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아도(白牙島) 여행 ① : 북릉 산행
여 행 일 : ‘17. 10. 25(화)-26(수) 소 재 지 : 인천광역시 옹진군 덕적면 백아리 산행코스 : 보건소마을→선착장→봉화대→흔들바위→돌출암봉→송신탑→당산→발전소마을 고갯마루
함께한 사람들 : 좋은 사람들 특징 : 덕적면(인천시 옹진군)의 본섬인 덕적도로부터 약 1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인구 56명(2016년 기준)의 작은 섬이다. 해안선 길이도 14km에 불과하다. 선갑도와 문갑도·대이작도·승봉도 등과 함께 덕적군도(德積群島)를 이루며, 부속섬으로 오섬과 광대도·계섬·벌섬 등의 무인도가 있다. 섬의 모양은 전체적으로 'ㄷ'자형이며 주위가 모두 벼랑으로 되어있어 배를 댈 만한 곳이 거의 없는 섬이다. 다른 한편으론 남북으로 길쭉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북쪽에는 표고 145m 고지가 북동단에 위치하고, 남쪽은 141m 고지가 남단에 위치한다. 섬의 대부분은 이 두 고지를 연결하는 능선이 구릉(丘陵)을 이루고 있어 평탄면이 적다. 섬의 동편해안은 굴곡이 많고 만곡지형(彎曲地形, 활처럼 굽어져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지형)을 이루고 있다. 섬의 서편 해안은 경사가 급한 해안절벽으로 해식애(海蝕崖, sea cliff, 파도의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에 의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와 파식대(波蝕台, wave-cut platform, 암석 해안이 침식 작용을 받으면서 해식애 아래에 형성되는 평평한 침식면)가 발달했다.
▼ 찾아가는 길 : 일단은 인천연안여객선 터미널까지 와야만 한다. 백아도가 속해있는 ’덕적군도‘의 중심섬인 덕적도로 들어가는 배가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들어가는 배는 차도선(車渡船)과 쾌속선(快速船)이 있다. 차도선인 ’덕적아일랜드호‘는 1일 1회(9:50), 쾌속선은 ’코리아나호‘와 ’코리아익스프레스호(카페리)‘가 1일 3회(주말기준, 8:00, 9:10, 15:00, 날짜에 따라 시간이 다르니 사전확인 필요) 운항한다. 시간은 쾌속선의 경우 1시간 30분 정도가 소요된다. 참! 대부도의 방아머리선착장에서도 ’대부고속페리호‘가 1일 1회 운항한다고 하니 참조한다. 이때는 2시간 30분이 소요된단다. ▼ 2시간을 훌쩍 넘기고서야 덕적도에 이를 수가 있었다. 차도선을 탔으니 어쩌겠는가. 가격이 싼 대신에 불편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아무튼 덕적도는 인천 연안부두에서 남서쪽으로 약 77㎞ 떨어진 곳에 위치한 8개의 유인도와 3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진 덕적군도(德積群島)의 본섬(인구 1천900여 명)이다. 섬의 이름은 일제강점기 때 섬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주민들의 덕성에 감동을 받아 덕적도(德積島)로 정했다고 한다. 섬 주민들의 어질고 온화한 성품과 달리 섬의 자연환경은 척박(瘠薄)한 편이다. 국수봉(해발 314m), 비조봉(292m), 운주봉(231m)을 중심으로 섬의 대부분이 산지(山地)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전체 면적 36.50㎢ 가운데 농경지는 2.77㎢에 불과하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자연환경이 장점으로 바뀌었다.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산행이 가능한 곳으로 알려져 전국의 트레커(trekker)들을 불러 모으는 요인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 배에서 내리면 덕적군도를 순환하는 또 다른 차도선인 ’나래호‘가 기다리고 있다. 