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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심이
김 정 한
1
봄은 고양이처럼 옥심의 귀천 없는 마음속에도 기어들었다. 시아버지의 말림도 듣지 않고 자진해서 나온 일이나마 도무지 낙이 붙지 않을 뿐, 이따금 미친 피가 전신을 욱신욱신 쑤시고 두 귀가 절로 멍해지며 ―마음은 한층 더 걷잡을 수 없이 뒤설레었다.
“후유 ―ㅡ.”
그녀는 자갈을 파다 말고 옹송그렸던 허리를 펴며 헛되이 긴 한숨을 뽑는다. 그리고 우두커니 서서 한참 동안 내 아래편을 바라보다가는 불시에 수줍은 생각이 들었는지 다시 그 자리에 움츠리고 앉는다. 그러나 눈은 역시 흘금흘금 그쪽으로만 끌렸다.
“어이경, 치영 치영, 응차 차야…….”
거기서는 소 같은 사내들이 둘씩 둘씩 짝을 지어서 목도를 메고 지나간다. 비틀비틀 어설픈 다리들이 어지러운 돌 사이를 공교롭게 빠져나간다. 낡은 참바로 느지막하게 얽매인 차돌이, 새로 깨뜨려진 시퍼런 모서리로써, 헤어진 감발에 가까스로 싸인 뼈다리를 아찔하게 받아줄 때마다, 목도 소리는 더욱 급해진다.
“아차 차, 차, 차양 차양…….”
그들의 잦은 숨결이 마치 기관차의 피스톤처럼 헐떡인다. 황토물 든 옥양목 봄사리의 잔등이 땀기름에 흠뻑 젖고, 불쑥 두드러진 어깨 위에는 매끄럽게 달은 목도채가 삐걱삐걱 ― 이리하여 그 한산 인부들은 무거운 돌덩이와 함께 ‘도로’가 기다리는 곳으로 움직여간다.
‘차양―놓고’ 소리가 바쁘게, 돌은 다시 실한 ‘도로’ 위에 실리고 ‘도로’는 풀죽은 농민들의 손에 밀려, 끼익 소리를 길게 내며 냇가를 떠나 커브진 비탈을 더위잡는다. 쑥대강이를 수그리고 배때기가 땅에 닿도록 안간힘을 쓰는 농민들의 넓적한 볼기짝들이 기름을 짜듯이 우습게 삐죽거렸다.
옥심이는, 아니 다른 여자들도 그 꼴을 보고는 한참 동안 킥킥거린다.
“그놈의 궁둥이들 참 아깝게 흔뎅거린다.”
다 늙은 만두 할멈도 오그랑쪽박상에 웃음을 담으며 봄다운 농담을 하였다. 그러나 그의 호미는 결코 쉬지를 않았다.
‘도로’가 향해 가는 두미산 중턱 ― 띠를 두른 듯이 황토가 벌겋게 드러난 곳이 백암사로 통하는 신작로 공사장이다. 거기서는 흰옷을 입은 농민들이, 카키빛 양복의 감독과 십장들의 매에 쫓겨 물 만난 개미떼처럼 이리저리 허덕인다.
“언제나 끝이 날 겐지?”
“누가 안담? 똥개한테나 물어보우.”
여자들은 다시 우물 공사격으로 게걸거리며, 길바닥에 깔 자갈만 판다.
“에그 참, 이 바쁜 철에 무슨 짓일까?”
“글쎄 말야, 남 보리밭도 못 매게…….”
그들은 모두 부역을 나온 백암사 소작인들의 아내와 어머니들이었다. 역사가 길고, 돈 많고 산수 좋기로 유명한 백암사에서는, 자동차의 통래가 자유롭도록 봄 들자 이 공사를 시작했다. 그래서 소작인들에게 무리한 부역을 통고하고 똥개란 별명을 가진 거머무트름한 청부업자에게 일을 맡겼던 것이다. 청부업자측에서는 삯전 안 드는 이 순적 백성들을 혹독한 물매로써 눈도 못 뜨게 뒤볶아댔다.
바람이 불려거든 지전 바람이 불고
풍년이 지려거든 처자 풍년이 지거라.
아까 가던 ‘도로’가 어느 새 애처로운 아리랑을 바꿔싣고 화살같이 비탈길을 내려쏜다.
“수복 어머니!”
만두 할멈은 별안간 무슨 생각이 난 듯이 옥심이를 건너다보았다.
“왜요?”
옥심이도 호미를 쥔 채 머리를 들었다. 여자 스물여섯이면 한창 사랑의 진미를 알 때이겠지만, 있어도 오히려 없는 것만 못한 사내 밑이라, 해말쑥한 얼굴에는 수심 기만이 사무쳤다.
“글쎄, 수복 어머니는 이대로 그만 늙고 말 텐가?”
만두 할멈은 오그랑쪽박상에 이상한 웃음을 담았다.
“왜요 ―?”
옥심이는 그녀의 뜻밖의 소리에도 어여쁜 보조개에 한갓 파리한 웃음만 담아보일 따름이다.
“왜라니 ? 이 늙은것도 봄철이 돌아오면 그저 공연히 마음이 뒤숭숭해지는 때가 많은데, 글쎄 젊은 청춘으로서 어떻게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온…….”
“그것 다 팔짠 걸 어떡해요!”
마지못해서 하는 옥심의 대답.
“…….”
“흥 팔자란 게 다 뭐유? 고치면 그것도 팔자라우. 나 같은 바보나 못 고쳤지, 참 지낸 일 생각하면…….”
하고, 만두 할멈은 잠깐 한숨을 쉬고 나더니,
“수절이니 의리니, 그것 다 소용없소. 쉬운 말로 누가 열여덟부터 오늘날까지 과부로 늙은 날 위해 열녀비 세워줍디까? 그까짓 것 또 세워준들 뭘 허우. 비석에서 밥 아니 나올 바에야. 어쨌든 세상 따라 사는 게 제일이오. 백암사 주지 보시요. 계집이 몇이나 돼도 산중에선 그래도 산 부처님이니 뭐니 해서 떠받들고 주지 노릇만 땅땅 잘 해먹지 않수.”
옥심이가 연해 말이 없는 것을 보고 만두 할멈은 짜장 갑갑한 듯이,
“이런 말 하는 것이 괜히 수복 어머니의 마음만 더 어지럽게 하는 것 같소마는 수복 어머니 일이 마치 지내온 내 일같이 앞이 감감해서 하는 말이오. 인생이 두 번 있는 게 아니고, 또 여자같이 어리석은 게 없소. 아니할 말로 수복 어머니가 그렇게 되고 수복 아버지가 성해보슈만 여태 그냥 있었겠소? 아무리 속아 사는 인생이라 해도, 알고서 속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뭐유?”
만두 할멈의 쪼그라진 웃음 주름에는, 자기와 비슷한 길을 밟으려는 여인에게 대한 동정의 쓰디쓴 빛이 깊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옥심이는 그러지 않아도 울가망하던 속이 한결 산란해졌다. 대소쿠리에 자갈을 반 남짓 담아들고, 게다리 걸음으로 타박타박 ‘도로’ 곁으로 아기작거려가는 만두 할멈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는 불현듯 몸서리를 친다. 고대닥쳐올 자기의 신세 같아서·…· 이윽고 그녀는 남모르게 손등으로 눈물을 씻고 수건을 더욱 숙게 내려썼다.
‘만두 할멈 말마따나 내가 참 어리석지! 속담에 젖먹이 두고 가는 년은 자국마다 피가 맺힌다고 하지만 수복이도 인제 그만큼 자랐으니 에미 없어도·…·그것도 모두 제 팔자 ― 그만 어제 그 안 십장의 말을 들을까…….’
옥심이는 마침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안 십장이란 사람은 친정곳 사람으로서 일찍이 사방공사 품팔이를 다니더니, 그만 그 길로 나가서 한산 인부가 되어 고향을 등진 발록구니다.
