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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4월 3일 목요일
[(자) 사순 제4주간 목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모세의 애원을 들으시고, 우상을 만들어 섬긴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믿지 않는 유다인들에게, 그들이 희망을 걸어 온 모세가 그들을 고소할 것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주님,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32,7-14
그 무렵 7 주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셨다.
“어서 내려가거라. 네가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온 너의 백성이 타락하였다.
8 저들은 내가 명령한 길에서 빨리도 벗어나,
자기들을 위하여 수송아지 상을 부어 만들어 놓고서는,
그것에 절하고 제사 지내며, ‘이스라엘아,
이분이 너를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너의 신이시다.’ 하고 말한다.”
9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
10 이제 너는 나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
그리고 너를 큰 민족으로 만들어 주겠다.”
11 그러자 모세가 주 그의 하느님께 애원하였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12 어찌하여 이집트인들이,
‘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해치려고 이끌어 내서는,
산에서 죽여 땅에 하나도 남지 않게 해 버렸구나.’ 하고 말하게 하시렵니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13 당신 자신을 걸고, ‘너희 후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내가 약속한 이 땅을 모두 너희 후손들에게 주어,
상속 재산으로 길이 차지하게 하겠다.’ 하며 맹세하신
당신의 종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14 그러자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31-47
그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인들에게 말씀하셨다.
31 “내가 나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면 내 증언은 유효하지 못하다.
32 그러나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
나는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분의 증언이 유효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33 너희가 요한에게 사람들을 보냈을 때에 그는 진리를 증언하였다.
34 나는 사람의 증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너희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다.
35 요한은 타오르며 빛을 내는 등불이었다.
너희는 한때 그 빛 속에서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였다.
36 그러나 나에게는 요한의 증언보다 더 큰 증언이 있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완수하도록 맡기신 일들이다.
그래서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이다.
37 그리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도 나를 위하여 증언해 주셨다.
너희는 그분의 목소리를 들은 적이 한 번도 없고 그분의 모습을 본 적도 없다.
38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
39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
바로 그 성경이 나를 위하여 증언한다.
40 그런데도 너희는 나에게 와서 생명을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41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42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43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다른 이가 자기 이름으로 오면, 너희는 그를 받아들일 것이다.
44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면서
한 분이신 하느님에게서 받는 영광은 추구하지 않으니,
너희가 어떻게 믿을 수 있겠느냐?
45 그러나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소하리라고 생각하지는 마라.
너희를 고소하는 이는 너희가 희망을 걸어 온 모세이다.
46 너희가 모세를 믿었더라면 나를 믿었을 것이다.
그가 나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47 그런데 너희가 그의 글을 믿지 않는다면 나의 말을 어떻게 믿겠느냐?”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유다인들에게 “너희는 성경에서 영원한 생명을 찾아 얻겠다는 생각으로 성경을 연구한다.”(요한 5,39)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성경에 대한 지식으로 말미암아 “지혜롭다는 자들” 또는 “슬기롭다는 자들”(마태 11,25)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그들이 성경을 연구하며 깨달은 지식은 하느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 도움이 되는 대신 그저 사람에게서 오는 영광을 탐닉하게 하는 수단일 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 드러내 보이시[는]”(11,25) 까닭은, 교만한 지식이 아니라 겸손한 사랑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유다인들은 성경을 읽으면서 따라오는 사람들의 칭송에 우쭐해진 나머지 자기들끼리 영광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얼굴에 금칠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향한 사랑 없이 성경을 읽고 연구하기에 그들이 듣는 수많은 소리 가운데 무엇이 하느님의 음성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그들이 보는 수많은 것들 가운데 하느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날마다 연구하던 성경의 말씀, 그 말씀이 사람이 되신 예수님을 마주하고도 알아 뵙지 못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는 그 안에서 우리를 영원한 생명으로 초대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는 가장 바른 자세는 바로 하느님을 향한 겸손한 사랑입니다. 그 사랑을 지닐 때 성경은 공부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하느님을 만나는 곳이 될 것입니다.(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주님, 우리나라를 도우소서!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드디어 파렴치하고 몰상식한 내란 사태가 종식될 순간이 다가옵니다. 한 사람의 기상천외한 돌발행동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내란성 증후군으로 죽을 고생을 했습니다. 내란성 위염, 내란성 두통, 내란성 불안증, 내란성 불면증, 내란성 수면 부족!