이 배는 짝수 날이냐 아니면 홀수 날이냐에 따라 방향이 다르다. 짝수 날에는 덕적도에서 문갑도와 지도·울도를 거쳐 백아도로 가고, 홀수 날에는 반대방향으로 문갑도와 굴업도를 거쳐서 백아도로 들어간다. 굴업도를 거쳐 들어갈 경우 1시간20분 정도가 소요된다. ▼ 백아도로 가는 길에 바라본 덕적도, 가운데의 바위봉우리가 비조봉(飛鳥峰 , 292m)으로 덕적도에 들른 트레커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이다. 조망(眺望)이 일품이기 때문이다. 정상에 오르면 서포리해수욕장과 선착장, 그리고 섬내의 산들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바다 위에 떠있는 올망졸망한 섬들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으로 다가온다. ▼ 나래호는 굴업도를 지나 더 먼 바다로 나간다. 해무(海霧) 사이로 거뭇하게 나타나는 수많은 섬들과 갈아서 세운 듯한 가파른 절벽은 덕적군도 초입에서 보았던 것과는 위용부터가 다르다. 눈앞에 펼쳐지는 크고 작은 무인도들이 아름다운 실루엣을 만들어낸다. 그런 아름다움은 ‘선단여’라는 세 개의 돌기둥으로 이루어진 바위섬에서 절정을 이룬다. ▼ 저 ‘선단여’에는 애달픈 남매의 사랑이야기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오랜 옛날 백아도에 늙은 부부와 남매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자 외딴섬에서 외롭게 살고 있던 마귀할멈이 여동생을 납치해갔다.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된 오빠는 배를 타고 낚시를 하던 중 풍랑을 만나 이름 모를 섬에 흘러 들어가게 된다.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이 여인은 오래전에 헤어졌던 자신의 여동생이었다. 이들의 사랑을 안타깝게 여긴 하늘은 선녀를 보내 둘의 관계를 설명해주었으나, 남매는 이 사실을 부인하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났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한다. 격노(激怒)한 하늘은 오빠와 동생, 그리고 마귀할멈에게 번개를 때려 죽게 했단다. 그 후 이곳에는 3개의 절벽이 솟아나게 되었고, 이를 애통해 하던 선녀가 붉은 눈물을 흘리며 승천했다는 것이다. ▼ 문갑도와 굴업도를 먼저 들른 배는 1시간 남짓이나 지난 후에야 허허벌판으로 이루어진 백아도선착장에 이른다. 아니 여객선 대합실까지 버젓이 갖추고 있다. 다만 산자락에다 지어놓아 눈에 띄지 않았을 따름이다. 잠깐 이 대합실은 그냥 흘려듣지 말고 꼭 기억해 두자. 백아도에 있는 두 개의 등산코스 중 ‘북릉코스’가 이 건물의 왼편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 선착장의 오른편에 거대한 바위 군락이 펼쳐진다. ‘기관차바위’이다. 그 생김새가 증기기관차와 비슷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내 눈은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다. 사람의 형상을 쏙 빼다 닮은 작은 바위 하나가 그 꼭대기에 올라앉아 있는 것이다. 고기잡이 떠난 낭군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아낙네가 영락없다. 당연히 그녀의 시선은 먼 바다에 고정되어 있다. 문득 ‘망부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그래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고 그녀의 염원이 내 가슴에까지 와 닿았나보다. ▼ 선착장에는 트럭이 두 대나 나와 있다. 민박집에서 손님을 태우러온 것일 게다. 우리 일행의 숫자가 많아 두 집에 나누어 머물기 때문에 두 대가 마중을 나왔고 말이다. 