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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뇌지(雷地) 예괘(豫卦) | [58] 중택(衆澤) 태괘(兌卦) |
[주역강설]▶ 태괘(兌卦)가 하괘(下卦)일 경우, 한 음(陰)이 아래의 두 양(陽)의 보조를 받으면서 잘 이끌고 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기뻐하는 상황이 된다. 이 경우 문제가 있다면 현재의 상태에 안주하려는 보수화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태괘(兌卦)가 상괘(上卦)일 경우에는, 상육(上六)이 자리에 미련을 가지고 물러나지 않고 모든 정책에 관여하기 때문에, 실무자들을 힘들게 하는 상황을 만들기 쉽다. 그리하여 전체적으로 보면, 현재까지의 축적된 것으로 자족하여 기뻐하기도 하고, 안주하여 변화를 기피하는 상황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괘의 이름을 ‘기뻐한다’는 의미에서 ‘태(兌)’라고 했다.
*—— [중택태(重澤兌)의 괘사(卦辭)] ——*
| 兌, 亨, 利貞. |
[58兌] 기뻐하는 형국이다. 밝은 마음으로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해야 한다.
* [강설(講 說)] ————
『역전』에서 말했다. “兌는 기뻐함이니, 기뻐하는 것은 밝은 마음을 이루는 길이다. 남을 기쁘게 하여 남이 기뻐하여 함께하지 않는 이가 없으니 족히 (세상의) 밝음을 이룰 수 있다. 그러나 기뻐하는 道는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 道가 아닌 것으로 기쁨을 구하면 奸邪함과 阿諂함이 되어 뉘우침과 허물이 있다. 그러므로 바르게 함이 이롭다고 경계한 것이다.”
[傳] 兌는 說也니 說은 致亨之道也라 能說於物하여 物莫不說而與之면 足以致亨이라 然爲說之道는 利於貞正이니 非道求說이면 則爲邪諂而有悔咎라 故戒利貞也라
*—— [중택태(重澤兌)의 단전(彖傳)] ——*
[58兌] 彖曰, 兌, 說也. 剛中而柔外, 說以利貞.
是以順乎天而應乎人. 說以先民, 民忘其勞,
說以犯難, 民忘其死, 說之大, 民勸矣哉!
단(彖)에서 말했다. “태(兌)는 기뻐하는 상황이다.
굳센 것이 중심(中心)에 있고 부드러운 것이 밖에 있으므로 기쁜 마음으로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한다. 그리하여 하늘에 따르고 사람에 응하는 것이다.
기쁨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솔선(率先)하면 백성들이 그 노고를 잊을 것이고,
기쁨으로써 국난(國難)에 대처하면 백성들이 그 죽음을 잊을 것이니,
기쁨의 큰 도리(道理)여, 백성들이 열심히 하는구나!”
· ‘說以犯難’에서 ‘犯’(범)은 ‘과감하게 극복하다’. ‘難’(난)은 ‘간난(艱難), 국난(國難)’의 뜻.
· ‘民勸矣哉’에서 ‘勸’(권)은 ‘권장하다’, 열심히 하도록 서로 권장하는 것.
* [강설(講 說)] ————
태(兌)는 ‘기쁨’을 뜻한다. 굳센 양(陽)이 중심(中心)에 있다는 것은 이효(二爻)와 오효(五爻)를 말하고 고 부드러운 음(陰)이 위에 있다는 것은 삼효(三爻)와 상효(上爻)를 말한다. 위는 밖이므로 ‘밖에 있다’고 했다. 기뻐하면서도 스스로 안주하지 않고 남을 이롭게 하고 바르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은 하늘의 이치[天命]이다. 그래서 ‘하늘에 따르고 사람에 응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나도 기쁘고 모든 사람이 다 기쁘게 된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다음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범(模範)을 보이면 백성들도 본받아 기쁘게 일할 것이다. 그래서 ‘기쁨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솔선(率先)하면 백성들이 그 수고로움을 잊을 것이다’라고 한 것이다. 나라의 경우, 모든 일에 화합(和合)하여 기쁜 마음으로 대처한다면 어떠한 국난(國難)에도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이다. 그래서 ‘기쁨으로써 국난(國難)에 대처하면 백성들이 그 죽음을 잊고 싸운다’고 한 것이다.
