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ngelo Pennetta for WSJ. Magazine
- 웨스 앤더슨 감독.
제 1, 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30년대 동유럽에 위치한 가상 국가 주브로카의 온천마을 네벨스바다, 손님들이 협궤열차를 타고 설원 위에 세워진 호텔로 올라간다.
부자에 나이 많고 경계심으로 가득하며, 허영심 많고 무례하고 탐욕스러운 이들을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맞은 건 보라색 연미복 차림에 레어드파나슈 향수냄새를 풍기는 과장된 몸짓의 콧수염 난 컨시어지 구스타브 H였다.
호텔 바닥에는 주문제작한 아르누보 카펫이 깔려있고 아치형 계단을 오르니 웅장한 스테인드 글라스 패널이 모습을 드러낸다. 구스타브는 직원들에게 호텔을 “티없이 완벽하게 치장하라”고 지시한다. 또한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위대하고 기품있는 곳”이라고 선언한 뒤 짐꾼과 웨이터들에게 46연으로 된 로맨틱 교훈시에 대해 생각해보라고 한다.
웨스 앤더슨 감독이 거의 10년을 들여 구상한 웨스 앤더슨식 환대(hospitality)다. 이달 개봉한 그의 8번째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오랜 친구에 관한 인물묘사로 시작된다. 런던 소재 홈 하우스 클럽에서 전화인터뷰에 응한 앤더슨은 “중요한 건 그가 모든 걸 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사람들을 대하는 데 능하다. 내 친구는 컨시어지가 아니지만 그것을 직업으로 택했다면, 그리고 100년쯤 일찍 태어났다면 명컨시어지가 됐을 것이다. 요즘 컨시어지들은 예전에 비해 하는 일이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컨시어지들이 하던 일, 그리고 (그보다 더 중요하게) 그들이 한번도 하지 않은 일은 앤더슨이 창조한 세계 그랜드 부다페스트로 들어가기 위한 열쇠가 된다. 언제나 치밀한 사전 리서치 작업을 거쳐, 빈틈없이 완벽하고 독창적인 세계를 구현해내는 앤더슨은 새 영화를 발표할 때마다 등장인물들의 정서적 삶을 풍요롭게 하는 방식으로 시각언어를 갈고 닦아 자신만의 독특한 미학을 발전시켰다. 물론 그의 영화에서 반복적으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지만 그처럼 끊임없이 풍부함을 선사하는 감독은 몇 안된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교의 친구였던 오웬 윌슨과 함께 작업한 1996년작 ‘바틀 로켓’부터 1998년작 ‘러쉬모어’까지, 2001년작 ‘로얄 테넌바움’에서 2004년작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까지, 2007년작 ‘다즐링 리미티드’에서 2012년작 ‘문라이즈 킹덤’까지 앤더슨의 세계들은 이제 각자의 은하계를 구성하고 있다.
구스타브와 같은 시대에 살지 못해 (어쩌면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그 시대에 집착적일 정도로 강한 호기심을 지닌 앤더슨은 구스타브의 세계를 구상하기 전에 가능한 한 많은 지식을 쌓았다. 의회도서관의 포토크롬 프린트 컬렉션에서 엽서 같은 사진들을 본 후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 폴란드, 독일 등지를 돌아보았다. “자연과 도시 풍경을 담은 수천장의 사진을 보고나서야 이 오래된 호텔들을 찾아가보았다. 마치 구글 어스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을 찾는 것 같았다.” 영화 속 호텔에 패스트리를 만드는 프로그램이 필요했을 때는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전설적인 베이커리 ‘데멜’에서 영감을 얻었다. “데멜에는 자허토르테(초콜릿 케이크의 일종)도 있는데다 친구 한 명이 그러는데 빌리 와일더 감독이 빈을 방문할 때 제일 먼저 달려갈 정도로 좋아하던 집이라고 했다. 그 시대 패스트리는 예술이다.”
케이크는 그렇다 치고, 앤더슨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제대로 표현해낼 건물을 찾느라 애를 먹었다. 독일 괴를리츠에 당도해 빈 채였던 괴를리츠 바렌하우스 백화점 건물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1912년 지어진 이 건물은 상당히 큰 아트리움(영화에서 호텔 로비가 될 공간) 뿐 아니라 제작사무실과 미술부, 그리고 (레어드파나슈 향수병 등을 직접 만들기 위한) 작업실을 수용하기에 충분하다는 점 두 가지가 특히 매력적이었다. “전형적인 영화세트장을 연상시키는 것들은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승합차를 타고 내리는 모습들 말이다 .”
구스타브 역으로 이번에 앤더슨의 영화에 처음 출연한 랄프 파인즈는 “웨스는 친밀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공을 많이 들인다”고 말한다. “배우 각자를 위한 트레일러는 없다. 우리 모두 같은 호텔에 머물며 매일밤 저녁을 함께 먹고 각자의 방에서 의상을 갈아입는다. 헤어와 분장을 위해서는 아래층으로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 앤더슨의 영화에 단골로 등장하는 빌 머레이, 제이슨 슈와츠먼, 오웬 윌슨 등은 이번 영화에도 함께한다.
