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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원동력, 세초부터 세말까지4, 누가복음5;1-11. 2016. 1. 22.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언제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여전히 우리의 경험적 사건을 통해 역사하시는데,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아브라함의 믿음이 절실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는 은혜입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시126;6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이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옵니다. 여러분, 전쟁터에서 진격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렸을 때 제자리에 멈추어 서거나 후퇴하는 병사는, 즉결 처분을 받아 죽음의 형벌에 처해집니다. 북소리를 듣지 못했다 할지라도 변명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을 이기시고 마귀를 결박하신 후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진군의 북소리를 계속 울립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여러분들에게도 2017년에 진군의 북소리가 울립니다. 그런데 군사 된 우리가 진격하지 않으면, 도전하지 않으면 삶의 열매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초부터 세말까지 이 말씀으로 보내고자합니다. 여러분, 항상 깨어 주님께 집중하는 것이 삶과 영적 전쟁에서 승리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지금 누구의 음성을 듣습니까? 여러분, 2017년 도전의 원동력은 어디서 올까요? 그 도전은 언제 해야 할까요? 어제 미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트럼프는 america first를 여러 번 외쳤습니다. 도전의 원동력이 america first입니다. 시작이 first america입니다. 이것을 위하여 도전을 하고 이 것이 미국을 새롭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오늘 우리의 도전의 원동력은 무엇입니까?
창세기 22;2-12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복을 주시려고 아브라함을 불러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제 삼일에 멀리 하나님이 지시하신 그 곳을 바라볼 수 있는 지경에 도착을 합니다. 그리고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우리가!!! 아브라함이 번제에 쓸 쪼갠 나무를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들고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들, 이삭이 내 아버지여!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 묻자 아브라함이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하나님이 일러주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위에 뉘어 놓고 이내 칼을 빼들었습니다. 얼마나 귀한 아들입니까?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려 할 그 때에 하늘로부터 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바라본즉 수풀에 한 숫양이 걸려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대신 제물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준비된 그 양을 아들 대신 번제로 드렸습니다. 아브라함은 그 땅을 여호와 이레라 불렀고, 사람들은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고 했습니다.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여러분, 여러분이 2017년 하시고자 하는 모든 것은 여호와의 산에서, 여호와 이레로 준비 됩니다. 아멘. 여러분이 준비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십니다. 그런데 이 은혜는 도전으로 이루어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도전의 원동력으로 삼았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이삭을 제물로 드리는 것은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함입니다. 주신 생명 다시 취하심에 대해 이유가 없습니다. 다시 돌려드리는 것, 그동안 양육하면서 경험했을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행복으로 충분히 만족하고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도전을 합니다. 시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시100;3-4에,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상하게 하지 않습니다. 죽이지 않습니다. 감사함으로 도전하면 됩니다. 언제 합니까? 도전의 시기는 지금입니다. 나중이 아니고 먼 내일이 아닙니다.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 아니면 입니다. 지금이어야 합니다. 이 것이 세초부터 세말까지입니다.
지금 아니면 여행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전거로 한국을 떠나, 중국을 거쳐 대륙 횡단을 하면서 포루투칼 까지 여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한국의 명문대학을 나와서 일류 기업에 취업을 하고,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던 황 인범씨가 다니던 직장에 사표를 내고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자전거로 대륙횡단을 했습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지금 아니면 을 주제로 청소년들에게 소망을 전했습니다. 중국의 고비 사막에서는 내가 이러다 죽는 것은 아닌가? 죽을 고비를 고비사막에서 몇 번의 고비를 넘겼습니다. 도전입니다. 그런데 그 시기가 지금입니다. 여러분, 지금이 아니면 어떻습니까? 그렇게 표현하지 않습니까? 꼭 지금이 아니면 어떠하냐 하십니까? 여러분, 사실 지금이 아니어도 되는 일들이 있고,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2017년을 출발하고 20일이 지났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이라는 도전의 간절함이 있습니까? 아브라함의 모든 복은 지금이라는 도전의 원동력입니다. 출발하는 그 시간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는 지금입니다. 그래서 복을 받고 믿음의 조상이 됩니다. 지금이 아니면 의 간절함으로 세초부터 세말까지 일이나 관계나 소망과 비전과 계획 위에 도전 위에 승리하시고 은혜를 받으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면 도전의 원동력에서 지금이 뜻하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1. 2017년, 도전의 원동력은 지금이 아니면 입니다. 이 주제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고, 2017년 나의 목표의 제목 아닙니까? 세초부터 세말까지 지금이 아니면? 그렇죠? 여러분, 루나파크의 책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라는 책이 있습니다. 제목의 절절함 앞에 모든 사람이 주목했습니다, 왠지 이 책을 꼭 쥐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영적인 마음이 독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의미의 영화도 있습니다. 26년 -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또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영화26년은 웹툰을 원작으로 한 영화인데. 제발~~지금이다 안절부절 못하는 장면, 간절히 바라는 장면!! 슬픔과 분노의 감정이 함께 하는 조금이나마 26년의 한을 풀었으면 하는 그런 영화랍니다.