이는『논어(論語)』첫 장(章)에서 말하는 “배우고 또한 익히면 기쁘지 아니한가?”라는 말씀을 두고 생각하면 태괘(兌卦)는 계속되는 ‘학문의 즐거움’으로 풀 수 있다. 공부를 하는 것이 진정으로 기쁘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고 정진(精進)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기뻐서 공부하면 다른 사람도 분발(奮發)하게 만든다. 그래서 “벗이 멀리서 찾아오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했다. ‘벗’은 학문을 함께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이 기쁨의 위대함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兌의 뜻은 기뻐함이다. 한 陰이 두 陽 위에 있으니, 陰은 陽을 좋아하고 陽에게 좋아하는 바가 된다. 陽剛이 中에 거하였으니 中心이 誠實한 것이요, 부드러운 爻가 밖에 있으니 남을 대하기를 부드럽게 화합하는 상이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능히 바른 것이다. ‘利貞’은 기뻐하는 道는 마땅히 正道여야 하는 것이다. 괘에 剛中의 德이 있으니 바르게 할 수 있는 자이다. 기뻐하고 바르니 이 때문에 위로 天理에 순하고 아래로 人心에 응하는 것이니, 기뻐하는 道에 지극히 바르고 지극히 善한 것이다.”
[傳] 兌之義는 說也라 一陰이 居二陽之上하니 陰說於陽而爲陽所說也라 陽剛居中하니 中心誠實之象이요 柔爻在外하니 接物和柔之象이라 故爲說而能貞也라 利貞은 說之道宜正也라 卦有剛中之德하니 能貞者也라 說而能貞하니 是以로 上順天理하고 下應人心하니 說道之至正至善者也라
*—— [중택태(重澤兌)의 상전(象傳)] ——*
[58兌] 象曰, 麗澤, 兌, 君子以朋友講習.
상에서 말했다. “못이 연결된 것이 태(兌)이니,
군자(君子)는 이 괘의 이치를 살펴 붕우(朋友)와 강습한다.”
* ‘麗’는 ① (려)로 읽으면 ‘곱다, 아름답다’ ② (리)로 읽으면 ‘걸리다, 걸려 있다. 연결되다’
* ‘朋友講習’에서 ‘講習’이 나온 것은 태괘(兌卦, ☱)이다. ‘강습’은 ‘말’로 하는 것이니, ‘말’의 주역 코드는 태괘이기 때문이다. 태괘(兌卦)가 상하로 중첩(重疊)된 것은 ‘공부[講習]하는 벗’이 함께하는 상(象)이다.
* [강설(講 說)] ————
기쁨이 이어진 것이 태괘(兌卦)이다. 홀로 있으면 안주하기 쉽다. 발전을 위해서는 기쁜 마음으로 모여서 활동하는 것이 좋다. 벗들끼리 서로를 독려하면서 함께 나아가는 것이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공자는 “글을 배우기 위해서 벗을 모으고 벗들은 서로 진리에 나아가도록 돕는다.”고 했다. ‘붕우(朋友)까지 강습한다’는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다.
『역전』에서 말했다. “麗澤은 두 못이 서로 붙어 있는 것이다. 두 못이 서로 붙어 있어 서로 적셔주니, 서로 ‘더욱 적셔줌’[滋益]이 있는 象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그 象을 보고서 朋友들과 講習하니, 朋友들과 講習함은 서로 有益하게 하는 것이다.”
[傳] 麗澤은 二澤이 相附麗也라 兩澤相麗하여 交相浸潤하니 互有滋益之象이라 故君子觀其象而以朋友講習하나니 朋友講習은 互相益也라
*—— [중택태(重澤兌)의 효사(爻辭)] ——*
‘上六, 引兌.’ ‘九五, 孚于剝, 有厲.’ ‘九四, 商兌未寧, 介疾有喜.’ ‘六三, 來兌, 凶.’ ‘九二, 孚兌, 吉, 悔亡.’ ‘初九, 和兌, 吉.’ |
* [중택태(重澤兌) 초구(初九)의 효사] ——
[58兌] 初九, 和兌, 吉.
