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시장 순댓국>
“정말, 오 부장님은 대단하십니다! 저는 부장님처럼 젊은이가 이렇게 회사 일에 정진하는 거는 처음 보겠습니다. 우리 오 찬진 사장님은 복 받으신 겁니다. 사장님을 대신해서 이렇게 밥 한 끼라도 우리 기사들에게 베풀어주시는 점,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준철 기사가 여러 명의 마을버스 기사와 순댓국집에서 회식하는 자리에서 오 부장을 좌장 자리에 모시고 아부성 짙은 인사말을 꺼낸다. 나일엽은 순간 역겨움이 울컥 솟았다.
“에, 오늘 정기 정밀검사를 치르고도 자진해서 밥 교대를 나와 주신 점에 저는 부장으로서 이렇게, 밥 대접이라도 하고자 함입니다. 내 형님이 회사에 대표이시고 아버지께서 회장님이시지만 저는 그런 가족관계를 떠나서 늘 회사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근무합니다. 여러분들도 이런, 작은 회사 마을버스에서만 만족할 건 아니잖습니까? 이렇게 회사를 도와주시는 분들은 제가 잊지 않고 한 사람이라도 더 시내버스로 보내렵니다. 제가 보낸 기사들이 영인에도 있고, 보성, 중부 운수, 신인 등 곳곳에 깔렸습니다.
평소에는 행동거지나 말투가 가벼웠던 오 부장은 한껏 분위기를 타고 엄숙한 자태를 잡고 있다. 나일엽은 오 부장의 저 가증스러움 뒤에는 이 자리의 밥값 이상의 경비를 회사로부터 챙겨 갈 거라는 짐작이 선하다. 더불어서 이준철 형님이 다소 뻔뻔스러울 정도로 부장을 빨고 있다는 이 현상이 불편스러웠다. 일엽 자신은 여기, 대여섯 명의 식사 교대를 나온 기사 중에는 종구 형님이나 이희숙 여사와는 자주 어울리는 사이기도 하다. 종구 형님은 그저 싱긋이 미소만 지을 뿐이고 이희숙 씨는 준철 형님의 아부에 비슷한 내용으로 첨언 함으로써 자기도 이준철 씨와 같은 입장이라는 점을 확인을 받으려 했다. 그와 다르게는 경갑이 형인데, 김경갑 기사는 회사 근처에 집이 있기도 하지만 회사 일에 꽤 열성적이라 거의 매일 식사 교대에 나오는 부류이다. 그는 나일엽이 이준철이나 김종구, 이희숙과 자주 어울린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일엽에게는 호의적이고 기회만 되면 나일엽과 친하여지려 하고 솜씨 좋은 아내의 음식에 초대하거나 반찬을 챙겨주는 관계이다. 일엽은 다소 민망한 분위기에서 경갑 형의 표정을 살폈다. 예상과 같이 경갑이 형의 안색을 찌푸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나는 이준철에게 아부의 선수를 놓쳤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밥 얻어먹는 자리라 하더라도 굳이 저렇게 아부하고 추종을 해야만 하는 것인가 하는 것이다. 더구나, 오전 근무를 마치고 퇴근한 기사가 저녁 시간에 다시 회사로 나와서 오후 근무자의 저녁 식사 시간에 대신 운전을 하는 노동에 대해서는 회사로부터 아무런 보상을 받는 게 없는 것이다. 다만, 찍히지 않을 뿐이다. 하얀 김이 풍성하게 오르는 순댓국이 탁자로 옮겨지고 일엽도 입맛을 다시며 자기 몫을 당겨올 때, 눈에는 저쪽 주방 구석에 주먹만 한 생쥐가 싱크대 밑에서 눈치를 살피며 두리번거리는 모습이 눈에 들었다.
