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가 본 요양원
유병덕/행정학박사, 수필가
해드라인 뉴스다. 관내 요양원에서 노인을 학대가 했다는 보도다. 보도가 나가자 여기저기서 전화가 쇄도하여, 일을 할 수 없다. 다급한 마음에 담당 팀장에게 현장을 가 보자고 서둘렀다. 서해가 내려다보이는 산 중턱이다. 수평선 끝자락에는 해가 퇴근을 준비하고 있다. 조붓한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요양원이 나온다. 미리 연락을 받아서인지 원장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녀는 바로 자신의 사무실로 안내다. 원장실에 들어서니 서해가 한눈에 들어온다. 저녁노을에 비친 바다는 폭신한 새털구름으로 가득하다. 인생의 노후가 이처럼 포근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현실은 먹구름이 그득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슬픈 게 현실이다. 여기저기 아프니 젊은이 틈에 낄 수 없고 초라하기 그지없다. 조금 전 그녀 얼굴이 굳어가는 표정이다. 어눌한 말투로 요양원을 운영하다 보면 난폭한 치매 환자 때문에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자주 일어난다며 하소연이다.
현장을 둘러보자고 했다. 복도 양쪽 방에는 머리가 허연 노인들이다. 침대에 웅크려 돌아누운 이,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쭈그려있는 이, 반쯤 넋이 나간 듯 퀭한 눈으로 멍하니 허공이나 바라보는 이들이다. 어둠이 내려앉아서인지 음산하고 퀴퀴한 냄새가 저승사자의 그림자 같다. 백여 명 노인이 교도소에 있는 무기수처럼 표정을 잃고 복역 중인 듯하다. 말이 좋아 요양이지, 여기저기 고장 난 쓸모 잃은 육신의 폐기물 처리장….
“일동 차렷, 이상 무”
잠시 상념에 잠겼다가 깜짝 놀랐다. 바닥에 누워있던 이가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친다. 그의 외모가 수려하고 듬직한 장군처럼 생겼다. 처음 들어올 때는 멀쩡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난폭한 치매증세가 보인다며 걱정이다. 온종일 누워있다가 사람 소리가 나면 일어나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며 난리를 피워서 고달프단다. 이번 사건의 발단도 그이 때문이란다.
사건에 대한 자초지종이다. 언론기관에 고발한 이는 요양원에 입원해 있는 환자의 딸이다. 요양원의 사정을 잘 모르는 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똥오줌을 가리지 못해서 욕창 매트 위에서 지낸다. 오랜 시간 욕창 매트 위에서 지내면 엉덩이가 검푸르게 변하는 걸 모르고 노인을 학대했다고 흥분한 것이다. 그녀가 흥분하자 난폭한 치매 환자가 다가와서 난동부린 것이다. 자주 찾아오는 이들은 그러한 사정을 이해하고 조용히 다녀가는데 그녀는 처음이라 낯설었던 모양이다. 누가 누구를 탓해야 할지 모를 일이다.
치매가 원흉이다. 원장은 오랜 세월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치매에 대하여 관찰한듯하다. 처음 요양원에 들어올 때는 가벼운 치매 증상을 보이나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진다고 염려다. 치매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면 늦출 수 있는가 보다. 매일 주변을 산책하거나 실내에서 고무풍선 게임을 하는 이들은 치매가 와도 늦게 오며, 아이처럼 웃는 예쁜 치매란다. 이번에 사고를 낸 이는 매일 운동하지 않고 누워서 지내더니 인지력이 떨어진 게 원인이란다. 누구나 규칙적인 운동이 중요하다.
모든 삶은 죽음으로 끝난다. 우연히 왔다가 인생 끄트머리에 요양원으로 가는 게 가혹한 형벌 같다. 요양원이 천당인지, 연옥인지, 지옥인지 모르겠다. 이름만 아름답지, 감옥이나 다름없다. 자칫 잘못하면 스스로 일어서지도 눕지도 못한 채 형기도 모르고 지내려니 얼마나 답답한가. 자신의 온갖 추한 꼴을 타인에게 보이려니 자존심은 얼마나 문드러지고. 현대 의학이 선물한 유병장수라는 질병 아닌 질병이 장수를 축복 아닌 재앙으로 바꾸고 있다. 요양원은 어딘지 모르게 아득한 곳으로 떠나는, 이생의 마지막 수순인 거 같다.
머지않아 산에 둥지를 틀 나이라서, 미리 가 본 요양원이 자꾸 떠오른다. 이제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한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그들의 삶이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스스로 앞가림해야 할 텐데 속수무책이다. 같이 일했던 이를 만나도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고, 걸음걸이도 예전 같지 않다. 하느님께서 정신이라도 무뎌지라고 치매를 선사한 것인지 모르겠다. 인생의 마지막 과정이 이런 건가.
다가올 미래는 알 수 없다. 품격있는 노후를 맞이하고 싶은데 늘 물음표와 느낌표다. 먼저 달려가서 만져볼 수도 없고 다가가 찔러 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떻게든 내 앞가림은 내가 하고 싶은데 두렵다. 마지막 가는 길. 치매가 오더라도 예쁜 치매가 왔으면 좋겠다. 운동화 끈을 묶고 집을 나선다.
첫댓글 유병덕 수필가님
올려주신 수필 작품 @미리 가본 요양원@ 잘 읽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유병덕 수필가님의 수필 잘 읽었습니다
카페를 방문하시고
또 글까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