이는 탐방객의 숫자가 많을 경우 여러 집에 분산해서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이다. 잠시 후 트럭은 ‘보건소마을’에 이른다. 백아도에는 두 개가 마을이 있다. 하나는 보건소가 있는 보건소마을(옛 이름은 작은 마을)이고 다른 하나는 발전소가 있는 발전소마을(큰 마을)이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이름들이 정겹게 느껴진다. 단순함의 승리라 할 수도 있겠다. 두 마을에는 20여 가구가 살아가고 있단다. ▼ 마을 입구에 세워진 커다란 표지석에는 ‘어르금’이라고 적혀있다. 그 아래에 괄호를 여닫으면서 안에다 ‘백아도’라고 적어놓았다. 백아도에 있는 ‘어르금마을’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아무튼 오늘 저녁은 이 동네에서 묵는다. 이 마을 이장님 댁이다. 방 하나에 5~6명이 배정되었는데, 여러 사람이 함께 뒹구는 것을 싫어하는 우리 부부는 3만원의 웃돈을 주고 별도의 방을 사용했다. 숙소는 일단 깔끔한 편이었다. 물론 방마다 욕실도 갖추었다. 그리고 제공되는 식사도 훌륭했다. 도착한 날 점심부터 다음날 점심까지 네 끼가 나오는데, 매 끼마다 다른 종류의 생선이 나오는 것은 물론, 직접 기른 채소로 담았다는 여러 종류의 김치와 직접 잡은 해산물을 재료로 쓴 밑반찬들도 하나 같이 맛깔스러웠다. 섬 음식이 맛없다는 얘기는 이젠 흘러간 옛 얘기쯤으로 치부해버려도 되겠다. ▼ 점심 식사를 마친 후 북릉을 답사해보기로 한다. 들머리는 아까 배에서 내렸던 선착장의 ‘여객선대합실’ 왼쪽에서 열린다. 입구에 지워져버린 지 이미 오래인 ‘백아도 안내도’가 세워져 있으니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산길은 가파르게 시작된다. 150m도 채 되지 않는 나지막한 산임을 감한할 때 의외가 아닐 수 없다. 그만큼 섬이 작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다. 정상까지의 거리가 하도 짧다보니 그만한 고도(高度)를 높이는데도 가파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잠깐이면 가파른 구간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이후부터 산길은 완만해진다. 널따란데다 길가의 잡초까지 제거가 되어있는 등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지자체에서 심혈을 기울여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 그렇게 잠시 오르면 북릉의 정상인 봉화대에 올라선다. 누군가는 이곳을 141m라고 표기했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서너 평쯤 되는 공터로 이루어진 정상은 텅 비어있다. 정상표지석이 세워져 있지 않다는 얘기이다. 그 흔한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한가운데에 설치해 놓은 삼각점(백아도 302) 하나가 이 모든 것을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또 하나, ‘봉화대’라는 이름에 걸맞는 흔적들도 보이지 않는다. 봉화대가 있었다면 그에 어울리는 돌무더기가 있어야하건만 일절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잘못 알려진 지명인 것 같다. ▼ 정상 근처에는 크고 작은 바위들이 꽤나 많이 보인다. 하지만 길이 바위를 피해가며 나있어 산행을 하는 데는 조금도 지장이 없다. 그저 기묘하게 생긴 바위들의 형상이나 살펴가며 진행하면 될 일이다. 한자로 ‘뫼 山’자 모양을 하고 있는 아래 사진도 그중 하나이다. 전북 남원에 있는 풍악산의 트레드마크(trademark)인 바위와 거의 비슷한 풍모를 갖췄다. ▼ 잠시 후 흔들바위가 나온다. 바위절벽 위에 거대한 또 하나의 바위가 요람처럼 놓여 있다. 두세 명이서 함께 흔들면 거짓말같이 바위가 흔들린다고 한다. 