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공직자와 매미의 오덕五德>/구연식
고향의 여름은 누구나 그렇듯이 유년 시절에 읽었던 동화책의 그림처럼 잊히질 않는 추억의 그림들을 가지고 있다. 웃통은 벗겨진 채 삼베 잠뱅이 달랑 하나 걸치고 한 손에는 찐 감자, 다른 손에는 단(사탕) 수수의 주전부리를 들고 매미 소리도 시원한 마을 앞 냇가에서 소쿠리로 몰아서 송사리를 잡던 일, 뙤약볕도 마다하지 않고 황토 먼지 뒤범벅이 된 얼굴로 뒤 야산에서 산딸기를 따서 검정 고무신에 가득 채워 밭을 매는 어머니 간식거리로 같다 드렸던 일들이 엊그저께 같다.
시냇가 언덕에는 곁가지를 하나도 치지 않아 싸리비처럼 자란 포플러가 너무 높이 자라서 푸른 하늘의 흰 구름을 금방이라도 모두 다 쓸어버릴 것 같다. 포플러가 흔들거려서 바람이 부는 건지, 바람이 불어 포플러가 흔들거리는지 잎사귀들은 옛날 임금들이 머리에 쓰던 금관金冠의 장식품같이 바스락바스락 거리며 햇빛에 반짝거려 맨눈으로는 바라볼 수 없다. 그 금관 장식품 그늘에 달라붙어 며칠을 살기 위해 땅속에서 7여 년을 버텼던 시한부 목숨을 한탄하는 양 목청이 터져라, 울부짖는 매미 우는 소리는 농촌의 고즈넉한 한낮의 적막을 찢어 놓는다.
매미 우는 소리는 바람의 방향에 따라 음계와 박자를 갖춰 온 동네 매미가 멜로디로 합창과 독창을 섞어가며 들린다. 여름 한낮에 농부들은 동네 모정茅亭이나 자기 집 대청마루에서 오전의 피로를 풀고 오후 농사일 준비를 위한 에너지 충전의 시간이다. 이때 살포시 잠든 틈에 볼 가를 시원한 바람은 어루만지며 스쳐 가고 귓가에는 매미 우는 소리가 자장가로 들려 농부들은 보약 한 첩을 달여 먹은 기분으로 낮잠을 즐기고 기지개를 켜면서 논밭으로 향한다.
요사이 도시는 매미 우는 소리도 소음으로 들려 민원도 자자할지 모르나, 가로수 터널을 통과할 때 매미 우는 소리는 도플러 효과인 양 운치 있게 들려 한줄기의 소나기처럼 시원함도 느껴진다. 매미 우는 소리는 고향의 개구쟁이 초동 친구들을 부르는 소리로 너무 그립고, 끼니 때가 되어도 오지 않아 나를 부르시던 고샅길의 정다운 고향 집 어머니의 목소리다.
전통사회에서 통치자는 지존의 상징이기 때문에 절대 추종을 불허하는 의관衣冠이 위엄과 권위의 표상이었다. 근대 민주정치의 발상지인 영국의 법정에서는 지금도 하얀 가발을 착용한 법관法冠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천부인권설天賦人權說에 입각한 하늘을 대신한 법관이라는 권위적 의미이며, 현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왕관(Crown)은 권위를 넘어 호화성의 가치는 1억 파운드(약 1,740억 원) 이상의 것으로 평가하고 있어 우리의 조선시대의 왕관王冠의 상징적 의미와는 대조되는 것이 많다.
옛 우리 조상들은 생활 주변의 동물이나 곤충들의 삶을 눈여겨보면서 인간이 본받아야 할 것들을 간추려서 목록화目錄化하고 성문화成文化시켜 조정朝廷과 백성들의 삶의 지표로 삼았다. 매미 머리 모양이 선비가 쓰는 관冠을 닮았다 하여 문덕文德 이슬만 먹고살아 청순하다 고 하여 청덕淸德. 메뚜기 등과 달리 농부들이 가꾼 곡식과 채소를 해치지 않으니 염덕廉德. 들짐승과 날짐승, 곤충 등 모든 생명체들이 살 집이 있는 것과는 달리 매미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하여 검덕儉德. 철 맞추어 왔다가 서리가 내리는 가을이 오면 때를 보아 떠날 줄을 알고 있어 신덕信德을 갖추고 있다고 하여 문文, 청淸, 염廉 검儉, 신信을 함축한 매미 행동을 조선왕조에서는 국가 관리들의 행동강령으로 삼았다.
이처럼 조선왕조 시대에는 조정에서 모든 관리가 집무할 때 사모관대紗帽冠帶를 갖추게 하여 문무를 구별하고 품계品階를 표시하여 위계질서를 바로잡았다. 특히 왕과 세자 그리고 세손은 무늬와 색상은 달랐으나 의관衣冠은 공통으로 곤룡포袞龍袍와 익선관翼蟬冠을 착용했다. 익선관은 매미의 날개를 모방하여 만든 의관衣冠이다.
임금의 익선관은 매미의 양 날개를 하늘로 향하게 하여 위엄을 보이게 했으며, 조정의 백관百官들은 매미 날개 형상을 위로 향하게 하지 않고 양옆으로 늘어뜨려 만백성의 의표儀表가 되라는 상징으로 표현했다. 그 외에 평생 벼슬을 못 한 백성들도 혼례식 때만은 신랑은 익선관의 형태인 사모관대를 신부는 궁궐 여인들이 가례嘉禮 때 입는 활옷의 일종인 원삼圓衫 족두리 착용을 허락하여 조정에도 혼례를 축하하여 주었다. 온 나라가 매미의 5덕을 음미하고 실천하는 청백리淸白吏 강토였다.
작금의 한국 공직사회는 과연 익선관에 얽힌 매미 5대 강령의 실천의 도는 어느 정도일까? 참으로 개탄慨嘆을 금할 수 없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매미만도 못한 고위 공직자들이 수두룩하다. 차제에 이들에게 ‘매미 연수’를 개발하여 지하 토굴에서 7년간 ‘매미가 굼벵이처럼 살아가는 법’을 연수 필수코스로 통과한 사람만 공직자로 임명하도록 한다면 국민을 짜증스럽게 하는 ‘공직자 인사청문회’는 없어질 것 같다. (2022.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