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포 박재삼 문학관 문학기행
지난 7월에 기대를 하고 떠났던 박재삼 시인 문학기행은 문학관 공사가 지연되는 관계로 아쉬움만 안고 주변 공원의 시비를 테마로 다루었었다. 지난 11월21일에 개관한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정 미루고 달려가려고 하였으나 생각에만 머무르고 말았었는데 오늘에야 시간을 내어 가게 되었다. 떠날 채비를 하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설렘은 시작되었고 언제부터인가 나의 애송시가 되어 버린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모래알처럼 입안 가득 맴돌았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소리가 사라지고/그 다음 사랑 끝에 생긴 울음까지 녹아나고/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소리 죽은 가을 강을 처음 보것네.” --울음이 타는 가을 강 일부--
가슴 밑바닥에서 끌어올리는 마지막 절규의 메아리가 지리산자락을 휘돌아 전해지는 느낌을 감싸 안으면서 남해고속도로를 달렸다. 문학관에 도착한 시간은 11시 30분이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공원 한가운데 계단을 오르다 보면 시인의 ‘천년의 바람’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 새겨져 있는 시비가 시인을 찾는 사람들을 반긴다.
문학관을 오르는 계단 옆 시비
시비 옆에는 순결한 색의 동백이 몽우리를 터트리려고 몸살하고 있었다.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면서 어느새 시인의 시세계로 들어가고 있었다. 노산공원의 정상에 올라 문학관 앞에 다다라 잠시 호흡조절을 한 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유난히도 파아란 하늘은 솜털처럼 뽀송뽀송한 구름을 안고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시작의 산실이었던 곳이라서 그런지 주변의 어느 것 하나 그냥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시인의 '노산 공원에서'라는 일부의 구절이 꿈틀거리고 올라왔다
노산에 와서
소시적 꾸중을 들은 날은
이 바다에 빠져드는 노산에 와서
갈매기 끼룩대는 소리와
물비늘 반짝이는 것
돛단배 눈부신 것에
혼을 던지고 있었거든요.
이제 나를 꾸짖는 이라곤 없이
심심하게 여기 와서
풀잎에 내리는 햇빛
소나무에 감도는 바람을
이승의 제일 값진 그림으로서
잘 보아두고,
또 골이 진 목청으로 새가 울고
가다간 벌레들이 실개천을 긋는 소리를
이승의 더할 나위 없는 가락으로서
잘 들어두는 것밖엔
나는 다른 볼일은 없게 되었거든요.
==노산에서 전문==
구름 따라 흐르던 마음을 잡아 문학관 문을 열고 들어서니 실제 시인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흑백 사진이 반겨주었다. 시인의 모습과 뒤에 쓰여 진 시인의 시를 감상한 뒤 좌측에 있는 사무실로 가서 인사를 나눈 후 관계자의 안내 받았다.
2008년 11월 21일 개관한 박재삼 문학관은 사천시 서금동 노산공원 안에 3층 건물로 세워졌는데, 1층에는 전시실 및 사무실, 2층에는 다목적실, 박재삼 소장도서 열람실, 3층에는 휴게실과 옥상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고 한고 박재삼기념 사업회에서 관리를 하며 사천시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다고 하였다.
노산공원 정상에 오르면 보이는 박재삼 문학관 정경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박재삼 시인의 사진이 삼천포를 배경으로 한 시화 옆에서 먼저 찾는 이를 반겼다
문학관 문을 열고 들어서면 찾아오는 사람을 반기는 시인의 실제 크기의 흑백 사진
시청에서 파견 근무 나온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자료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면에는 스크린에서 '추억에서‘가 고운 목소리로 낭송 되면서 영상으로 흐른다.
'추억에서'가 영상으로 흐르는 스크린 앞에서...
자료실로 들어서서 좌측으로 발길을 옮기면 '첫사랑 그 사람은'시와 함께 시인의 담배 태우는 모습이 있다. 시인의 첫사랑은 애연가의 갈증 나던 담배 한 개 피를 태우는 달콤함과 같은 것일까?
담배를 태우는 시인의 모습
그리고 좌측 벽면을 가득 메운 시인의 작품 연대표를 보면 '바다가 낳은 시인'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박히면서 시선을 멈추게 한다. 바닷가에서 태어나 바다를 배경으로 서정을 노래했던 시인은 노산공원이 작품의 산실이었던 것이다. 중학교 때 김상옥 시인의 '초적'을 공책에 옮겨 애송시가 되면서 문학을 관심을 갖게 된 시인은, 중학교 교내 신문에 글을 발표하면서부터이다. 일찍이 습작을 시작한 시인은 1950년인 15살 때 동인지를 발간하게 되었고, 문학으로 그의 생을 마감할 정도로 많은 작품을 남겼다.
시인의 연보가 담겨 있는 자료
연보를 살피고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기니 박재삼 시인과 인연을 맺어 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었다. 박목월, 고은, 조정래 등의 문인들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며 그와 교류했던 주변 사람들은, 그를 검소하고 소박했던 시인이고 삼천포를 제일 아름답게 노래한 최고의 시인이라고 말하였다고 한다.
박재삼과 친분 관계가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교류했던 사람들과의 이야기 자료 밑으로는 박재삼 시인이 문학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 썼던 친필 편지, 김남조 시인의 조사, 이근배 시인의 조시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친필 편지 외 자료들이 보관되어 있다.
