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선생님,
오늘이 5월 18일 광주 민중항쟁 스무돌을 맞는 날이군요. 마침 오늘 아침 수업이 없어서 맘먹고 학습지도안을(다시 툇짜 맞지 않도록 잘) 작성하려고 맘을 먹었더랬는데, 계획했던 일은 않고 요즘 머릿속에 떠돌아 다니는 생각을 글로 올려 봅니다.
낙화
- 조지훈
꽃이 지기로소니
바람을 탓하랴.
주렴 밖에 성근 별이
하나 둘 스러지고,
귀촉도 울음 뒤에
머언 산이 다가서다.
촛불을 꺼야 하리
꽃이 지는데
꽃 지는 그림자
뜰에 어리어
하이얀 미닫이가
우련 붉어라.
묻혀서 사는 이의
고운 마음을
아는 이 있을까
저허 하노니
꽃이 지는 아침은
울고 싶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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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이 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가 떠올랐습니다.
오늘 5월 18일은
광주 민중항쟁 스무 돌이 되는 날입니다.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습니다.
저는 광주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고 부모형제는 물론 일가친척 중
죽은 사람도 다친 사람도 없습니다.
다만
산과 들이 온통 푸르른 아름다운 계절에
젊음의 축제의 함성이 울려 퍼져야할 때에
그 때는 광주 사태라 했습니다.
비상계엄으로 학교가 문이 닫히고
낯익은 얼굴들이
사라져 간 강의실에서
고개 숙이고 앉아 있었던
아픈 기억이
잇따른 미군범죄, 매향리 우리늄탄...
기사, 뉴스 위에 오버랩되고
그래서
TV를 끄고 신문을 덮으면
별다른 사건 없이
흘러 가고 있는
단조로운 일상생활 속에서
눈에 띄는 글을 읽었습니다.
...당시 '제3자'였던 자신도 강산이 두번이나 변한 세월이 지났건만 가슴이 '짠한'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할까? 가해자들은 아직까지도 '떼거리'로 몰려다니며 떵떵거리는데... 5월의 아름다움 한켜 아래 깔린 '처연한 슬픔'을 떠올리며 그 어둠의 시절을 적어 놓았던 글을 펴 보여준 어느 신문사 기자의 글을 읽으면서 슬픔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엇습니다.
"천구백팔십년 유월 장미는
어느해보다 더 빨간 빛이었다
그 오월, 적어도 광주에서만은
해가 차라리 시커먼 숯덩이엇다.
씩스틴이 뚫고 나간 거리를
다시 대검이 휘젓고 지나갔다
금남로에, 충장로에 뿌려진 붉은 피는
치를 떨며 땅속으로 숨어들었다
흐르다 바깥일이 하도 궁금하여
빨간 장미꽃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때의 햇살은 이미 햇살이 아니
벌건 불덩이로 교만스레내리 쬐고 있었다
그 벌건 불덩이가 쇠 꼬챙이보다 무서워
장미는 가시조차 감추고 고개를 숙여야 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목련, 라일락...
화사한 봄꽃은 이제 다 떨어지고
느티나무, 상수리 나무
파릇한 잎새들이 어느새 자라
무성하게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초여름의 상쾌하고 싱그러운 날씨에
죽은 자를 위하여 명복을
살아 있는 자를 위하여
축복을 기원하는 날로 보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