있다. 통화는 되지 않는 것 같은데 동전은 계속 떨어지는 것을 보니, 아마도 원하는 사람이 제대로 전화를 받아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바꿔 달라고 말할 수 없는 사람. 군인은 백 원짜리 동전으로 전화를 하고, 오십 원을 남기고 자리에 앉았다가 뚜우뚜우 하는 시끄러운 잡음에 네 눈치를 보며 수화기를 제자리에 올려놓고, 또다시 백 원짜리 동전을 집어넣고....... 를 반복하고 있었다.
- 저기, 동전 좀 바꿔주시겠습니까.
군인이 카운터에 꼬깃한 천 원짜리를 민다. 군인은 아마 저 전화에다 이천 원은 집어넣었을 것이다. 동전 바꿔주는 나에게 군인이 잦아진 목소리로 커피 한 잔을 더 주문했다. 나는 커피와 함께 요구르트 하나에 빨대를 꽂아서 가져다주었다. 뜯어진 의자의 실밥이 비져나와 군인의 줄선 바지에 붙어 있었다. 행주를 빨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별로 크지도 않은 소리에 군인이 깜짝 놀라 바라보다가 문득 어색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예, 다방입니다. 그의 전화다.
- 회덮밥 보냈어. 밥 안 먹었지?
조 양과 자장면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나는 그렇다고 대답 했다. 그는 가끔 그런 식으로 내 안부를 물어왔다. 나도 그의 소식이 궁금하거나 할 때면 배가 고프다는 말로 물음을 대신했다. 그를 이 년 만에 춘천에서 다시 만나게 된 것이 꼭 우연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원주의 작은 오퍼상에서 일하고 있던 그를 낚아채듯 끌고 간 그의 연로한 부모님이 아들을 서른이 다 되어가도록 시골에다 영영 잡아둘 수는 없는 일이었을 테고, 그 허발을 친 원주로 그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었을 테니. 또 그렇다고 서울이나 다른 먼 곳으로 가기에는 그의 소심함이 장애가 되었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원주를 떠나 춘천으로 오면서 그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할 틈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원주에서의 시절을 헤적이지 않고 가만히 잊어가기에도 ! 나는 바빴던 것이다. 지독해, 지독해, 하던 마담 언니의 중얼거림처럼 사람의 인연이란 그리 허술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는지 중앙동의 다방에 들렀던 그의 오랜 친구에게서 그가 춘천에 와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고, 얼마 안 가 예전보다 더욱 야위어 보이는 그가 다방문을 빼꼼히 열고 들어섰다.
그의 비디오 대여점은 다방에서 택시로 가면 기본요금에서 백 원을 더 낼까말까 하는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이제는 죽어버린 거리가 된 우리 다방이 있는 동네와 달리 그의 가게는 산뜻하게 지어진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는 비디오 대여점 뒤쪽의 깔끔한 분홍색 고층 아파트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우리 집, 이라고 말했다. 나는 새로 들여왔다는 비디오 테이프의 케이스를 몇 개 만지작거리며 원주 시설의 우리 집, 을 떠올렸다. 그와 네가 새로 도배를 한답시고 한나절을 꼬박 풀칠해 붙인 잔꽃무늬 벽지는 일주일이 못 지나 여느 때보다 길어진 장마로 인해 이곳저곳 곰팡이가 슬어갔다. 그가 제대한 지 보름 만에 시작한 살림이었다.
