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6.21. 설교문
탁종 3 이 천지간 만물들아
묵상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
신앙고백
찬송 167 주 예수의 강림이
337 인애하신 구세주여
343 울어도 못하네
173 불길같은 성신여
502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대표기도
성경말씀 이사야 29:1~9
설교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찬송 355 부름 받아 나선 이 몸
광고 4층, 44명 채워 질 수 있도록 온 힘으로 기도 부탁합니다.
어린이집도 요양원으로 리모델링 합니다.
찬송 519 십자가를 질 수 있나
338 천부여 의지 없어서
502 태산을 넘어 험곡에 가도
축도 주님, 일생에 꼭 한번은 내 이기심을 버리고 살게
어제 종일 요양원 책상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쓴 詩가 있습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새벽 다섯시면
찬송가로 어르신들을 깨운다
혹시, 밤새
그래서 숨소리를 들어보고
손발을 만져보고
흔들어 깨워본다
그리고
책상에 앉아 우두커니 먼 산을 본다
봄날이었던가
함열 장날에
삐약삐약 병아리 몇마리
쾍쾍거리는 오리 새끼 몇마리
울 안에 데려 왔다
음식물 찌꺼기때문이었다
미운자식 떡 하나 더 주었더니
작은 우리 안에서 쾍쾍쾍
기우뚱기우뚱 슬픈 몸짓을 한다
그러다 다리 하나 접질렀다
어떻게 해야지?
땅에 묻어줄까?
그래도 고맙다 알을 품는다
눈물이 난다
해질때면
잔디밭을 걷는다
그럴때마다
고양이 배설물 치우기도 일상이다
그런데 고양이 앞다리 끝 발목이 잘려
절뚝절뚝 거린다
누구에게 혼이 난 걸까
이런 기억때문에
아리다
내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가 소리에
입안에
짙은 죽음의 향 피우며
오늘도
비틀 비틀 다시 일어난다
슬프다 / 슬프다, 새벽편지에서
그렇습니다.
우리 석 권사님은 새벽에 만나면 인사를 두 번씩 합니다.
홀에서 만나면 목사님 일찍 오셨네요.
머리가 땅 닿도록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장소를 바꿔 책상에 있노라면 두리번 두리번 찾다가
저를 발견하고 책상 머리 맏에 다가와
목사님! 왜 이렇게 빨리 나오셨냐며 또 인사를 땅이 닿도록 합니다.
저는 모르는 척,
오늘 새벽에도 처음 뵙는 것처럼 인사를 받습니다.
이럴 때 얼마나 슬퍼지는지 모르겠습니다.
겉 모습은 멀정한데
침해로 이렇게 속은 텅 비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말을 잃어 가는 홍영선 어르신을 보면 슬프기만 합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예쁜 우리 김영미 선생님을 보면
넌 내꺼야! 하면서 보듬으려는 투정을 하셨던 분입니다.
얼마전 우리 양연애 집사님이 천국에 가셨습니다.
심한 침해, 전립선 암을 그냥 견디고 계시는
그래서 아내 양연애 집사님이 소천하셨느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우리 김팔연 어르신께서
우리 김영미 선생님 엉덩이가 얼마나 예뻤던지 엉덩이를 만지는 모습에
좋아 죽는
우리 김영미 선생님의 호들갑 소리를 들으며
슬프게 웃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신용례 어르신께서도 점점 말을 잃어 갑니다.
저를 볼 때마다 목사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아끼지 않던 분입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정든 세상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마주 대하면서
저는 “슬프다”는 시를 썼습니다.
우리 어르신들을 보면 눈물만 납니다.
어제가 우리 한 권사님 생신이었습니다.
다행이 미역국을 끓여 드렸습니다.
아드님께서 다녀가신다고 해서 종일 문 열어 놓고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아드님 오시면 따라가겠다던 우리 한 권사님을
매르스 때문에 오지 못하게 했다는 궁색한 이유로 맘을 위로 해 드렸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새벽 예배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립니다.
1,2절입니다.
슬프다 아리엘이여 아리엘이여~
왜? 하나님의 백성 아리엘이 슬픔에 빠졌습니까?
음란에 빠져버렸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이스라엘이 창기처럼 음란한 도시가 되어 버렸습니다.
3절입니다.
내가 너를 사면으로 둘러 진을 치며~
4절입니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경험 있습니까?
저는 이런 경험을 슬프다는 詩에서
잔디밭 주인은 묵묵히 고양이의 배설물을 치워 왔습니다.
이것 또한 잔디밭 주인의 행복한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누구가 무슨 이유로 고양이 발목을 부러트렸습니다.
잔디밭 주인도 이런 상처가 있어
부러진 다리로 걷는 고양이를 보면서 슬퍼진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요즘은 일손이 부족해서 노랑차를 대절해서
많은 아주머니들을 태우고 다니면서
밭에 풀어 일을 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러면 우리 아주머니들 챙피한 줄 모르고
밭고랑에 앉아 쉬~ 하는 모습을 봅니다.
그렇다고 밭 주인이
쉬~ 하는 아주머니 발목이라도 자른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웃자고 한 이야기지만
방탕한 이스라엘이 이런 수모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슬픔에 처해 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공황 상태panic입니다.
목사인 저도 2주동안 심리적으로 panic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런 글도 썼습니다.
어느 노숙자의 일기라는 시입니다.
퇫
좃같은 인생
시부랄년 돼져버려라
이 빌어먹을 세상
퇫 / 새벽편지에서
저는 이 글을 써 놓고 카타르시스를 느꼈습니다.
너무 흉측한 욕이지만 요즘 제 심리적 상태를
어느 노숙자의 술주정을 빌어 솔직하게 표현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를 힘들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항상 여러분 편입니다.
자기 편 장군을 힘들게 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여러분들은 모세가 기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아론과 훌이 되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아멜렉 전투에서 싸움을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모세의 기도때문이었습니다.
목사님이 힘들어 지칠 때 여러분들이 제 손을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모두가 좋아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축복입니다.
5~8절입니다.
그럴지라도 네 대적의 무리는 세미한 티끌같겠고
강포한 자의 무리는 불려가는 겨 같으리니~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것이 인생입니다.
인생역전이란 말 들어 봤지 않습니까?
제가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는 자
강포한 자,
오만한 자는 반드시 바람의 겨같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 계획 속에 있습니다.
아리엘이 참혹한 굴욕을 당하도록 계획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작은 그루터기만 남게 될 지라도
실망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굴욕을 당할지라도
참고 견디면
그루터기에서 다시 싹이 나오는 것처럼
도덕적, 영적 갱신의 날이 오는 것입니다.
굴욕과 고난은
누구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나때문인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내가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는 순간
나의 고난이 눈 녹듯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순간
나의 대적들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이 있을 때
마귀들과 대적하려 하지 말고
강포자들과 일대일로 싸우려 하지 말고
그냥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리기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진실되게 정직하게 회개하는 순간
기세등등했던 대적들의 기세는
물거품처럼 사라지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를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오늘은 새벽예배로 드립니다.
다시 예배를 바르게 드리자는 의미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잘 드리면
태산 같아 던 근심도 사라집니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바르게 예배드리고
바르게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