象曰, 和兌之吉, 行未疑也.
초구(初九)는 화합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면 길하다. 상에서 말했다.
“화합하는 마음으로 기뻐하면 길한 것은 행하는 것이 의심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 [강설(講 說)] ————
기쁨의 상황에서 초구(初九)는 화목한 가정의 막내아들에 해당한다. 스스로 기뻐하기도 하지만 모든 가족이 초구(初九)를 통하여 기뻐한다. 그는 모든 가족의 귀염둥이인 것이다. 그 하는 짓이 착하고 순수하면 온 가족의 기쁨을 만들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역전』에서 말했다. “初九가 비록 陽爻이나 기쁨의 體에 있고 가장 낮은 자리에 있으며 서로 應하는 바가 없으니, 이는 몸을 낮추고 和順함으로써 기뻐하여 私事로운 바가 없는 자이다. 和順함으로써 기뻐하여, 偏僻되고 私事로운 바가 없다면 이는 기뻐함의 正道이다. 陽剛은 낮지 않은데 아래에 거함은 恭遜함이며, 기뻐함에 처함은 和順함이요, 應함이 없는 것은 偏僻되지 않은 것이니, 기쁨에 처하기를 이와 같이 하기 때문에 吉한 것이다.”
[傳] 初雖陽爻나 居說體而在最下하고 无所係應하니 是能卑下和順以爲說하여 而无所偏私者也라 以和爲說而无所偏[一无偏字]私는 說之正也라 陽剛則不卑요 居下則能巽이며 處說則能和요 无應則不偏이니 處說如是라 所以吉也라
* [중택태(重澤兌) 구이(九二)의 효사] ——
[58兌] 九二, 孚兌, 吉, 悔亡.
象曰, “孚兌之吉” 信志也.
구이(九二)는 한마음[믿음]으로 기뻐하면 길하여 후회함이 없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한마음으로 기뻐해야 길한 것은 뜻을 믿어주기 때문이다.”
* [강설(講 說)] ————
구이(九二)는 하층부의 중심(中心)에 있어 중(中)의 덕(德)을 지니고 있다. 그러므로 기쁨의 상황에서 전체를 기쁘게 하는 중심(中心) 역할을 한다. 구이(九二)가 모두와 한마음[믿음]을 가지고 기뻐하면 다른 구성원들도 그를 믿어주고 기뻐한다. 그런데 구이(九二)는 음(陰)의 자리에 있으므로 부드러운 음(陰)의 자질을 발휘해야 한다. 상층부의 짝이 구오(九五)가 굳센 양(陽)이므로 하층부의 구이(九二)는 부드러움으로 화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뉘우침이 없다. 그것이 모두가 함께 기뻐하여 길(吉)하고 화합하는 길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二는 (가까이 있는) 柔弱한 陰[六三]을 받들어 친하니 陰柔는 小人이다. 小人을 좋아하면 마땅히 뉘우침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九二는 剛中의 德으로 믿음이 안에 충만하니 비록 小人을 가까이 하나 스스로 지키고 (中德을) 잃지 않는다. 군자는 和順하면서도 附和雷同하지 아니하여 기뻐하면서도 굳센 中德을 잃지 않는다. 그러므로 吉하고 뉘우침이 없는 것이다.”
[傳] 二承比陰柔하니 陰柔는 小人也니 說之則當有悔라 二는 剛中之德으로 孚信內充하니 雖比小人이나 自守不失이라 君子和而不同하여 說而不失剛中이라 故吉而悔亡이라.
* [중택태(重澤兌) 육삼(六三)의 효사] ——
[58兌] 六三, 來兌, 凶.
象曰, “來兌之凶” 位不當也.
육삼(六三)은 와서 기뻐하면 흉하다. 상에서 말했다.