원주에서 군복무를 하던 그가 상병 계급장을 막 달았을 무렵부터 나는 달력에 잔글씨로 표시를 해가며 그의 제대 날짜를 기다렸다. 외박을 얻은 날이면 그는 늦은 오후부터 다방에 죽치고 앉아 나를 기다렸다. 영화라도 한 편 보고 오라는 내 말에도 불구하고 그는 고집을 부리며 퇴근시간만 세고 앉았기 일쑤였다. 제대를 한 그는 부랴부랴 친지의 오퍼상에 취직을 하고, 학성동에다 보증금 오십만 원에 월세 십이만 원짜리 방을 얻었다. 다방을 그만두고 들어앉은 내가 매일 똑같은 생활에 슬슬 심심해져올 때쯤 배가 불러오기 시작했고 그는 어쩔 수 없이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된 나를 보며 벙벙 기분좋은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의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동네 구멍가게 앞에 놓아둔 평상에 앉아 아줌마들과 수다를 떨기도 했고 꼬맹이들의 아줌마, 소리에 온종일 입이 퉁퉁 부어 있기도! 했다. 해물을 넣을 파전을 좋아하는 그를 위해 반죽을 한꺼번에 만들어두고 저녁마다 두어 장씩 부쳐내 그의 반찬투정을 잠재우는 재미도 느껴갈 무렵이었다. 부른 배를 끌고 뒤뚱뒤뚱 그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집 쪽문 앞에 서서 우리를 바라보는 여자의 얼굴이 심상찮았다. 중년의 여자는 그의 큰형수였다.
- 편히 앉지.
꿇어앉은 종아리가 불어버린 몸무게 때문에 유난히 저려오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다리를 옆으로 밀어 엉거주춤 고쳐앉았다. 고개를 숙인 채 말을 더듬던 그는 큰형수가 태백으로 돌아갈 채비를 할 때야 겨우 한마디를 했다.
- 몸풀 매까지만 어머니한테 말 말아주세요.
대답 없이 돌아간 큰형수 때문인지 그는 며칠을 불면으로 고생했다. 새벽녘까지 뒤척이는 그로 인해 나도 잠을 설쳐 아침밥 짓기가 죽기보다 싫을 지경이었다.
아기를 낳은 지 삼 주가량이 지났을 때 우리는 둘 다 미역국 냄새에 질려 있었다. 아기에게 붙일 이름은 그가 자전을 뒤적이며 며칠을 보낸 끝에 어렵게 지어서 후련한 한숨을 쉬었지만, 배가 불렀을 때부터 깨돌이, 깨돌이 했던 터라 우리는 쉽게 이름을 부르지 못하고 그냥 깨돌아, 라고만 했다. 겨울 휴가를 받은 그와 오랜만에 함께 나간 쳄恙【?버섯을 종류별로 사모아 잡채를 만들었다. 큼지막한 프라이팬 하나 가득한 잡채를 다 먹어치운 그는 다음 날 주섬주섬 챙겨입고 나가 또 버섯을 한 바구니 사왔다. 사흘의 휴가 동안 잡채만 먹고 난 후 출근하던 그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팬케이크가 먹고 싶어.
워낙 울음이 적은 깨돌이를 쉽게 재우고 나는 느긋하게 팬케이크를 만들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잡채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도 아니었다. 계란 흰자를 돌돌 저어 거품을 내고 밀가루를 넉넉히 넣었다. 설탕과 우유, 약간의 소금을 넣고 베이킹파우더를 뿌렸다. 좁기는 했지만 그래도 입식 부엌이라 두꺼운 방석을 깔고 앉아 텔레비전의 아침 토크쇼에다 눈도 돌려가며 반죽을 저었다. 반죽을 냉장고에 넣어두고 기저귀 빨래부터 하려던 나는 생각을 고쳐 팬케이크를 몇 장 굽기로 했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차갑게 굳은 마가린을 숟가락으로 쪼개어 한 덩이를 두르자 좁은 부엌에서부터 문을 열어둔 방 안까지 고소한 냄새로 가득 찼다. 반죽을 한 국자 떠 넣은 후, 반죽에 공기구멍이 잘게 생겨나고 가장자리가 고운 갈색으로 익어갈 때쯤 깨돌이가 약하게 칭얼거리는 소리를 냈다. 팬케이! 크를 먼저 뒤집을까, 깨돌이를 먼저 어를까 잠시 갈팡질팡하는데 쪽문 열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나는 방으로 좇아가 깨돌이를 안아들었다.
이따위 밀가루 부침개 쪼가리나 얻어먹을라고 다방레지 가시나랑 사니, 하이고 등신아.
