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7 테르미니 역 근방에 있는 경찰서에 들려 핸드폰 분실신고를 하다. 어제 저녁 여섯시경 버스에서 내려 슈퍼마켓을 들렸고, 한인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왔는데 핸드폰이 사라진 것이다. 혹시 버스에 내려놓았을 까하고 관광회사에 알아봤으나 허사였고, 한인식당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소매치기 천국이라 하지만 호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을 그렇게 감쪽같이 훔쳐갈 수 있을 까 믿어지지 않는다. 묻고 물어서 힘들게 경찰서를 찾았는데, 불친절하기 그지없다. 마냥 기다리고 있다가 무슨 일로 문을 열면 그 때 한마디 건네고 무작정 기다린다. 그들이 서너 번 들락거린 후에 용건이 전달되어 분실물 신고서를 작성하고 확인을 받아 나섰다. 두 시간은 족히 걸렸다. 이태리의 치안, 안전, 공공부문의 서비스가 엉망이다.
오후에 피렌체로 이동하는 고속열차를 타다.
7월 28일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을 방문하다. 우피치 미술관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이 오랜 세월 수집하고 소장하여 왔던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거장들의 미술품이 모여져 있다. 이 작품들을 메디치 가문에서 넘겨받아 피렌체 시에서 관리하고 있는 미술관이다. 미술관 건물은 메디치 가문의 관청 사무실 이었다. 우피치(Uflci)라는 단어에서 영어의 Office가 유래하였다. 피렌체에서는 어디 가나 메디치 가문의 흔적이 널려있다. 돈놀이를 하여 부를 늘렸고, 거대한 무역상이 되어 의약품과 향료를 전문으로 취급하여 거대한 공국을 이루게 되었다. 메디치 가문을 일으킨 인물이 코스마스였고, 메디치가문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대공이 로렌쬬였다.
지금 우리가 쓰는 일상용어중에 의약품(Medicine)이라는 단어는 메디치 가문에서 취급하던 제품에서 유래하였고, 기업이 예술과 문화를 지원하는 사업을 메세나라고 하는 데 이 용어 역시 메디치가문의 기업후원에서 만들어진 단어이다. 자료에 의하면 르네상스 시대에 수백명의 천재들이 피렌체에서 태어나고 활동하여 이름을 남기게 되었는데, 이런 풍토 또한 메디치 가문의 지원 덕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지금 이태리의 표준어가 피렌체지방에서 쓰는 언어이다. 이렇게 그렇게 크지 않은 지방 도시가 이태리의 문화나 정치의 중심이 되었던 것은 메디치 가문의 기업정신의 덕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후원과 노블리스 오블리쥬의 좋은 선례를 후세에 남긴 훌륭한 가문이다. 그러나 메디치 가문은 이런 명망이 두려웠던 주위의 공국들이 단합하여 고립을 시켰고, 멸망을 시켰다.
역사는 정의의 편이라고 하는데, 이 얼마나 현혹되기 쉬운 미사여구인가? 역사는 그렇게 너그러운 승자의 편도 아니고, 정의롭지도 아니했다. 다만 권력을 잡은 자들의 이기심에 의해서 역동적으로 흘러가는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정반합의 수레바퀴를 따라가는 발자국일 것이다.
미켈란젤로의 톤도도니 <성가족 >
둥그런 형식의 판화를 톤도라고 하는 데 도니라는 사람이 그려달라 해서 돈을 받고 그려준 그림,
그림을 요청한 사람이 성모 상에 나오는 팔뚝의 근육이 성모답지 않다하며 다시 그려 달라 했다. 미켈란젤로는 그러면 그림을 팔지 않겠다하였다. 도니는 부득불 더 높은 가격으로 그림을 매수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티치아노의 우르비노의 비너스
성서를 주제로 한 이콘화가 많았다.
7.29일 피렌체의 두오모 성당 돔 쿠폴라에 오르다. 아파트 30층 높이, 좁은 통로를 타고 아슬아슬하게 올라갔는데 이 길이 일방통행이라서 내려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녁에 아르노 강을 넘어 미켈란젤로 광장을 걸어서 올라갔다. 피렌체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고 야경이 아주 좋다.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상을 바라보며 저녁식사를 하였다.
레드와인에 어울리는 생선요리, 이태리 여행 중 가장 맛있는 만찬이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내려본 피렌체의 야경
밤늦게 숙소를 찾아가는데 두오모 성당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수 많은 골목길에서 길을 잃어 택시를 신세를 졌다. 다음날도 시내에 나와서 거리를 둘러보고, 다시 미켈란젤로 광장에 올라가서 시간을 보냈는데, 숙소에서 두오모에 이르는 길을 익히고 주위의 건물들을 사진에 담아 착오 없이 찾아갈 수 있었다. 한인숙소 우노피렌체에서 이틀을 묵고 예약이 밀려 숙소에서 쫓겨나는 처지가 되었다. 한인민박 집에서 하루, 역 가까운 호텔에서 이틀, 총 5박을 피렌체에서 보냈다.
