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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태풍이 왔다.
매달려 있어야 할 나뭇잎들이 모두 땅으로 피신해 내려온 듯하다.
휴교령이 내렸다는 문자가 와있고, 우리는 출근할 모양이다만 느긋하게 신문을 읽고 있다. 바람이 점점 강해지고 있고 태풍이 내가 읽고있는 신문 페이지를 서둘러 넘겨대고 있다. 그러다가 한 곳에서 딱 멈춘다.
'26년' 에서의 한 혜진
한 혜진이라는
배우를 오늘 처음 신문에서 봤다. 알고보니 힐링캠프라는 유명한 프로를 진행한다고도 하고..
그래서
신문에 난 사진을 가져왔다. 아니다. 그 사진 대신 '26년' 이라는 만화가 강 풀의 만화검색을 하다가 그 원작 만화를 영화로 만든다느니 하는 곁다리 어느 사이트에서 얻은 사진을 여기 넣었다. 사연은 어쨌든 사진은 멋지지?
26이라는 숫자가 어디서 왔을까?
강 풀은 무슨 계산으로 '26' 이라는 숫자를 만들었을까? 함 계산해 보까...
2012 - 1980 = 32년이니 이건 아니고.
아예 거꾸로 역산을 해보까? 2012 - 26 =1986년이 되네. 아시안 게임이 열리는 기간이었고..그러면 전 두환 저격 작전이 아시안 게임을 전후해서 벌어진다는 소리인가?
그러면
이 만화는 거사가 이루어지는 해를 기준으로 1980년에서 26년이 지났다는 그런 소린 모양이네. 아하 어떤 계산을 하든 그 기본이 되는 수치는 1980 인거 맞지? 저 사진 속 한 혜진이라는 애는 그러면? 그렇다면? 저 애는 그 아시안 게임과 맞물리는 사격선수일런가? 뭐 그런 정도는 아닐테지만 하여튼 만화가 강풀은 말하더라 잊기 전에 만화로 그려야겠더라고...
맞는 말이지
1980년이면 벌써 그 해에 태어났다고 해도 나이가 얼마야? 서른이 넘은 거지? 어이쿠.. 정말 그렇네. 잊기 전에 그려두길 잘했네. 고마운 일이지.
바로 그 1980년 봄
'서울의 봄'이라는 말이 신문 방송을 도배 하다시피 했었다.
1979년 10월인가
박 정희가 죽었다. 김 재규가 죽였는데 모두들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었다. 와, 박 정희가 죽을 수도 있구나 하고..박 정희를 죽인 김 재규에 대한 말들도 많았지만 그의 행위에 대해서는 대부분 '대통령 살해' 라는 정도로만 언급되었었다. 그 누구도, 아무도 그를 죽이지 못했는데 김 재규는 죽였었다. 어쨌든 김 재규는 그런 일을 해냈다. 그를 향한 나머지 모든 말들은 모두 행동하지 못한 놈들이 하는 그런 상투적인 말들 뿐이었다. 그들 모두는 한 발 빼고 선 사람들이었을 뿐이었다..
김 재규는 잘못 생각했었던 듯 하다.
그는 자기가 행동하면 유신으로 고난받았던 그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행동에 당연히 박수쳐줄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듯 했다. 그는 전직 대통령을 살해한 자로 언론에 얼굴이 나올 때마다 사람들이나 언론의 태도에 좀 황당해 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었다. 그토록 숱한 국민들이 염원해 왔었던 일을 자신이 해내었는데 이거 왜 이럴까? 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숱한 루머와 숱한 ~카더라는 설이 언론뿐만 아니고 모든 대한민국 국민들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서나 흘러나왔다. 그리고 전 두환의 이름이 들먹여진 것은 다음 해 봄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다. 겨울들어 간혹 그의 이름이 나오긴 했었지만 워낙 사람들의 기세가 강해 그도 처음에는 자기가 나라를 말아먹을 생각은 없었던 듯한 분위기를 주었었다. 노 태우가 야전군을 데리고 한강을 넘어왔을 때도, 12.12사태를 누가 최종정리 했는가를 따질 때조차도 사람들이나 그 자신이나 진짜로 자기가 박 정희 다음을 기획한다는 느낌은 던져주지 못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봄이 왔다. 1980년.
모두들 그 동안 찍소리 한 번 못해본 사람들이, 신문들이, 방송들이 모두들 지 하고싶은 말을 하고 또 했다. 모두들 너무 많은 말을 하고 다녔다. 대학들도 모두들 이제는 기세좋게 대모를 했고 그 대모를 모두들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대모가 조금 사그러들었다. 가만있자. 이러면 또 먼 일이 생길 지 몰라. 조금 자제하자. 그렇게 5월은 차라리 대모가 수그러들었던 시기였었다. 그 쯤에서 외국 언론에 전 두환의 이름이 들먹여지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전 두환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모두들
합동수사본부장인 전 두환이에게 책잡히지 않도록 대모도 자제하자, 시부리는 짓도 좀 삼가하자, 좀 조심하자. 이 천금같은 기회를 그럴리는 없겠지만 만약 날리게 되는 일이 벌어지면 그 천추의 한을 어찌 삭일 수 있을까? 모두들 그런 느낌을 강하게 가지기 시작했었기 때문에 책잡힐 일 생기지 않도록 조심하기 시작했었다. 그러나 그 때쯤에는 이미 보안사령관을 겸한 전 두환이의 시나리오 작업이 거의 완성되었었던 것 같았다.