그의 어머니는 그와 판박이였다. 워낙 좁은 어깨를 가진 그를 조금이라도 풍성해 보이게 하려고 나는 가을 무렵부터 품이 넉넉한 스웨터 두 벌을 짜두기도 했다. 왜소한 체격과는 달리 손마디가 두툼한 그의 어머니가 한 번 둘러친 플라스틱 반죽 그릇은 마룻바닥에 처박히면서 쩍 하고 금이 갔다. 그의 큰형수는 어머니의 시선이 닿는 곳마다 잰걸음으로 따라다니며 참으세요, 참으세요, 했지만 옹골지게 비녀를 올려꽂은 어머니는 다행히도 다른 것에는 손도 대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앉았다. 방 한구석 빨래걸이에 말려둔 수건 하나를 집어다가 푹 젖을 때까지 눈물을 닦은 그의 어머니는 태백으로 돌아가시지도 않고 꼭 사흘을 우리 집에 누워 계셨다. 나는 보일러가 들어오지않는 부엌 마룻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사흘을 보낸 뒤에 춘천으로 가는 직행버스를 탔다. 가방도 없었고, 돈? 繭箚煮?싱크대 맨 마지막 서랍에 넣어두었던 이만 칠천 원뿐이었다. 살림을 시작할 때 그가 끼워주었던 한 돈짜리 금반지는 깨돌이를 낳느라 손가락이 부은 통에 빼놓았던 터였다. 잡채를 만들 때 어머니가 오셨더라면 달라졌을까. 두꺼운 유리가 막아주고 있는데도 나는 손톱만 한 눈가루가 눈을 찌를까봐 차창 안의 얼굴을 움씰거렸다. 한 시간 반 길을 눈이 오는 바람에 세 시간이나 걸려 춘천에 닿았다.
마담 언니가 들어오자마자 군인은 식은 커피를 단숨에 비우고 일어섰다. 언니가 군인을 흘금거렸다. 너 보러 왔니? 나는 언니의 어깨짝을 아프지 않게 내려쳤다. 회덮밥 그릇을 미는 내게 언니가 느리게 손을 저어 보인다. 마담 언니의 머리카락에서도 약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남춘천 역으로 기차 들어오는 소리가 들리고 곧 사람들이 쏟아진다. 하지만 저렇게 한 무더기가 쏟아져나와도 다방은 조용하다.
- 밤에 조 양 오래서 노래방 갈까?
내 손톱에 “어를 발라주는 언니의 손가락 끝이 떨린다. 아까 자장면 같이 먹었는데. 언니가 눈을 흘긴다. 밥 제대로 먹어 맨날 자장면이야. 그 바람에 매니큐어가 손끝에 묻었다. 회덮밥은 반 넘게 남았다. 쓰레기봉투에 찌꺼기를 훌훌 부으면서 문득 바라본 마담 언니의 목주름이 한참 처져 있다. 목주름은 수술로도 못고친나며 언니는 늘 밤에 베개 없이 잠을 잤었다. 병원에서 새우잠을 자는 언니는 요즘 화장도 하지 않았다.
노래방의 탁자를 옆으로 밀어두었던 조 양이 비적비적 다시 제자리로 옮겨놓는다. 마담 언니 표정이나 내 표정이나 보아도 재미가 안 나는 모양이다. 줄을 타며 행복했었지. 공굴리며 신이이 났지이. 손풍금을 울리면서어....... 중앙동 시절부터 쭉 보아왔만 언니의 십팔번은 역시「곡예사의 첫사랑」이었다. 언니는 절대 아니리고 우겨댔지만「곡예사의 첫사랑」이 아닌 다른 노래를, 예를 들면 언니가 눈을 지그시 감고 마이크를 한껏 위로 치켜들고 부르는「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라든가 「그리움만 쌓이네」 따위는 애초에 음정부터가 틀려 먹은 영 안 어울리는 곡들이었다. 주인이 서비스로 넣어준 삼십 분까지 더해 한 시간 반을 부른 우리가 노래방을 나왔을 때는 이미 새벽 두 시가 넘어 있었다. 노래방에서 마신 맥주가 그제야 취기를 튀겨올리는지 언니는 찬바람을 맞자마! 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쪽방으로 들어와 앉은 조 앙과 네가 대강 이부자리를 폈을 때 마담 언니는 구두를 벗지 않은 채로 문간에 서 있었다. 들어와, 내일 아침 일찍 가면 되잖어. 언니는 가리산지리산 망설이더니 문을 닫았다. 조 양이 재빠르게 언니를 쫓아갔다. 그냥 두라고 말렸지만 조 양은 결국 언니를 방에 앉혔다. 하긴, 오늘밤에 죽기야 하겠어. 언니의 너스레 끝이 가물거린다. 끝내 자신 없이 설? 를 붙이고야 만다.
