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탄(薰炭) 이란 글자 그대로 좋은 냄새가 나는 숯. 여기서 좋다는 건 아주 주관적이다. 숯 자체가 특별히 좋은 냄새가 나는 건 아니다. 아마도 농사에 요긴하게 쓰이니까 그런 말이 생겼는지 모르겠다. 뭐든 쓰임새가 좋으면 냄새도 좋게 느끼는 법. 이를테면 엄마 젓 냄새가 그렇지 않나.
숯이 사람에게 좋다는 건 상식에 속한다. 예로부터 숯은 쓰임새가 많았다. 간장을 담글 때도 숯을 쓰며, 우물을 파면 그 속에도 숯을 넣었다. 불순물을 걸러주고 나쁜 냄새를 없애준다. 집안에 두면 공기정화는 물론 습도 조절 기능도 있다. 숯 덩어리에 있는 아주 작은 구멍이 세균이나 악취를 빨아들인다. 이를 상품화해서 팔기도 한다. 일부 민간의학에서는 감기 치료에 숯가루를 갈아먹기도 한다.
이렇게 숯은 사람에게 직접 도움이 되듯이 농사에서는 더 요긴하게 쓰인다. 왕겨로 만든 숯은 못자리나 모종을 키울 때 상토(床土)로 쓴다. 효과가 아주 많다. 통풍, 배수, 보온, 내병성, 거름 효과...우리는 농사뿐만이 아니다. 뒷간에 왕겨숯을 한 통 담아둔다. 똥을 누기 전에는 바닥에, 누고 나서는 똥 위에 숯을 뿌려준다. 그럼 냄새도 덜 나고, 거름 효과도 좋다.
<왕겨는 넉넉히, 시간은 천천히>
농사 시작은 왕겨로 훈탄(숯) 만들기부터. 절기로 보면 입춘 무렵. 이때쯤이면 확실히 봄기운이 일어서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다. 밤에는 얼음이 얼고 공기는 차지만 이전 기운과는 다르다. 낮이면 햇살이 주는 따스함을 땅이 되받아 다시 공기 중으로 올리게 하는 기운이 있다. 그래서인지 참새나 까치는 집을 짓기 시작하고, 멧비둘기도 이따금 짝을 찾는 떨림의 울음을 운다. 아직까지는 농사가 바쁘지 않으니 왕겨 숯만들기를 느긋하게 준비할 수 있다.
자, 이제 본론.
준비물 : 왕겨 3포대를 구우면 숯은 한 포대 반 남짓. 연통으로 쓰는 쇠파이프나 알루미늄 주름 관(고물상에서 구하면 쉽다), 볏짚 한 단, 물, 바가지, 삽. 주의할 점은 물을 넉넉히 구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왕겨 숯을 굽는 법은 농사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할 수 있다. 규모가 크다면 연통도 크고 목초액을 받을 시설을 갖추면 좋다. 여기서는 간단히 하는 법을 설명하고자 한다. 사진에서 보듯이 연통으로 쓰는 쇠파이프를 땅에 박는다. 쇠파이프 아래는 공기구멍이 있는 게 좋다. 숯을 빨리 굽자면 세워진 쇠파이프와 ㄴ자가 되게 땅 아래 파이프를 하나 더 둔다. 아니면 연통을 굵은 걸로 고른다. 목초액을 받고 싶다면 그림처럼 연통 끝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아래, 통을 두면 목초액이 고인다.
연통에 볏짚을 묶을 때 철사도 좋지만 나는 칡덩굴을 쓴다. 처음에는 볏짚보다 늦게 타지만 나중에는 칡덩굴도 숯으로 바뀐다. 볏짚이 2/3 정도 탄 다음 그 위에다가 왕겨를 뿌린다. 처음부터 왕겨를 다 뿌리는 것보다 타는 걸 보아가면서 두세 번에 나누어 뿌린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두 가지. 하나는 왕겨 숯을 굽는 데 시간이 생각보다 많이 걸린다는 점이다. 안에서부터 왕겨가 타는 게 아니라 차츰 구어지면 올라온다. 왕겨가 타면 재가 된다. 태우는 게 아니라 구워야하는 것이다. 이른 새벽부터 구워도 저녁까지 다 하자면 빠듯하다. 그럴 때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아예 왕겨를 더 넉넉히 뿌려 그 다음날 아침까지 굽는 방법. 이게 불안하면 저녁까지 구워진 만큼만 숯으로 쓰고 덜 구워진 왕겨는 걷어내는 방법이 있다.