하지만 집사람 혼자서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나저나 이 바위는 5년 전인 2012년에 방영되었던 KBS-2TV의 '해피선데이-1박2일' 출연자들이 뛰어놀던 명물이다. 당시 ‘나영석 PD’ 팀에서 ‘최재형 PD’ 팀으로 바뀐 제작진들은 첫 번째 촬영지로 이곳 ‘백아도’를 골랐다. 엄태웅과 이수근, 김종민, 김승우, 차태현, 성시경, 주원 등의 출연자들은 2월의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갯벌에서 ‘3종 경기’를 펼치는가 하면, 심지어는 등목까지 했었다. ▼ 흔들바위에 올라서면 시야가 툭 트인다. 그리고 주변 경관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보건소마을과 앞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오늘 걷게 될 북릉이 일목요연하게 펼쳐지는가 하면 내일로 예정되어 있는 남릉도 눈에 들어온다. 오른편, 그러니까 백아도의 서쪽 해안도 시야에 잡힌다. 날카로운 수직의 해벽으로 이루어진 게 백야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 흔들바위를 지나면서 산길은 상당히 가팔라진다. 이어서 잠시 후에는 상당히 가파른 오르막길로 연결된다. 오늘 산행에서 가장 가파른 구간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내륙의 다른 산들에 비할 바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 그렇게 올라선 봉우리에서 멋진 전망바위를 만난다. 굴업도와 가도, 각흘도 등 덕적군도(德積群島)의 섬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서해의 대표적인 해양설화(海洋說話)인 ‘망구할매’ 설화의 중심지다. 일종의 창세(創世) 신화인 망구할매 이야기는 옹진군도의 탄생기(誕生記)이다. 거인인 망구할매가 한양(서울)으로 보낼 삼각산(북한산)을 만들려고 문갑도 남쪽 선갑도에 100개의 골짜기가 있는 산을 쌓아 올렸는데, 만든 뒤 세어 보니 한 골짜기가 부족하자 화가 난 망구할매가 산을 내려쳤고 이 흙이 흩어지면서 문갑도와 울도, 백아도. 지도, 각흘도 등의 섬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다. ▼ 가파른 오르막길을 조금 더 오르면 또 다른 전망바위를 만난다. 이번에는 북서쪽 해안의 수직절벽이 또렷이 눈에 들어온다. 역광으로 인해 사진이 선명치는 않지만 그 장대함만은 숨길 수가 없다. 아무튼 백아도의 해안은 해식애, 파식대, 노치(해식와), 타포니 등의 침식 지형이 발달되어 있다.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의 경상누층군에 해당하는 산성 화산암류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암질은 유문암질 응회암이 대부분이며, 부분적으로 집괴암이 발견되기도 한다. 인근 섬들과 마찬가지로 화산지형에 잘 나타나는 주상절리가 발달되어 있다. ▼ 안부에 내려선다. 왼편에 보건소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다른 특징이 더 눈길을 끈다. 누군가 재배라도 한 것처럼 달래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집사람이 아니다. 냉큼 주저앉더니 달래를 캐고 본다. 연장도 없이 맨손으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많이 캘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달래가 굵고 실했기 때문일 것이다. ▼ 뒤돌아본 능선, 방금 지나온 흔들바위를 거쳐 봉화대로 이어진다. 왼편, 그러니까 섬의 서쪽 해안이 수백 길의 바위절벽으로 이루어졌다. 백아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다. 