- 애기 안 데려다놨다고 너무 원망 마. 좋아할 여자가 어딨겠어.
나는 그냥 웃어 보인다. 조 양도 한마디 거든다.
- 그래도 아저씨가 사람이 좋더라. 남들 그렇게 헤어지고 나면, 다 찬바람 쌩해.
맥주 안주로 접시에 담아 온 땅콩이 그새 떨어졌다. 가미땅콩을 집어먹어 기름기가 번들거리는 손가락을 휴지에 문질러 닦고 주방으로 나갔다. 주전자를 들어보니 물이 찰랑거린다. 보릿내 나는 물을 한 컵 들이키고 나니 냄새가 좀 가신다. 의자에 덧씌워둔 하얀 등받이 천이 많이 더러워져 있다. 내일이나 모레쯤엔 세탁기에 몰아넣고 빨아야겠다. 역전다방으로 옳겨와서 석 달쯤 지나고 조 양을 내보낼 때 그네는 마른 행주로 일일이 레자 의자를 닦았다. 여덟 개의 테이블, 그러니까 도합 서른두 개의 의자를 닦고 난 행주는 시커먼 얼룩이 져서 빨아도 지지 않았고 뜯어져 너덜거리는 레자에 치여 올들이 군데군데 풀려 있었다. 조 양은 행주를 의자 등받이에 한 번 세게 후려친 다음 걸걸한 목소리로 말했다. 장 양 언니야, 나 돈 많이 벌면 의자들 다 진짜 가죽으로 바꿔줄게.
깨돌이를 처음 떼어놓고 나왔을 때, 한동안은 칭얼거리는 소리가 자꾸 귀를 맴맴 돌아 잠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정말 '한동안'이었다. '한동안'이 지나자 대부분의 것들은 학성동에 살기 전과 별다를 바 없는 상쨌?돌아왔다. 젖도 더 이상 불지 않았고. 코를 고는 조 양과 좁은 쪽방에서 끼어 자는 잠도 그다지 불편하지 않았다. 어머니를 따라 그가 태백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주인집 아줌마에게서 전해듣고 잠시 가슴이 먹먹해졌을 때만 해도 나는 깨돌이가 그의 형님에게 맡겨지리 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갓 칠한 페인트 내가 가시지 않은 비디오 대여점에서 그는 수줍은 목소리로 말했다. 큰형수가 잘 키워주는데....... 나는 그의 얼굴에다 대고 공연히 잡채, 만 중얼거렸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그는 내 눈치를 조심스레 훑었다.
깡통 바닥에 얼마 안 남은 땅콩 대신 대추차에 두어 알씩 떨어뜨리려고 사둔 잣그릇을 집어가지고 들어왔을 때 마담 언니는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었다. 요 근래 부쩍 눈물이 많아진 언니이기도 했다. 조 양이 떨떠름하게 이불 속에 발을 파묻고 앉아 있었다. 장 양아, 얘 말하는 것 좀 봐. 어쩌믄 이렇게도 싸가지 없게, 언니의 푸념이 채 시작되기도 전에 조 양이 소리를 꽥 지른다. 내 말이 틀렸어? 퍼다주는 것 도 한계가 있지. 막말로 언니가 그 인간허구 살림을 차렸어. 결혼을 했어? 이 기집애 좀 봐, 내가 그렇다고 니 월급을 떼먹기를 했니? 누가 내 월급 떼먹었대! 그랬다면 내가 가만 있지도 않았어. 언니, 우리가 하루이틀 같이 살았수? 그래서! 니가 그이 병원에 한 번이라도 오길 했어! 내가 안 갔다구? 갔잖어. 바나나 사들고 접때 장 양 언니랑 한 번 갔잖아! 한 번! ! 겨우 한 번으로 너 그렇게 유세 떠는 거 아니다. 그래도 내가 너, 진짜 동생한테 하듯이 얼마나 잘할라고 했는데.
