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이 거실로 돌아와보니 거실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다.
책장은 모두 열려 있었고 양탄자에도 축제 때 쓰는 색종이 조각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올가와 루디거는 안톤의 부모님이 얼마 전에 산 소파 위에서 뛰어놀고 있었다.
"너희들, 머리가 좀 이상해지지 않았니?"
안톤이 소리쳤다.
"머리가 이상해졌다구? 이상한 머리 만세!"
올가가 깔깔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그와 동시에 안톤의 얼굴에 색종이 테이프를 던졌다. 루디거는 픽 소리를 내면서 빨간 풍선의 공기를 뺐다.
"아빠도 엄마도 이제 두번 다시 파티를 열게 하시지 않을 거야!"
안톤이 외쳤다.
"어째서?"
올가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거실에서 놀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단 말야."
올가가 색종이 조각이 들어 있는 봉투를 한 개 더 뜯어 속에 들어있는 것을 소파 위에 모조리 쏟았다.
"정말? 그런 일은 상상할 수도 없어. 트란실바니아의 우리 성에서는 언제나 제일 아름답고 큰 방에서 파티를 했어."
"아빠와 엄마가 돌아오시면 어떻게 하지?"
"함께 파티를 하면 좋잖니?"
"그래!"
하고 루디거도 맞장구를 치면서 바닥을 향해 소파 위에서 뛰어내렸다.
"너희들 너무하는구나! 내 일은 조금도 생각해 주지 않는군."
안톤이 울음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난 밤마다 네 꿈을 꾸지…… 너의 씩씩하고 하얀 목이 꿈에 나타나……"
"나는 꿈에 보이지 않니?"
루디거가 화를 내면서 물었다.
"너? 글쎄, 가끔 보이지."
"정말?"
"그래. 나쁜 꿈을 꾸고 있을 때에."
루디거는 낙담해서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안톤은 화가 났는데도 불구하고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런데 누가 여기를 치울 거지?"
안톤이 큰소리로 말했다.
올가가 어깨를 움츠렸다.
"네 엄마."
"우리 엄마? 잘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그럼 네 아빠와 엄마."
"두 분 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실 것 같니?"
"난 네가 왜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지 모르겠어. 재미있는 색종이로 방이 전보다 훨씬 좋아졌잖니? 나라면 이대로 두겠어."
"그거야 너라면 그렇지만 아빠나 엄마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 두 분 다 어지럽게 해놓은 것을 싫어하셔."
"안나에게 너와 함께 치워줄 수 있느냐고 물어 봐."
"안나에게?"
그때야 비로소 안톤은 안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안나는 어디에 갔을까?"
올가가 무시하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안나는 우리들이 내쫓았어."
"내쫓았다고?"
안톤은 깜짝 놀랐다. 안나는 오늘 밤, 단 한 명 뿐인 자기 편이었는데!
"우리들이 모처럼 즐겁게 놀고 있는데 자꾸 분위기를 잡쳐버리기 때문이야."
"올가 말 그대로야. 즐거운 기분을 잡치게 했어."
루디거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리고나서 안나의 목소리를 흉내내어 소리쳤다.
"찬장이 있는 곳에 가면 안 돼! 문을 열면 안 돼! 안을 들여다보면 안 돼! 우리 것이 아니니까 안의 것을 꺼내서는 안 돼! 소파 위에 올라가서는 안 돼!"
"그래. 그래서 우리가 붙잡아서 내쫓았어."
"창문 밖으로 내쫓았어?"
"아니야…… 그저 이 방에서 내쫓았을 뿐이야."
"그럼 지금 어디 있어?"
올가는 그런 것 쯤은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어깨를 우쭐거렸다.
"네 침대에 걸터앉아서 뾰로통해 있지 않을지 몰라."
"내 침대에?"
- 이건 좀 곤란한데!
안톤은 뛰어나갔다.
안톤이 자기 방으로 들어가보니 안나는 책상을 향해 앉아 있었다. 안나가 무뚝뚝하게 고개를 들고,
"방해하지 마. 난 지금 책을 읽고 있으니까."