자리를 옮겨 시인의 서재를 보면 그가 습작 활동을 하면서 얼마나 많은 책을 벗하고 살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발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았다. 남의 글을 읽기보다는 내 글이 남에게 읽혀져 좋은 평을 받기를 바라는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지를 느끼게 해주었다.
시인의 서재
서재 우측으로는 '박재삼 시 그 깊은 세계'라는 주제로 꾸며 놓은 공간이 있었다. 시인은 말소리와 말뜻을 아름답게 조화시킨 운율로 서민의 세계를 노래했다. 그리고 누구보다도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누구나가 이해하기 쉽고 가슴으로 느낄 수 있게 시를 썼다고 한다.
시인의 작품집과 작품세계
그리고 옆에는 시인의 작품들은 초판원본이 이중 삼중의 보안으로 소중하게 전시되어 있었으며 대표작 여러 편을 시화를 만들어 시인에 작품 감상의 이해를 도왔다.
시인의 초판원본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시인의 작품을 감상하고 옆에 유리문으로 되어있는 작은 방문을 열었다. 그곳은 지금까지 다른 문학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시낭송 방이라는 특별 공간이었다. 미련을 남겨두고 옆으로 발길을 옮기니 시인의 글로 퍼즐 맞추기 공간이 있었고, 바로 옆에는 시인의 시 창작을 하기 위한 5가지 방법이 적혀 있는 암실이 있었다. 커튼을 열고 들어가니 촉수 낮은 형광등이 자동으로 조명 조절을 한다. 잠시 5가지 방법을 잘근거리면서 시상을 떠올려 보았다. 짧은 시간의 고뇌인지 시어하나 조차도 내 것으로 담을 수 없었다.
잠시 시 창작을 떠올리는 공간
1층 자료실을 마무리하고 2층 다목적실로 가는 입구 공간에는 시인의 글을 탁본 떠서 기념으로 가져갈 수 있는 탁본을 뜨기 위한 공간도 있었다. 그리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창작실에는 시인이 즐겨 보았던 저서들이 자리를 못 찾고 있었다.
창작실을 지나 다목적실로 가는 입구에서부터 다목적실 실내까지 그의 대표 시들을 시화로 만들어 감상할 수 있게 하였고, 다목적실은 세미나 등 여러 가지 문학행사를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다목적 실로 가는 입구
아이들의 공간을 위한 열린 도서실을 준비하고 있다는 3층으로 올라가 보았다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삼천포 바다가 낯설지 않았다. 시인의 '밤바다'에서가 일부 생각에 잠기게 하였다.
누님의 치맛살 곁에 앉아
누님의 슬픔을 나누지 못하는 심심한 때는
골목을 빠져나와 바닷가에 서자
비로소 가슴 울렁이고
눈에 눈물 어리어
차라리 저 달빛 받아 반짝이는 밤바다의 질정할 수 없는
괴로운 꽃비늘을 닮아야 하리
천하에 많은 할 말이, 천상의 많은 별들의 반짝임처럼
바다의 밤물결되어 찬란해야 하리
아니 아파야 아파야 하리
이윽고 누님은 섬이 떠 있듯이
그렇게 잠들리
그때 나는 섬가에 부딪치는 물결처럼 누님의 치맛살에 얼굴을 묻고
가늘고 먼 울음을 울음을,
울음 울리라
==밤바다에서 전문==
누이의 아픔이 별빛으로 쏟아지는 밤바다, 시인의 슬픔이 많이 절제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감각적이면서 섬세하게 형상화한 시어에서 시인이 가지고 있는 독창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가슴에 품었던 시인의 작품들을 쏟아내면서 가끔은 시인의 작품세계를 감상하러 올 것이라는 다짐을 뒤로하고 1층으로 내려와 인사를 나눈 뒤 공원 산책로를 걸었다. 여름에 와서 느낀 바다와는 사뭇 다르게 삼천포 바다는 검푸른 빛깔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계절별로 다르게 느껴질 것 같은 바다를 뒤로하고 아쉬운 발걸음을 옮겼다.
박재삼시인의 프로필
시인 박재삼 朴在森 (1933∼1997)
1933년 4월10일 일본 동경에서 출생하여 고려대학교 국문과를 수료했다. 시조 「강물에서」가 「문에」 11월호(1953)에 발표되고, 1955년 「현대문학」 추천을 통해 「섭리」(유치환 추천). 「정적」(서정주 추천)이 발표되어 데뷔하였다. 이후 현대문학 시인상, 문교부 주관 문예상, 제9회 한국시협상, 제7회 노산문학상, 제10회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15권의 창작시집과 8권의 수필집을 냈다. 1997년 6월8일 10여 년의 투병생활 끝에 영면에 들었다. 시집으로는 「춘향이 마음」 「햇빛 속에서」 「천년의 바람」 「어린 것들 옆에서」 「뜨거운 달」 「비 듣는 가을나무」 「추억에서」 「대관령 근처」 「찬란한 미지수」 「사랑이여」 「해와 달의 궤적」 「꽃은 푸른 빛을 피하고」 「허무에 갇혀」 「다시 그리움으로」가 있으며, 그외 시선집과 수필집이 다수 출간되었다
[출처] 자연/박재삼|작성자 시인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