마담 언니는 울음기 때문에 어깨가 들썩였다 아랫입술이 자꾸만 윗입술을 비집고 비져올라갔다. 삐죽이던 조 양도 끝내 울음보를 터뜨렸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마담 언니가 이불 위로 얼굴을 묻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언니가 고개를 들고 조 양을 노려보았다. 그래도 어떻게 죽는 게 낫다고 말을 허니? 언니는 다시 고개를 묻고서 통곡을 했고 조 양은 언니 앞에나 대고 마구 헛발을 차며 악을 썼다. 내가 언제 죽는 게 낫다고 했어! 그 인간이 죽든 말든 언니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고 했지! 그게 그 말이지 뭐야! 언니도 바락바락 악을 써댔다. 결국 조 양이 가겠다고 일어섰다. 벗어둔 스타킹을 찾으려 했지만 이불 속 어딘가에 처박혔는지 보이지 않았다. 코트 속의 맨다리가 춥지 않을까 생각하며 쪽방문을 여는 조 양을 바라보는데 마담 언니가 고개를 쓱 들고 말했다. 자고 가. 조 양은 한 번 망설이지도 않고 다시 앉았다. 나는 웃음이 쿡 터질 뻔했지만 헛기침 두어 번을 대신하며 참았다. 웃음소리가 터졌다간 샐쭉해지길 잘하는 조 양이 나가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조 ? 瑛?앉은 채로 코트를 벗더니 마담 언니의 옆에 앉은걸음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엎드린 언니의 손을 잡아 제손에 척 올리더니 말을 꺼냈다. 언니, 산다는 게 말이우....... 그때에 가서는 나도 더 이상 웃음을 참지 못했다. 씹고 있던 잣 부스러기가 튀었다. 조 양이 새치름하게 나를 쳐다봤다. 나는 방바닥에 떨어진 잣가루를 주워 쟁반 위에다 떨어놓으며 조 양에게 물었다. 몇 살이니, 올해. 기껏해야 조 양은 스물둘, 아니면 스물셋쯤 되었을 게다. 나이답지 않은 눈가의 잔주름 때문에 제 나이보다 많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지만 이마나 귀 뒤선이 뽀얀 것이 아직 영락없는 처녀애였다. 산다는 게 뭔데. 마남 언니가 물었다. 말은 꺼냈지만 조 양은 뒷말은 아직 생각해놓지 않은 듯 눈을 내리깔고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 뭔데. 나도 대답을 재촉했다. 조 양이 고개를 반짝 들었다. 검은색 염색에 곧게 스트레이트 파마를 한 조 양의 머리칼이 찰랑거리며 뒤로 넘어가 이마를 시원하게 드러내주었다. 나도 몰라. 조 양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늦은잠을 깨보니 마담 언니는 이미 병원으로 가고 없었다. 밤새 돌려놓은 보일러는 가스가 다 떨어졌는지 빨간 불이 희미하게 깜박거렸다. 가스집에 배달을 부탁하고 조 양을 깨웠다. 화장도 지우지 않고 잠이 들었던 조 양은 립스틱이 번져 입가가 벌겠다.
그에게 전화를 할 때만 해도 나는 그렇게 법석을 떨 생각은 없었다. 다방을 비울 수가 없으니 이쪽으로 와서 맥주나 한잔 하자는 소리를 시큰둥하게 했었다. 열 시가 넘어서 비디오 대여점의 문을 닫고 온 그에게 맥주를 따라주면서 오동통하니 살이 오른 그의 손목을 흘깃 바라보았을 뿐이었는데, 그것이 까닭모를 서러움을 덥석 밀고 들어왔다. 마지막 기차가 끊긴 시간이라 손님은 더 이상 들지 않았다. 술이 약한 그는 맥주 두 병에 이미 취기가 올라 있었고 나는 전화를 걸어 소주 두 병과 보쌈 한 접시를 시켰다.
- 깨돌인 내가 키울까?