구로동, 고려병원 쪽에서 구로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 입구에서는 양쪽으로 ‘병원 처방 약국’ 간판을 크게 내건 큰 약국이 있고 들어가면서 왼쪽에 장사 안되는 작은 약국이 하나 더 있는데 일엽은 거기를 이용한다. 나이 많은 약사가 있는 그 약국은 분주하지 않아서 대기할 필요가 없이 곧바로 약을 지어서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시장 골목에는 잡화상, 메리야스 가게가 있다. 과일가게 이 층에 사우나가 있고 그 위층은 고시촌인 건물을 지나 작은 삼거리 모퉁이에 있는 소문난 순댓국집. 이 집이 구로동 일대에서 장사가 제일 잘되는 집이다. 새벽이다 싶을 정도로 아침 일찍 문을 열면 주로 막노동 현장에 나가는 노무자의 한 패거리가 다녀가고, 그리고 한참 후에는 인력시장에 일 따러 간 노무자 중에서, 이른바 데마찌라하는 인력사무실에서 일거리를 잡지 못하고 퇴짜 맞은 그들이 허탈함과 함께, 오늘 하루는 쉰다는 느긋한 마음으로 순댓국에 소주나 막걸리를 곁들인다. 일 나갈 때는 말 없이 먹고 가고, 퇴짜 맞고 와서는 사뭇 시끄럽다. 가끔은 지들끼리는 이런, 저런 시비로 멱살잡이를 하는 때도 있다. 소란하게 노무자들이 이른 아침을 거쳐 가면 오전 여덟, 아홉 시를 전후해서 시장에서 가게를 여는 소상인 사장이나 종업원, 알바까지 자리를 메우기 시작한다. 밝고 어둡고 혹은 무심한 표정들이 순댓국을 먹고 갈 때쯤에 그 주먹만 한 생쥐 또한 누구의 눈에는 띄었을 것이다. 대낮에 생쥐가 설쳐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다. 그저 그러느니 하면서 구수한 순댓국 탐미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내장을 시원하게 훑어 내리는 뜨거운 국물 맛과 돼지 잡고기의 두툼한 식감에 포식 감을 느끼는 시간이다. 이른 시간에 장을 보러 오는 노인들이 별식을 즐기고, 이어서 점심때가 되면 자리를 기다려야 한다. 뒷사람이 대기하고 있어도 밥상을 받은 사람은 오로지 자기만의 식사에 매몰된다. 새우젓 국물로 간을 맞추고 후춧가루를 듬뿍 친 다음에 들깻가루를 뚝배기 가득 덮는다. 그 사이로 뜨거운 국물이 용솟음치는 중간을 스덴 숟가락으로 찔러 넣어 끓어 넘칠듯함을 누그러트리면서, 내용물을 섞어서 그중에 한 점을 건져서 새우젓에 담갔다가 소주나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 안주로 삼는 것이다. 쌈장에 찍어서 매운 고추 한 토막을 입안에 자극으로 담은 채로 술과 고기를 두세 번, 그렇게 먼저 맛을 봤으면 공깃밥은 반 정도 국물에 담근다. 국물에 부른 밥알의 맛도 고기 못지않다. 반 공기쯤 남은 맨밥은 한 입 크게 떠서 잘 담근 김치와 먹으면 궁합이 맞다. 마실만치 국물이 식었으면 뚝배기 체, 들어 훌훌 마시면 눈물이 찔끔거리며 순댓국 미각에서는 정상에 오른 셈이다. 만 원의 행복감이다.
점심시간이 지나면 간식으로 먹는 이들이 이어지고, 그러고 나면 저녁때가 되고 저녁 시간이 지나면 술꾼들의 시간이다. 주인이 문 닫는다고 쫓아내어야 하는, 밤늦은 시간까지 손님이 이어지는 곳이 구로시장의 소문난 순댓국집의 하루의 풍경이다.
구로시장을 왕래하는 사람 중에 반 수 정도는 중국 교포들인데, 그들에게도 순댓국집이 그만큼이나 절절한지는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