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산행은 하계 단합대회와 피서를 겸하여 진행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대회장소가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듣다보면 백인백색이 되고만다.
몇 날 몇 일을 붙들고 있었으니 모범답안이 나올 법도 한데,에구~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도심지의 더위에 퉁퉁 부은 사람들은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더위를 피하여 도망을 간다.
목하 휴가철이 절정을 이루고 있으니 조금이라도 알려진 곳은 온통 사람들로 북새통이다.
오도산자연휴양림을 기점으로 삼아 다양한 산길을 열어놓았다.
만약에 휴양림에서의 일정에 차질이 생긴다면 수포대에서 행사를 진행할 계획까지 준비해 두었다.
그렇게 만약의 계획까지 마련해 놓고보니 그제사 안도의 한숨.
행여나 하였더니 역시나 였다.(휴양림 안으로 버스 진입 불가)
휴양림에서 15명이 내리고 버스는 수포대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 15명은 개념도대로 오도산(吾道山)을 등정하고 능선따라 수포대(水瀑臺)로 하산할 계획.
풍수지리설의 대가인 도선국사가 숙성산(宿星山)에서 7일을 오도산을 바라보았다는데,그 께달음을 께달아 보자.
1962년 우리나라 마지막 표범이 오도산에서 잡혔다는데 그 표범의 손자도 함 찾아보자.
계곡 어딘가에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으슬렁거리며 배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로 오도산을 타고 수도지맥이 지나가는 길을 링크한다. ☞ 수도지맥 상 ,☞ 수도지맥 하>
산행일시: 2012년 8월 6일(월)
산행코스: 오도산자연휴양림-오도재-오도산-두무산갈림길-수포대 (3시간)
개념도는 "산&산"과 "근교산"의 짜집기
휴양림 매표소 주차장에 버스를 멈추고 산행팀은 하차,버스는 수포대로 돌려보낸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휴양림으로 들어간다.
휴양림 안으로(오도재) 들어간다.
어제 일요일이 피크타임이였을 테고,오늘은 월요일이니 그나마 한산한 편.
매표소에서 7~8분 후 미녀봉 말목재 들머리를 왼쪽으로 본다.
빅뱅님과 여기서 헤어진다.
가둬 논 자연풀장에는 더위를 식히는 피서객들이 물놀이를 하고있다.
계곡 왼쪽으로 타고오다 물레방아가 보이는 지점에서 다리를 건너 계곡 우측으로 건너간다.
이정표의 솔숲쉼터와 소망탑 방향으로 따라간다.
곳곳에서 지난밤 야영을 한 흔적들이 더위에 지쳐있다.
길은 비포장길로 바뀌면서 사방댐 다리를 왼쪽으로 다시 건넌다.
사방댐 다리를 건너 만나는 소망탑에서 뒷사람들을 기다려 합류한다.
소망탑에서 8분 만에 만나는 "휘어진 고사목"직전에서 오른쪽으로 갈림길이 나온다.
네모안은 고사목을 확대한 그림이다.
솔숲그늘로 들어왔다.
휴양림 측에서 자랑하는 피톤치드(Phytoncide)가 많이 나온다는 숲길이다.
오도재 바로아래의 안내판.
오도재에선 시원한 산바람이 수포대 방향에서 불어온다.
지친 세사람을 수포대로 내려 보낸다.
오도재가 해발 700m 정도가 된다면 300을 넘게 고도를 높혀야 된다.
된비알이 시작된다.
땀 한번 바짝낸다는 기분이면 어느새(대략 35분) 임도에 닿는다.
시설물이 있는 오도산쪽에도 이정표가 있다.
뒷 사람들을 기다리다 발길을 옮긴다.
어디 산바람 부는 시원한 곳에서 식당을 차려야 하니까...(임도를 100여 m 걷다가 화살표가 가리키는 산길을 갈아타야 한다.>
조망이 트이는 곳에는 아래 옴푹한 휴양림 지실골 뒤로 미녀봉의 실루엣이 보인다.
왼쪽 임도 밑의 잘록한 안부에는 아까 말한"휘어진 고사목"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휴양림 원점회귀일 경우 선택)
오도산을 오르며 돌아본 가까이에 비계산과 그 좌측 뒤로 장군봉과 우측으로 의상봉도 고개를 내밀고 있다.
전망데크에서 잠깐 머물다 하산길을 서두른다.
정문 좌측으로 타고 내려가면...
철조망 펜스를 우측 어께에 짊어지고 산사면을 타고 시설물을 돌아간다.
진행 방향 오른쪽으론 두무산이 나도 여깄소 한다.
(언제 한번 수포대를 원점회귀로 기회를 엿보아야지.)
눈 앞에 우리가 타고 가야할 능선이 푸르름으로 덮혀있다.
