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제헌절
7월 17일이 오면 기념식장에서 짧게 울리고 마는 노래가 하나 있다. 제헌절 노래다. 흘려듣기 쉽지만, 이 노래의 가사에는 대한민국 헌법이 어떤 정신 위에 서 있는지가 압축되어 있다.
작사자는 대종교 원로이자 국학자이자 민족주의 역사학자 위당 정인보, 작곡은 박태준이다.
정부 수립 이후 국경일 노래를 정비하던 1950년에 제정·발표되었는데, 정인보는 이때 삼일절·광복절·개천절 노래의 가사도 함께 지었다. 한글날 노래를 작사한 외솔 최현배까지, 대한민국 5대 국경일의 노래는 모두 대종교인이 작사했다.
흥미로운 것은 홍익인간 사상이 정작 '개천절 노래'보다 제헌절 노래에서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헌법 정신 안에 단군사화를 녹여 넣은 것이다.
1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비 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 이루니 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
첫 두 행은 '삼국유사' 고조선조의 장면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환웅이 풍백·우사·운사, 곧 바람과 비와 구름을 거느리고 내려와 인간 세상의 삼백예순 남짓한 일을 두루 다스리며 널리 사람을 이롭게 했다는 대목이다.
'인간을 도우셨다'는 한마디에 홍익인간의 이념이 담겨 있고, 그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는 선언으로 이 이상이 민족사의 출발점임을 밝힌다.
그다음이 핵심이다. "삼천만 한결같이 지킬 언약"이란 헌법을 가리킨다. 헌법을 법조문의 묶음이 아니라 온 겨레가 함께 지킬 약속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리고 "옛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로 매듭짓는다. 단군 이래의 옛길 위에 헌법이라는 새 걸음을 얹겠다는 뜻이니, 홍익인간의 이상과 헌법 제정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한 줄로 잇는 구절이다.
후렴은 노래 전체의 선언이다.
"이날은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다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
제헌절은 법 하나를 만든 날이 아니라 나라의 터를 닦은 날이라는 것이다. 헌법이 곧 국가 영속의 근본이자 건국의 이상이라는 인식이 '터'라는 한 글자에 응축되어 있다.
2절로 가면 시선이 미래로 옮겨간다.
"손 씻고 고이 받들어서 대계의 별들같이 궤도로만 사사 없는 빛난 구위 앞날은 복뿐이로다 바닷물 높다더냐 이제부터 쉬거라 여기서 저 소리 나니 평화 오리라"
헌법을 받드는 자세부터 다르다. 손을 씻고 고이 받든다. 그리고 별들의 궤도에 빗댄다. 별이 사사로움 없이 제 궤도를 도는 것처럼, 헌법 또한 개인이나 집단의 이해에 흔들리지 않고 공동의 선을 향해 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사 없음'이야말로 정인보가 본 헌법 정신의 요체다.
공정하고 사심 없는 규범이 자리 잡으면 앞날은 복뿐이라는 확신, 높던 바닷물도 이제 쉬라는 명령, 여기서 나는 소리에 평화가 오리라는 예언이 뒤를 잇는다. 헌법이 혼란을 잠재우고 평화의 시대를 열리라는 기대다.
결국 이 노래를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다.
"홍익인간이라는 민족의 이상이 대한민국 헌법이라는 그릇에 담겨 계승되고 실현된다는 것."
정인보에게 헌법 제정과 건국은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다. 단군 이래의 이상을 이어받아 국민 전체의 화합과 번영을 위해 마련한 하나의 성취였다.
억만년의 터라는 후렴을 따라 부를 때마다, 우리는 홍익인간이 이 나라의 건국 이상으로 자리 잡는 순간을 다시 확인하게 되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