하얀 비곗살을 떼어 낸 고기 한 점을 상추에 돌돌 말아 내게 건네던 그의 손이 움찔했다.
- 엄마 아빠 다 두고 왜 남의 집에 얹혀 있어. 매번 형수만 고생시키구.
나는 쌈을 받아먹고 소주를 한 잔 마셨다. 입 안에서 고기의 연한 살점이 찢어지면서 속속들이 소주에 적셔졌다. 마늘의 매운내가 코를 찔렀다. 소주가 몇 잔 더 들어가면서 목소리의 흔들림이 심해졌다.
- 내 월급 얼마 안 돼도, 깨돌이 하나 못 키우겠어?
손가락으로 쥐고 있던 풋고추가 빠지면서 탁자를 데굴데굴 굴러 그의 허벅지에 떨어졌다. 그는 풋고추를 집어 재떨이에 버리고 손바닥으로 쌈장이 한 덩이 묻은 바지를 닦았다. 나는 주방으로 휘뚝거리며 걸어가 행주를 가져다 그의 앞에다 던졌다. 왜 문질러, 냄새나게. 헛힘이 들어가 꽉 짜 두었던 행주가 훌렁 펴지며 그의 앞섶에 가 처박혔다. 일부러 앙짜라도 부린 것 같았다. 그의 미간이 좁혀지는 것이 보기 싫어 잠시 얼굴을 숙였는데, 그 김에 눈물이 몇 방울 청승맞게 흘러버렸다.
목젖 가까이서부터 슬슬 굳어오는 혀를 억지로 펴가며 나는 또릿하게 말하려 애를 썼다. 내가 오늘 당신을 부른 것은 별 이유가 없었다. 저 조그만 쪽방은 가스를 그득히 채워놓아도 웃풍이 세서 너무 춥다, 두꺼운 커튼을 하나 달려고 했지만 요즘 장사가 너무 안 되어서 그럴만한 돈이 없다. 그래서 저 방에서 자기 싫었다. 그래도 술을 마시고 나서 그 기운에 풀썩 잠들면 그만이라 굳이 술상대를 찾은 것뿐이다. 그는 내 어깨 너머로 괘종시계를 자꾸 쳐다보았다. 자정이 넘어 있을 것이었다. 나는 엉덩이를 왼쪽으로 조금 밀어 괘종시계를 가렸다. 그가 고개를 쭉 빼고서 시계를 쳐다보았다. 결국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옆에 서서 내 겨드랑이에 두 팔을 꼈다. 나는 일어나지 않으려고 바닥에 닿은 뒤꿈치에 힘을 주었다. 많이 취했어, 들어가서 자.
그의 팔에 매달려 어찌어찌 쪽방문 앞까지 간 나는 굽 높은 슬리퍼를 벗지 않고 문리를 꼭 잡고 섰다. 나를 방으로 밀어넣으려던 그는 내가 고집을 피우고 서자 겨드랑이에 끼고 있던 팔을 뺐다. 그가 꽤 힘을 주고 있었던지 겨드랑이가 얼얼했다. 나를 세워둔 채로 가운터로 간 그가 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응, 미안해....... 새벽에 늘어갈게. 얼른 자. 나는 그를 향해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볼이 좁은 슬리퍼에서 맨발이 자?빠져나와 발목이 접질릴 듯 위태로웠다. 내가 수화기에 손을 대기 전에 그가 전화를 끊었다. 뭐 하는 거야. 내 목소리는 지나치게 느리고 낮아 민망할 정도로 떨림이 세세하게 전해졌다. 자고 갈게. 나는 그의 짧은 말이 끝나자마자 손바닥으로 그의 가슴을 세게 밀었다. 한 발자국 뒤로 주춤 물러선 그가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러니! , 들어가서 자자. 가슴의 체온이 아직 남아 있어 괜스레 옴직거리고 있던 손을 그가 잡아끌었다. 나는 몸을 털었다. 그의 손이 떨어져나가고도 나는 한참 동안 몸을 뒤틀었다. 헐겁게 매어놓았던 머리끈이 풀어져 메마른 머리카락이 얼굴을 때렸다. 조 양 말대로 파마를 새로 할 걸 그랬다. 끝이 갈라진 곱슬머리 때문에 볼이 따끔거렸다.
