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셋째 딸은 보지도 않고 데려간다.”라는
대개는 가볍게 던지는 우스갯말이지만
진정성이 다분히 담긴 속담이 있다.
자녀를 많이 두는 일이 드물지 않던 시절에 낳은
여러 자녀들 중에서 세 번째로 낳은 딸은
품성이나 자질 면에서 앞서 태어난 언니들보다
출중하다는 뜻이 담긴 표현일 터다.
이러한 우리네와는 다른 정서에서 나온 관행이겠으나,
아일랜드에는 셋째 아들이 태어나면
으레 붙여 주는 이름이 있었다.
대가족 집안에서는 아들을 셋 이상 둔 대소가
여러 집들이 저마다 셋째 아들을 같은 이름으로 부르느라
혼동과 불편이 적지 않았을 텐데도 어쨌든 그렇게 했다.
한 사회 안에서 이런 관행이 생겼다는 것은,
누군가 본래 그 이름으로 불리던 사람이
여간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음을 말해 준다.
그리고 그 이름의 주인은 바로 성 케빈(Kevin)이다.
여기까지 알고 나면 ‘케빈’이란 이름이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는 듯도 하다.
보편교회의 전례력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아일랜드에서는 6월3일을 축일로 정해
이 성인을 기억하고
수도인 더블린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한다.
라틴어로는 코엠제노(Coemgenus)라고도 부른다.
그런데 이토록 저명한 인물치고는
아쉽게도 이 성인에 대한 기록이 그리 많지 않다.
그나마 전해 오는 기록도
대개는 전설 같은 이야기들이다.
성인은 498년에 더블린 근교에서
고대 아일랜드 왕국을 형성한 5부족 가운데
한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 세례를 받았고,
7살 때부터 수도원장이던
콘월의 성 페트록에게 교육을 받았다.
이 인연이 아마도 자연스럽게 수도자로서의
삶으로 이어진 것 같다.
사제로 서품되었지만, 정작 자신은
사람들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은둔하며
기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명성을 듣고 계속 찾아왔다.
그는 아예 멀고 외진 곳으로 피하기로 작정하고
글렌달로그라는 은둔생활을 하기에
아주 알맞은 곳으로 옮겨 갔다.
이곳에서 케빈은 자연과 아주 가깝게 지냈다.
주변의 짐승들과 새들이 케빈의 친구들이었다.
7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그는 특별한 옷가지를 걸칠 필요도 없었고,
잠은 돌 위에서 잤으며, 음식은 아주 적은 양만 먹었다.
어디를 갈 때는 맨발로 다녔고.
대부분의 시간을 기도로 보냈다.
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가 있는 곳을 찾아내어 몰려들었다.
호숫가 산기슭의 험준한 벼랑에 있는 동굴에서 지내던 그는
사람들의 요구를 더는 물리치지 못했다.
글렌달로그에 벽으로 둘러싸인 주거 공간을 지었고,
수도원을 세웠으며, 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선종할 때까지
단식하고 기도하고 가르쳤다. 왕의 아들도 가르쳤다.
물론 그 사이에 로마 순례도 하고
나중에는 성인이 된 가까운 지기들을 찾아가서 교류도 했지만,
618년 6월3일 글렌달로그의 수도원에서 선종했다.
이렇게 120년 생애를 사는 사이에 성인은
오늘날에도 아일랜드에서
널리 존경을 받는 인물이 되었다.
그리고 성인이 처음에 수도원을 세운 곳,
두 개의 빙하 호수가 있어 아름다운 글렌달로그 지역은
위클로 국립공원에 속한 지역으로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수도원 유적지로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위에서 짧게 살펴본 것만으로
성인의 생애가 다 간추려지지는 않는다.
성인이 사람들 사이에서 널리 알려지고
큰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된 것은
성인을 둘러싼 놀랍고 매력적인 이야기들 때문일 것이다.
가령 아래에서 보는 이야기들,전설과도 같은 이 일화들은
성인의 남다른 면모를 보여 준다.
그것은 바로 동물들과 식물들과 더불어
소통하고 교감하는 성인만의 능력이다.
성인이 아직 젖먹이였을 때 기이하게도
흰 암소 한 마리가 날마다 아침이면
성인의 집으로 찾아와서 우유를 주고 갔다.
성인이 사람들을 피해 글렌달로그로 왔을 때,
천사가 성인을 어느 동굴로 인도했다.
청동기 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오래된 이 인공 동굴은
성인이 잠을 자거나 아니면 기도하고 묵상할 때
사용한 것으로 보이며,
오늘날에도 ‘성 케빈의 침대’라는 명소로 알려져 있다.
또한 수도원이 자리 잡은 호수 주변에서 살던 수달이
성인에게 물고기를 잡아다 주었다.
이 물고기들은 성인과 수도원의 수도사들에게
요긴한 양식이 되었다.
어느 해 성주간에 성인이 기도하고 있었는데,
지빠귀과 새의 한 종류인 블랙버드 한 마리가 날아와서
팔을 펼치고 기도 중인 성인의 손에 알을 낳았다.
성인은 그 알들이 부화할 때까지
그 자세를 유지한 채로 계속 기도했다.
젖소 한 마리가 성인의 곁으로 와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는데, 그런 가운데
여느 젖소들보다 50배나 많은 우유를 생산해 냈다.
왕이 아들을 낳았는데 왕자에게 먹일 젖이 부족했다.
왕은 성인에게 도움을 청했고,
성인은 그 부탁을 받아서 기도했다.
그러자 날마다 사슴 한 마리가 숲에서 내려와서
왕자에게 젖을 먹였다.
그런데 늑대가 그 사슴을 잡아먹었고,
성인은 늑대를 꾸짖었다.
그러자 늑대가 젖을 구해다 왕자에게 먹였다.
간질을 앓던 사람이 환시에서 사과 한 개만 먹으면
치유될 수 있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그런데 그곳은 사과나무가 자라지 않는 지역이었다.
그는 성인에게 도와달라고 간청했고,
성인은 버드나무에게 사과 열매를 맺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즉시 버드나무에 사과가 열렸다.
오툴의 왕이 거위를 애완용으로 키웠다.
거위가 늙어서 죽을 때가 되었는데,
왕은 좋은 벗이 죽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성인은 왕에게 그 거위는 더 살겠지만
그 대신에 그 지역에 있던 다른 거위들이
다른 곳으로 가 버릴 것이라고 말했고,
왕은 그래도 좋다고 대답했다.
그리하여 그 지역에서 거위들이 사라졌다.
그리고 이곳에 나중에 글렌달로그 수도원이 세워졌다.
성 케빈은 워낙 대중적인 성인이었다.
그러기에 성인의 일화가
포크송으로 만들어지고 음반으로도 제작되었다. ‘
글렌달로그의 성인이라는 제목의 노래는 이렇게 시작된다.
“글렌달로그에는 학식과 신심으로 명성 높은
한 노성자(老聖者)가 살았다네.
행동은 기이했고 매력적이었다네.
여자 보기를 마치 돌을 보듯 했다네.”
또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세이머스 히니는
‘성 케빈과 블랙버드’라는 시로
성인과 블랙버드의 일화를 묘사했다.
그리고 화가 클리브 힉스-젠킨스는
히니의 시를 모티브로 삼아 연작 그림들을 그렸다.
이석규 베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