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비를 찍어 보니 38키로 40분 소요된다 한다.
애초 자연휴양림과 뒷산을 세시간 걸으려
했으나 휴양림이 코로나로 폐쇄되 발길을 돌려
임도를 걷기로 했다. 한참을 가다 용인봉 팻말이
보였다. 용인봉? 산을 여러군데 탔지만 용인봉은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임도에서 오르는 길을 지나쳐 다시 숲을 헤짚고 오르니
이제 가을이 완연했다. 이즈음 초촐한 무명의 산을
타는 이는 없다. 혼자 적막한 산을 타는 버릇이 있어
오르고 내리는 동안 전혀 사람을 못보고 임도를
스쳐 지나가는 짐차만 한대 봤다.
부처님 나라 인도는 각 지역마다 가을의 모습이
다르다.북인도 설산쪽에는 가을이라 느낄새도 없이
겨울이 닥쳐 환절기인 가을을 제대로 음미할 수 없다.
중인도는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날씨가 한달 못되게
이어지다 어느듯 겨울이 온다.겨울이라야 0도를
오르 내리는 날씨다.남인도는 열대 기후로 1년 내내 덮다 겨울에 약간 온도가 내려갈 뿐 더운 열대 기후는
그대로다.겨울에도 해변에서 수영을 하니 설명하자면
겨울이 아니다.
가을은 수행자의 계절이다.
부처님께서 정각을 이루신 부다가야 전정각산
석굴에도 뜨겁던 니련선하 강변의 물이 마를즈음
(요즘은 우기를 제외하곤 강모래사장) 낙엽이 지고
동굴의 온도가 내려 가면 더욱 정진의 고삐를 틀어
쥐는 시기가 이 가을이다.샘터를 정리하고,겨울
동안거 법복과 땔감을 준비하는 촘촘한 나날이
바로 이 때다. 부처님 머무시던 동굴은 두세평 되는
석굴로 오직 중생 구제의 원력을 펴시던 굴속에는
부처님이 앉아 계시던 그림자가 석벽에 새겨져
그 철저한 고행의 흔적을 엿볼수 있었다.
나는 티벳 스님들이 켜 놓은 향내가 독해 참배를
마치고 앞 마당에 자리를 잡고 기도를 드린 후
티벳 스님과 이런 저런 법담을 나눈 후 하산했다.
불교의 가을은 입추 혹은 백중으로부터 시작된다.
여름내 땀흘린 곡석을 부처님께 바치고,추수의
풍요를 누림과 동시에 매서운 동절기를 준비하기
위한 달포의 시간이 소요되는 바 즐거운 바쁨이
이어지는 것이다. 가을은 사색의 계절이자 사유의
시간이다.새로운 변화의 시간속에서 자신을 되돌아
보는 회광반조(빛을 돌이켜 자신을 관조함)의 나날을
지어갈지니 바로 불보살님과 조사님을 만나 뵐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따로 정진의 시간을 갖을 필요도
없이 걸으며 보며 그 모든 것이 부처님 십이인연의
법칙임을 새겨 무심과 방하착의 부처님 살림을 지어
갈수 있는 거룩한 불제자의 시간이 되는 것이다.
가을 하늘이 맑았다.걷고 오르는 숨결은 거칠지만
이즈음 온 산과 들이 부처님의 화엄세계(만물이 자기
고유의 성품으로 부처님 진리의 장엄된 모습으로
펼쳐짐)를 전하며 만상 모두가 자기 불성으로
아름다움을 보여 주고 있다. 서 있는 나무는 나무대로
가을 바람을 맞이하며 또 다른 소식을 주고 받는 모습,
구름은 구름대로 땅을 내리보며 땅의 변화를 응시하는
가운데 성주괴공,흥망 성쇠의 시간들을 관조하는 '직관과 달관'의 모습을 보여주니 어찌 이 가을을
노래하지 않으리오. 빈 의자가 '나그네와 주인'이 하나임을 보여 주고 있었다. 부처님과 유마거사는 불이의 법문을 전했으니 이 빈 의자는 힘들고 다리 아픈 나그네를 위한 자리로 우리 역시 힘들고 연약한 중생을
보듬으라는 가르침의 현장인 것이다.
멀리 논산 탑정호가 보였다. 멀리 계룡산 능선이 보였다
이 산이 물이 많은 계곡이었다면 명산이 됬을텐데
아쉽게도 물이 약하다.다만 힘들게 오른 정상은 논산
공주 일원을 망망대해 보듯 시원한 시각을 더해 주었다.
용인봉의 적막을 누린후 올라온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해 내려 왔으나 그만 길을 잃었다. 초행 산길은
짐작의 방향보다 착오가 자주 일서난다.도무지 주차한
곳을 잃고 당황했다. 저녁 시간을 대비해 후레쉬를
두 개 준비해 다니지만 한참을 오르 내리다 다시 산
능선으로 다시 오르기로 했다. 거기 하산시 보던 빈
의자가 나를 반겨 주섰다. 능선을 오른후 다시
산짐승들이 다니던 다져진 사선길을 타고 겨우 내려 왔다.초행길 그리고 또 다른 하산길을 좀 위험하다.
결국 모르면 출발선상에서 다시 시작하라는 소중한
가르침을 또 배웠다.