경사가 급한 해안절벽으로 해식애(海蝕崖, sea cliff, 파도의 침식 작용과 풍화 작용에 의해 해안에 생긴 낭떠러지)와 파식대(波蝕台, wave-cut platform, 암석 해안이 침식 작용을 받으면서 해식애 아래에 형성되는 평평한 침식면)가 발달했다는 특징 말이다. ▼ 안부에서 어느 정도 가파름을 보이던 산길은 이후부터는 큰 오르내림이 없이 완만하게 이어진다. 그렇게 얼마쯤 더 걸으면 길이 둘로 나뉜다. 다음에 오르게 될 기지국이 있는 봉우리는 이곳에서 왼편 방향이다. 하지만 우린 직진해보기로 한다. 잘 닦여 있는 길이 뭔가 특별한 볼거리가 있을 것이라는 예고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 그런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잠시 후 뛰어난 전망대를 만났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절벽 위에 만들어진 전망대는 추락방지를 위해 밧줄로 난간을 만들어 놓았다. 그렇다고 해도 조심은 필수이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풍경을 보려고 오른편으로 이동하다보면 밧줄난간을 벗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곳까지 오면서 보았던 그림들 중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이 아닐까 싶다. ▼ 전망대에 이르면 갑자기 앞이 훤하게 트이면서 기지국 북서쪽 해벽과 ‘돌출 암봉’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지를 정도로 빼어난 경관이다. 특히 바다 속에 몸을 담그고 있는 듯한 형상의 거대한 돌출 암봉은 백미(白眉)라 할 수 있겠다. 사자모습 같기도 하고 또 어떻게 보면 고릴라를 닮은 것 같기도 하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리 보인다는 얘기이다. ▼ 반대편, 그리니까 오른편 방향에도 거대한 해벽이 늘어서있다. 절벽 아래에는 물이 고여 있는 웅덩이 모양의 요철바위도 보이고, 수십 마리의 악어 떼가 뭍으로 기어오르는 듯한 모양의 기암들도 눈에 들어온다. ▼ 아까의 삼거리로 되돌아와 이번에는 기지국 방향으로 진행한다. 굵거나 큰 나무가 없는 구릉(丘陵) 형태의 능선을 따른다. 그러다보니 고개를 돌릴 때마다 주변 풍광들이 모두 눈에 들어온다. 해가 서서히 기울면서 등산로 바로 오른편 암벽이 역광(逆光)으로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바다에 나간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석처럼 보이기도 하고, 배부른 임산부 모습 같기도 하다. ▼ 오른편에는 조금 전에 조망했던 ‘돌출 암봉’이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 맞은편에는 아까 우리가 올랐던 전망대가 수백 길의 절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걸쳐져 있다. 아무튼 보이는 곳마다 깎아지른 바위절벽과 해식동굴들로 이루어져 있다. 웅장한 것이 한마디로 장관이 아닐 수 없다. 그에 따라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대는 내 손길도 역시 쉴 사이 없이 바빠진다. ▼ 짧지만 바윗길도 나타난다. 안전시설이 필요 없을 정도로 밋밋한 바윗길이지만 돌출 암봉과 북서쪽 해안이 마지막으로 바라보인다. ▼ 잠시 후 소나무 숲으로 들어선다. 그동안 주인노릇을 해오던 소사나무가 소나무에게 안방을 내어준 셈이다. 그렇다고 그동안에 소나무 숲이 없었다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렇게 굵고 오래묵은 소나무들이 없었을 뿐이다, 그나저나 북릉에는 유독 ‘섬소사나무’가 많다. 어떤 곳에서는 아예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이 ‘섬소사나무’는 자작나무과에 속하는 식물로서 거문도와 백아도에서 주로 자라는데, 한 봉우리에 꽃이 많이 달리는 특징으로 일반 소사나무와 구분된다. ▼ 조금 더 올라서자 두어 개의 송신탑(送信塔)이 서있는 산꼭대기가 나온다. 