바닥에 주저앉아 되는대로 지껄였다. 미친 새끼, 너하고 자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 너 결혼했다고 내가 원망 한 마디라도 한 적 있어? 내가 가슴이 터지는 건 우리 깨돌이 때문이야. 멀쩡한 애비 두고 걔가 얼마나 불쌍해. 중간중간 그의 나무라는 소리가 섞이기도 했다. 말없이 가버린 건 너야. 어디로 간다고 말이라도 한마디 남겼으면 나도 그렇게 허무하게 다 포기하지는 않았을 거야.
나는 무어라 더 말을 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새벽에 炷?말라 눈을 떴을 때 그는 없었다. 머리맡에는 미적지근한 보리차 주전자가 놓여 있었다. 그가 챙겨두고간 모양이었다. 다방문을 잠그지도 않고 쪽방으로 들어가 잤던 것이 생각났다. 의자를 끌어다가 올라서서 잠금 손잡이를 돌렸지만 뻑뻑한 쇠는 여간해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그냥 의자에 앉아 아침이 되기를 기다렸다. 시간은 그리 더디지 않았다. 아홉 시가 조금 넘자 첫 손님이 들었다.
시인의 병치레는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었다. 시인의 건강이 꼭 회복되기를 누구에게든 빌고 싶었던 언니는 결국 교회를 찾아 기도하는 법을 배우고 구역예배건 철야기도회건 빠짐없이 나갔었지만 이제는 언니에게 그럴만한 시간이 없었다. 다만 시인의 병상 앞에서 지독해 지독해, 를 중얼거리며 두 손만 맞잡고 있을 뿐이었다. 주일에 내가 일찍 문을 열어도 말리지 않았다. 다방문 앞의 스티커를 보아도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쓰다듬지 않았다.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는 시인에게 마땅히 사가지고 갈 것이 없어 조 양과 나는 병문안을 계속 미루고 있었다. 언니의 서른한 살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조 양이 새벽부터 미역을 한 봉지 사가지고 들어섰다. 언니의 생일이 지난 것은 벌써 일주일가량 되었지만, 시인의 병세가 나빠지는 바람에 병실에서 한동안 꼼짝을 하지 못해 이제야 생일상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전날부터 가게에 와 있으라는 우리의 말에도 언니는 그냥 병실을 지켰다. 미역국을 다 끓이고서 병실에 전화를 몇 통 계속 해댄 후에야 언니는 지친 모습으로 다방에 왔다.
- 나 살찐 거 같다. 그지?
미역국과 조기를 올린 생일상을 물리고 나서 거울을 보던 언니가 말했다. 고소한 조기 냄새가 덜 빠진 방에 언니의 약한 웃음소리가 허허롭게 돌았다. 살이 찌기는커녕 언니는 마른 몸에 핏기조차 보이지 않았다. 볼은 일부러 파내어도 그렇게까지 여윌 것 같지 않았지만 눈 주위와 광대뼈 부분이 부어 보이긴 했다. 잠을 못 자 그런 모양이었다. 전염병도 아니고....... 조 양의 지나가는 말에 언니가 퀭한 눈을 흘겼다. 조급하게 방을 나설 줄 알았던 언니가 이불을 끌어 누웠다. 금세 잠이 든 언니의 이불귀를 조 양이 조심스럽게 여며주었다. 설거지를 끝낸 조 양이 레스토랑 영업시간 때문에 바삐 뛰어나가며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강촌 어디쯤으로 산행을 준비한 중년 남자팀이 기차시간을 기다리며 떼로 다방에 눌러앉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테이블만 두고 오랜만에 사! 람들이 들어찼다. 커피잔을 옮기는 소리가 가뿐하게 덜그럭거렸다.