“야아, 이거 어쩐 일이오? 당신이 여기 나와 있을 줄이야!”
안 십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놀랄 때 옥심이는 어쩐지 부끄러우면서도 일변은 반가웠다.
“시집살이가 매우 고달프다지요? 소문은 풍편에 더러 들었소만―---.”
안 십장은 마치 친오빠나 되는 듯이 위로조로 말을 꺼냈으나 주체스럽게 말끝을 이상하게 돌리고 돌아갔다.
‘과연 그이가 정말 그런 생각을 가졌다면…….’
옥심이의 마음은 연방 들떴다. 부서진 뱃바닥에 물결이 스미어들 듯이 옥심의 의지가지 없는 가슴에는, 안에게 대한 야릇한 생각이 점점 깊게 파고들었다.
2
땡땡땡땡……!
두미산 중턱에 자리잡은 흰 천막의 공사 사무소 앞에서 종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리자, 고대하던 점심 시간. 냇가의 깎아지른 듯한 언덕 위에서 안 십장의 ‘시마이!’ 소리가 떨어지기가 바쁘게 석수장이들은 뚫어둔 바위 구멍에 화약을 집어넣고, 여자들은 부리나케 손발을 씻고는 사쁜사쁜 징검다리를 건너간다. 옥심이도 치맛자락을 걷어쥐고, 유달리 흰 종아리를 조심스럽게 끼우뚱거렸다.
“빨리들 피하시오!”
하고, 석수장이들도 범불 본 사람처럼 돌아도 안 보고 내 건너편으로 달아난다.
여자들이 시내 이쪽 언덕 위에 피해와서 더러는 어린것을 받아서 짖을 빨리고, 더러는 굳어진 꽁보리밥 수건을 펴려 할 때, 남포는 우람스럽게 터졌다.
꽝……! 꽝……!
벼락치듯한 소리를 내며 바위가 깨부서진다. 산기슭 꿩 새끼란 놈이, 장난하다가 들킨 남녀처럼 깜짝 놀라며 푸드득 꿩꿩, 어미 품에서 젖을 빨던 어린것도 금시에 빨간 혀끝을 떨며 놀란 소리를 빼 ―지르고, 여자들은 일제히 눈을 두리번거린다. 아름이 넘는 돌덩이들이 사뭇 공중제비를 넘어 철버덩철버덩 냇물을 치고, 부서진 돌조각들이 놀란 종달새처럼 튀어 솟구치고 나면 아지랑이 낀 먼산이 한참씩 와르르 운다.
남포질이 끝난 다음에, 여자들은 비로소 안심하고 밥주머니를 끌렀다. 누르퉁퉁한 깡보리밥들 ! 그러나 그들은 맛나게 먹었다. 만두 할멈은 이도 없는 입을 오물오물 오그랑쪽박상을 우습게 실룩거렸다. 마치 얼굴로써 음식을 씹기나 하는 듯이. 옥심이도 꽁보리밥 먹기에는 아까울 만큼 흰 이빨로써 술 끝에 꿰돈 장아찌를 진득진득 물어떼었다.
그럴 때 마침, 신록이 자욱한 백암사 골짜구니에서 시커먼 귀신까마귀 너덧 마리가 떼를 지어 날아나와 여자들의 머리 위를 빙 ― 한 바퀴 돌더니, 다시 깊숙한 그 절골로 나래를 돌렸다. 어찌 보면 그들을 비웃는 것도 같고, 어찌 보면 그들로부터 그 엄청난 꽁보리밥 한 주먹조차 마저 뺏으려는 듯이.
“망할 놈의 까마귀들! 오늘도 또 재수는 없어놨겠지.”
“글쎄 말야, 그 음흉한 놈의 짐승들이 왜 하필 남 밥 먹는 데 와서 그 요망을 떨고 간담!”
여자들은 입을 씻으며 옹알거렸다.
“산골에서 배웠을 테지.”
“참 그럴 말이 아니라, 난 정말 저놈의 짐승만 보면 이내 중 생각이 나겠지.”
“생각나거든 살러가지.”
만두 할멈도 한 마디 비쭉했다.
“애구 징글징글해 ! 누가 그 짓을 해요. 어떤 년들은 그래도 본서방을랑 다된 헌신짝 차던지듯이 차버리고 중 서방을 널름널름 잘도 얻어갑디다만 그게 어디 사람일까요? 더러운 년들!”
“그래도 요즘 중 마누라만큼 편한 팔자가 또 있다구요? 아주 바로 부처님보다 더 높게 떠받들어주는걸 뭐.”
“그야 그렇지요. 그러니 년들이 아주 기가 펄펄 허잖수.”
“그럴 말이 아니라, 세상이 아주 뒤집혔지. 내가 이 수복 어머니만한 나일 때만 해도 중들이 그저 속인만 보면 허리가 동강이 나도록 굽신거렸고, 또 그때야 웬걸 중에게 논밭이란 것이 있었다구?”
만두 할멈은 잠깐 생각에 잠기는 듯하더니,
“……그렇던 것이 오늘날에 와서는 두미산 밑 넓은 들판이 거의 다 중의 토지가 됐거든. 그나 그뿐인가, 요즘에는 되레 중을 보고 코가 땅에 닿도록 대강이를 숙여야만, 이 엄청난 보리밥 한 덩어리라도 겨우 얻어먹을 둥 말 둥 한단 말야. 아주 영 처자 사타구니에 불알 나게 변했지. 수복 어머니가 지금 내만 나이 될 때는 또 얼마나 변할는지?”
만두 할멈은 힘없는 한숨을 길게 뽑으면서, 뼈만 남은 주먹을 뒤로 돌리더니 꼬부라진 허리통을 톡톡 쳐댔다.
옥심이는 곁사람의 말은 듣는 체 마는 체 파란 잔디 위에 나른한 다리를 내던져놓고는, 우두커니 저편 보리밭 쪽만을 바라보았다. 그 사래 긴 밭에서는 자기와 같은 젊은 여인들이며 새파란 처녀들이 김을 매느라고 한창이다. 무럭무럭 자란 보리줄을 걸타고 버틴 그들의 건강한 다리들, 더구나 갈매빛 홑치마가 얇게 착 잠긴 동그레한 엉딩이 위에 빨간 댕기가 아기자기하게 빛나는 광경은 그림과 같이 예뻤다. 그들은 아무 시름없는 자연의 딸처럼 종달새같이 즐겁게 재잘거렸다. 더구나 처녀들의 거침없는 웃음은 하늘같이 맑고 깨끗하게 울렸다.
옥심 이는 문득 지나간 자기 일이 생각났다. 자기에게도 그러한 황홀한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가슴속에 야릇한 꿈을 품고, 피어나는 꽃을 보아도 수줍은 생각이 들던 시절이.―그렇다. 저렇게 동무들과 밭을 맬라치면, 안 도령(지금의 안 십장) 따위가 몇 번이나 ‘아이구 죽겠네!’ 하면서 반도 못 찬 모풀 바지게를 느직하게 끼우뚱거리며 지나갔던 것이었다.
그렇던 것이 ‘첫날밤’이란 하룻밤을 자고부터는 세상이 차차 달라지고, 한 겹 두 겹 꿈이 벗겨지고…… 그리하여 수복이를 낳은 뒤로는 지금과 같은 신세 ― 봄도 도리어 원수, 산다는 낙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게 되었다.
생각에 잠긴 채, 옥심의 눈은 절로 절로, 멀리 뵈는 자기 동네 앞, 냇가의 조그만 오막살이로 돌아갔다.
‘어서 죽기나 했으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가 그녀는 별안간 큰 죄나 지은 듯이 두 눈에 눈물을 그렁그렁 담았다. 그리고 분홍 저고리의 옷고름을 들어 눈물을 씻으려니 눈물이 제 먼저 남색 끝동에 뚜덕뚜덕 얼룩을 지었다.