친퀘체레와 피사
피렌체에서 출발하는 한국인 여행일정에 합류하였다. 승합차로 레안또 역에 도착하여 친퀘체레를 이동하는 열차를 타고 가장 먼 몬테소로 마을에서 내려 구경을 하고 열차를 타고 이동하여 베르나차에서 보트를 타고 해안 마을을 구경하고 마지막 마을 마나롤나 에서 내렸다.
포구에서 내리니 가까운 절벽에서 다이빙을 하는 것이 구경거리였다. 두 군데에서 뛰어 내리는데 낮은 점프대가 7미터 높은 곳이 10미터정도 되어 보였다. 옆에서 보는 것이 아슬아슬한데 뛰어 내리는 것은 대단한 담력이 있어야 겠다.
우리와 같이 기행을 하던 일행 중 울산과기대 재학 중이라는 허남철 군이 바다로 걸어 내려가 헤엄을 쳐 점프대로 가고 있다. 성큼 성큼 가장 높은 점프대로 올라가서 한번 아래를 바라보더니 바로 뛰어내리지 못하고 헉 하면서 주춤한다. 생각보다 높았을 것이다. 두 번 째는 서슴없이 뛰어내린다. 하나 둘을 세는 사이에 물속 깊이 잠겼다가 솟아오른다. 물을 가르며 나오는 폼이 당당하다. 장하다 대한 남아! 대한의 젊은이!
가방을 열고 있는 젊은이가 남철 군
친퀘체레는 이태리어로 다섯마을이라는 뜻인데 해안가 절벽에 형성된 다섯 개의 마을을 이른다. 방송에 여러 차례 소개되어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이태리의 여행지이다. 수백 년전 전쟁을 피해 도망 다니던 사람들이, 사람이 살만한 여건이 되어 있지 않은 척박한 곳에 터를 잡았고, 억척스럽게 자연조건을 극복하여 마을을 이룬 것이다. 지금은 세계적인 명소가 되어 있다. 점심을 먹고 마을주위를 산책하였다. 가파른 경사지에 석축을 쌓고 거기에 흙을 담아 포도나무를 심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렇게 만들어진 석축이 만리장성보다 더 길다하니 가혹한 자연조건에 적응한 인간의 한계를 볼 수 있었다.
엊그제 남부여행에서 들렸던 포지타노나 이곳 친퀘테레 여행도 마찬가기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눈도장만 찍고 가는 아쉬움이 있었다.
해안가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따라서 마을과 마을을 걸어서 이동하고, 산등성이 넘어서는 바닷바람에 땀을 씻고, 마을 안 골목길을 들어서는 지중해 사람들의 속삶을 느껴보는 여행이 되지 못했다. 청색 잉크를 풀어 놓은 듯한 지중해의 바닷물 빛은 대단히 인상이 깊었다. 이 바다를 바라보며 몇 시간 걸었다면 이태리 여행 중 가장 아름답게 채색된 여정이 되었을 것이다.
친퀘테레를 나와 피사에 들렸다. 별로 권하고 싶지 않은 여행이었다. 기울어진 탑을 배경으로 사진 찍는 것 이외에는 다른 것이 없었다.
7.31
오전에 피렌체 아울렛 가는 버스에 올랐다. 피렌체 가죽제품은 세계적인 명성을 누리고 있다. 가격 싸고 품질 좋다. 아침 첫차를 타고 갔는데 명품을 파는 Mall에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Gucci나 Prada등의 매장은 문을 열고나서도 몇 십 분 씩 기다려야 입장을 할 수 있다. 고객들의 쾌적한 쇼핑을 위한 배려라는 데, 그 땡볕에 순번을 기다리는 인내심이 대단하다. 명품을 대한 열정에 박수를 보내지만 나에게는 그런 인내심은 없다.
오후에 토스카나 와이너리 기행에 합류했다. 토스카나는 피렌체를 둘러싸고 있는, 주(州)나 도(道)에 해당하는 행정 단위로 지도상에 특정하여 나와 있는 지역은 아니다. 피렌체 주위의 전원을 토스카나 지방이라고 한다. 토스카나 지방이라고 사진에 소개되는 풍경은 야트막한 산이 있고, 산자락에 농경지가 있고, 올리브 나무와 포도밭이 펼쳐지는 전원풍경이 소개되는 데 이 풍경에 빠질 수 없는 배경이 사이프러스 나무이다. 우리 나라 노간주 나무 같이 좁고 길게 자라는 나무 인데, 가까이 가서 확인해보니 열매나 이파리나 측백나무와 비슷했다.
토스카나 경치가 너무 좋은 데 제가 사진을 담았던 카메라를 잃어버려 좋은 사진을 담지 못해, 지인이 몇년전 여행을 다녀와 토스카나 지방 그림을 선물로 주었는데 그 그림을 올렸습니다. 제 서재에 있는 그림입니다.