오도산에서 1km남짓,두무산 갈림길 이정표에선다.
푸석푸석한 백색의 마사토로 덮힌 솔숲길을 흡족한 마음으로 내려간다.
임도에 내려서고...
임도따라 진행하니...
다시 두무산 들머리가 나온다.
계곡을 만나면서 산행은 끝이나고,물놀이에 들뜬 일행들이 축하 새레머니를 퍼 붓는다.
그 사이 돼지 앞다리 수육은 맛있게 익어가고...
우리는 물 테이블에 앉아서 신선이 되어간다.
편을 갈라 게임도 하며 왁자지끌 수포대 청정계곡을 수(水)신밟기 하더니...
썰물처럼 쏴아 빠져나간 그자리엔 다시 고요함이 찾아오고,계곡엔 수정처럼 맑은 물만 서로 몸 부딪치며 소곤대며 흐른다.
LNT(leave no trace:흔적 남기지 않기)를 소리없이 실천하고 내려오는 길에 사방댐의 인공폭포가 제법 그럴싸하다.
수포대(水瀑臺)라 음각된 글씨가 있는 바로 위 계곡을 건너 오도재 가는 길이 있다.
새로 빨갛게 색을 입힌 음각글체는 수폭대인가? 수포대인가?
<그런데 수포대의 포(瀑)자는 폭포 폭(瀑)자인데...
옥편을 검색해 보니 폭포 폭(瀑)자이기도 하지만 소나기 포(瀑)자로 쓰여지기도...>
그러면 물이 소나기처럼 퍼 붓는다는...
수포대 옆에 음각된 글씨.
'훤두양선생장구지소(喧蠹兩先生杖屨之所)'와 '평촌최공강학지소(坪村崔公講學地所)'
훤두(喧蠹)는 한훤당 김굉필(寒暄堂 金宏弼) 선생의 훤(喧)자와 일두 정여창(一蠹 鄭汝昌) 선생의 두(蠹)자로 두 선생을 말한다.
이 두 선생과 최숙량(坪村 崔淑梁) 선생이 도학(道學)을 강마(講磨) 하였던 곳이란 뜻.
모현정 옆에 세워진 오도재 중건 헌성비(吾道齋 重建 獻誠碑)에는 한훤당과 평촌공은 동서지간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오도재 가는 길은 이 글체위의 우측 계곡을건너...)
오잉~~이건 뭔 시추에이션(situation)?
다섯 살 유치원 아이 이제 마악 글자를 몇자 익히곤 온 벽에 낙서질을 하는 것 하고 똑 같다.
누가 이런 짓을 하였남.쯧쯧...
길 옆의 모현정(慕賢亭)을 살펴본다.
무오갑지사화(戊午甲之士禍)의 피화(被禍)로 평촌공이 참혹하게 세상을 떠난후 중종반정으로 1517년 중종12년에 신원(伸寃)되었고 증직(贈職)되었다.
평촌공이 가신지 500년간 이 땅 이 고을에서는 상현(像賢) 숭덕(崇德)의 정신은 끊이지 않아 1898년 광무2년에 도향(道鄕=30고을, 약 1,000명) 사림(士林)의 정성을 담아 모현정(慕賢亭)을 창건 하였다.
평면은 우물마루를 깔고 건물 주위로는 계자난간을 둘렀다.
창방과 처마도리 장혀 사이에는 4면에 모두 소로를 끼워 장식 하였으며, 5량 가구형식으로 우물천정으로 시설하였고, 포는 초익공 형식으로 쇠서를 위로 향하도록 한 앙서형이며 위에는 봉두를 올려 장식성이 강하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으로 구성한 겹처마이다.
누각형식을 채택하면서도 짧은 누하주를 사용하여 전체적인 균형미가 돋보이며, 간결하고 소박한 가구기법을 사용하여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준다.
이 건물은 105여년전 18세기후반에 건립한 건물로 그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 있고 한훤당 김굉필 선생, 일두 정여창 선생 등 선현들이 학문을 강학하던 곳으로 도학의 요람지로서 시대적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문화재이다.
2004년3월18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46호로 지정되었으며, 흥해최씨(興海崔氏) 평촌공파 종중에서 소유, 관리하고 있다.<자료>
새로 잘 보수된 듯하고...
우리 버스는 양지촌 정자나무쯤 주차를 하여 작은 차로 이동하리라 예상하고 있었는데,여기까지 버스가 올라왔다.
들은 이야기론 겨우겨우 회차를 하였다고 한다.
(최병수님은 Best driver)
덕천동에 내렸는데 이 내 맴이 왜 이리 꿀꿀한가?
만사를 뿌리치고 집으로 직행.
우리 엄니가 차려주신 밥상엔 어김없이 Good day 한병이 올라왔다.
엄니 오늘은 아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