소문에는
경상도 마부산 쯤에 두리뭉수리한 타원을 그어 그 안을 볶아버리며 거사를 시작한다는 설도 있었다고들 했었다. 그러다가 그 타원이 광주 인근으로 낙찰로 보게 되었고 군인들을 실은 기차는 그쪽으로 향하게 되었었다, 이제 대모를 하든 않든 그 정도는 문제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었다. 우리의 맹방 미국은 전 두환이 저 나라를 먹는 게 차라리 한국을 갖고 놀기 더 좋지 않으까? 라는 계산을 했다고도 하는 설이 파다했었는데, 나라도 그렇게 계산했을 것이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 갖고 놀기가 아무래도 좀 만만치 않을터이니깐. 하여튼 데모니 깡패니 남파간첩이니 하는 말들을 엮어 광주를 계엄상태로 몰아갔었고 이미 광주를 벗어나거나 들어가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었었다.
5.16, 5.17, 그리고 5.18
이런 날짜들은 그 당시 크게 부각된 날짜들이 아니다. 그냥 신문들은 광주쪽에 남파간첩들이 폭도들을 모아 나라를 말아 먹는다는 쪽으로만 몰아갔다. 모두들 긴가민가 하면서도 다시 그 옛날 술집에서도 입도 달싹이지 못하던 박통시절의 상황에 스르르 빠져들고 있었다. 왠고하니, 박통시절에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죽어나갔으니까. 말 한마디 잘못해서리..어이없게시리..
그리고 전 두환은
핏빛얼굴로 미국 신문들의 커버를 장식하며 대한민국 대통령이 되었다. 대통령 된 기념으로 깡패나 문신을 한 놈들이나 술먹고 고함치는 얼치기들을 왕창 잡아다 군에다 맡겨버렸다. 그 당시 대한민국은 모처럼 깡패없는 세상이 되었고 지금도 그 당시의 깡패없었던 사실을 두고 전 두환이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우리 곁에 많이 있다. 그게 그 유명한 삼청교육대 이야기이다. 삼청교육대에서 죽은 선생들도 참 많았던 모양이더라. 선생들이 술 많이 먹거든, 그러니 저녁에 술먹고 낮에 고함 치지 못한 거 밤에 길거리에서 술김에 고함 좀 치다가 그대로 잡혀갔다고들 하거든.
참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두들 지네들은 천년 만년 살것처럼 하면서 막상 지가 죽을 지경만 되지 않으면 남들 죽음은 쉬 까먹는다. 박통때도 얼마나 죽어나갔는지 유명한 사람들 빼불면 그 수치를 헤아리기도 만만찮을 거라. 그런데도 지 애비애미는 죽지 않아 놓으니 깜빡 잊고는 박통 딸 대통령 시킬라고 그런다. 보배운게 그런 걸건데 좀 겁도 안날라나?
우리는
모두들 80년대 초를 전 두환이가 갑자기 만든 프로 스포츠에 열광하고 그러면서도 또한 모두들 지 먹고 잘살라고 하느라 여념없이 지냈다. 간혹 김 영삼이니 김 대중이니 하는 이야기가 살짝 나오기도 했엇지만, 그런 기사 쓴 놈들은 또 소리없이 뭉개지고 뭐 그런 시절이었었다. 그러나 이미 그 정도로 전 두환을 어찌해볼 수는 없었다.
제5 공화국
하나회
12.12
5.18
삼청교육대
박하사탕
광주
도청
님을 위한 행진곡
붉은 방
26년
너무 많은 핏빛 키워드를 양산한 자를
이제까지 용서하고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 하나 하나의 키워드 속에 얼마큼의 인명들이 피를 물고 죽어나갔는데도 그 누구도 복수를 꿈꾸지 않는다. 그런데 강 풀이라는 만화가가 자신의 능력을 그림으로나마 남겨놓으니 이제 그걸 영화로라도 만들어 몇몇 사람들에게 복수라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모양이다.
강 풀의 '26년' 3권 짜리 만화
강 풀,
그는 말한다.
'철통같은 경호 아래 여전히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면서도 ‘29만 원밖에 없다’는 발언을 일삼는 전두환 씨를 보고 많은 이들이 5ㆍ18을 기억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작품을 구상했다'고...
한 혜진은 말한다.
“심미진이 든 총이 국민들의 심장에 울림을 줬으면 한다”고..
나는
좀 그렇다. 보통사람은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단순한 정의감만으로는 복수라는 마음을 일으키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 부모자식이 당한 사람들이라면 평생사업으로 할 만한 일 아니까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더라. 내가 생각해도 내가 좀 그렇다. 그런 내가 뭐 부끄럽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여튼 내가 좀 그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광주 사람들의 후예들, 그런 면에서 좀 그렇더라. 뭐 더 잃을 게 있다고 말이지..