3
옥심이가 그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때는 벌써 날이 저문 뒤라, 물 한 동이도 반반이 못 이는 두 시누이가 저녁밥을 짓느라고 굴 속 같은 부엌에서 괭이 싸우듯이 앙알거리고 있었다. 옥심이는 부리나케 그 일을 안아 맡아서 밥을 잦힌다 쑥국 간을 본다 해서, 제딴에는 있는 솜씨 없는 재주 다 내가며 정성껏 얼버무려, 앓는 시어머니께 상을 드리고 철부지한 시뉘 동생들의 밥까지 낱낱이 날라주고는, 겨우 마음이 놓이는 듯이 불도 아니켠 부엌으로 돌아와서 몽당 빗자루를 깔고 아궁이를 향해 앉았다. 그러나 밥술을 들 염은 나지 않았다.
미상불 배도 고프고 목도 말랐으나 그것도 다 귀찮아 바로 눈앞에 있는 따뜻한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고 ― 그렇게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 있을 때에 방 안에서는 그래도 서로 잘 먹고 살려고들 야단이다.― 간장에 밥 티를 왜 넣었느니, 내 국을 왜 떠먹었느니, 저쪽으로 내켜 앉으라느니 어쩌느니, 그러다가 수복이가 또 빼 ―하고, 잇달아 시어머니의 ‘아서라, 그 소리 듣기 싫다!’ 하는 날카로운 핀잔 소리가 들리자 옥심의 썩다 남은 가슴속이 또 한 번 대못을 처박듯이 쓰라렸다.
이러한 난리를 겪은 옥심이는 밥 한 술 입에 떠넣지도 못하고, 남 먹은 그릇만 차곡차곡 가시어 뒤폐 없이 살강에 설겆고 나니 그제서야 마침 사립 앞에서 시아버지의 기침 소리가 어험 하고 들렸다.
“아버님, 이제 돌아오십니까?”
어느덧 부엌에서 나선 인사였다.
“오냐. 넌 벌써 왔니 ? 고단허지?”
부드러운 말소리였다.
“삯밭 매기보다 어때?”
“괜찮아요.”
“응.―그런데, 왜 불도 안 켜놓고 그러니 ? 인제 설거지냐.”
“다 했습니다.”
“자, 이것 받아.”
시아버지는 무슨 종이 뭉텅이를 내주며 옥심 이의 입에 깆다대더니, 나지막한 소리로써 살짝,
“약 ― 약이다.”
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수복이, 오늘 잘 놀았냐?”
하는 소리가 뒤미처 들렸다.
옥심이는 아무리 속이 상하고 답답할 때라도 시아버지의 말씀만 들으면 햇빛에 눈 녹듯이 그 자리에서 속이 고대 풀어지는 것 같았다. 그녀는 냉큼 시아버지의 밥상을 갖다드리고 다시 부엌으로 돌아와서, 신문지로 두텁게 봉해둔 바라지 문턱에 귀를 가지고 갔다.
“왜 인제 와요?”
시어머니의 꼬집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시아버지는 젓가락 소리만 딸각거릴 뿐, 아무런 대답이 없다.
“어디서 놀았소? ”
“…….”
“왜 암말도 안 해요? 종일토록 뭘 했소?”
“이거 왜 남 밥도 못 먹게 이 지랄이냐? 인젠 좀 살만한가 부다.”
시아버지는 마지못해 입을 뗀다.
“뭐가 살 만해요? 남 죽는 줄도 모르고 어디를 그렇게 싸다니며 놀아요?”
“놀긴 누가 놀아? 임자가 밤낮없이 자빠져 누웠지!”
“안 놀면 그럼 무얼 했소? 이 어린것들을 모풀 캐라고 내쫓아놓고, 참 기가 막혀서 온 ! ”
“…….”
“대관절 어디 갔다왔소?”
“약 지으러.”
“약은 어디 있나요?”
“쳇! 누가 임자 약 지어왔을 줄 알어?”
“만첩 써야 안 낫는 그놈의 병에 또 무슨 약을 지었소? 돈이 곧 썩었지 썩어! 아이구, 그놈 얼른 죽지도 않고·…·돈은 또 웬 돈이 있었소?”
시어머니는 연방 더 앙알거렸다.
“빚 냈지.”
“흥! 이젠 또 작은딸년을 마저 팔아먹어야겠군. 큰년은 공장에 팔더니 이것들은 어디 팔 겐고.”
“…….”
“어쩌자구 빚은 자꾸 그리 내쓰우? 어떤 눈 빠진 놈이 뵐 보구 또 빚은 주는지 온…….”
“…….”
“뭘 가지고 갚으려우?”
“인젠 못 갚지. 저승에 가서 혹 잘살게 되면 몰라도…….”
“참 속도 태평이다, 저러니까 사람들이 모두 순님금이라고들 놀리겠지. 그 빚 내느니 외상비료나 좀 얻어올 것 아니오.”
“아니, 참 그럴 말이 아니 라, 오늘 백암사 농사조합에도 가봤는데 나헌테는 비료 대부 못 허겠다고 허더군. 무슨 심본지 온…….”
“뭐요? 비료 대부를 못 하겠다구요. 왜 그럴까요?”
시어머니는 어지간히 놀란다.
“모르지. 중의 속을 누가 안담?”
“또 논 떼어갈 심보가 아니겠소?”
“그럴는지도 모르지.”
시아버지는 남의 일같이 신풍스럽게 말했다.
“아이구, 그럴 게유, 그래요. 또 바위네도 논 떼일 때 그러더라우. 인제 큰일났소, 큰일나!”
“…….”
“아이구, 모두가 천수 그놈의 죄지. 병신 자식 둔 죄지. 그놈만 아니더면, 이 집 살림이 이다지는 안 망했을 게고, 딸자식도 공장에는 안 보냈을 게고·…·그놈 한 놈 바람에 인제 이 집안이 씨도 손도 없이 다 망하고 말거유. 아이구 더런 놈 얼른 죽지도 않고…… 원수 원수 그런 원수가 또 있을까……?”
“거 무슨 소리냐? 요망스럽게!”
시아버지는 끊일 줄 모르고 종종거리는 아내를 낯이 없게 퉁 쏘아주고는, 쓴 혀를 두어 번 끌끌 차더니 곰방대를 툭툭툭 떨어댔다. 숨을 죽여가며 듣고 있던 옥심이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부엌을 나왔다. 그날 밤이 새도록 그녀는 잠 한숨을 이루지 못했다.
4
사흗날로써 옥심이의 집 부역은 마지막이었다. 그녀는 안 십장의 호의로써 다행히 꾸지람 한 마디도 듣지 않고 일을 마쳤다. 물론 그 대신 그보다 못지않게 마음 괴로운 바야 있었지만. 그리고 그것이 옥심이로 하여금 일을 마쳤다는 것이 기쁘다기보다 오히려 적이 섭섭한 생각까지 가지게 하였다.
“내가 웅천이 아닐까……?”
옥심이는 무슨 말이 있기를 은근히 기다리는 듯한 안의 앞을 잠자코 떠났을 때 이런 생각을 아니할 수가 없었다. 안의 그 적적한 눈매를 못 잊어 하면서, 그래서 그녀는 다시 꿩 잃은 매같이 되어, 그날 저녁에도 병든 남편에게 밥을 가져다주고, 흐느적흐느적 집으로 돌아올 때였다. 막 동네 앞 돌다리를 건느려니,
“옥심이!”
하고, 뒤에서 누가 불렀다.
오랫동안 불리던 이름일 뿐더러, 때가 때요 또 장소가 장소인 만큼 옥심이는 도깨비나 만난 듯이 머리끝이 쭈뼛하고, 등줄기가 선득하여 발이 땅에 붙었다. 그리고 가슴속이 쌍방망이를 치듯이 두근거렸다.
“옥심이! 놀랄 것 없소. 내요!”