라고 말했다.
"안나, 그런 말 하지 말고 부탁이니까 이쪽으로 와."
안톤이 부탁했다.
"난 그런 야단법석을 떨면서 노는 것은 딱 질색이야."
안나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좀 도와 줘."
"난 책을 읽고 있어."
안나가 그렇게 말하고 책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로미오와 줄리엣'이라고 쓰여 있었다.
"이 책을 읽었니?"
"나……"
안톤이 난처해서 우물거렸다.
"으응, …… 아주 지루했어."
"그래! 처음에는 확실히 지루해. 그렇지만 계속 읽고 있으니까 마지막 부분에는 근사하던데."
이렇게 말하고 안나는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그럼 마지막까지 다 읽었니?"
"아, 아니."
안톤은 어째서 안나가 근사하다고 생각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이건 사랑 이야기야.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연인이 서로 사랑을 했어. 그리고 아무도 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수 없었어. 죽음이라도."
"정말?"
"그래. 그리고 줄리엣이 죽자 로미오는 주저하지 않고 그 뒤를 따라 저 세상으로 갔어."
"그렇지만 줄리엣 쪽은 정말로 죽지 않았잖아?"
안나가 눈썹을 찌푸렸다.
"그럼 넌 끝까지 읽었구나."
"아니야. 아빠가 결말을 가르쳐 주셨어."
안나는 조바심이 나는 듯한, 그리고 화가 난 듯한 눈짓을 했다.
"안 죽었든지 죽었든지 어쨌든…… 두 사람은 결국 죽게 되잖아. 그리고 영원히 맺어졌어. 우리가 언젠가 그렇게 될 것처럼 말야."
안톤은 등골이 오싹했다.
"그렇지만 이건 슬픈 이야기라고 생각해."
라고 성급히 말했다.
"슬픈 이야기?"
안나가 어리둥절해서 안톤을 쳐다보았다.
"이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근사한, 그리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사랑 이야기야!"
"그건 그렇지만 로미오도 그렇고 줄리엣도 그렇고 사실은 살고 싶어 했어. 두 사람 다 부모님의 집안끼리 서로 다투었기 때문에 죽지 않으면 안 되었던 거야."
"그래, 살아 있는 쪽이 더 좋다니! 영원한 사랑과 비교하면 그까짓 것 쯤은 아무 것도 아니야!"
안나가 훌쩍훌쩍 울면서 일어나 안톤에게서 등을 돌렸다. 안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바로 그때,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올가가 문으로 고개를 들이밀었다.
"뭐, 다투기라도 하니?"
라고 묻고 올가는 심술궂게 웃었다.
"자, 이제 꾸물거리지 마. 지금부터 오늘 밤의 중요 행사가 시작 돼. 트란실바니아의 달걀과 토마토 춤이야."
올가는 달걀과 토마토가 잔뜩 들어 있는 접시를 의기양양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으로 무엇을 할 거야? 정신이 돌았니?"
안톤이 소리쳤다.
올가는 깔깔 웃었다. 그리고,
"그래. 우리들은 정신이 돌았어."
라고 말하고 모습을 감추었다.
"안나, 부탁이니까 좀 도와 줘!"
안톤이 열심히 부탁했다. 그리고나서 올가의 뒤를 따라나갔다.
거실에 가니 올가가 접시를 탁자 위에 놓고 달걀과 토마토를 들고서 소파로 뛰어올라갔다.
"자, 여러분. 여기를 보세요. 지금부터 자이펜슈바인의 올가양이 희한한 트란실바니아의……"
여기까지 말했을 때에 현관의 초인종이 울렸다.
올가의 뽐내던 웃음이 사라졌다.
"누굴까?"
안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잘 모르겠어. 불평하러 온 이웃집 사람일지도 몰라."
이번에는 현관문을 세게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몹시 화가 나있는 것임에 틀림없었다. 두드리는 소리는 온 집안에 울려퍼졌다. 올가가 몸을 벌벌 떨었다.