“와서 기뻐하면 흉한 것은 자리가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 [강설(講 說)] ————
육삼(六三)은 양(陽)의 자리에 음(陰)이 와서 부정(不正)하고, 또 중심(中心)에서 벗어나 있으니 부중(不中)이다. 그러므로 유약(柔弱)하고 떳떳하지 못하다. 전체가 기뻐하는 상황에서 자신의 도리(道理)를 바르게 하지 못하는 자이다. 그래서 아래에 있는 굳센 양(陽)인 구이(九二)에게 ‘(끌려) 와서’ 기뻐할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자기의 감정에 빠져드는 것은 순리(順理)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흉(凶)하다고 한 것이다. 육삼(六三)은 양(陽)의 자리에 있으므로 그 굳센 자질을 되살려 스스로 자신의 덕(德)을 키우고 때를 기다려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六三는 柔弱한 陰으로 中正하지 못한 자이니, 기뻐하기를 道理에 맞지 않게 하는 자이다. ‘來兌’는 찾아와서 기쁨을 구하는 것이다. 아래에 있는 陽과 가까우니, 자기의 몸을 굽히고 道理가 아닌 짓을 하여 찾아와서 기쁨을 구하니, 이 때문에 凶한 것이다. 안으로 오는 것을 來라 한다. 上下가 모두 陽인데 홀로 안으로 오는 것은 體가 같고 陰의 성질은 아래로 내려오기 때문이니, 道를 잃고 아래로 내려오는 것이다.”
[傳] 六三은 陰柔不中正之人이니 說不以道者也라 來兌는 就之以求說也라 比於在下之陽하니 枉己非道하여 就以求說하니 所以凶也라 之內爲來라 上下俱陽이로되 而獨之內者는 以同體而陰性下也일새니 失道下行也라.
* [중택태(重澤兌) 구사(九四)의 효사] ——
[58兌] 九四, 商兌未寧, 介疾有喜.
象曰, 九四之喜, 有慶也.
구사(九四)는 기쁜 상황을 헤아려보면 편안하지 않다.
사이에 끼인 것을 병으로 여기면 기쁨이 있을 것이다. 상에서 말했다.
“구사의 기쁨은 경사가 있기 때문이다.”
* ‘商’은 ① ‘장사하다’ ② ‘헤아리다’는 뜻이 있다. 여기서는 ‘헤아리다, 요리조리 따지다’
* [강설(講 說)] ————
구사(九四)는 화목한 집단의 상층부에서 가장 아랫자리에 있다. 전체 분위기가 기뻐하는 상황이지만 구사는 마냥 편안할 수가 없다. 아래에서는 부드러운 육삼(六三)이 그를 따르고 있고, 위에는 자기가 보좌해야 할 리더[九五]가 있다. 구사(九四)는 구오(九五)와 육삼(六三) 사이에 끼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기쁨의 상황을 요리조리 따지고 헤아려 보게 된다. 그래서 ‘편안하지 않은 것이다.’ 구사(九四)는 그 위상(位相)으로 볼 때 마땅히 구오(九五)를 보좌하여 전체를 잘 이끌어 나가야 한다. 구사(九四)는 음의 자리에 양(陽)이 왔으므로 부정(不正)하여 자리가 마땅하지 않고, 또 중심(中心)에서 벗어나 있다. 구사(九四)는 이를 병통으로 여기고 자신이 나아가야 할 정도(正道)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사사(私事)로운 감정으로 다가오는 육삼(六三)을 배제하고 대의명분(大義名分)을 살려 구오(九五)를 도와서 전체의 이끌어야 한다. 그리하면 경사(慶事)가 있을 것이다. 구사(九四)는 음(陰)의 자리에 있으므로 그 부드러운 자질을 십분 발휘하여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四는 위로 中正의 九五를 받들고 아래로는 柔弱한 六三을 가까이하며, 剛陽이나 처한 곳이 바른 자리가 아니다. 六三은 부드러운 陰이니 陽이 좋아하므로 決斷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헤아려 편안하지 못하다. 두 사이를 介라 이르니 分限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節槪와 지킴이 있는 것을 介라 이르니 만약 介然히 正道를 지켜 사악한 자를 미워하고 멀리하면 기쁜 일이 있을 것이다. 九五를 따르는 것이 正道이고 六三을 좋아하는 것은 삿된 것이다. 九四는 군주[九五]와 가까운 자리이니 만약 剛하고 절개 있게 正道를 지켜서 사악한 자를 미워하고 멀리하면 장차 군주의 信任을 얻어 道를 행하여 복된 慶事가 남에 미칠 것이니, 기쁜 일이 있는 것이다.”