다른 이들의 글에서 ‘기지국’으로 표현되는 지점이다. 정상에는 송신탑과 함께 현재는 사용하지 않는 군부대 터가 흉물스러운 모습으로 남아 있다. 수년 전에 인근 덕적도로 군부대가 이전하면서 그 시설들만 폐허로 남아있다고 하더니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시설의 안을 기웃거려본다. 행여나 당시 군인들의 숨결이라도 느껴질까 해서이다. 하지만 허탕이다. 그런 정서를 느끼기에는 너무 나이를 많이 먹어버렸나 보다. ▼ 군인들이 썼던 것으로 보이는 초소도 보인다. 초소 너머로 나타나는 경관이 자못 빼어나다. 정면에는 남봉능선과 발전소 마을, 좌측으로는 보건소마을과 앞바다의 섬들이 그림같이 펼쳐져 있다. ▼ 하산을 시작한다. 잠시 후 안부사거리(이정표 : 당산↑ 0.2Km/ 발전소마을→ 0.3Km/ 보건소마을← 1.3Km/ 기지국↓ 0.1Km)에 내려선다. 발전소마을과 보건소마을 사이에 지금과 같은 찻길이 나기 전까지 두 마을 사람들이 넘나들던 고갯마루이다. 오늘 저녁에 머물 보건소마을은 이곳에서 왼편 방향이다. 하지만 계속해서 능선을 타기로 한다. 내일 오르게 될 남릉의 들머리가 있는 고갯마루까지 내려가 보기 위해서이다. 아무튼 옛날에 이 길은 두 마을은 잇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갯길이 싫은 사람들은 우리가 타고 왔던 여객선을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두 마을 모두 정박하던 여객선은 이제 ‘작은마을’에만 배를 댄다. 두 마을 사이에 찻길이 생겼기 때문이다. 엄청나게 편해진 셈이다. 반면에 나빠진 점도 있다. 백아도 뒤편의 특이한 지형, 즉 기암괴석과 멋진 절벽을 더 이상 감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 잠시 후 당산 정상에 올라선다. 이곳도 역시 텅 비어있기는 매한가지이다. 정상표지석이나 이정표는 물론이고 이곳에는 삼각점도 설치되어 있지 않다. 각설하고 이곳 ‘당산’은 ‘성황당’을 연상시키는 지명이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눈에 띄지 않는다. 성황당이 있었다면 돌맹이 몇 개 정도는 나뒹굴어야 할 텐데도 그렇지 못하다는 얘기이다. 아무래도 성황당은 이곳 정상이 아니라 산자락 어디쯤엔가 자리 잡고 있었던 모양이다. 아차! 깜빡하고 빼먹을 뻔 했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폐가(廢家) 몇이 보였다는 것을 말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부근에 군부대(軍部隊)가 있었다고 하더니 그 흔적들이 아닐까 싶다. ▼ 이젠 본격적인 하산만 남아있다. 내려가는 길, 진행방향 저만큼에 발전소마을이 내려다보인다. 발전소마을의 옛 이름은 ‘큰 마을’이었다. 백아도에 있는 두 개의 마을 중 규모가 컸기 때문이다. 이는 규모가 큰 해군 레이더 부대가 1990년대 중반까지 이곳에 주둔하고 있었던 데서 기인한다. ‘부대마을’이라는 또 다른 이름을 갖고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해군 레이더부대가 주민들에게 여러 혜택을 안겨준 건 사실. 전기가 없던 동네에 전기를 들여왔고, 해군기지에서 일반 가정에 유선 전화기를 사용할 수 있게끔 해주기도 했다. 또 직업군인 자녀들의 교육 문제 해결을 위해 백아분교가 들어섰다. 수확철이면 젊은 군인들의 도움을 받기도 했단다. 하지만 이젠 구전(口傳)으로나 떠도는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 잠시 후 내려선 고갯마루에는 이정표(보건소마을← 2.1Km/ 발전소마을→ 0.3Km/ 당산↓ 0.4Km)가 세워져 있다. 조금 위에 또 다른 이정표(남봉← 1.6Km/ 발전소마을↑ 0.3Km/ 보건소마을↓ 2.1Km)도 보인다. 고개를 넘으면 ‘큰 마을’로 불리던 ‘발전소마을’이다. 