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기에 희망을 꿈꿀 수 있다
12월 3일 저녁,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일을 마치고 돌아와 씻고 식탁에 앉아 책장을 넘겼다. 책 속에 열다섯 살 아이는 시신들을 뒷수습을 하는 일을 거든다. 그런 곳에 있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라 집으로 돌아가라는 형, 누나들의 말에도 극구 그 곳에 남아 있다. 친구를 찾는다는 변명으로. 집으로 가자는 가족들의 설득에도 끝까지 그곳을 지키고 떠나지 않는다. 다음 이야기는 죽은 영혼의 시선으로 자신의 시신을 보고 자신의 시신 위에 다른 시신들이 쌓이고 썩어가며 불태워지기까지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후 이야기는 산 자들의 이야기. 살았지만 죽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이들의 모습을 읽으며 참으로 참담하고 끔찍했다.
10시가 넘은 시각 핸드폰에 카톡 팝업창이 떴다. “비상계엄이 선포됐어요~” 헉, 뭐라고? 비상계엄? 지금 이거 꿈인가? 앉은 채 바로 유튜브 뉴스를 켰다.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있었다. 이거 실제 상황이네! 지금 이 시대에? 말이 돼? 이후 뉴스에서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국회 문을 차단한 경찰들, 들어가려는 국회의원과 비서관들, 그리고 하나둘 모여들어 도우려는 시민들, 어디서 오는지 모르는 헬기들, 헬기에서 내리고 몰려든 군인들. 들어가려는 자들과 막으려는 자들의 싸움. 일촉즉발의 상황, 한발이라도 발사된다면... 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행히 국회의원들이 정족수 이상 본회의장에 모였고 계엄군들이 침투하기 전에 계엄령 해제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난 군인들이 다 물러 갈 때까지도 안심하지 못하고 계속 시청하다 유튜브를 틀어놓은 채 잠이 들었다.
자고 일어났는데도 여전히 꿈인가 싶었다. 지난 밤 읽던 <소년이 온다>(한강, 창비) 책 속으로 타임슬립했던 건 아닐까? 정신을 차리고 내가 잠든 사이에 다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뉴스를 틀었다. 다행히 더 위험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그 시간에 국회로 달려간 이들의 기사가 쏟아졌다. 정의롭고 용감한 시민들. 그들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오는 걸까? 나는 <소년이 온다> 속의 동호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리 친구의 죽음을 보았다고 해도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그 어리고 숭고한 정신을. 과연 나는 진정으로 그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뉴스를 보면서도 위험천만한 일에 나서기 두려워했던 나는 왜 그들과 다를까. 용감한 시민들과 관련된 영상을 볼 때 순간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1차 탄핵 표결하는 날, 몸살에 시댁 김장까지 겹쳐 가지 못했다. 그리고 당연히 가결될 거라 믿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집단으로 퇴장했고, 탄핵은 부결되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가!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아직 정신을 못 차렸구나! 다음 집회는 내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간다! 2차 탄핵 표결일, 몇 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동창 모임에 갔다가 친구와 부랴부랴 여의도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 9호선, 1호선 할 것 없이 사람들은 만원이라 멀리 신길역에 내려 여의도까지 걸어갔다. 신길역에서 여의도로 넘어가는 다리를 건너는데도 이미 꽉 차서 한참이나 걸렸다. 국회 앞까지는 가지 못하고 여의도공원 내 통로에 멈춰 섰다. 평소에 이동 시간에 비해 두 배는 걸린 듯 하지만 목적지에 도달했고 그곳의 열기는 아주 뜨거웠다. 많은 이들과 함께 “탄핵~ 탄핵~ 윤석열~ 탄핵~”을 외치며 그곳에 함께 있다는 것이 뿌듯했다. 1차 탄핵 표결에 실망한 이들이 2차에는 어마어마하게 모여 들었다. 다행히 2차에는 탄핵이 가결되었다. 모두가 기뻐서 방방뛰며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탄핵 가결이 끝이 아니었다. 어쩐지 반대표 85표가 찜찜하더니 역시나 국민의힘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아... 이번 주에는 누구랑 가나. 결국 함께 할 이를 찾지 못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갈 용기가 안 났다. 그러다 문득 지난주에 내 옆에 혼자 앉아 있던 여자가 떠올랐다. 혼자서 묵묵히 응원봉을 흔들며 구호를 따라 외치던 여자. 나라고 혼자 못 갈 이유가 있나. 하지만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딸과 점심을 먹고 밍기적대다 짐을 챙겼다. 헌재 앞 촛불행동 집회, 안국역은 혼잡할 테니 종각역에 내려서 걸어가자. 집을 나서기 전과 달리 마음을 먹으니 발걸음이 한결 가벼웠다. 도착해서 혼자 방석을 깔고 앉았다. 어느새 내 옆에도 혼자 온 여자가 앉았다. 그 자리에 앉아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를 부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작지만 소신있는 행동. 그 행동들이 모여 우리는 반드시 뜻을 이룰 것이다.
내 마음 속에 남아 있던 의문. 동호는 왜 끝까지 그 자리를 지켰을까. 친구의 죽음에 대한 죄의식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그들과 함께 어떤 희망이 있었기 때문 아닐까. 지금 응원봉을 든 이들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하기에 그런 희망을 꿈꾸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