[傳] 四上承中正之五하고 而下比柔邪之三하며 雖剛陽而處非正이라 三은 陰柔니 陽所說也라 故不能決而商度(注4)未寧이라. 兩間을 謂之介니 分限也라.… 故人有節守를 謂之介하니 若介然守正而疾遠邪惡이면 則有喜也라 從五는 正也요 說三은 邪也라 四는 近君之位니 若剛介守正하여 疾遠邪惡이면 將得君以行道하여 福慶及物하리니 爲有喜也라.
* [중택태(重澤兌) 구오(九五)의 효사] ——
[58兌] 九五, 孚于剝, 有厲.
象曰, 孚于剝, 位正當也!
구오(九五)는 깎아내는 것에 믿음을 지니고 있으면 위태로움이 있다.
상에서 말했다. “벗겨지는 것에 믿음을 갖는 것은 자리가 바르고 마땅하기 때문이다.”
· ‘孚于剝’에서 ‘孚’(부)는 ‘한마음이 되다’ 여기서는 ‘충실하다’ ‘剝’(박)은 ‘벗기다, 까발리다’
· ‘剝’은 ‘산지(山地) 박괘(剝卦)’에서 보듯이 음(陰)이 양(陽)을 깎아내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서는 상육(上六)의 음(陰)이 그러하다.
* [강설(講 說)] ————
구오(九五)는 중정(中正)의 덕(德)을 지니고 있은 태괘(兌卦)의 리더이다. 그 자질로 보아 모든 상황을 포용하여 전체를 기쁘게 이끄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자신을 보좌해야 할 구사(九四)가 뻣뻣한 하지만 끌어안아야 하고, 부정적이고 소외된 상육(上六)까지도 믿음[한마음]으로 대한다. 특히 상육(上六)은 높은 자리에 앉아서 양(陽)의 나아갈 길을 막거나 양(陽)을 깎아내리는 음(陰)이므로 위태로운 존재이다. 그것은 ‘剝’이 ‘산지(山地) 박괘(剝卦)’에서 보듯이 음(陰)이 양(陽)을 깎아내는 뜻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상육(上六)을 가리킨다. 기쁨의 상황에서 구오(九五)는 상육(上六)의 위태로움을 경계해야 한다.
『역전』에서 말했다. “九五가 존위를 얻고 中正에 있으니, 기뻐하는 道의 좋은 일을 다하는 자이다. 聖人이 다시 위태로움이 있다고 경계를 베푸시니, 堯舜의 盛大함으로도 일찍이 경계가 없지 않았으니 마땅히 경계할 바를 경계한 것이다. 비록 聖賢이 윗자리에 있더라도 천하에 일찍이 小人이 없지는 않았다. 九五가 만약 誠心으로 小人의 거짓 善을 믿어 나쁜 마음을 감추고 있는 것을 모른다면 위태로운 道이다. … ‘剝’(박)은 陽을 사라지게 하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陰은 陽을 사라지게 하는 자이니 上六을 가리킨다. 그러므로 剝을 믿으면 위태로운 것이니 九五가 기뻐하는 때에 있어 上六과 매우 가깝기 때문에 경계한 것이다.”
[傳] 九五得尊位而處中正하니 盡說道之善矣로되 而聖人이 復設有厲之戒하시니 蓋堯舜之盛으로도 未嘗无戒也하니 戒所當戒而已라 雖聖賢在上이라도 天下에 未嘗无小人이라 然不敢肆其惡也하니 聖人亦說其能勉而革面也라 … 剝者는 消陽之名이라 陰은 消陽者也니 蓋指上六이라 故孚于剝則危也니 以五在說之時하여 而密比於上六이라 故爲之戒라 雖舜之聖이라도 且畏巧言令色하시니 安得不戒也리오 說之惑人이 易入而可懼也如此니라.
