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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신라 사람들이 그러했듯, 가을 경주의 남산을 거닐어보실까요? 지난주 일요일 쌍춘년의 길일이라는 날에 경주남산엘 올랐습니다. 산이 사람들에게 내어놓은, 명주실처럼 길게 이어지는 오솔길. 길을 따라올라가다 보면 천 년 신라의 신비를 만날 수 있습니다. 따스함이 지나쳐 이제는 따가움마저 느껴지는 10월의 햇살을 받으며 긴(?) 산행에 나섰다. 마하연의 쥔장 수돈님이 굳이 이렇게 산행 코스를 잡은 건 "남산의 정수를 맛볼 수 있는 가장 짜임새 있는 코스"라는 설명을 덧붙일까 합니다..()()().. 왕릉, 불상, 불탑, 절터 등 남산 전체에 고루 퍼져 있는 수많은 유적과 전설. 탑과 불상에 돌이끼로 내려앉은 천 년의 연륜. 탑상이 자아내는, 아마도 천 년 전의 것일 그윽한 분위기. 아침, 낮, 저녁, 밤,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보여주는 늘 다른 탑상의 모습. 옛 절터에서 느껴지는 고즈넉함, 처연함, 아늑함. 모든 것이 다 아름답습니다. 경주시 배반동 남산 미륵곡 기슭의 보리사[菩提寺]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
광배와 대좌 일부에 금이 가고 깨진 부분도 있으나 상의 보존상태는 비교적 좋은 편이다. 머리 크기에 비해 어깨와 무릎의 폭이 좁고 몸체의 볼륨감이 빈약하여 전체적으로 왜소하면서 불안정하게 보인다. 머리에는 커다란 육계(肉)와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온화하게 미소를 띤 얼굴 표정에서 부처의 깊은 자비심과 위엄이 느껴진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드러난 가슴 위로 비스듬히 입은 내의(內衣)가 보인다. 왼쪽 어깨 위에 걸쳐진 대의(大衣) 끝단에는 약간의 주름이 표현되었고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이 가슴부분의 옷깃 속으로 살짝 접혀들어간 것이 특징이다. 법의의 옷주름은 약간 복잡하게 크고 작은 여러 층의 단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결가부좌한 다리 밑으로 보이는 부채꼴 모 양의 주름 표현이나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은 경주 석굴암 본존불의 형 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그러나 석굴암 본존상에 보이는 넓게 편 가슴과 당당하게 앉아 있는 자세에서 느껴지는 위엄이나 긴장감은 이 석불좌상에서는 감소되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연결되어 몸체를 감싸고 있으며, 앞면에는 화불 (化佛)과 꽃무늬가 광배 안쪽을 장식하고 밖으로는 섬세한 불꽃무늬가 표현되었다. 광배 뒷면에는 약합을 든 약사불좌상(藥師佛坐像) 1구가 선각에 가까운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는데 오른손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대좌는 8각형으로 상대와 하대에 앙련(仰蓮)과 복련(伏蓮)의 연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중대의 각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 비교적 단순한 형태이다. 이 석불좌상은 전반적으로 양감이 줄어들었으나 머리가 크고 얼굴표정이 부드러운 점 등에서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양식을 어느 정도 간직하고 있다. 따라서 석굴암 본존불 이후 8세기 후반경에 제작된 항마촉지인 계통 불좌상의 한 예이나 법의 형식에서는 신라적으로 변형된 것을 보여준다. ![]() 경주남산불곡석불좌상(보물 제198호)
저부조로 조각되었다. 소발(素髮)의 머리는 큰 귀와 연결되어 있고, 크고 둥근 얼굴은 명상에 잠긴 표정으로 숙이고 있다. 불상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웃집 할머니가 떠오 른다. 경주사람들은 할매부처라고 부른단다. 얼굴의 세부는 둥글고 부드러운 양감으로 조각한 데 비해 옷주름은 선각(線刻)으로 처리했다. 이와 같은 머리형태나 얼굴모습은 고신라 7세기 전반 불상들인 인왕동출 토석불좌상(仁旺洞出土石佛坐像)이나 삼화령출토석조삼존불과 같아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법의는 통견(通肩)이며 두 손은 옷자락 속에 넣어 마주잡은 형상인데 선정인(禪定印)의 자세를 표현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결가부좌한 다리의 가운데에는 마치 버선을 신은 듯한 커다란 발이 있다. 대좌는 상현좌(裳懸座)로 옷주름이 좌우대칭으로 늘어져 있다. 이상은 부여 군수리 출토의 납석제불좌상(蠟石製佛坐像)같이 백제에서 이미 6세기에 유행한 선정인 불상 계통으로 좀더 단순화되었으며 양식적으로 7세기 고신라 불상의 특징이 보인다. 남산에 흩어져 있는 불적(佛蹟) 중에서는 그 조성시기가 비교적 이르다. 경주 남산에 있는 신라 석불 중 가장 오래된 석불로, 조성연대는 삼국시대로 짐직된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그리고 동면 비천상은 오전 11시경, 부처골 감실 부처는 동짓날 정오 무렵, 삼릉 골짜기의 불상과 마애불은 오후 해가 기울 무렵, 용장능선의 기막힌 전망은 해가 기울기 시작하는 오후 등등 남산의 불상은 제각각 아름답게 보이는 때가 있다.