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르주 앙리 루소의 <놀랐지!>(Surprise!, 1891). 영화와 그림 사이의 짝짓기 놀이가 있 다면 리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천생연분이다. 당당한 고아처럼 보이는 호랑이 의 표정부 터 빗줄기
의 은근한 3D 효과까지.
적절하게도(?) 뉴질랜드 관광 홍보 필름으로 언론 시사회를 시작한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제목과 딴판으로 이보다 작정한 여정일 수 없는 영화다.
워너브러더스와 피터 잭슨 감독은 총 3부작 <호빗> 중 2부를 2013년 12월, 3부는 2014년 7월에 나눠 개봉하겠다고 발표했다. <호빗 : 뜻밖의 여정>에서 피터 잭슨 감독이 한 작업은 말하자면 시간을 거스른 다음 부풀리는 일이다. 우선 역행. 새로운 배우(마틴 프리먼)가 분한 젊은 빌보 배긴스와 모태 영구 동안 엘프족을 제외하면 간달프, 골룸, 프로도, 사루만 등 <반지의 제왕> 3부작에 나왔던 인물들은 배우 교체 없이 일일이 디지털 회춘 공정을 거쳤다. 프리퀄이건 속편이건 연작이 거듭될수록 어둡고 무거워지는 할리우드 프랜차이즈의 경향도 <호빗: 뜻밖의 여정>에서는 역류한다. 코믹스 원작과 달리 J. R. R. 톨킨의 <호빗>은 대안적으로 해석할 평행우주를 거느리고 있지 않으니 불가피한 노릇이다. 잭슨은 시간을 두 갈래로 부풀렸다. 첫째 초당 프레임수를 2배수로 늘린 HFR 3D 기술로 촬영했고- 이 결과 팽창한 것처럼 느껴지는 건 시간이 아니라 이미지지만 - 둘째, <반지의 제왕> 1/4 부피에 불과한 원작의 1/3을 펌프질해 170분의 여정으로 가공했다. 빌보가 집 떠나는 데에만 약 45분이 걸리니 말 다했다. 잭슨 덕분에 우리는 미니멀리즘만 스타일이 아니라 건너편에 맥시멀리즘도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깜짝 놀라며 깨닫는다.
최초의 HFR 3D영화 <호빗 : 뜻밖의 여정>은 영화 팬에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지만 그렇다고 횡재는 아니다. 잭슨은 분명 3D 게임의 규칙을 바꿀 작품을 만들었다. 층층이 도열해 여러 폭의 2D 스크린을 동시에 보고 있는 것 같았던 기존 3D영화의 이물감은 사라지다시피 했다. 이제야 봉제선 없는 3D를 경험하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얄궂은 노릇이다. 관객이 이끌려 들어가는 HFR 3D의 툭 터진 세계는 HD 디지털TV 스크린의 차갑고 적나라한 그것이지 우리가 100여년간 뛰어들기를 꿈꾸어온 영화(필름) 속 세계는 아니다. 일부 장면은 초대형 고화질 TV로 <반지의 제왕> 블루레이 서플먼트의 제작노트 메뉴를 보는 듯하다. 구석구석 시리게 선명한 <호빗: 뜻밖의 여정>이 쏟아내는 막대한 시각적 정보를 허겁지겁 흡입하는 170분 동안 나는 백화점 매장을 헤맬 때처럼 시간 감각이 몽롱해짐을 느꼈다. <호빗: 뜻밖의 여정>의 관람 체험은 사건을 따라 전진한다기보다 횡으로 두루마리 그림을 펼쳐보는 것과 유사했다. 이 양식은 자연 미장센의 비중을 강화할 텐데, 이는 어찌됐든 멋져 보이는 숏을 다량 찍어 전달하면 편집실에서 고르고 조립해 영화의 형상으로 조립하는 최근 할리우드 주류 블록버스터의 트렌드와 어긋나는 셈이니 흥미롭다.
<호빗 : 뜻밖의 여정>의 스토리텔링은 요령부득이다.
우선 원작의 유전자에서 기인한 어쩔 수 없는 핸디캡. 빌보의 여행은 ‘반지 3부작’에서 프로도가 겪은 여정의 원형이라 기시감을 피할 수 없다. 프라이팬을 탈출해 아궁이에 떨어지고, 쓰레기차를 피해 정화조차와 부딪치는 식의 모험이 꼬리를 무는 전개도 마찬가지다. 넉넉한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가운뎃땅의 역사와 종족 사이의 관계는 대부분 회고의 괄호에 묶여 내레이션으로 ‘설명’된다. 170분 동안 여러 차례 변주 반복되고, 남은 두 속편에서도 메아리칠 게 분명한 <호빗>의 테마는 간달프의 짤막한 대사에 다 들어 있다. “어둠을 밀어내는 힘은 사소한 것들, 보통 사람이 날마다 하는 일들에 있다고 깨달았소. 친절과 사랑에서 나오는 단순한 행위들 말이오.” 실망스러운 것은, 장르 관습에 포함되는 주제의 단순함이 아니라 주제와 관련된 대사가 나올라치면 앞질러 스포일러를 자처하는 음악이다. 급기야 특정 선율이 시작되면 이제 “나는 영웅도 전사도 아니지만…”으로 시작하는 빌보의 입장 표명이 있겠구나 조건반사적으로 예감하게 된다. 마지막 불평. 솔직히 3부작을 합쳐 약 9시간으로 예상되는 부피의 서사를 느즈러짐 없이 끌고 가려면 아무리 판타지이자 동화라는 특성이 있다 해도, 간달프가 수백년간 유지된 표면적 평화에 왜 이의를 제기하는지, 오크족은 왜 죽어 마땅하고 난쟁이들이 왜 황금의 주인이 돼야 옳은지 등의 열쇠 질문에 대해, 각 종족의 타고난 고귀함과 천함을 넘어서는 근거가 제시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기야 이런 종류의 문제에 있어서는 언제나 조앤 K. 롤링이 J. R. R. 톨킨보다 친절한 가이드였다.