두 번째의 소리에 겨우 옥심이는 뒤를 돌아보았다. 목소리도 더러 듣던 소리거니와 훌쭉한 키에 구겨진 ‘나카오리’를 폭 눌러 쓴 꼴이 달빛에 얼핏 보아도 안 십장이 분명했다. 그는 뚜벅뚜벅 옥심이의 곁에 가까이 오더니,
“놀랐죠?”
옥심이도 그제야 마음을 놓고,
“그럼요, 놀라잖구!”
“잠깐 헐 말이 있어서 ―---.”
안은 바쁘게 눈짓을 하고서 서슴없이 돌아선다. 할 말이 어떠한 것인지 옥심이도 대강 짐작은 했지만, 망설일 새도 없는지라 못 이기는 척하고 안을 따라섰다. 안은 도깨비처럼 아무 말도 없이 시내 위쪽을 향해서 성큼성큼 발을 바삐 떼어놓았다. 옥심이 역시 귀신에게라도 홀린 듯이 사박사박 모래를 밟으면서 잠자코 그의 뒤만 따라갔다.
그들은 한참 동안 밋밋한 포플러 그늘을 지나고 자갈밭을 갸우뚱거리고, 큼직큼직한 돌 사이를 더듬어 나가서 마침내 높다란 낭떠러지 밑에 다다랐다. 그 가파른 절벽 밑에서 냇물은 비로소 강물처럼 커다란 굽이를 지으며 빙 돌아 흐른다. 벌써 돌다리는 보이지 않고 거기서는 비록 어떠한 일이 일어나더라도 볼 사람, 들을 사람 있을 리 없었다.
“저기가 좋겠죠.”
안은 옥심이를 데리고 바로 절벽 밑으로 갔다. 그리고 그들은 겨우 무거운 짐을 벗은 듯이 은가루 같은 세모래 위에 두 다리를 쭉 뻗고 나란히 앉았다. 그러나 옥심이의 가슴은 새삼스럽게 뛰기 시작했다. 하긴 여태 외간 남자와는 서로 말도 가까이 잘 못해본 그녀였던 만큼 아무리 어릴 때 한동네에서 같이 자란 안이기로서니 그러한 곳에서, 더구나 아닌 밤중에 같이 앉게 되고서야 부끄러운 정과 두려운 생각이 북받치지 않을 수 없었다.
“옥심이!”
안은 비로소 말소릴 높였다.
“나를 미친사람처럼 생각하실 테죠?”
안은 짐짓 예사로운 태도로 말을 꺼냈다. 옥심이는 여전히 침 먹은 지네처럼 말문이 열리지 않았다.
“옥심이도 잘 알 듯이 난 원래 배운 데 없는 만무방이고, 이놈의 팔뚝밖에는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맨털터리지만, 남을 속이거나 해치는 허릅숭이는 아니오.”
안은 상일로만 닦인 사람이라 말씨는 그리 부드럽지는 못해도, 결코 우악스럽거나 음충맞지는 않았다. 그는 옥심이를 안심시키려는 듯이,
“당신도 물론 세상 일이란 것을 잘 짐작했을 테지만, 나도 거친른 일을 해오면서 근 십 년 동안이나 말갈 데, 소갈 데 다 찾아다니며 입이 쓰도록 이놈의 세상 맛을 보아왔소. 결코 장난으로 아무 주책없이 옥심 씨를 성가시게 하는 게 아니오. 그리 생각하시고 옥심 씨도 옛날 우리 커날 때 모양으로 꺼리낌없이 얘길 좀 해봐요.”
안은 그제야 ‘나카오리’ 앞전을 약간 밀어올리며 마음을 늦추었다. 그러나 옥심이는 연방 더 이마를 숙였다.
무거운 침묵이 시작되었다. 냇물은 달빛을 가득 실은 채 커다란 파문을 지으며 빙빙 감돌아들고 젊은 남녀의 가슴속은 가물에 물 잦아지듯 바작바작 졸려들었다. 이따금 호젓한 밤바람이 화석같이 잠자코 앉은 그들을 마치 달래기나 하듯이 신선한 들 향기를 흐뭇이 뿜어주며 스쳐가나, 겨우 옥심의 흰 목덜미 위에 처진 고수머리카락만이 잠깐 설레일 따름 침묵은 계속되었다.
이윽고 안은 무슨 결심을 한 듯이 물 위로부터 시선을 돌리며 침착한 어조로써,
“옥심이!”
하고, 입을 먼저 떼었다.
“나를 따르기가 싫습니까? 싫거든 싫다고 말씀해줘요. 우린 천성이 긴 이야기는 할 줄 모르니까요.”
맺고 끊은 듯한 말조였다.
“생각은 있더라도·…·.”
옥심이도 박부득이 모기만한 소리로 입을 떼긴 했으나 끝을 맺지 못했다. 안은 그 말에 힘을 얻은 듯이,
“생각은 있더라도……· 어떻단 말씀이오?”
등달아 물었다.
“걸리는 게 많아서·…….”
“뭐가 그렇게 맘에 걸리우? 그 모양 돼서 누운 남편이?”
“그것도 그렇지만, 그보다 어린 걸 어떻게 떼놓겠어요?”
옥심의 말은 어느덧 눈물에 젖기 시작했다.
“그야 그럴 거요, 나도 옥심이의 마음속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만, 당신의 처지가 하도 딱해서 하는 말이오. 초로 같은 한평생을 어찌 그리 허무하게 내버리려 하오? 구구히 맘에 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당신같이 마음이 고운 사람이길래 여태 붙어 있었지 웬만한 여자 같아보시오. 벌써 무슨 탈이 나잖았는가? 열녀니 뭐니 하는 것도 다 옛날 얘기지요.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소리. 그야 당신의 남편이 다른 병 같으면 당신이 꿈엔들 그러한 생각을 가지며, 낸들 또 감히 그러한 죄될 엄두를 내겠어요.”
안은 토정을 시작하였다.
“병이 병인 만큼, 당신이 친가에 와 있던 그 해―아마 그러께였지요―그때부터 나는 이런 생각을 내봤어요. 뭐 너무 꼼꼼스럽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그야 옥심 씨의 말과 같이 어린것 하나가 몹시 걸릴 게요마는, 그건 그래도 조부모가 있고 하니 제대로 다 잘 자라날 것 아니오?”
옥심이도 문득 안에게 손목을 잡힌 줄은 물론 알았지만 구태여 빼려고 하지 않았다.
“따라가시겠죠?”
안은 처음으로 금니를 엿보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옥심의 어깨 위에 고요히 손을 얹었다. 옥심이는 절에 간 색시처림 사내가 하는 대로 그의 곁에 뽀듯이 다가앉았다. 그러나 놀란 비둘기같이 가슴의 고동은 갑자기 더 높아졌다.
어스름 봄 달은 그들의 등을 고요히 비춰주고 물결은 발 밑에서 한가롭게 철썩거렸다. 그리고 먼 성둑 위에서t= 뻐꾸기 소리가 구슬프게 삐꾹뻐꾹 높았다 낮았다, 그들의 마음을 더욱 들쑤시었다. 시내 아래쪽에는 커다란 바윗돌들이 마치 기괴한 짐승처럼 달빛에 조을고, 흰 구름 둥실 뜬 먼 하늘을 향하여 명매기도 짝을 지어 낄낄 봄밤을 못 잊는 듯 울고 갔다.
그들은 밤이 꽤 이슥해서 그곳을 떠났다.
5
툭, 툭, 툭 !
하루도 빼지 않고 새벽마다 떨어대는 시아버지의 담뱃대 소리에 옥심이는 깜짝 놀라 잠이 깨였다. 그러나 먼동이 트려면 아직 멀었다.
