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보령시 오천항(鰲川港)
개요
오천은 예전부터 보령 북부권의 삶과 생활의 중심지였다.
보령 북부권의 모든 길들은 오천과 통한다는 말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실제로 주포,주교,청소 등 오천으로 들어
가는 진입로만 세 갈래나 된다. 예전의 영화는 많이 퇴색
되었지만, 오천항은 천수만 일대의 주요 어항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오천항은 만의 깊숙한 곳에 위치한
까닭에 방파에 등 별도의 피항시설이 필요 없을만큼 자연적
조건이 좋은 곳이다. 따라서 방파제 없이 해안을 따라 길게
이어진 선착장에 어선들이 정박해 있다. 1일과 6일에 서는
오천장을 찾으면 각종 해산물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오천항
에서 이루어지는 잠수기어업으로 채취한 키조개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특산물이고, 어른
주먹만한 크기의 홍합역시 인기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외연도가는 뱃길관광은 수많은 섬 사이를 지나는데
바다낚시배, 보령화력발전소, 안면도에서 대천항으로 연결하는 연륙교,
그리고 시원한 바닷바람에 스쳐가는 동양화 같은 환상적인 아기자기한 섬들을 볼 수 있습니다.
소요시간은 2시간 정도 걸리더군요.
우리가 출발할 오천항 모습입니다.
오천항에 정박중인 수많은 어선들들을 보니 마음이 둥둥 어디론가 따나가고 싶습니다.
행정선에 탑승하기 직전 모습입니다.
배는 9시 30분 오천항에서 외연도로 출항했습니다.
보령시와 안면도 사이의 바다에는 수많은 오징어낚시 배들이 보입니다.
과거에는 잡히지 않았던 오징어가 지구온난화로 보령 앞바다에서 잡히는 진귀한 현장을 볼 수 있습니다.
오징어잡이 낚시모습입니다.
이곳에서는 오징어, 갑오징어, 주꾸미, 농어, 광어, 우럭, 참돔 등이 잡힌다고 합니다.
오늘처럼 비가 오고 바람이 불지 않는 날은 오장어잡기 좋은 날이라고 하네요.
보령화력발전소가 보입니다.
안면도에서 원산도로 연결하고 있는 연륙교도 보입니다.
보령시와 태안군 안면도를 잇는 보령해저터널 공사는
2010년 착수하여 국내최장 해저터널((6천927m), 충남 최장 연륙교인
솔빛대교(1천750m), 도로로 연결하는 공사로 2020년에 완공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대천항에서 홍성을 돌아 75㎞에 이르는 영목까지
1시간 30분쯤 걸리던 것이 10분 안팎으로 크게 단축되며,
쾌적한 도로건설 지역의 관광수요 증가, 지역경제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합니다.
외연도로 가는 도중에 잠시 원산도에 들렸습니다.
원산도 선착장에서 몇몇 사람을 태우고 다시 외연도로 출발했습니다.
배안에는 약 20여명이 앉아서 회의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이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배는 최대한 속도를 내서 달리고 있습니다.
바닷물을 가르는 해파를 보노라면 세파의 모든 스트레스가 확- 사라지는 듯 합니다.
섬의 픙경을 보면서 지나가는 시원함도 있습니다.
한 폭의 아름다운 거북등 모습도 보입니다.
멀리 외연도가 보입니다.
" 와~ 등대가 보인다."
태풍을 막아주는 외연도 삼각산 앞으로 배가 서서히 도착합니다. .
우라는 배에서 하선했습니다.
보령시 영수암(永守庵)
대웅전 앞에 귀부와는 다른 거북모양의 조각품과 함께
포대화상도 모셔 놓았습니다. 예전엔 절에서 포대화상을
보기란 쉽지 않았었는데 중국과 수교를 한 1992년 이후
에는 경쟁하듯 포대화상이 절 마당에 들어서는군요. 불교
계에도 중국문화가 거부없이 수용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배불뚝이 포대화상은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믿음으로 중국인
들이 좋아하는 화상인데 당,송 교체기에 실존(후량사람) 했던
인물입니다.중국에서 미륵보살의 화신으로 인정되는 포대화상은
포대를 짊어지고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서 여러가지를 구걸해
포대에 넣었다가 어려운 이웃이나 어린이들을 보면 포대에서
물건을 꺼내 도와 주었다고합니다.예지력도 있었다는 포대화상은
초월적인 능력을 갖춘 비범한 인물로 복지의 실천가를 넘어서
민중들의 의지처가 된 친근한 모습의 캐릭터가 됐습니다. 기독교의
산타크로스처럼......(참고문헌 : 사찰의 상징세계. 자현스님)
귀부리로 왔습니다. 귀부와 이수만 남아있는 비"를 보려고요.
없어진 몸돌을 만들어 놓았어도 귀부와 이수는 돋 보였습니다.