지금이 아니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노래도 있습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한 노래가 있어 멈출 수 없는 노래가 다가오고 있어 지금이 아니면 내 꿈들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 날 만나고 싶어서 하늘을 나는 새처럼 바람을 타고서 시원하게 노래하네. 노래하네. 바다에 사는 고래처럼 파도를 가르며 시원하게 춤을 추네. 춤을 추네. 나처럼 바위에 부서지는 내 모습 보았어. 끝없이 다가오는 그 파도 속에서 지금이 아니면 내 마음을 알 수 없을 것 같아서 있는 그대로 날 만나고 싶어서. 폭풍우 속에서 난 다시 일어나네. 내 앞에 펼쳐진 세상을 향해 난 파도처럼 하늘을 나는 새처럼, 바다에 사는 고래처럼 파도를 가르며 시원하게 춤을 추네. 춤을 추네. 지금이 아니면 내 꿈을, 지금이 아니면 내 마음을, 이렇게 노래도 합니다.
여러분, 복귀도, 회복도, 다시 나서는 것도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결혼도, 입맛도 지금이 아니면 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맛을 볼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철이란 말을 씁니다. 어부들도 지금이 아니면 입니다. 운동선수들도 지금이 아니면 할 때가 있습니다. 운동선수는 세월의 흐름에 연관이 있습니다. 20대가 아니면, 30대, 40대가 아니면. 70대가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어제와 오늘이 다릅니다. 2016년과 2017년이 다릅니다. 여러분, 세월도 다 같아 보이지 않지요? 기계도 세월이 흐르면 무용지물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이순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습니다. 축복과 은혜와 영적인 교감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기회도, 때도, 능력도, 물질도, 명예도, 지위도, 시간, 공간이 다 함축됩니다. 그래서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이 아니면 이라는 주제에, 세초부터 세말까지 민감하게 응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아멘.
그런데 늘 긍정적인 것만이 아닙니다. 지금이 아니면 의 부정적인 부분도 있습니다. 열왕기하5;20-27에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게하시는 스승 엘리사가 나아만이 일부러 가져온 엄청난 예물을 그냥 돌려보내는 것을 보면서 아까워 견디지 못합니다. 병을 고쳐 주었으면 바로 그 때 예물을 받아야지요? 그런데 그냥 돌려보냅니다. 그래서 게하시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무엇이라도 지금 받아내겠다고 합니다. 게하시가 지금이 아니면 못 받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아니면 영원히 없어질 것 같은,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서 게하시가 행동을 합니다. 엘리사는 지금, 아니면 은혜를 베풀 수 없어서, 지금 아니면 나아만 장군이 회복할 수 없어서, 지금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과 이스라엘의 영광을 드러낼 수가 없어서 지금 축복을 하고, 지금 은혜를 베풀고, 지금 회복을 시켜주고, 지금 치료를 하는데 게하시는 스승과 정 반대로 지금이 아니면 선물을 받을 수 없는 소유의 행동을 합니다. 그래서 나아만을 향해 게하시는 엘리사의 이름과 제자들의 형편을 빌어 은과 옷을 구걸합니다. 지금이 아니면 기회는 날아 가버리고 지금이 아니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못 받을 것 같아서 거짓말까지 합니다. 그런데 스승,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지금이 어찌 옷을 받을 때이냐?”라고 말합니다. 시대의식이 지금 아니면입니다. 실천하는 것, 도전 하는 것이 지금 아니면 입니다.