옥심이는 이불 밑에 옹송그렸던 몸을 주욱 뻗으며 기지개를 한 번, 쓰고는, 얇은 자리옷으로 반만큼 덮인 양쪽 다리를 들어 이불 위에 내던지고 돌아누우면서, 곁에 자는 수복의 얼굴을 무심코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땟국 얼룩이 진 얼굴을 고이 쓰다듬어준 다음 다시 몸을 반듯이 돌리고는 우두망철하게 허공을 쳐다보았다.
몸은 풀 죽은 행주같이 늘어져 나른한데, 지난밤 일이 꿈인 듯 또 머리를 쳐들었다. 병든 남편을 위해서 몇 해 동안이나 꼿꼿이 과부와 같은 생활을 해오다가 그만 우연한 동기로 말미암아 그렇게 허술히 정조를 무너뜨린 것이 적이 안타깝기도 하였으나, 또 달리 생각해볼 때에는 그까짓 쓸데없는 인정이니 의리니 하는 곰팡내 나는 인습에 얽매여서, 두 번 없는 인생을 망치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것이 영리하다기보다 옳은 일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옥심이는 과연 자기에게 선뜻 안을 따라 나설 용기가 있을까 의심하였다. 아니, 도저히 그런 행동이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
그날 낯, 옥심이는 뒤숭숭한 가슴을 안고 내 건너 남편의 움막을 찾아갔다. 벌건 대낮에도 사립문을 꼭 닫아두고서 등짐장수 밥 짓듯 시커먼 뚝배기에 쓴 너삼 뿌리를 달이고 있던 천수는 아내가 그렇게 한낮에 찾아온 것을 의외로 알고, 또 덜 좋아하였다.
“뭘 하러 왔어?”
온 사람 정도 모르고 퉁명스럽게 해던졌다.
“놀러왔어요.”
옥심이는 적적한 웃음을 띠었다.
“흥, 팔자 좋군! 가서 밭이나 매라우.”
천수는 귀찮은 듯이 코웃음을 치고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
“어서 가!”
천수는 약 화로에 부채질을 하면서 연방 더 시무룩해졌다. 뚝배기에서는 메슥메슥한 쓴 너삼 냄새가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과 함께 풍겼다.
옥심이는 남편의 그렇게 차디찬 태도가 다소 원망스럽지 않은 바도 아니었지만, 그보다 불쌍한 생각이 앞서서 넋 잃은 사람처럼 우두커니 남편의 하는 대로만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천수의 얼굴에는 아직도 지난날의 그림자가 어렴풋이 남아 있었다. 그러나 빛깔은 무섭게도 검노르게 시들어졌다. 그는 문둥이다.
옥심이가 그와 결혼을 한 것은 지금부터 칠 년 전. 그래서 지금 다섯 살 되는 수복이를 낳던 그 해 봄부터 천수는 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릴 때 논에 뜨거운 쇠죽을 지고 가다가 불행히 통 밑바닥이 빠져서 데인 자리가 새삼스럽게 덧나더니, 그것이 꼬투리가 되어서 결국 무서운 병이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것이 동네 사람들에게 알려지자, 시대가 시댄지라 그는 하는 수 없이 지금의 움막으로 쫓겨나듯이 옮겨온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병만 고칠 생각이지 아내까지도 만나기를 싫어했다.
“가라는데 왜 안 가고 있어?”
그는 무섭게 눈을 흘기며 못마땅한 듯이 아내를 노려보았다.
“저가 있으면 어때요?”
“안 돼! 가, 어서!”
“글쎄요, 있으면 어때서 그래요. 저야 가나 오나 일반이죠.”
옥심이도 말끝이 약간 삐쭉해졌다.
“쳇! 집에서 또 무슨 속상한 일이 있었나 부다. 그러지 말고 어서 가!”
천수는 그만 귀찮은 듯이 제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옥심이가 화로에 숯을 두어 개 더 깨 넣고 불을 보고 있으니까,
“어디, 여기 좀 와봐.”
뜻밖에 소리를 낮춰서 불렀다. 옥심이는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방문 앞으로 가보았다.
“왜 가라니 안 가고 어름거려! 가기 싫거든 이리 좀 들어오게!”
옥심이는 남편의 눈치가 조금 수상스러웠으나 설마 그러리 짐작하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매캐한 냄새가 코를 푹푹 찌르는 우중충한 방 안을 한 번 빙 둘러보고는 자리에 앉았다. 그을음 앉은 서까래가 죽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드러나 있는 천장에는 어지럽게 거미줄이 얽히고, 거칠게 마른 흙벽조차 군데군데 헐어져서 낡은 삿자리 위에 여기저기 매흙이 떨어져 있는 꼴이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사는 방 같지는 않았다.
천수는 오뚝하게 모으고 세운 두 정강이를 깍지 낀 팔로써 욱여안고 아래 쪽에 우두커니 앉아 있을 뿐 좀처럼 말이 없었다. 옥심 이는 이윽고 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는지 짜장 궁금히 여기다가, 마침내 자기가 먼저 입을 떼었다.
“인제 좀 나아요?”
천수는 잠자코 고개만 두어 번 가로 흔들어 보였다.
“왜 그다지도 약효가 아니 날까요? 돈도 약도 없는 터전에 그만큼 썼거니와, 우선 아버님과 저가 캐다드린 쓴 너삼 뿌리만 하더라도 짐으로 몇이나 될 덴데…….”
“글쎄 말야.”
천수는 떡심 풀린 입맛을 다시었다.
“약도 약이지만, 그 동안 당신이며 집안 사람들이 겪은 고생 이며 설움인들 여북하겠어요. 모진 놈의 병도 있지!”
옥심이는 한쪽 정강이를 세우고 앉은 채 비둘기같이 부드러운 소리로 중얼거렸다.
“아아니, 병이 모질다기보다 원수의 목숨이 모질어서 그렇지! 그만 뒤어졌으면 좋을 텐데.”
“무슨 말씀을 그러시오? 목숨이란 건 하늘에 매였다는데.”
“하늘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에 매였다 하더라도 쓸데없는 목숨이면 살아서 뭘 해!”
하고, 남편은 뼈만 남은 주걱턱을 더디게 떠죽거리며 말소리를 적이 높였다.
“ㅡㅡ一차라리 죽고 말 일이지! 이 이상 더 집안 사람들과 나 자신을 망신시키고, 설움 보이고, 고생시킬 낯이 또 어디 있겠어?”
“그렇지만…….”
“그야 생각할수록 맘에 걸린다기보다 한 되는 것을 말하자면 이루 다 들 수가 없겠지만, 낫지 않을 병인 이상 살아서 그 공 못 갚을 바에야 차라리 죽어서 걱정이나 덜어주는 게 옳지.”
옥심이는 말문이 막힌 듯이 잠자코 남편의 입만 어이없게 바라보았다.
“그러나 목숨이란 정말 모진 것이야.”
하고, 천수는 말을 계속하였다.
“나도 이놈의 병이 들기 전에는 문둥이를 볼 때마다 왜 죽지 못하는지 하고 욕을 했더니, 사실 내가 그런 병이 들고 보니 그것들의 마음을 가히 알겠거든. 문둥이의 목숨도 성한 사람의 목숨과 마찬가지란 말야. 그리구 생각도 세상이 천대하면 할수록 살고 싶은 생각이 더 꿋꿋하게 나더구나…… 그야 나도 여러 번 독약을 손에 쥐어도 보았지만 그것 다 뜻대로 안 되더군. 사람이란 내일에 속아 산다는 말이 있지만, 문둥이도 그래 오늘이나 나을까, 내일이나 덜할까 하는 사이에, 나도 어느덧 오 년이란 긴 세월을 자개 속의 게같이 살아오며, 결국 자네 신세까지 망쳐놓았지만, 지나고 보니 모두가 내 잘못, 모진 목숨의 탓이야. 그러나 인젠 그리 멀지 않을 거야.”
천수는 마치 사과나 하는 듯이 아내의 손목을 잡으며 한숨을 쉰다.