이 때 꼭 주의할 점은 불을 충분히 꺼야한다는 점이다. 처음으로 숯을 굽던 해 물을 충분히 뿌린다고 했는데, 그 다음날 일어나 보니 완전히 재가 된 적이 있다. 그 이유는 겉보기와 달리 숯은 조금만 불씨가 살아있으면 그게 차츰 살아나 전체를 다 태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왕겨 세 포대가 재가 되면 그야말로 한 줌 밖에 안 된다. 그리고 이 재는 쓰임새가 숯만큼 많지 않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물로 불을 끈 다음 비닐 같은 걸로 공기가 안 들어가게 밖을 꼭 감싸는 법이 있다.
<땅과 하늘에 알리는 농사 신고식>
이렇게 왕겨 숯을 굽다보면 아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먼저 냄새. 아주 독특하다. 너무 가까이서 맡으면 맵다. 싸하니 코를 아프게 자극한다. 조금 멀리서 맡으면 흡사 숭늉 냄새 같기도 하고, 고구마 타는 냄새 같기도 하다. 마당에서 왕겨 타는 냄새가 집 곳곳에 작은 틈 사이로 스며들어온다. 이 냄새가 아주 야릇하게 몸을 자극한다. 봄마중이랄까. 겨울잠을 자던 몸의 감각을 깨운다. 하루 종일 숯만들기를 하다보면 우리네 집도 훈증을 하고 옷은 물론 몸조차 냄새에 온전히 젖는다. 쉽게 말해 몸 훈증, 몸 소독이라고 할까. 이 냄새는 바람 따라 하늘로도 멀리멀리 날아간다. 농사를 시작한다는 땅과 하늘에 대한 신고식.
그 다음은 빛깔. 왕겨 숯을 만들면 오색인지 육색인지 다양한 색깔로 달라지고 어우러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왕겨는 노란빛인데 숯이 되면서 서서히 검은 빛이 된다. 그 과정에서 연기는 파란빛을 띤다. 숯으로 구워지는 과정에서 하얀 김도 난다. 나중에는 연기와 김이 자욱하여 마치 내가 구름 속에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숯이 다 될 무렵 마지막에 붉은 불꽃이 일어난다. 왕겨숯을 만드는 과정에서 노랑, 검정, 파랑, 하양, 빨강이 어우러진다.
마지막으로 씁쓸한 뒷이야기 하나. 바로 훈탄 요리. 왕겨가 숯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뜨거운 열이 아까워 고구마와 감자 그리고 토란을 구워보았다. 그런데 맛을 보니 영 이상하다. 목초액 맛이 진하다. 하나만 맛을 보고 다 버렸다. 목초액은 약성이 엄청 강하다. 곡식에 뿌릴 때 물을 1000배 가량 희석해야한다. 그러니 목초액이 스며든 음식을 많이 먹는다면 자칫 독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어쨌든 이렇게 하다 보니 겨우내 게을렀던 몸과 마음이 다시 깨어난다. (2008. 2. 8)
첫댓글왕겨 훈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몇가지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볏집이 2/3정도 탓을 때라는 것이 애매한데 작은 불이라도 남은 상태라면 왕겨가 다 타 버릴 것 같은 데 불씨정도가 남아있을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2. 그리고 볏집이 2/3정도 타고 난 다음 왕겨를 덮은 후, 물은 어느정도나 뿌려야 하는 것인지 감이 잡이지 않습니다. 3. 어차피 왕겨 위에 물을 뿌릴 거라면 왕겨를 물에 적셔서 뿌려도 되나요. 4. 훈탄이 아닌 왕겨를 뿌리작물(인삼, 하수오) 표면에 뿌렸을 때 어떤 효과가(거름 효과 등) 있는지와 해가 되지는 않는지 궁급합니다
첫댓글 왕겨 훈탄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궁금한 점이 몇가지 있어 문의 드립니다.
1. 볏집이 2/3정도 탓을 때라는 것이 애매한데 작은 불이라도 남은 상태라면 왕겨가 다 타 버릴 것 같은 데 불씨정도가 남아있을 때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2. 그리고 볏집이 2/3정도 타고 난 다음 왕겨를 덮은 후, 물은 어느정도나 뿌려야 하는 것인지 감이 잡이지 않습니다.
3. 어차피 왕겨 위에 물을 뿌릴 거라면 왕겨를 물에 적셔서 뿌려도 되나요.
4. 훈탄이 아닌 왕겨를 뿌리작물(인삼, 하수오) 표면에 뿌렸을 때 어떤 효과가(거름 효과 등) 있는지와 해가 되지는 않는지 궁급합니다
저도 경험이 없습니다.
좋은 자료라 생각되어 스크랩했습니다.
도움 되어드리지 못하여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