유언도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수 24;15절 이하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을 세겜 성지로 모으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여호수아가 마지막 말을 합니다. 만일 너희가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좋지 않게 보이거든 오늘 너희가 섬길 자를 택하라. 그러나 나와 내 집은 여호와만을 섬기겠노라. 지금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숨이 멈추면 유언은 없습니다. 여러분, 그러면 오늘 본문은 무엇을 말씀합니까? 절망가운데 도전이 지금이 아니면? 갈등 가운데 도전이 지금이 아니면? 없는 것 가운데 도전이 지금이 아니면? 선택과 부르심의 응답도 지금이 아니면? 넘쳐나도 지금이 아니면? 순종도 고백도 지금이 아니면? 그런 말씀입니다.
2. 오늘 본문은 주님과 베드로의 만남입니다. 먼저 여러분, 여러분은 일이 잘 안 풀리거나 마음이 답답할 때 혼자 조용히 찾아가는 장소가 있읍니까? 시간이 지난 후에 무엇인가를 계획하거나 조용히 생각할 일이 있으면 꾸준히 찾는 곳이 있습니까? 베드로는 이런 장소가 있었습니다. 말년의 베드로에게는 자기 삶의 기념비적인 곳이 여러 곳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을 받고, 그 충만함으로 사람들 앞에서 열정적으로 선포했던 첫 번째 설교 장소가 있습니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5분을 넘지 않을 그 짤막한 설교를 통해서 3000명, 5000명 허다한 무리가 세례를 받고 주의 제자가 되는 그런 엄청난 기적이 일어졌던 예루살렘의 어느 거리를, 끝까지 잊지 못했습니다. 주님이 해처럼 빛나는 모습으로 변해서 엘리야와 모세와 더불어 말씀하셨던 변화산의 영광도 잊을 수 없습니다. 얼마나 좋았던지 여기가 좋사오니 여기 초막 셋을 짓고 살겠습니다. 그리고 그 세 분을 영원히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고백했던 장소도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철없는 행동 때문에 예수님께 실망을 안겨 드렸던 장소도 있습니다. 주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함께 기도해 달라시며 야고보, 요한과 함께 자기를 데리고 가셨던 겟세마네 동산이 있습니다. 계속 잠만 자다가 그곳에서 사랑하는 주님을 지켜드리지 못한 곳입니다. 더 잊을 수 없는 곳은,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입니다. 대제사장 수하들에게 끌려갔던 예수님이 걱정돼서 그곳까지 오긴 했지만, 바로 그 집 뜰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 때 주님의 시선과 베드로의 눈동자가 마주친 장소입니다.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내가 무슨 염치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할까 자책 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을 보낸 후, 자기 자신에 실망해서 고향으로 돌아가지요? 다시 고기를 잡고 있을 때 부활하신 모습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불러주신 그 해변도 잊지 못할 장소입니다.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고, 그렇다고 대답을 하게 하셔서 세 번 부인했던 그 허물을 상쇄시켜 주셨던 곳, 그래서 마음의 짐을 벗어 버릴 수 있었던 갈릴리 바다가 있습니다. 그 예루살렘의 어느 모퉁이, 변화산, 겟세마네 동산, 대제사장 집의 뜰, 벳세다의 어느 해변. 다 잊을 수 없는 곳입니다. 다 인생의 한 획을 그은 추억의 장소입니다. 그러나 베드로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곳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갈릴리 호숫가입니다. 누구나 마찬가지지만, 처음과 시작이란 표현은 언제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삶의 전환점은 늘 기억에 남습니다. 특별히 삶다운 삶을 살기 시작했던 장소나 사건은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어려서부터 배운 고기잡이를 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그 지방 사람들의 삶입니다. 자기 동생, 친구들, 이웃집 사람, 다 똑 같은 일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사방을 둘러봐도 어부들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리고 그 나이 될 때까지 다른 일은 생각도 못한 채 성실하게 고기 잡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지금까지 해왔던 일과는 전혀 다른 일을 시작합니다. 고기 잡는 일을 버리고 사람 낚는 일을 합니다. 바로 그 일이 시작됐던 장소, 갈릴리 호수 한편입니다.