키안티로 와이너리 여행을 떠났다. 키안티의 대표적인 브랜드는 수탉이다. 그 옛날 전설 같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피렌체와 시에나 공국이 전쟁을 하는데 싸움의 승패를 새벽 수탉이 울 때 까지 특정지역에 도착하기로 했는데 시에나 공국이 먼저 도착하게 되었다. 그 때 수탉이 울었던 지역이 이 지역이고 그 승리를 기리기 위해 수탉을 이 지역의 마스코트로 삼았다. 키안티는 이태리어로 수탉이라는 뜻이다.
키안티 최고급와인 DOCG급
버스는 해발 300-400미터의 산악지방을 오르내리고 있다. 아주 이국적인 풍경이다. 지대가 낮지는 않은데 산세는 험하지 않고, 산과 숲과 농장과 집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전원지대를 지나간다. 첫 번째 들린 와이너리에서 다양한 와인을 맛보다. 스파클링와인 우리가 마시는 샴페인과 비슷하다. 단맛이 있고 부드럽다. 두 번째 레드와인, 떫은 맛 보다는 단맛이 있어 여성들 취향에 맞겠다. 안주로 치즈와 살라미(베이컨)이 나온다. 와이너리를 나와 시에나로 이동하였다. 시에나는 로마와 유럽대륙을 연결하는 길목에 있는 도시로서 전략요충지였고, 고색창연한 도시다. 역시 두오모(대성당)이 으뜸가는 유적이고, 대 성당 앞 부채꼴모양의 광장이 독특하다. 시에나에서 오후 시간을 보내고, 다시 와이너리로 향했다.
성찬이 준비되어 있다.
1. 치즈, 에피타이저, 베이컨, 살라미 2. 페네스파게티 3. 닭과 가지 4. 티라미슈 크림 레드와인 두 잔이 돌아갔다.
일행 중에 7월 31일이 생일인 사람이 있어 간단히 생일축하파티가 열렸다. 조그마한 둥근 케이크에 촛불을 얹고 다같이 생일 축하합니다( 이태리어로 산타브리아케)를 불렀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간다. 노래를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분위기였다. 천정은 높고 밤이라서 울림이 좋을 것이라는 느낌이 섰다. 가이드를 불러 내가 제의를 했다. 이 와이너리에서 가장 비싼 와인을 한 잔 씩 돌리고 노래를 한번 하겠다고. 그 자리에 같이 한 사람들은 18명, 캐나다. 호주, 페루, 이스라엘, 포르투갈 등 세계의 각 대륙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가족과 연인 그리고 젊은 여행가들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다.
앞에서 나섰다. 한국에서 온 아마추어 성악가라 소개하고 “오 솔레미오”를 불렀다.
노래를 감상하는 분위기가 달랐다. 좋은 대목에서는 서슴없이 박수가 나왔다.
마나~~~투 솔레 하면서 고음으로 올라가는 대목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이제 노래는 마지막 고비로 올라간다. 스타인 프론 데아데 스타인 프론 ~~ 데아데 하면서 테너 최고의 고음을 울려주며 노래는 끝이 났다. 객석에서 난리가 났다. 관객전체가 일어나 기립박수다. 내가 나이가 들어 노래공부를 하여 여러 자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다녔지만 이렇게 기립박수를 받기는 처음이다. 외국인들 앞이라 설마하고 나섰는데 잊을 수 없는 공연되었다.
앙콜 송으로 산타루치아를 부르고 자리를 끝냈다.
2017년 7월 31일 오래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밤이었다.
첫댓글 이번 여행길을 위해서 성악을 공부한 것 같구먼. 기립 박수를 받은 준태의 기분을 알 것 같네.
그것이 다 자네들 덕이지.
그 동안 우리 동기들이모이면 내 노래를 청해주었잖아.
그렇게 해서 무반주 노래 실력이 향상된 것이지.
어디가서 무반주로 노래하여 기립박수 받는 경우는 드물 것이네.
서로 챙겨주고, 격려해주는 우리 벗님들의 동기애에 항상감사하지.
소설가에다 성악가 준태, 멋져부러! 이젠 본토까지 진출 , 점령?했네그려!
언제 이태리를 우리 OCS가 가서 평정을 해야할 것인데
기회가 주어질 지 모르겠네.
여행기는 좋고,
사수의 이태리에서의 성악이 크라이막스네.
성악의 땅에서 기립박수!
이젠 해외로의 진출이로구만.
영원한 추억이되겠네.
우리 사수 멋쟁이!!!
다음 여행기도 기대되네.
귀한 손님이 오셨네, 근디 여그는 해군장교출신들의 카페이거든
어찌 카츄사 출신이 오셨을 까.
괜찮아 다 친구의 친구들이니
자네가 아는 털보도 갱복이도, 여인석이도 있으니
넥네임 부족한사람이 송계연 형이군. 준태글 찾에서 여기 오셨군 반갑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