손님들이 우 하고 몰려간 뒤 조 양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가한 시간에 시장에 나가 마담 언니에게 줄 선물로 십자매 한 쌍을 샀단다. 크림을 적게 친 커피색깔 깃털과 뽀얀 깃털이 섞인 것이 보통 예쁜 게 아니라며 즐겁게 종알거린다. 초콜릿 케이크도 사뒀으니 맥주나 든든하게 준비해두라며 조 양이 전화를 끊었다. 조 양 살가운 건 정말 평양 나막신이다. 빈 다방 카운터에 엎드려 꾸벅꾸벅 졸고 있을 때 전화벨이 울렸다. 시계를 보니 두 시가 조금 넘었다. 그 시간쯤에는 배달이 많을 때였다. 한 시에는 깨워 달라던 언니의 부탁을 잊고 있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어쩌면 마담 언니가 화를 낼지도 모르는데. 다방입니다. 졸고 있었더니 목소리가 약간 잠겼다.
나는 전화를 받으며 다시 카운터에 엎드렸다. 모로 한 머리를 받치고 있는 왼쪽 손등이 떨리고 있는지 귓불이 간지럽다. 머리를 들고 귀걸이를 뺐다. 다시 머리를 괴는데 잠이 소르르 온다. 그의 목소리는 가루 같다. 고운 체에 한 번 거른 듯한 포시시한 가루들이 귓가에 뿌려지는 것처럼 조용하고 차분하다. 언젠가 플라스틱 반죽 그릇에 솔솔 부었던 베이킹파우더 같기도 하다. 너무 늦어서 깨돌이 엄마한테 내가 부끄러워. 나는 머리를 흔들었다. 엎드린 채라 카운터 바닥에 머리가 부딪쳐 타닥타닥 둔한 소리가 난다. 그것이 내가 고개를 젓는 소리라는 것을 그는 아마 알 것이다. 깨돌이 엄마, 라는 그의 목소리가 가슴 한쪽을 짠하게 한다. 드러난 팔목에 돋은 잔소름은 그래서일 거다.
전화를 끊고 일어나 주방을 죽 둘러보는데 담배 보루가 허룩하다. 좁고 지저분한 계단을 내려와 담배를 네 보루 샀다. 밖에서 바라본 이층 다방의 창은 짙은 갈색의 선팅 때문에 답답해 보인다. 밤에 조 양이 오면 같이 물을 발라 뜯어내야겠다. 계단을 오르면서 아직도 언니를 깨우지 않았다는 생각이 퍼뜩 나 잰걸음으로 걸었다. 잠이 덜 깨어 멍멍할 언니도 그가 깨돌이를 데려와 키우기로 했다는 말을 하면, 쌍꺼풀진 눈을 동그랗게 뜨며 두 손을 모아 어깨를 좁히고서 웃어 보일 것이다. 어쩌면 깨돌이 새엄마 될 사람한테 고맙다고 전화라도 한 번 해야 하는 거라고 말할지도 몰랐다. 앉은 채로 들썩일 언니의 무릎도 떠올랐다. 계단 모퉁이를 돌아서자 전화벨 소리가 그곳까지 들려왔다. 바쁘게 다방문을 열고 수화기를 들려고 하는 순간에 벨이 끊겼다.
맥이 탁 풀려 웃음이 실실 새는데 쪽방에서 언니의 음성이 들린다. 언니가 받았구나. 어디 배달인가 싶어 쪽방으로 다가갈 때 끄윽 끄윽 하는 힘겨운 숨소리가 들렸다. 비명인지도 몰랐다. 질질 끌던 슬리퍼 소리를 그치고 문 앞에 가만히 섰다. 말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숨소리인지 비명인지 모르는 그 소리도 멎었다. 바깥 볕은 따뜻한데도 쪽방 문고리는 섬뜩하게 차가웠다. 나는 잡아당기려던 문고리를 놓았다. 안에서 터져나온 소리 때문이었다. 틀림없는 통곡이었다.
오늘 밤에는 조 양이 십자매 새장을 조심스럽게 들고 올 텐데, 생크림 케이크는 입이 파묻혀버릴 것 같다고 싫어하는 언니를 위해 초콜릿 케이크도 샀다는데. 그리고 깨돌이 얘기를 하고 싶어 나는 몸이 후끈 달았는데. 나는 언니의 통곡을 그저 망망하게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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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현대문학 신인 추천작
현대문학 2003 신인추천작 심사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