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일명 '부처 바위' 로 불리는 경주 동남산의 탑곡(塔谷) 마애(磨崖) 조상군(彫像群)은 높이 9m, 둘레 26m에 이르는 큰 바위에 수십구의 마애 조상이 새겨져 있다. 신라 시대 유적에는 불상이 조각된 바위나 탑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이 탑곡 마애 조상군은 규모가 가장 크고 내용이 다양하다. 남면에는 석등의 일부과 3층 석탑이 남아 있어 남향의 불전 등이 있는 사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탑곡마애조상군은 보물 제201호이며, 경주역사유적지구에 포함되어 2000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飛天像)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臺座)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光背)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은 하늘을 날고 승려는 불상과 보살에게 공양하는 자세이지만 모두 마멸이 심해 자세한 조각수법은 알 수 없다. 서쪽 바위면에는 석가가 그 아래에 앉아서 도를 깨쳤다는 나무인 보리수 2그루와 여래상이 있다. 하나의 바위면에 불상·비천·보살·승려·탑 등 다양한 모습들을 정성을 다하여 조각하였음은 장인의 머리속에 불교의 세계를 그리려는 뜻이 역력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조각양식은 많이 도식화되었으나 화려한 조각을 회화적으로 배치하여 보여주는 것은 우리나라에서 특이한 것이다. 경주남산 탑곡 마애조상군(보물 제201호)
고요함이 흐르는 정적인 분위기가 좋다. 코끝에 와 닿는 대나무 향과 바람에 서걱거리는 소리 또한 무척이나 상쾌하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산에다 자신의 불심을 쏟아부었기에 이토록 거대한 불국토를 이룩했을까? 마음 하나에서 돌에 생명을 불어넣는 정성스러운 손짓에까지 신라인의 혼이 온 산을 감싸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남산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청량하게 흩어지는 산새 소리와 영롱하게 빛나는 햇살도 신비롭게 다가오고, 소나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도 “원왕생 원왕생”하는 신라인의 축원으로 귓가에 들려온다. 지나는 사람도 적고 산죽이 우거져 터널을 만든 길은 그야말로 나만의 아지트를 찾아가는 비밀의 문 같다. ‘쉬~익’ 하고 산죽에 부서지는 바람 소리며, 청량하게 지저귀는 새 소리가 그윽한 운치를 뽐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앉아 나무와 바람, 새들이 연출하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에 귀를 귀울여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삼릉계 석조여래좌상
부처가 바로 바위다. 따라서 그 속으로 들어감은 신라로 되돌아가는 것이요, 부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다. 환한 미소를 가득 머금고 금방이라도 하강할 것 같은 마애관음보살상과 머리가 없어지고 두 무릎이 파손되었지만 자연스러운 옷 주름과 섬세한 매듭으로 당시 스님의 복장을 알 수 있게 하는 목 없는 석불좌상을 봅니다. 왼쪽 어깨에서 흘러내려 매듭진 가사끈과 아래 옷을 동여맨 끈, 그리과 무릎 아래로 드리워진 두줄의 매듭이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어 있어 복식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비록 손과 머리가 파손되었으나 몸체가 풍만하고 옷주름이 유려하여 통일 신라시대의 우수한 조각품으로 평가 된다 그런데 과연 불상의 목은 누가 자른 것일까? 목 없는 석불좌상에서 40m정도 올라가면 마애관음보살상을 만난다. 높이는 1.55m 정도이다. 오른손은 가슴에 들고 설법인을 했으며 왼쪽 손은 정병을 들고 있다. 머리의 보관에는 화불인 아미타불이 조각되어 있다. 자세히 보면 입술에 붉인 빛깔이 보일 수 있다. 이는 인공으로 첨색한 것이 아니라 자연암석의 붉은색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라 한다. 제작연대는 대략 통일신라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되고 있다. ![]() 삼릉계곡 마애관음보살상
연꽃무늬 대좌(臺座)위에 서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만면에 미소를 띤 얼굴은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고 있어 보관과 함께 이 불상이 현세에서 자비로써 중생을 구제한다는 관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불상 뒷면에는 기둥 모양의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고 있는데, 자연미에 인공미를 가한 느낌이다. 이 불상은 정확한 연대와 조각자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온 것이다. 삼릉계곡 선각육존불