"와, 왔구나!"
"누, 누가?"
루디거가 물었다.
"흡혈귀 사냥꾼 패들이야."
올가는 벌벌 떨면서 대답했다.
달걀과 토마토를 난폭하게 접시에 올려놓고 올가는 창가로 뛰어갔다.
"어떻게 하지?"
루디거가 물었다.
"도망가자!"
올가가 창문을 힘껏 열었기 때문에 화분 두 개가 땅바닥으로 굴러떨어져 깨졌다.
"그렇지만 문을 안열어 주면 되잖아?"
하고 루디거가 말했다.
"그러면 문을 부수고 들어올 거야!"
"올가! 이러한 상태로는 도저히 날 수 없어."
다시 또 문을 쾅쾅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올가가 비명을 지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기다려, 올가!"
라고 외치면서 루디거도 올가의 뒤를 따라갔다.
안톤은 휴 하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러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점점 거세졌다.
- 누굴까? 이웃집 사람일까? 경찰일까?
안톤은 머뭇거리면서 현관문으로 다가가 말을 꺼냈다.
"누구세요?"
킬킬대며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나서,
"나야, 안나야."
라는 소리가 났다.
"안나?"
"아무래도 좋으니까 문 좀 열어."
안나가 초조한 듯이 문을 두드렸다.
안톤이 문을 열었다.
"이제 잘 됐니?"
안나가 장난기 어린 웃음을 떠올리면서 안으로 들어왔다.
"뭐가?"
"올가를 쫓아내기 위한 책략이었어."
안나가 거실을 살펴보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어."
안톤이 말했다.
"아까 말이야, 쾅쾅 하는 큰 소리가 나지 않았어? 그건 내가 한 거야."
안나가 웃으면서 안톤에게 주먹을 보여주었다.
"조금 아팠지만 그래도 너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기쁘게 했지."
"날 위해서?"
안톤은 놀랐다.
"그래! 네가 도와달라고 말했으니까."
"도와주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 문을 쾅쾅 두드리면 어떻게 해!"
"그것이 바로 책략이었어. 올가가 쾅쾅 하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말했거든."
"왜 그럴까?"
"틀림없이 그 흡혈귀 사냥꾼들과 관계가 있을 거야. 성으로 들어와서 올가의 부모님을 …… 죽였거든."
"불쌍한 올가!"
안톤은 입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 순간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빨개졌다.
- 이럴 때에 올가를 동정하다니. 안나에 대해서 변명할 여지가 없잖아.
안나는 눈을 깜빡거리면서 안톤을 쳐다보았다.
"결말은 그것 뿐이니? 너를 구해주기 위해 내가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구나."
"목숨을 걸고?"
"우선 들키지 않도록 살금살금 복도를 걸어가지 않으면 안 되었고 그리고나서 현관에 서서 언제까지나 계속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지 않으면 안 되었어…… 혹시 누군가에게 들켰을 때의 일을 생각해 봐! 여자 강도 쯤으로 생각되어서 붙잡혔을지도 몰라."
"정말 친절한 일을 나에게 해 주었구나…"
안톤이 난처해서 이렇게 말했다.
"친절,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
"아, 아니야.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즉 …… 용기있는 행동을 해주어서 고맙다는 말이야……"
"그럴 거야……"
안나가 가슴을 폈다.
"그럼 지금부터 방을 치우자."
안톤이 조그만 목소리로 말하고 엉망진창이 된 거실을 우울하게 바라보았다.
"나도 도와 줄게. 둘이서 하는 편이 빨리 끝날 거야."
안나가 자청했다.
안톤은 헛기침을 했다.
"그것 참, 너무 친절…… 아니 너무 다정하게 대해 주어서……"
"다정하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안톤도……!"
라고 되풀이해 말하면서 안나는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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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th 꼬마흡혈귀의 사춘기[12]-거실에서의 대소동-
Mani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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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24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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