그러나 옛 이름인 ‘큰 마을’은 더 이상 사용할 수가 없게 되었다. 해군의 군부대가 떠난 뒤론 ‘작은 마을’로 불리던 ‘보건소마을’보다도 훨씬 더 작아졌기 때문이다. 그래선지 보건소와 파출소, 교회 등이 모두 다 보건소마을에 몰려있다. 아무튼 이곳은 내일 오르게 될 남릉의 ‘들머리’이기도 하니 꼭 기억해두자. ▼ 보건소마을로 향한다. 보건소마을과 발전소마을 사이에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나있으니 이를 따르면 된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해안도로는 잔잔한 파도소리가 절벽에 울려 운치를 더한다. 예전에는 절벽에 막힌 마을과 마을을 배를 타고 다니거나 산을 넘어 다니기도 했을 터이다. 아무튼 가는 길에는 모래사빈이 보이는가 하면 양식장으로 여겨지는 시설도 눈에 띈다. 다른 섬들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풍경들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 ‘흰 상어의 이빨’이라는 섬의 이름에서 풍기는 이미지와는 달리 백아도(白牙島)는 매우 아늑한 섬이었다. 아니 아늑하다 못해 지나치게 조용하다고 해야 할까. ▼ 해안길을 걷다보면 백아도의 동쪽 해안이 한눈에 잘 들어온다. 덕적군도의 수많은 섬들이 바람이 잔잔한 바다에 마치 돛단배라도 되는 양 두둥실 떠있다. 계섬과 관도, 멍애섬, 상벌도 등 백아도의 부속섬들은 물론이고, 지도와 선갑도, 문갑도, 굴업도 등도 선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그 뒤에는 덕적도가 버티고 있다. 아무튼 눈에 들어오는 섬마다 하나같이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선지 보이는 그림마다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다. ▼ 마을이 가까워지자 널따란 백사장이 나타난다. 1Km는 족히 넘겠다. 모래의 질도 여간 곱고 부드러운 것이 아니다. 해수욕장으로 개발해도 충분하겠다는 얘기이다. 하지만 편의시설 하나 없는 백사장은 텅 비어있다. 낚시꾼이나 찾아올 정도로 한적한 섬인지라 개발할 필요성이 없었던 모양이다. 참고로 마을 앞에도 조금 적기는 하지만 반원형의 모래사장이 있다. 왼쪽에는 방파제도 만들어져 있다. 두세 척의 작은 고깃배가 정박해 있는 한적하기 짝이 없는 포구(浦口)이다. ♧ 에필로그(epilogue), 백아도에 대한 느낌은 ’인심 좋은 섬‘이라 할 수 있겠다. 오가다 만난 주민들은 하나같이 웃음기를 띤 얼굴들이었고, 오가는 말들 속에는 친절함이 가득했다. 저녁에는 주인장인 이장님이 직접 잡았다는 생선회를 주문해봤다. 자연산 우럭이 1㎏에 3만원이라니 어찌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는가. 그런 우리부부의 심정을 눈치라도 챘는지 횟감을 다듬던 이장님이 더 넉넉하게 챙겨주신다. 다음날 아침식사 때 회덮밥을 만들어 먹어야 했을 정도로 말이다. 또 하나, 이번 여행은 ’섬 음식이 맛없다‘는 선입견을 완전히 떨쳐버리는 계기가 되었다. 직접 기른 야채로 만든 각종 김치들과 바다에서 직접 잡았다는 해산물을 재료로 쓴 밑반찬들은 하나 같이 훌륭했다. 특히 ’게장‘과 ’소라장‘은 일미(一味)였다. 돌아오는 길에 몇 개 사왔을 정도였다면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얘기할 것은 자연산 굴이다. 일정을 끝내고 선착장으로 나오는데 바닷가에서 굴을 채취하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그녀들에게 부탁해 한 봉지를 사왔는데 이게 회무침은 물론이고 미역국까지 만드는 요리마다 궁합이 잘 맞은 것이다. 아무래도 백아도에 대한 추억은 꽤 오랫동안 갖고 갈 것 같다. |
출처: 가을하늘네 뜨락 원문보기 글쓴이: 가을하늘
첫댓글 생동감 있고 정성이 느껴지는 글. 사진 잘 보았읍니다 ^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