지긋지긋한 침묵―옥심이는 못 이기는 듯이 손을 잡힌 채 엉세판을 겪어오느라고 애면글면 터덕거린 자취가 앙상하게 남은 얼굴에 또 한 줄기의 눈물을 드리웠다.
“옥심이!”
이윽고 그를 쳐다보는 남편의 눈에는 별안간 이상한 빛이 얼른 지나갔다. 제 남편이면서도 옥심이는 불안한 생각이 불쑥 들었다.
천수는 약간 떨리는 듯한 팔에 점점 힘을 주며서 아내를 지긋이 당겼다. 옥심이는 당황히 물러앉으면서 손을 뻬내려고 했다.
“싫으냐?”
천수의 숨소리는 불시에 커졌다. 마치 성난 황소처럼 그리고, 옥심의 또한 손을 마저 잡으려 할 즈음에 공교히 수복이란 놈이 어디서 엉엉 울며 찾아왔다.
그것을 다행으로 옥심이는 겨우 손을 빼어가지고 밖으로 나갔다.
“왜 울어?”
옥심이는 아직도 두근거리는 가슴을 누르면서 수복의 곁으로 다가섰다.
“왜 우느냐 말야?”
“애들이 때려요.”
수복이는 울음 반, 말 반이다.
“왜?”
“문둥이 애라면서…….”
옥심이는 그만 말은커녕 숨이 탁 막힐 듯했다.
“오냐, 그렇다! 네 아비는 문둥이고 여기는 문둥이가 사는 집이다. 냉큼 가거라! 다시는 모두 내 눈앞에 보이질 말아라! ”
뜰에 있는 사람이 질겁을 하게 문을 부서지라고 열어젖히며 남편은 고래고래 고함을 쳤다.
놀란 수복이는 갑자기 울음소리를 거두고 눈만 휘둥그래지며 어미의 치맛자락을 덥석 거머쥐었다. 쑥대강이 같은 머리 밑까지 진땀이 배이고, 입가엔 콧물 눈물이 뒤엉킨 그의 때묻은 옷고름에는 푸석푸석 마른 뻘기가 제 손으로 반 움큼 가량 매달려 있었다.
“냉큼 다 가거라! 나는 문둥이다. 다시는 인제 내 곁에 오지들 말아라!”
천수는 화를 못 이기는 듯이 두꺼비처럼 매를 불룩거리며 흘겨보았다. 옥심이는 남편이 화를 내는 원인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지만, 그냥 모르는 척하고 수복이를 등에 업기가 바쁘게 그곳을 물러나왔다.
6
그 뒤부터 옥심이는 남편에게 밥을 갖다주는 것까지 주저하였다. 아니 저어 하였다.
“제 사내 밥 심부름을 싫어하는 년이 있나 온? 그럼 누구더러 가져다주란 말인가?”
시어머니는 방구석에서 코끝도 내놓지 않고 그저 옹알거리기만 했다. 그러나 시아버지는 옥심의 마음속을 대강 눈치챘던지, 틈만 있으면 손수 가져다주었 다.
만약 옥심이가 가져갈 때에는 반드시 수복이를 데리고 갔다. 그럴 때마다 천수는 애초부텨 방문을 열어도 보지 않거나 그렇지 않으면 옥심이가 돌아서기가 바쁘게 밥 함지를 마당으로 팽개쳐 엎었다.
그처럼 천수는 저번 날 그런 일이 있는 뒤부터는 말이며 태도가 갑자기 거칠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병에도 낙담이 되었던지 전날처럼 약도 또박또박 쓰지 않았다. 천수의 그와 같이 내던진 태도는 옥심이로 하여금 퍽이나 슬프게도 하였지만, 한편으로는 도리어 그의 홍뚱항뚱한 마음에 반사적으로 아주 딴생각도 북돋우어주게 되었다.
옥심이는 다시 신작로 공사장에 일을 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는 부역이 아니고 바로 돈벌이였다.
시아버지는 안심치 않아서 처음에는 몇 번쯤 말리어도 보았지만 며느리의 간청이라 혹시 그편이 며느리의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되는 일인가 보다 생각하고 나중에는 구태여 말리지도 않았다. 옥심이는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만두 할멈과 함께 돌자갈을 팠다. 물론 삯이야 말도 아니 되지만, 그까짓 것은 애초부터 문제가 아니었다. 어째도 좋았다. 그리하여 옥심이는 가끔 저녁이면 안 십장을 따라서 냇가를 거닐었다. 미친 것처럼 이슬에 치맛자락이 젖는 줄도 모르고·…·물론 만두 할멈도 눈치는 채었지만 알고도 모르는 체하였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이 늦으면 늦어질수록 집에서는 옥심이를 점점 의심하게 되었다.
“뭘하고 인제 와?”
시어머니가 꼬집고 뜯듯이 물으면,
“만두네 집에 들렀다 왔어요.”
옥심이는 대범하게 얼러맞추었다.
“만두네 집에는 무슨 볼 일이 그리 많은가? 무슨 금덩이라도 묻어뒀나?”
시어머니가 끝내 앙칼지게 나가면 옥심이는 그만 입을 다물고 새무룩해질 뿐이다. 그런 다음에야 시어머니야 뭐라고 게걸거리든 그저 신청부같이 제 방에만 들어가버리면 그만이다. 시아버지는 윈래 천성이 태평이라 며느리가 일찍 돌아오면 오는가 보다, 늦도록 안 오면 아들의 밥이나 가져다줄 따름이지 아내처럼 미주알고주알 캐지는 않았다.
그러나 세상 일을 누가 보증하랴? 싸고 싼 향내도 난다는 격으로, 옥심의 일도 그만 하룻저녁 사이에 탄로가 나고 말았다.
그가 역시 안 십장의 뒤를 따라서 냇가를 더듬어 내릴 때였다. 공교히 그들의 뒤에 돌연히 사람 그림자가 하나 우뚝 나타났다. 찬물을 집어쓴 듯이 놀란 그들은 서로 쳐다보기가 바쁘게 고양이처럼 허리를 웅크리고 바위 사이를 날렵하게 빠져 달아났다.
“예끼, 연놈들! 가긴 어딜 가니? 가만 게 있어!”
뒤에서 우람스런 호통 소리가 터지고 커다란 돌덩이가 그들의 발 앞에 벼락치듯 떨어졌다.
“요오시(어디 보자)!”
안은 순간 발을 멈추었으나,
“안 돼요! 남편이에요.”
하고, 옥심이가 꿋꿋이 말리는 바람에 그만 못 이기는 듯이 다시 달음질을 쳤다.
“예끼 연놈들! 정 거기 못 서겠니?”
뒤에서는 걸쌉스런 위협 소리와 함께 연방 돌덩이가 날아닥쳤다. 앞선 그들은 홀끔흘끔 뒤를 돌아보면서 손을 맞잡고 내달렸다. 옥심이가 몇 번이나 넘어질 뻔하는 것을 안은 손싸게 껴안아가며 바위틈을 타내리고 여울목을 성큼성큼 뛰어 건넜다.
“아이구, 내 죽는다―--.”
급기야 먼저 외마디 소리가 났다. 아마 돌 틈에 내꽃힌 모양이었다. 그러나 쫓기는 남녀는 들은 체 만 체 공교로이 냇가를 빠져나와서는 우묵한 보리밭 속으로 기어들어갔다. 마치 선불 맞은 돼지 새끼처럼. 그리고 한참 네 발걸음을 치다가 드디어 보릿골 사이에 납작하게 앉아서 숨소리를 죽였다.
“죽일 년놈들, 어디로 사라졌나?”
다시 일어나서 뒤를 밟는 천수의 미친 듯 헐떡거리는 숨소리가 선뜻하게 코 앞을 지나갔다.
이윽고, 그들이 보릿대 사이로 살며시 고개를 내밀었을 때,
“예끼 화냥년! 너가 가면 몇 발이나 갈 줄 아니?”