<호빗: 뜻밖의 여정>이 푸짐하게 차린 쾌감과 재미를 실컷 섭취한 다음 내 위장에 걸려 있던 불안을 요약하자면, 이 영화가 스스로를 지나치게 중대하게 여기고 있다는 인상이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이어지던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 말미의 웅장한 커튼콜부터 조짐은 있었지만. 지난 11월 만난 <라이프 오브 파이>의 리안 감독은 인터뷰 중 “영화가 나의 호랑이인 것 같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더랬다. 혹시 <반지의 제왕>과 <호빗>은 피터 잭슨 감독이 내려놓지 못한 절대반지가 아닐까? 모든 명암을 포함해서 말이다.
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아무르>는 <호빗 : 뜻밖의 여정>과 같은 날 오후 연달아 시사를 가졌다.
그럼에도, 지난 이틀간 <호빗: 뜻밖의 여정>에 관해서만 끄적인 이유는 <아무르>의 기억쪽이 더디게 휘발될 거라고 판단해서였다. <아무르>를 보는 동안 이상하게도 <호빗: 뜻밖의 여정>에 홀려 있는 동안 흐리멍덩했던 시간의 감각이 버거울 만큼 날카로워졌을 뿐 아니라, 영화 속 공간은 머리에 평면도가 입력될 지경이었다. 영화가 끝나면 당신은 조르주와 안느 부부의 아파트를 친구에게 안내할 수 있다. 현관을 들어서면 대각선 맞은편에 욕실이 있고, 왼쪽 벽에는 넓은 창문, 오른편으로 꺾으면 서재와 식당, 거기 딸린 작은 방…. (오, 물론 광활한 가운뎃땅과 아담한 아파트를 비교하는 일이 공정하진 않지만.)
서구 평자들은 하네케의 영화를 가리켜 ‘클리니컬’(clinical) 이라는 표현을 쓰곤 한다. 여기서 ‘클리니컬’은 ‘센티멘털’의 반대말이며 현실의 인간이 앓는 증상과 거기 대응하는 요법을 다룬다는 의미다. <피아니스트> <퍼니 게임> <하얀리본>에서 익혔듯 하네케는 증상 중에서도 인력으로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극단적 사태를 맞이한 개인의 반응에 관심이 있고 그가 임상학자로서 보여주는 태도의 특징은 아무리 끔찍해도 눈을 돌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때로 그의 시선은 됐다 싶은 시점 이상 머물러 악취미를 넘나든다. ‘질병 끝의 죽음’을 다룬 <아무르>는 그러므로 하네케의 예외적으로 착한 영화라기보다는, 인간에게 가장 보편적인 극한 사태를 소재로 취한 경우로 보는 편이 낫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끝나지 않는 사랑을 우리는 어떻게 처리할 것이며 건강하고 좋았던 날들에 대한 미련을 어떻게 내려놓을 것인가? 이 물음에 대처하는 조르주(장 루이 트랭티냥)의 입장은 “계속 나빠지다가 끝나겠지”라는 대사로 함축된다. 영화 내내 한번도 표정을 무너뜨리지 않는 그는 친딸을 포함한 주변의 연민과 충고를 거절하며, 해야만 하는 일을 자신과 반려자가 믿는 합당한 방식으로 완수한다. 조르주의 선택이 근거한 정당성은 세상의 규범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두 사람이 제정한 법에서 비롯된다. 즉, 도덕적 결단이 아니라 윤리적 결단이다. <아무르>에서 부부가 사는 아파트가 딸보다 중요한 캐릭터로 기능하고, 이야기 도입부와 끝에 외부자가 부부의 집에 침입하려는 시도가 들어 있는 구조는 그래서 필연으로 보인다. 신원 미상의 인물이 시도한 첫 침입은 미수로 끝나고 경찰의 두 번째 시도가 성공했을 때 조르주와 안느의 혼은 이미 그 집을 떠난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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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해서웨이, <레미제라블>의 빛과 소금
1980년대 미스 USA풍의 이목구비와 비밀이라곤 당최 없어 보이는 분위기에 <프린세스 다이어리>의 그녀를 눈여겨보지 않았건만 <브로크백 마운틴>부터 출연작마다 나의 얕은 안목을 부끄럽게 하더니 급기야 <레미제라블>에서는 영화를 통째로 삼켜버렸다. 그녀가 아니었더라면 <레미제라블>이 자랑하는 뮤지컬 연기 라이브 촬영의 장점은 물증 제시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