엊그제 안국동 시국미사 때 자주 희자되던 표현이 “잠 좀 자자!”였습니다. 돌아보니 참으로 은혜로운 순간이었습니다. 그 어떤 집회보다 평화롭고 성숙한, 그러나 시대를 역행하는 반국가, 반민주 세력을 향한 우리 가톨릭 교회의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잘 보여준 축제 한마당이었습니다.
전국각지에서 운집한 수많은 사제, 수도자, 교우들은 한목소리로 백척간두에 놓인 우리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교우들이 오셨던지, 주최 측에서 준비한 제병이 많이 모자랄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으니, 참가자 모두가 입을 모아 헌법재판소를 향해 재판관 한분 한분의 이름을 크게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마음속으로 정말이지 간절히 그분들께 부탁드렸습니다.
‘뭘 그리 망설이냐고? 뭐가 그리 두렵냐고? 그가 저지른 위헌·위법적 증거들은 이미 차고 넘치는데, 초등학생들조차 정답을 알고 있는데, 대체 왜 이리도 뜸을 들이냐고? 한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려주시라고! 국민의 명령이라고!’ 크게 외쳤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드디어 선고 날자가 발표되고 나니 시민들 얼굴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사실 저 같은 소시민들이 간절히 원하는 바는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는데. 그저 상식이 통용되는 나라, 나랏일은 국민이 뽑은 심부름꾼들이 그럭저럭 알아서 하는 나라, 그래서 큰 걱정 없이 발 뻗고 잠들 수 있는 나라...
집회 현장에서 크게 느낀 바가 한 가지 있습니다. 요즘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지금 우리 눈으로 목격하고 있는 이 갈등은 진영 간의 갈등이나 지역 간의 갈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상식과 몰상식의 갈등입니다.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대립입니다. 집단 지성과 막무가내·파렴치 집단 사이의 충돌입니다.
어제오늘,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혼란의 시간 안에서 헌법재판관님들도 정말 고생 많으셨습니다. 선고가 늦어진 배경에 대해서도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극한 갈등과 대립을 조금이라도 완화시키기 위한 냉각기를 확보하기 위한 선택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을 해주시리라 백 퍼센트 확신하지만, 최근 너무나 비상식적이고 기상천외한 일들을 많이 겪은 우리이기에 일말의 걱정을 떨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르고 힘겹게 쌓아 올린 우리나라의 국격이고, 민주주의요, 시민의식인데, 이렇게 초단기간에 와르르 허물어져 내리다니, 참담한 심정을 감출 수 없습니다.
역사에 길이 남을 중요한 선택을 앞둔 재판관님들의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안심하십시오. 두려워하실 것 하나도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저 상식과 양심에 따라, 가장 기본적인 선택만 하시면 됩니다. 성경의 단순한 원칙만 따르셔도 충분합니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재판관님들, 결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들 뒤에 성숙한 대한민국 국민들이 서 있습니다. 그 옆에 원칙과 상식, 진리와 정의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애국 시민들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뒤에는 우리나라와 백성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뒤를 받쳐주고 계십니다.
“주님, 어찌하여 당신께서는 큰 힘과 강한 손으로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신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를 터뜨리십니까? 이제 그만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탈출 32, 11-12)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지난 3월 8일 토요일입니다. 자매님에게 전화를 받았습니다. 아버님이 응급실에 있는데, 병자성사를 청한다는 전화였습니다. 구역장 회의가 있었지만, 병자성사가 더 급하기에 총구역장에게 먼저 다녀온다고 이야기하고 응급실로 가기로 했습니다. 병원으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다시 자매님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선종하였다는 전화였습니다. 저는 고인의 마지막 모습도 보고, 가족들을 만나려고 응급실로 갔습니다. 응급실에는 고인의 가족들이 와 있었고, 고인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고인을 위해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고인께서는 마지막 병자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품으로 가셨습니다. 자매님은 저와 함께 성지순례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자매님의 전화가 있었기에 저는 기쁜 마음으로 고인을 위해 기도할 수 있었습니다.