천수는 한쪽 다리를 절룩거리면서 으스름한 냇가를 잇달아 내쫓고 있었다. 역시 쓸데없이 돌을 내던져 풍덩풍덩 헛물만 키면서.
남편의 그 우습고도 추근추근한 꼴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옥심이는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안을 따라 일어섰다. 땀과 이슬에 옷은 함빡 짖어, 풀 죽은 치맛자락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는 듯한 그의 종아리 짬에 징그럽게 휘감겼 다.
“어쩌면 좋겠어요?”
옥심이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뭐 어찔 게 있나요? 언제라도 한 번은 탄로가 나고야 말 것인데! 인젠 박부득이 이곳을 떠나야죠.”
안은 벌써 결심이 다 된 대답이다. 두 사람은 필 대로 다 핀 보릿대를 헤치고, 다시 으슥한 냇가로 나왔다.
옥심이가 안을 저만큼 뒤 세우고 자기 집 울타리 밖에 살짝 왔을 때는 밤도 이미 이슥한 뒤였지만, 허방을 짚은 남편의 분하게 퉁퉁거리는 소리가 아직도 야경스럽게 들렸다.
“더러운 년 같으니! 난질을 해도 분수가 있지, 사지를 째어놓을 년!”
삼 이웃이 다 알도록 떠들어댔다.
“난 처음부터 그년의 눈치를 대강 알아봤어, 그년이 웬걸 일이 하고 싶어서 신작로 역사를 갔을 게라구? 그저 제 맘이 꼴리니 제 길 제 닦으러 간 게지 뭐.”
시어머니도 기가 펄펄하게 등달아 야단이다.
옥심이는 실인즉 어떻게 옷이나 갈아입었으면 하고 와본 것이지만 판세가 판세라, 그렇지 않아도 데인 가슴에 도리어 겁만 더 집어먹고서 그만 입은 그대로 안을 따라 도망질을 나섰다,
7
옥심이가 떠난 뒤 그의 시집은 걷잡을 수 없이 더 망해 들어갔다. 천수의 병은 될 대로 다 되어버리고, 시어머니는 줄곧 잔병 치레만 하고 누워서 세월을 보내니, 아무리 시아버지 허 서방 혼자서 똥줄이 빠지게 터덕거려봐도 도무지 폭이 맛질 않았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옥심이가 떠나고 닷새도 못 지나서, 근 십 년이나 부쳐오던 절논 ― 그 논 까닭으로 신작로 부역까지 나간 백암사 논이지만 ― 너 마지기까지 턱없이 중에게 떼이었으니, 뭐 도무지 말도 못 되게 옹색해졌다. 그리 되고 보니, 논이라곤 인제 팔다남은 별똥지기가 겨우 손바닥만하게 처졌을 뿐. 그것으로 많은 식구가 살아나간다는 것은 철부지한 농촌 지도원들의 잠꼬대지, 아예 안 될 말. 제아무리 물신선 같은 허 서방일지라도 속이 졸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허 서방은 이렇게 두 발목에 무거운 쇠사슬을 얽맨 듯하고, 애면글면 억 판을 허덕거리면서도 겉으로는 여전히 만고태평이다.
“이러다가 말경에 어떻게 허실 테요?”
마누라가 푸념을 시작하면 그는 으레,
“사는 대로 살지 뭐. 설마 산 사람의 입에 거미줄 치겠어!”
“참, 속도 알 수 없다. 남자가 돼서 어찌 지렇게도 맘이 허무할꼬 온!”
“허무 않으면 어떻게 해? 무슨 별수가 있담? 이놈의 세상을 고치기 전에는 제에기, 한동안은 제법 보천교니, 무슨 당이니, 갈라먹는 세상이니 뭐니 하고 떠들썩하더니만…… 요즘은 그놈의 정감록도 아마 쓸 데가 없는 모양이지!”
허 서방은 선하품만 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어쩌다가 남의 일이라도 가서 팔자에 없는 술잔이나 걸치고 오는 저녁이면, 그만 방이 비좁게 큰대자로 뻗치고 누워서, 불밤송이 같은 수염을 들썩거리며 만고강산을 혼자 가느니 어쩌느니 하고 노래도 아닌 것을 한참 엉 얼거리다가는 저도 모르게 그만 쿨쿨 쇠잠이 들어버린다. 그러나 설령 그러한 때라도 먼동만 트이면 누구보다도 먼저 일어났다. 마치 그것이 근 오십 년 동안을 하루도 빼지 않고 지켜온 철칙 (鐵則)이나 되는 듯이.
그는 안 십장을 따라간 며느리를 구태여 원망하지도 않았다. 아무렇게나 차려다 들이미는 밥상을 대할 때마다 떠나간, 며느리의 그 찬찬한 솜씨가 새삼스럽게 생각 아니 나는 바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안을 따라가 어느 공사장에서 밥장사를 시작해서 제법 재미를 보며 오붓하게 살아 나간다는 며느리의 소식을 풍편에 들었을 때에도 결코 아내처럼 박하게 미워하지는 않았다. 모든 것을 오히려 자기 자신의 불우한 팔자로만 돌렸다.
이렇게 해서 날이 가고 달이 바뀌고 하는 동안에, 천수는 마침내 양잿물까지 먹어보았으나 불행히 죽어지지도 않고 가을철이 되었다. 그러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거둘 것 없는 천수의 집에는 가을이 와도 아무런 기쁨도 없었다. 아니 이미 보리 양식조차 떨어진 뒤라 도리어 삼순 구식의 잔인한 운명이 그들을 향하여 아가리를 벌렸을 뿐이다.
허 서방은 자고 새면 남의 일을 다니고 마누라는 밤낮 방 구석에만 고양이처럼 옹알거리기만 했다. 그리고 두 딸애는 아직 철도 채 안 든 것들이 벌써 다라지게 땔나무를 해온다 밥을 짓는다 해서 집안 일을 안아 맡고, 수복이는 천하 천더기가 돼서 옷도 헐벗었을 뿐더러 어쩌다가 끼니 때를 놓치면 으레 밥도 못 얻어먹고서 주린 개새끼처럼 할금할금 집안 사람들의 눈치만 엿보았다.
그러한 어느 날, 천만뜻밖에 옥심이가 조그만 보퉁이 하나만 들고서 되돌아왔다. 천수의 집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얼굴이 푼더분하고 옷 꼴도 꽤 말쑥하 였다.
옥심이는 보퉁이를 마당가에 내던지기가 바쁘게 주린 짐승같이 수복이를 와락 끌어안고는 미친 것처럼 흐느끼기 시작했다. 막혔던 홍수가 갑작스레 동을 박차고 쏟아지듯이 오랫동안 눌러오던 감정이 불시에 터질 구멍을 찾은 것 같았다. 물론 옥심이에게는 벌써 곁에 누가 있든 없든, 또 남이야 비웃든 말든 아랑곳할 바 아니었다. 다만 수복의 굴왕신 같은 낯바닥에 자기의 눈물 얼굴을 맞대고 비빌 뿐이었다. 수복이도 오래 떨어졌던 어머니라 반가운 정이야 여북 컸으랴마는 어머니의 우악스런 태도에 무슨 영문인지를 모르고 그저 얼떨한 채 어머니의 하는 대로만 맡겼다.
“수복아!”
옥심이는 꿈이나 아닌가, 아들의 얼굴을 보고 또 보았다. 그리고 목메인 소리로써 ,
“엄마 얄밉지?”
그러나 수복이는 그 말귈랑 알아들을 수 없고, 갑자기 자기도 눈물을 글썽 담으며 대답이라고 하는 것이,
“엄마! 인제 가지 마!”
하고, 도리질을 하였다.
그때야 마침내 안방 문이 탁 열리며 시어머니가 새파란 얼굴을 내밀었다.
“이년아, 뭘 하러 이 집에 또 왔어?”