여러분, 무엇인가 풀리지 않는 매듭이 있을 때, 무엇인가 일을 하긴 하는데 표 나는 것 없이 지지부진할 때, 이런 저런 일로 심신이 처져 있을 때, 내 영혼의 우물에 바닥이 보일 때 오늘의 말씀은 능력을 줍니다. 왜냐하면 어부 베드로가 도전의 원동력을 갖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어떤 중요한 사건을 말할 때, 그 사건 전체를 상징하는 무엇인가를 보여주는데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나서 고기 잡는 일을 팽개치고 제자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 속에서 사건 전체를 상징하는 것이 있습니다. 2-3.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는 것을 보시니 어부들은 나와서 그물을 씻는지라 예수께서 한 배에 오르시니 그 배는 시몬의 배라. 바로 배입니다. 배는 인생입니다. 그릇이고 나라이고 내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냥 배가 아니라 빈 배입니다. ‘허주입니다. 있어야 할 고기잡이배에 아무 것도 없는 빈 배입니다. 지금 호숫가에 배 두 척이 있습니다. 그 배의 주인인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서 그물을 씻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곳을 지나시다가 그 두 배 중에 한 배에 오르십니다. 그리고 거기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똑같은 배가 두 척이 있었는데 그 중 한 배에 오르셨다는 것이고, 바로 그 배는 베드로의 배였습니다. 그러면 왜 두 척 가운데 다른 배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베드로의 배를 사용 하셨냐? 입니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 같지만, 우리 생애 가운데도 이런 류의 피택 때문에 인생이 갈리는 일이 참으로 많습니다. 베드로가 배가 선택된 이유가 있습니다. 배는 바로 우리들 자신이고 그 배의 상황을 훑어보면 우리의 할 일이 드러납니다. 밤새 그물질을 했는데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어려서부터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베드로였는데, 밤새 애썼는데도 단 한 마리도 못 잡았다는 것은 일부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단 한 마리도 못 잡은 채 다음 조업을 위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습니다. 이 상황을 기억해야 이것으로부터 지금이 아니면 이 시작됩니다. 이 상황을 기억해야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 아니면이 됩니다. 그러면 도전의 원동력, 지금 아니면 의 상황이 무엇입니까? 몇 가지가 있습니다.
2-1. 도전의 원동력은 무엇보다도 그물을 씻는 일인데, 이 일은 뒤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2017년 여러분의 목표, 여러분의 기도제목입니다. 이 것은 연중이나 연 말로 미룰 일이 아닙니다. 그물을 씻는 일이 지금입니다. 고기를 잡고 안 잡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베드로의 배가 쓰임 받은 이유와 우리가 주님께 피택 되는 일은 똑같습니다. 보통 고깃배는 실려 있어야 될 것들이 있지요? 그 것이 다 비워져 있습니다. 여기서 베드로는 절망을 배웁니다. 그렇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이 있습니다. 지금 그물을 씻는 일입니다. 지금이 절망이고 지금이 낙심이고 지금이 없음이지만 내일을 위해서, 다음을 위해서 그물을 씻어야 합니다. 이 일은 지금이 아니고는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베드로가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을 때 예수님이 찾아오십니다. 은혜도 축복도 지금 아니면 안 되는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의 도전의 원동력은 그물을 씻는 일입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억지로라도 하고 있을 때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은혜를 받습니다. 여러분이 송구 영신 예배와 신년예배에서 기도제목과 목표를 주님께 올렸습니다. 그런데 기도제목의 응답이 지금입니다. 지금 아니면 안 되는 그 기도제목으로 도전의 원동력을 삼을 때에 주님이 찾아 오십니다. 그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2. 도전의 원동력은 쓰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쓰임 받는 것이 지금이 아니면 안 됩니다. 여러분, 고깃배를 타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보통 배 안에 운신하기가 편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배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그물입니다. 그물이 있어야 고기를 잡지요? 대량으로 잡기 위해서는 그물이 필수입니다. 그물은 베드로의 배에 반드시 있어야 될 것입니다. 배에서 그물은 무엇입니까? 고기를 잡기 위한 도구, 수단입니다. 반드시 있어야 됩니다. 그래서 날마다 손보고 지금 쓰고 있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으면 계속 바꿔줘야 합니다. 그런데 그물이 없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한 배에 오르시는데 그 배에서 말씀을 전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있어야 될 그물과 물고기가 없으므로 베드로의 배가 쓰임을 받습니다. 도전의 원동력은 쓰임 받음에 있습니다. 여러분의 그 쓰임 받음은 지금입니다.