앤더슨의 영화는 기능장애에 빠진 가족을 강조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세트장은 친밀감이 넘친다. 앤더슨은 영화를 함께 만드는 앤더슨 사단이 배우들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점을 즐겨 지적한다. 함께 그랜드 부다페스트 각본을 쓴 작가 휴고 기네스와는 2001년부터 작업해왔으며, 촬영을 맡은 로버트 예먼은 ‘바틀 로켓’부터 거의 20년째 앤더슨 영화의 촬영감독이었다. 파인즈 역시 앞으로도 또 합류할 수 있길 바란다. “웨스가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방식은 구식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중하다. 하지만 세심하게 준비한 흔적이 역력하고 매우 구체적이다.” 단적인 예로 그의 촬영장에서 밴은 볼 수 없었지만 대신 “덴마크 골프카트가 준비돼 있어 그것을 타고 이동하곤 했다.”
물론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호텔 예약과 룸서비스만을 다루는 영화가 아니다. 모험가의 피가 흐르는 코미디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주인공 구스타브는 살인죄 혐의를 받아 컨시어지직을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탈옥해 사건의 해답을 찾기 위해 케이블카를 타고 알프스 산등성이에 위치한 수도원으로 향한다. (비평가 겸 ‘웨스 앤더슨 컬렉션’의 작가 맷 졸러 세이츠는 물건, 장소, 의상 하나하나가 인물 전체의 개성과 관계, 혹은 갈등을 나타내는 이러한 연출스타일을 ‘물적 제유(material synecdoche)’라 표현한다.) 서스펜스와 속도감을 갖춘 그랜드 부다페스트는 웨스 앤더슨식 액션 블록버스터라 할 수도 있을 것 같지만 당사자는 이를 질색한다. “루비치 영화에 그로테스크함을 가미한 것, 아니면 30년대 히치콕 영화에 가깝다. 특히 케이블카 장면은 히치콕 영화에 나오진 않았지만 나왔을 법한 장면일거라 생각하며 만들었다.”
앤더슨은 하루종일이라도 어디어디서 참조했다며 자신의 영화적 비전에 부연설명을 붙일 수 있다. 그는 미학에 관한 질문에 짧게 한마디로 대답하는 법이 없다. 미국적 색채가 깔린 신 바로크주의, 이렇게 간결하게는 결코 말하지 않는다. 영화 속 명화 ‘사과를 든 소년’ (영화에선 허구의 화가 ‘더 영거’ 요하네스 반 호이틀, 실제론 화가 마이클 테일러가 그림)은 유럽 대화가의 작품과 비슷하다. “플랑드르파 화가들, 한스 홀바인을 참조했다고 할 수 있다. ‘더 영거’ 홀바인인지 ‘디 엘더’ 홀바인인지는 모르겠다. 난 브뤼겔을 좋아한다. 또 하나 참조한 건 프릭컬렉션 미술관이 소장한 브론치노 그림이다.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 그림이 아니고 그보다는 동쪽 지역 그림이라는 점을 시사하려 했다.” 각본은 오스트리아 작가 스테판 츠바이크(1881–1942)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사실 츠바이크, 구스타브, 앤더슨 세 사람의 기질과 삶은 서로 많이 닮아있다.
구스타브처럼 츠바이크는 과장된 댄디함과 도덕군자스러움으로 무장했다. 그는 베토벤이 쓰던 책상을 썼고 파리에서 릴케와 어울렸으며 생김새마저 구스타브와 약간 비슷했다. (파인즈는 “콧수염과 큰 코가 비슷한 것 같다”고 인정한다.) 앤더슨처럼 츠바이크는 자서전 ‘어제까지의 세계(The World of Yesterday)’에서 유럽의 특정 시대가 끝나감을 탄식했다. “웨스는 자신이 속해본 적이 없지만 속하고 싶은 특정 세계에 대한 강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 츠바이크처럼 방랑벽도 있다.
웨스 앤더슨이 창조한 세계는 여행과 진정한 몰입에 크게 의존한다. (앤더슨과 오랜 여자친구인 작가 주만 말루프는 뉴욕을 자신들의 집이라 부르지만 앤더슨은 파리에도 아파트를 가지고 있으며 장기간 해외로케를 주저하지 않는다. “얼마나 오래 촬영지에 머물지는 결코 알 수 없다. 촬영에 돌입하면 시간은 의미가 없어진다.”) ‘다즐링 리미티드’는 인도에서, 움직이는 기차 안에서 찍었다. ‘스티브 지소와의 해저생활’에는 이탈리아 해안을 배경으로 제2차 세계대전 시대 소해정((掃海艇) 위에서 찍은 장면이 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의 경우 핀 드 시에클(19세기 말) 목욕탕 안에서 찍은 장면이 없었다면 결코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기적처럼 제작기간에 괴를리츠에서 하나를 발견했다).
이제 전화를 끊고 베를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그랜드 부다페스트 최종편집본을 봐야 한다는 앤더슨은 다음과 같은 말로 대화를 마무리했다. “영화를 어떤 곳에서 만들고 싶은 건 그 곳에 대해 알고 싶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나 스토리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일지만 그들이 사는 세계에 대한 호기심이 크다. 다음 영화를 어디서 찍을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 말할 수 있는 건 일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이다.”
수진(소피 브누아)(송신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유재순)균형 성격/
한국과 일본 자살 대국 오카다 유키코(우에하라 미유 노팬티)(츠바사 항공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