* [중택태(重澤兌) 상육(上六)의 효사] ——
[58兌] 上六, 引兌.
象曰, 上六 “引兌” 未光也.
상육(上六)은 이끌어서 기뻐한다. 상에서 말했다.
“상육이 끌어당겨서 기뻐해야 하는 것은 빛이 나지 않기 때문이다.”
· ‘上六, 引兌’에서, 정자(程子)는『역전』에서는 ‘기쁨을 이끌어 연장하다’로 해석하였다. 퇴계(退溪)는 ‘引하야 兌홈이라 一云 兌를 引홈이라’를 들고 “마땅히 뒤의 해석을 따라야 할 것이다.”하였다. 주자(朱子)는 <본의>에서 정자의 해석을 따랐다.
* [강설(講 說)] ————
상육(上六)은 기뻐하는 상황에서 극(極)에 달해 있다. 태괘(兌卦)의 위상으로 보면 상육(上六)은 기쁨의 주체이다. 그래서 마냥 기쁘다. 스스로도 기쁘지만, 모든 구성원들을 이끌어서 함께 기뻐하는 원로이다. 그래서 ‘이끌어서 기뻐한다’고 한 것이다.
[주역강설]▶ 상육(上六)은 가정의 할머니요, 회사의 전직 사장에 해당한다. 그가 젊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어, 그들이 기뻐하며 즐겁게 노는 곳에 나아가면 분위기를 깰 수가 있다. 그래서 나아가지 못하고 외로울 수도 있다. 이런 경우 가장 좋은 방법은 그들이 스스로 다가오도록 하는 것이다. 그들이 다가와서 함께 기쁨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더없이 좋다. 그래서 ‘끌어당겨서 기뻐한다’고 한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상육(上六)에게는 다른 사람들을 끄는 매력(魅力)이 있어야 한다. 심신이 건강하고 정결(貞潔)해야 하며 너그럽고 따뜻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기쁨과 진리의 대한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덕(德)을 갖추어야 한다. 천지의 진리와 삶의 지혜가 담긴『주역』을 아는 것은 대단한 매력이 될 것이다.
『역전』에서 말했다. “다른 卦는 極에 달하면 변하지만 兌는 극에 이르면 더욱 기뻐한다. 上六은 기쁨의 主體가 되고 기뻐함의 極에 처하여 기뻐함을 그칠 줄 모르는 자이다. 그러므로 기쁨이 이미 지극한 데도 또 이끌어 伸長하는 것이다. 그러나 뉘우침이나 허물에 이르지 않음은 어째서인가? 그 기뻐하는 것을 그칠 줄 모름을 말했을 뿐이요 기뻐하는 바가 善인가 惡인가를 볼 수 없으며, 또한 아래로 九五가 中正을 타고 있어 奸邪하게 기쁨을 베풀 곳이 없기 때문이다. 六三은 承과 乘이 모두 正이 아니기 때문에 凶함이 있는 것이다.”
[傳] 他卦는 至極則變이로되 兌爲說하니 極則愈說이라 上六은 成說之主요 居說之極하여 說不知已者也라 故說旣極矣로되 又引而長之라 然而不至悔咎는 何也오 曰 方言其說不知已요 未見其所說善惡也며 又下乘九五之中正하여 无所施其邪說일새라 六三則承乘皆非正이라 是以有凶이라.
¶ 주역 ☞ [58] 태괘(重澤兌)의 괘사와 효사
‘兌, 亨, 利貞.’
‘上六, 引兌.’
‘九五, 孚于剝, 有厲.’
‘九四, 商兌未寧, 介疾有喜.’
‘六三, 來兌, 凶.’
‘九二, 孚兌, 吉, 悔亡.’
‘初九, 和兌, 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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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역 ☞ [58] 태괘(重澤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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