20세기 최고의 강해 설교자는 영국의 켐벨 몰간과 그의 제자, 마틴 로이드 죤스 입니다. 두 분 모두 참 훌륭한 설교자입니다. 그런데 로이드 존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분은 의사였습니다. 의사도 보통 의사가 아니라 왕립 의사였습니다. 영국에서는 National 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Royal 입니다. 왕립의사라는 것은 명예와 돈과 실력, 튼튼한 배경, 이 모든 것이 다 있다는 말입니다. 이 분이 목사가 되기로 작정했을 때는 왕립의사라는 것을 최대한 살려서 목회하기를 원했습니다. 진료도 해 주면서 목회를 하면 유리한 점이 많을 것 같은데 하나님은 그것을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것을 안 로이드 죤스 목사님은 진료를 중단하고 목회에 전념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그에게 놀라운 설교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아직도 그 분을 따라갈 만한 강해설교자가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배에 비워진 것은 그물과 고기었습니다. 우리 역시, 우리라는 배에 가장 먼저 비워야 될 것은 우리가 의지하는 수단과 도구인 그물입니다. 그리고 고기입니다. 그 그물과 고기가 비워짐으로써 주께 쓰임 받는 기회가 됩니다. 주님께서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을 베드로의 배에서 하셨습니다.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안 되는 일을 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없음입니까? 여러분의 가정이 없음입니까? 여러분의 공동체가, 여러분의 사업장이 비움입니까? 여러분! 가진 게 없다고 너무 실망하지 마세요! 어쩌면 주님은 그런 상태를 이용해서 더 놀라운, 더 위대한 일을 하실 지도 모릅니다. 허전하고 비어있는 여러분에게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일을 주님께서 반드시 하십니다. 주님은 기회를 지나치지 않습니다. 복 주실 자를 복 주고 은혜 베푸실 자 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여러분, 사랑이 무엇입니까? “빈자리 의식”입니다. 항상 그 사람의 빈자리를 잊지 않고 지내는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3년 동안 회사에서 예배를 드린 적이 있습니다. 상석에 빈자리가 있어서 누구 자리냐고 물으니, 예수님 자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 자리에 앉을 리는 없지만, 그 회사의 최고 지도자는 예수님이라는 항상 예수님의 빈자리를 인식하고 산다는 말입니다. 지금 아니면 이 적용되는 빈자리가 은혜일 때가 있습니다. 나의 도전의 원동력은 빈자리입니다. 나의 도전의 원동력은 없음입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나의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 아니면 의 빈 그릇의 은혜를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3. 도전의 원동력은 깊은 데로의 주님이시고,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베드로의 배에는 고기가 없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 고기는 무슨 의미일까요? 고기는 그 배가 있기 위한 궁극적 목적입니다. 고기를 잡아서 팔아야 돈이 생기고, 그 돈으로 자기가 하고자 하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고기는 베드로의 소망이요, 삶의 목표이고 목적입니다. 그래서 한 마리라도 더 잡아보려고 여태까지 몸부림 쳐 왔습니다. 안 던져 본 곳이 없습니다. 이론은 고사하고 이곳저곳 던져 보았습니다. 그런데 없는 것 때문에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갈등이 생깁니다. 베드로는 합리적인 사람입니다. 프로입니다. 이론가입니다. 지식이 있습니다. 생태학적으로나 관념적인 지식이 풍부합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유업입니다. 그럼에도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주님은 깊은 데로를 외칩니다. 여러분, 많은 사람이 노력하면 된다고 합니다. 도전하면 된다고 합니다. 도전의 원동력이 자기 자신입니다. 내가 first입니다. 그래서 노력은 성공의 아버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노력하지 않았나요? 경험이 없습니까? 지금 도전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 아니면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 아니면 말씀의 효력이 없습니다. 여러분, 확신해서 그물을 내립니까? 예! 때로는 확신이 없고, 갈등이 있고, 전문가 이지만 지금 아니면 말씀의 열매가 없을 것 같아서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립니다. 주님의 말씀은 지금이 아니면 입니다. 말씀의 역사는 지금입니다.