칼날 같은 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서 나가거라, 뵈기 싫다! 이 돌팔이 같은 화냥 잡년아!”
그러나 이보다 더한 것도 이미 각오하고 온 옥심이다.
“왜 안 나가니, 이년아? 어서 나가거라! 그만큼 이 집 망신을 시켰으면 됐지, 또 뭘하러 도로 왔어? 이 모진 벼락 맞아 죽을 년아!”
시어머니는 이를 아드득아드득 갈아붙이면서, 물 퍼붓듯이 후욕 패설을 해 던졌다.
그래도 옥심이는 수복이를 품에 안은 채, 화석처럼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서 있었다.
“저런 뻔뻔한 년 같으니, 그래도 썩 안 나갈 테야? 맞아 죽기 전에 냉큼 나가거라!”
시어머니는 짐짓 어른 틀거지를 내보이며 아주 쥐잡듯이 닦아세더니 그만 기가 다 된 듯이, 이번엔 마루턱에 앉아 있는 딸년들을 내쫓으며,
“이년들아, 너흰 무슨 구경삼아 보고 있니! 빨리 가서 네 오빠나 데리구 와!”
그러나 그 말이 미처 끝나기 전에 천수는 어디서 벌써 소문을 들었던지, 한쪽 다리를 질질 끌며 들이닥쳤다.
“그년 어디 있어요?”
하기가 바쁘게 천수는 옥심이를 향해서 게걸음을 쳤다. 그리고선 짚고 온 대막대기를 휘두르더니 몰강스럽게 옥심의 아랫동아리를 후려갈겼다.
“에구머니!”
하고, 옥심이는 수복이를 안은 채 사정없이 넘어졌다.
“죽어라, 이년아!”
눈도 뜰 새 없이 개 잡듯한 몰매질이 연해 시작되었다. 낯반대기든 어디든, 옥심의 몸에는 순식간에 푸른 줄이 애처롭게 주욱죽 드러났다. 그러나 옥심이는 이를 악다물고 좋이 매를 받았다. 죽어도 좋다는 듯이. 그리하여 옥심이가 거의 죽었다시피 늘어졌을 때, 천수는 곁에 있는 보퉁이를 마저 걷어차버리고는 제바람에 부치어서 그만 뒤로 털썩 주저앉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그는 번개같이 일어나서 다시 매를 치켜들었다.
“백 번 죽여도 아깝잖을 년! 그처럼 못 견뎌서 난질을 나간 년이 왜 또 들어왔어! 이 더러운 구렁이 같은 년! 나가거라 빨리!”
천수의 독한 매는 또 한 번 옥심의 늘어진 허구리를 끊어지라고 갈겼다.
“어서 그년 몰아내라! 남 부끄럽다. 뵈기 싫다!”
시어머니는 말릴 줄은 모르고 짜장 시원한 듯이 아들을 부추기었다. 겁을 먹은 수복이는 울타리 곁에서 경풍 앓는 애처럼 왈왈 떨며 울어대고, 옥심이는 늘어져 누운 채, 맞은 자리만 실룩거렸다.
사립문 밖에는 어느덧 철없는 애새끼들이 구경이라고 모여 서고, 솔가지로 얽맨 울타리 구멍으로는 온 동네 아낙네들이 서로 들여다보려고 야단이었다.
“나가거라, 이 망할 년아!”
급기야 천수는 아내의 한쪽 다리를 텁석 치켜들고는 개 끌 듯이 끌었다.
“아이고 수복아, 수복아!”
옥심이는 그제야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끌리지 않으려고 두 손에 힘을 주어 땅바닥을 긁는다.
“너 여의곤 못 살겠더라……!”
그때 마침 산에 갔던 허 서방이 집채만한 나뭇짐을 해서 지고 사립문을 들어섰다. 그는 심상치 않은 뜰 안 광경을 우두커니 바라보더니, 이내 낌새를 챈 듯이 아무렇게나 나뭇짐을 벗어던지고는 뚜벅뚜벅 아들의 앞에 다가서며,
“그게 누구냐? 왜 그러니?”
허 서방은 부러 놀란 빛을 숨기며 대범하게 물었다.
“이년이 되돌아왔어요. 죽일 년 같으니!”
“응, 수복 어미로군!”
허 서방은 돌아온 며느리를 잠깐 굽어보더니, 다시 아들을 향해서,
“너 그 손 얼른 떼렷다!”
“못 놓겠어요.”
아들은 연해 끌었다.
“떼라면 곧 떼어야지!”
허 서방의 뚜렷한 눈에 불 같은 것이 번쩍하였다. 그는 못마땅한 듯이 아들의 손을 확 뿌리쳐버리고서, 며느리를 안아 일으켰다. 그러나 옥심이는 다시 시아버지의 무릎 앞에 힘없이 쓰러지며,
“아버님! 죄많은 년을…….”
옥심이는 말을 마치지 못하고 흑흑 흐느끼기만 하였다.
“왜 도로 왔어?”
허 서방의 말은 너그러운 듯하면서도 엄한 곳이 있었다.
“수복이를 못 잊겠어요…….”
옥심의 흐느낌은 더욱 커졌다. 기다란 한숨이 줄곧 터져올랐다.
허 서방은 그렇게 되리라고 생각하던 것이 결국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 고개만 두어 번 끄덕거리고는, 다시 며느리를 추어 일으켰다.
“아이고 저런 웅천 좀 봐! 그만 또 속는구먼. 애도 곤도 없는 바보지 뭐야!”
마누라의 빈정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허 서방은 곁에 있는 지게 작대기를 들어서 안방 쪽을 보고 핑 내던졌다.
“예끼 가살이 같은 년!”
작대기가 밀창살을 지끈 부수고 방 안으로 튀어들어가자, 아내는 그만 쥐 죽은 것같이 끽소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천수는 참다못해 아버지에게 와락 덤벼들며 옥심이를 몰아내려했다.
“이놈이 미쳤나!”
허 서방은 아들을 힘대로 떠밀어버렸다. 천수는 두어 발이나 나가 자빠지면서 ,
“그 더런 잡년을 이 집에 또 두겠단 말씀요? 집안이 망하려니 참…… 안 되어요. 안 돼!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그년은 기어이 내쫓고 말 거예요!”
천수는 연방 악담을 하며, 분에 받쳐서 전신을 와들와들 떨어댔다.
“너가 나가거라! 이 더러운 놈아! 그렇지 않으면 이 애비를 좋게 잡아먹든지! 전라도 소록도가 그렇게도 무섭더냐? 이 소 같은 놈아!”
평생 화를 잘 아니 내던 아버지의 커다란 눈에서 갑자기 시퍼런 불이 촬촬 떨어졌다. 그것을 본 천수는 그 팔팔하던 기가 금시에 탁 꺾이고 그만 뿔 빠진 쇠상이 되어서 원망스러운 듯이 아버지를 잠깐 쳐다볼 뿐, 다시는 두 말도 못 하고 그곳을 물러나갔다.
이윽고, 내 건너 천수의 움막에는 시뻘건 불이 활활 붙어올랐다.
옥심이는 그 말을 듣자, 별안간 미친 듯이 일어서다가 쓰러지고, 쓰러져서는 다시 일어나려고 애를 썼다. 그러다가 시아버지에게 손을 맡기고 간신히 울타리에 몸을 의지한 채, 내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막집은 벌써 불덩어리가 되어 있었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불길을 등지고 떠나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보자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허 서방은 괴나리봇짐도 없이 어기적거리는 아들의 뒤꼴을 끝까지 지켜보다가 혼잣말조로,
“제에기, 나도 문둥이나 되었더면 차라리 소록도에라도 갈 것을!”
옥심이는 처음으로 시아버지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러한 시아버지를 떠나간 남편보다 더욱 가없게 생각하고 영원히 모시고 섬기리라고 굳게 마음속에 맹세하였다.
― 1936년
2016년 12월 25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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