받침돌과 몸돌과 머릿돌로 이루어진 비"에서 귀부와 이수라
부르는 받침돌과 머릿돌엔 용이 있어야합니다. 몸돌과
머릿돌이 한 몸으로 된 이수도 있습니다비는 머릿돌이
있는 비석을 칭하는 말로 머릿돌이 없으면 비석이라고 합니다.
비석은 크기나 세워진 위치에 따라 묘갈" 묘표"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귀부입니다. 귀부는 거북이 아니라 용의 큰아들인 비희입니다
영수암의 대웅전 현판입니다 한문을 우측부터 썼네요
영수암 대웅전의 석가모니불.
대웅전 뒤에 쓰러져가는 건물이 한 채 있네요. 산신각 같기도 한.....
그 앞에 없어진 얼굴을 세멘트로 만들어 놓은 미륵불도 있고요.
도미부인 솔바람길이 시작되는
도미부인 사우 앞입니다 (모든 사진들은 크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사우인 정절사에
모셔 있는 도미부인의 영정.
도미는 신분이 낮은 백제사람인데 그의 아내는 용모가 아름답고 절개가 있는 여자였다는군요
이런 소식을 들은 개루왕은 도미를 불러 부인이 절개가 있다고 하지만 그럴듯한 말로 꾀면 마음이
움직일거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도미는 자신의 아내는 죽더라도 그런 일이 없을거라 했습니다.
이에 왕은 도미를 궁궐에 붙잡아 두고 신하 한 사람을 왕처럼 꾸며 도미의 집에 보냈습니다
신하는 왕의 행세를 하며 내가 너를 좋아한지 오래다" 내가 도미와 내기를 하여 너를 차지하게
됐으니 궁인으로 삼겠다며 범하려하자 대왕께서 먼저 방으로 들어 가면 옷을 갈아 입고 들어가
모시겠다고 물러나와 계집종을 꾸며 방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뒤에 개루왕은 속은 것을 알고 크게
노해 도미의 두 눈을 멀게하고 작은 배에 실어 강물에 띄어 버렸다네요. 그리고 도미의 아내를
불러 강제로 간음하려 하자 도미의 아내는 남편을 잃고 혼자 몸이 되고 보니 혼자서 살 수 없을 듯
한데 왕을 모시게 됐으니 어찌 거절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월경 중이니 다른 날 깨끗이
목욕하고 오겠다고 하고 도망해 강가에 이르니 배가 없어 하늘을 향해 통곡하자 조각배 한 척이
나타나 그 배를 타고 천성도에 이르러 도미를 만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데
그 땅이 고구려의 땅이였다고... 고구려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옷과 밥을 주었다고 합니다.
백제왕은 서민의 아내나 괴롭히느데 고구려에선 두 눈이 먼 장애자도 구호해 준다고........
이거 지금의 흑색선전의 원조 같네요. 포악한 백제왕의 땅을 탈출해 고구려로 오라고...
도미부인 사우를 나와
전망대가 있는 곳까지 산 길 2.2키로를 걸었습니다.
40 여분 걸으니 해안 전망대가 보이네요.
2층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서 본 좌측의 풍경
가운데
우측의 풍경입니다.
바로 아래에 있는 1층 전망대 모습이고요.
뒤에 오는 회원들의 모습입니다.
1층 전망대.
그늘은 없었지만 바람이 불어 시원 했던 곳입니다.
내려 가며 본 1층 전망대입니다.
전망대에서 주차장까지는 또 500미터 가파른 길을 내려와야 합니다.
충청수영성 (사적 제501호)
충청수영성은 조선초인 1509년(중종4)에 수군절도사 이장생이 쌓은 성입니다.
입구에 있는 진휼청(흉년에 빈민을 구제하던 관청) 입니다.
수영성은 현재도 한참 발굴 중이였는데요.
다행히 최고의 경관을 자랑하던 영보정은 복원되어 있었습니다.
오천항
복원된 영보정
이번 탐방 여행 중 백미였던 영보정에서의 휴식.
영보정에서의 한 때는 정말로 잊을 수 없는 즐거운 추억이였습니다.
몸과 마음을 붙잡았던 시원한 바람과 경치
오천항입니다.
항구 특유의 비린내가 나지 않았던 한적한 항구 오천항에서
꿈꾸는 항구선
처녀림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1940년 8월 태평레코드
항구마다 안개있고 안개속에 사랑있다
마도로스 수첩위에 눈물뿌린 두 소절아
구겨지고 얼룩이진 텍사스 손수건에
당신의 냄새를 찾어본다 찾어본다
인천의 하룻밤
등불속에 오는 인정 기적속에 가는 인정
비로도 쿠션에 엎지러진 조니워카
끊어지고 헝크러진 한 많은 테프속에
당신의 발길을 찾어간다 찾어간다
부산의 하룻밤
바람벽에 후려갈긴 마이딸린 낙서는
상처많은 마도로스 핏줄식은 복수란다
속절없이 얼어붙은 야속한 선웃음에
당신의 숨소리를 헤어본다 헤어본다
청진의 하룻밤
2016-12-13 작성자 명사십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