용서라는 게 말이지
그것은 용서를 빌 때 하는 응해주는 행위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상황인데 용서라는 말을 언급하는 것은 좀 황당하다. 그리고 곁에서 이러쿵 저러쿵 용서라는 말을 부축이는 행위도 좀 그렇고.
그리고 복수(復讐)라는 말에 대해,
복수라는 행위는,
해(害)를 받은 본인이나 그의 친족, 또는 친구 등이 가해자에 대해 똑같은 방법으로 해를 돌려주는 행위.
이 행위는 해를 받은 것에 대한 분노를 진정시켜 주는 작용을 가지고 있으므로, 본능적 행위를 강제로 억제시키는 법률제도, 특히 형벌제도가 발달되어 있지 않던 고대 사회에는 복수가 널리 행해지고 있었다. 예를 들면, 고대 게르만 사회에서는 혈수(血讐)라는 제도가 존재하여, 어떤 씨족의 구성원이 다른 씨족의 구성원으로부터 살해되었을 때에는 피해자가 속한 씨족의 구성원은 가해자가 속한 씨족의 누구에 대해서도 피의 복수를 할 권리와 의무가 부여되고 있었던 것과 같다.
그러나 이 혈수와 같이 사적인 복수는 폐해가 매우 컸기 때문에 국가조직이 발달함에 따라서 점차 금지되어 왔으며, 사적인 손해배상제도와 공적인 형벌제도에 흡수되었다.
| 두산백과 |
그러나,
폐해가 커다는 것이 누구의 폐해가 커다는 말인지 명확하지 않다. 국가의 폐해가 크다면 그 국가의 일부 국민이 당한 아픔을 헤아릴 줄 아는 국가일 경우에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런 제도를 구비한 국가는 좀체 찾아보기 어렵지 않은가? 하여튼 집단의 한 개체이기도 한 자신의 폐해는 아닐 것이다. 그리고 사적 손해배상과 공적인 형별이 시행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에 대한 어떤 말도 없다. 그것은 그냥 니가 참거나 못난 니가 당해라라는 강자의 논리가 숨어있는 것 같지 않나?
광주사건만 해도 그렇다.
피해자가 용서하려 해도 어디 잘못했다며 머리를 조아리는 놈이 있어야 그런 시늉이라도 해볼 건데 그게 그렇지가 못했거든. 결국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국가에서 손해배상 시늉 비슷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곁에서 봐도 너무 엉성했었다.
그렇다면,
다시 복수로 돌아가게 된다. 왜 복수가 만화나 영화라는 장르의 화두가 되어버렸을까? 단지 어느 일 개 만화가나 영화감독일지라도 그런 주제를 화두로 삼게 된 그 기저에 깔려있는 감정의 편린들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다시말해 그런 생각을 품고있는 사람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기획이 아니냐는 거라.
다시 복수라는 말이 던지는 울림에 대해서,
복수라는 제도를 여전히 존속시키는 국가체제는 이제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모두들 국가주의가 우세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복수라는 행위는 어차피 합법적인 기회를 얻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복수라는 주제에 대한 모색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런 점에 대해 생각해 보건데 아직 완전히 사회적인 합의에 이르지 못한 그런 행태가 아니냐는 거라.
감정적으로만 살 수는 없지만,
사람이 그렇다고 감정 빼불고, 성깔 빼불고 이성적으로만 생활하는 것이 어떻게 가당키나 할까?
어쨌거나
난 당한 자들의 그 어쩌지 못해온 사실이 곁에서 보기에 좀 그렇다. 그런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 너는 가능하겠는가? 너라면 할 수 있겠는가? 라고 물을 일은 아니다. 그 원한을 직접 당한 당사자만이 답할 수 있는 질문이다. 피상적으로 돌려대며 말하는 작태도 또한 복수를 회피하려는 말장난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누군가는 말하더라.
복수는 국가의 법체계와 개인의 용서 사이에 위치하는 형태이다.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개인이 실행하는 행위이다. 그로 인한 국가의 제재를 기꺼이 받겠다. 설사 그것이 죽음이라는 제재일지라도..
첫댓글 경상도 마부산 쯤에 두리뭉수리한 타원내에 사는 사람들 '우리 박근혜, 묻지마 박근혜"로 넘치는 걸 보면
어쩔꼬.... 니는 목숨을 내놓아야 되겄다. 너를 살릴려면 필사적으로 해결해야될 일은 자명하다. 오늘 결과를 기다린다...
그때,
마부산을 비켜갔거든, 마부산이 아닌 광주로 비켜간 거 혹시 우리 바그네님 음덕인지도 모르것고..바그네님은 그래도 전두환이 한테 섭섭해서 속으로는 꼬누고는 있다고 하고..
저거 아부지 죽자마자 전두환이가 입싹 닦더라네..겉으로는 박통 이름 빌려서리 명분은 취하면서..속 사정은 그렇다는 설이 있더라..
그래서 우리 마부산 사람들 그거 지금도 고마워하는 지도 모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