해는 져 가고,코로나로 감축제가 폐지되 곳곳에
당감용 감이 따다만채 땅바닥에 내 팽개쳐 졌다.
판로도 없고 수지가 맞지 않으니 수확을 포기한
것이다. 그 옛날에 무슨 창고로 쓰였음직한 건물이
숲속에 방치되 있었다. 휴양림을 답사하지 못하고
얼떨결에 오른 용인봉(한자가 없어 무슨 뜻인지?)
을 뒤로 하고 근처 법계사를 찾아 등산로 입구를
숙지한 후 다음 등정을 기약했다. 사시기도후 오후의 토막 시간이지만 시월의 가을과 지는 해가 아름다운
오후의 낭만이었다.낭만협객 ? 세사에 내가 만끽하니
내가 낭만추객이 되는 것이다. 부처님, 법신불이
펼쳐 주신 시월의 아름다움을 만끽함은 불자ㆍ수행자
의 권리다.수행과 기도란 '보고 느끼고 만끽하는
그 일념'을 말한다 온 세상이 부처님 세상임(진여)을
인식해 그 어떤 상념에 사로 잡히지 말고 '상락아정
(여여한 즐거움과 맑은 나'을 지어 갈지니,어디
부러울 것이 있으며 어느곳 하나 버릴 것이 있으랴
(무구 무원).
법계사는 108 방사로 노비구니 스님들이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는 도량이다. 몇 분 노스님들이 기거하시
는지 묻지 않았다. 일찌기 출가해 수십년 기도하면
나는 날아 다닐수 있다 생각해 노스님들이 뒤뚱대며
휘어진 허리로 걸으실 때 흉을 봤는데 내 인생 후반에
휘청이며 걷는 몰골에 스스로 아찔하게 속이 캥겼다.
법당 앞 석탑과 서녘 지는 해를 자꾸 교차해 쳐다보며
속살까진 쓰린 마음을 지울수 없었다.
서녘 노을을 맞는 바랑산 아래 노스님들이 평안한 일상끝에 사바의 열반을 이루기를 기도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아함경(3회 소리내 독경한다)
바라문 청년 스바는 세존께 사뢰었다
"세존이시여,저는 '사문 고타마는 범천에 도달하는
길을 알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은 말씀하셨다.
"청년 바라문이여,이 곳에서 나라카라마을은 가까운
곳이라고들 하는데 그 곳은 가까운 곳인가,먼 곳인가?"
"세존이시여,말씀하신 대로 이 곳에서 나라카라 마을은
가깝습니다"
"청년 바라문여,그 곳 나라카라 마을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하자.단지 나라카라 마을에서만 산 이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 마을로 가는 길을 묻는다면 이
사람은 그 길을 알려 주는데 더듬 거리거나 곤란해
하겠는가?"
"세존이시여,그와같은 일은 없습니다.왜냐하면 그
사람은 나라카라 마을에서 태어나 살았으므로 마을로
통하는 모든 길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청년 바라문이여,이 나라카라 마을에 태어나 자란
사람일지라도 혹시 다른 사람이 마을로 가는 길을
물을 때,더듬거리거나 곤란해 할지도 모른다.그러나
여래는 범천의 세계나 범천의 세계에 도달하는 길에
대해 묻는다 해도 결코 더듬거리거나 곤란해 하지
않는다.나는 범천도,범천의 세계도,범천의 세계에
도달하는 길도 알고 있다.어떻게 실천하면 범천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는지도 알고 있다.
청년 바라문여, 무엇이 범천에 도달하는 길인가.
비구는 자애로운 마음을 한 방향에 집중한다.
마찬가지로 제2ㆍ제3ㆍ제4 방향에도 집중한다.
이와같이 상하ㆍ사방ㆍ주변의 모든 곳ㆍ일체세계에
광대무량하게,원한이나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집중하여 생활한다.이렇게 자애로움을 닦아 마음이
해탈하면 원한이나 악의에 의한 행동은 이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마치 힘 쎈 사람이 소라를 불어
쉽사리 사방에 알릴 수 있는 것처럼 자애로움을 닦아
마음이 해탈하면,원한이나 악의에 의한 행동은 이 사람
에게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또 비구는 자비로운 마음,기뻐하는 마음,평정한 마음을
한 방향에 집중한다.마찬가지로 제2 ㆍ제3ㆍ제4의
방향에도 집중한다.이와같이 상하ㆍ사방ㆍ주위의
모든 곳ㆍ일체세계에 광대무변하게,원한도 악의도
없는 연민의 마음,기쁨의 마음,평정한 마음을 집중하여
생활한다.
이렇게 자비ㆍ기쁨ㆍ청정을 닦아 마음이 해탈하면,
원한이나 악의에 의한 행동은 이 사람에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마치 힘쎈 사람이 소라를 불어 쉽사리 사방에
알릴 수 있는 것처럼 자애로움을 닦아 마음이 해탈하면
분별하는 행위는 이 사람에게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청년 바라문이여,이것이 범천에 도달하는 길이다"
ㅡ아함경 , 범천의 세계에 도달하는 길.
용인봉 정상에서
용인봉에서 탑정호 보다
용인봉
양촌천(?)
바랑산 아래 법계사
바랑산 봉우리
바랑산
법계사 법당앞에서 본 석양
바랑산
양심을 내 팽개친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