새긴 불상이 있다. 선각으로 된 근사한 육존불이 모습을 드러냈다. 병풍처럼 들어선 바위 앞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뒤에는 석가모니삼존불을 새겨놓았다. 서쪽 바위는 높이가 약 4m이고 너비는 약 3.58m이며 동쪽 바위는 서쪽 바위면에서 약 3m 뒤에서 절벽을 이루고 있는데 높이는 역시 4m 정도이고 너비는 7.27m이며 동서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다. 원래 마애불은 정으로 쪼아 새기지만, 이 불상은 붓으로 그린 것 같다. 마치 붓으로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음각한 솜씨는 신라의 회화 예술을 보는 착각이 들게 한다. 불교에서 아미타불은 죽은 영혼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부처이기에 등산객은 이곳에 잠시 멈춰 서서 극락에 가기 위해 연신 허리를 구부려 108배를 한다. 삼릉계곡 선각여래좌상
서쪽으로 향한 높이 10m의 바위벽에 새겨진 이불상은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이다. 몸의 모습은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기고 얼굴만 도드라지게 새긴 독특한 조각 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 불상은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여겨 지고 있어 불상연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다. ![]() 삼릉계곡 석불좌상
머리가 온전하게 붙어 있는 부처의 뒷모습에 왠지 모를 고마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정면으로 보이는 부처의 얼굴 아랫부분이 시멘트로 보수되어 있다. 부드럽고 자비로워야 할 얼굴이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져 보기 흉한 몰골이다. 차라리 그냥 두었더라면 세월의 흔적이라도 남아 있었을 것을... 문화재의 가치와 복원에 무지한 결과가 훌륭한 문화 유산에 먹칠을 한 셈이다. 이 석불좌상은 화강암을 조각하여 만들었다.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은 법의를 표현 했으나 몸 전체는 매우 풍만하게 느끼도록 제작되었다. 석불이 앉아 있는 연화대석에 새겨진 연꽃무늬와 얼굴모습을 비롯하여 전체적인 불상의 모습으로 보아 8~9세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삼릉계곡%20마애석가여래좌상
상선암마애석가여래대불좌상이라 이름 붙여진 불상이 저 멀리 인간 세상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높이가 무려 5.2m에 달하는 마애불로 남산의 불상 중 규모나 조각의 우수성 면에서 가장 월등한 작품이다. 행여 잘못될세라 목을 쑥 내밀고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부처의 멋들어진 미소에 감탄하며 잠시 평안에 잠긴다.
삼불사가 있다. 움직이는 햇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는 신비한 미소로 유명한 삼존불상은 삼불사 뒤쪽 얕은 담장과 보호각 속에 있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이제 그 미소를 볼 수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비바람으로 인한 마멸을 줄인다는 이유로 보호각을 입혔기 때문이다. 보물 제 63호로 지정된 이 삼존불상은 원래 이 자리에 흩어져 누워 있던 것을 1923년 10월 한곳에 모아 세워놓은 것이다.
풍만하고 단아하며 입가의 미소가 뛰어나다. 오른손은 다섯손가락을 모두 펴 위로 향해 치켜든 시무외인을, 왼손은 팔을 아래로 내려뜨리고 손바닥을 정면을 향하도록 편 시여원인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수인은 특히 고신라의 유물에서 많이 발견된다. 옷무늬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크게 조각되었는데 발은 그대로 드러나 있다. 광배는 불상과 한 돌로 세워져 있다.
가장 조각이 섬세하며, 목에서 다리까지 드리운 구슬목걸이를 오른손으로 감싸쥐고 있다. 얼굴 모습은 본존과 마찬가지로 부드럽고 자애로운 미소를 한껏 머금고 있으며, 왼손은 어깨까지 쳐들고 불경을 쥐고 있다. 불행히도 무릎 부위에서 불상이 잘렸는데도 위험한데로 그냥 두고 있다. 광배에는 작은 부처 다섯을 새겨놓았는데, 그 부처들도 또한 작은 광배를 가지고 있어 특이하다. 광배의 가장자리는 구름무늬로 둘렀다.
높이는 2.3m이며, 오른손은 펴서 가슴에 얹고 왼손은 굽혀서 허리 부분에 대고 있다. 왼쪽의 보살상이 다소 가냘픈 느낌을 주는 반면, 오른쪽의 보살상은 전체적으로 몸을 뒤로 젖혀 다소 우람한 느낌을 준다 경주남산에서 가장 멋있고 예쁜 부처님은 어느 부처님일까?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고르는 사람 자신과 가장 닮은 부처님이 정답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잘난 맛에 살기 때문이다. 여러분과 가장 닮은 부처님이 어느 부처님인가? 한 분 정해놓고 부처처럼 이타행하며 살면 온 세상이 불국토가 되지 않을까요? 성불하세요~~~ ()()().. |
첫댓글 나무 관세음보살_()_
온 산이 불국토로 이루어진 경주 남산~~갈때 마다 신비감이 감도는 아름다운 우리의 산~~ 경주 남산!!! 다시 새롭게 보고 갑니다...고맙습니다..쿠아님^^**
나무 관세음보살 ......... ()()()
불교의성지 경주남산



순례의 기회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