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 말씀하시는 주님입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말씀의 내용입니다. jesus first입니다. scripture first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습니까? 말로는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합니다. 겉으로는 누가 봐도 주님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보자기가 풀어지고 속셈이 드러날 때가 있습니다. 제자들도 3년간 예수님을 열심히 따라다녔지요? 예수님께 설교도 많이 듣고 하늘의 가르침과 아버지의 뜻에 대해서도 많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무엇인지도 파악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분명히 메시야로서 자기 나라를 해방시키고 구원하실 줄도 믿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 모두가 야망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해방 이스라엘이 되면, 자신들이 독립운동가로서 예수님과 함께 왕 대우를 받는 것, 이것 때문에 제자들 사이에 암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원하고, 바라신 것은 십자가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인도에서, 로마에서, 이름 모를 곳에서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거나 톱으로 켜지거나 또는 십자가에서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십자가입니다. 이 것이 예수님의 바램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 속에 우리만을 위한 그것을 버리고 비우시고, 지금이 아니면 들을 수 없고 실행할 수 없는 깊은 데로 그물을 내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도전의 원동력을 삼아야 합니다. 주님을 향한 거룩한 목적, 거룩한 비전을 도전의 원동력이 되어야 합니다. 지금 이 시간 도전의 원동력을 주님과 말씀하시는 내용으로 지금 아니 면의 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2-4. 도전의 원동력은 지금 아니면 안 되는 연합입니다. 이웃과 함께 입니다. 주위 분들과 함께 입니다. 여러분, 지구상에 수 많은 나라가 있습니다. 잘 사는 나랄, 그렇지 못한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america first 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혼자하면 그물이 찢어지고 혼자하면 잡혔던 고기도 도망을 가고 혼자하면 있던 것도 새 나갑니다. 여러분, 내가 모든 것을 다 가질 수가 없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협력하고 지금 나누고 지금 부르는 이 일은 지금 아니면 안 됩니다. 여러분, 왜 고기가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이 잡혔을까요? 혼자 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방으로 불러보고 세 사람이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바로 베드로 자신이 그 모든 것에서 내려왔을 때, 이웃이 존귀한 일에 쓰임 받습니다. 그는 배의 소유권과 잡힌 것의 소유권을 나누었습니다. 고기의 소유권을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갑자기 성공하거나, 갑자기 완장 하나 채워 주면 착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아래 있고, 자기는 예수님과 함께 사람들을 내려다보면서, 자기도 뭔가 된 것처럼 생각합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존재입니다. 완장을 채워주면 속물근성이 인간 누구에게나 나타납니다. 주님은 자신을 부인하고, 자신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주님의 이름으로 채워지기를 바라십니다. 우리가 다 버릴 수 있어도 딱 한 가지 못 버리는 게 있지요? 자존심과 무시당하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자존심에 상처를 당하면 참지 못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깊은 데로, 지금 아니면 이루지 못할 그 말씀 앞에 도전하여 그물을 내림으로 위대한 베드로가 됩니다. 나누고, 연합하므로 복 받은 사람을 낚는 베드로가 됩니다. 그래서 삶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고백도 지금이고 소명을 받는 것도 지금이고 자신을 성찰하는 것도 지금 아니면 아니 됩니다. 2017년 세초부터 세말까지 도전의 원동력이 지금 아니면 이 되어서 주님이 여호와 이레,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된 은혜와 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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