"싸움은 말리고, 흥정은 붙이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누군가 싸우려고 하면 말려야 하고, 반대로 서로 협상하려고 하면 잘 연결해 줘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이 말은 단순한 처세술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중요한 정신과도 연결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우리는 모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우상을 숭배하자, 하느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습니다. 그때 모세는 "하느님, 이 백성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청하였습니다. 하느님께 간절히 간청하며, 백성을 대신해 용서를 빌었습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싸움을 말리는" 리더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분노를 모세가 중재하며 막아낸 것입니다. 우리도 주변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회에서 누군가 갈등을 겪고 있다면 우리는 모세처럼 중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싸움을 부추기는 사람이 아니라,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세례자 요한은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회개하라!"라고 외쳤습니다. 겉으로 보면 아주 엄격하고 강한 사람이지만, 사실 그는 사람들이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했습니다. 백성들이 죄를 지었다고 해서, "너희는 끝났다!"라고 단죄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길을 닦고,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라!"라고 외쳤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하느님과 백성이 화해할 수 있도록 돕는 다리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한처럼 누군가에게 새 길을 열어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절망할 때, 다시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이것이 바로 중재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도 중요한 중재자가 있었습니다. 바로 헨리 키신저입니다. 그가 활약했던 시대를 보면,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 위협 속에서 서로 으르렁거렸고, 중국과 미국은 철저한 적대 관계였습니다. 그때 키신저가 한 역할이 무엇이었을까요?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이 대화할 수 있도록 이끌었습니다. 이를 핑퐁 외교라고 합니다. 미국과 소련이 핵전쟁을 피할 수 있도록 긴장을 완화했습니다. 이를 데탕트 정책이라고 합니다. 중동에서 전쟁이 끝난 뒤,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들이 평화 협정을 맺도록 도왔습니다. 정치는 물론, 우리 신앙과 삶에서도 평화를 이루는 "중재자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많은 싸움과 갈등이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부부가 싸우고, 친구 사이에서도 오해가 생기고, 직장에서도 경쟁과 갈등이 끊이질 않습니다. 더 나아가 국가 간에도 전쟁과 분쟁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싸움을 말리는 사람", 그리고 "화해를 돕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싸움의 불길을 더 키우는 사람이 아니라, 모세처럼 중재하고, 요한처럼 길을 닦고, 키신저처럼 대화의 장을 열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분은 세상의 분쟁과 갈등을 십자가로 해결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 길을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 각자가 우리 삶의 자리에서 "싸움을 말리고, 흥정을 붙이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주님께 은총을 청하면 좋겠습니다. “타오르는 진노를 푸시고 당신 백성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어 주십시오. 주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내리겠다고 하신 재앙을 거두셨다.”
<서로에게>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너희는 또 그분의 말씀이 너희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는다.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지 않기 때문이다.”(요한 5,38)
빛이 깃드니
빛납니다
빛나니
빛이 머무십니다
참이 깃드니
참됩니다
참되니
참이 머무십니다
선이 깃드니
선합니다
선하니
선이 머무십니다
고움이 깃드니
곱습니다
고우니
고움이 머무십니다
믿음이 깃드니
믿습니다
믿으니
믿음이 머무십니다
희망이 깃드니
희망합니다
희망하니
희망이 머무십니다
사랑이 깃드니
사랑합니다
사랑하니
사랑이 머무십니다
함께가 깃드니
함께합니다
함께하니
함께가 머무십니다
섬김이 깃드니
섬깁니다
섬기니
섬김이 머무십니다
살림이 깃드니
살립니다
살리니
살림이 머무십니다
오늘의 성인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Luigi Scrosoppi)
활동년도 : 1804-1884년
신분 : 신부, 설립자
지역 : 우디네(Udine)
같은 이름 : 스크로쏘피, 알로이시오, 알로이시우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는 1804년 8월 4일 이탈리아 북부 프리울리(Friuli) 지역의 우디네에서 신심 깊고 자애심 많은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12살 때 그는 우디네 교구의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직을 준비해 1827년 사제품을 받았는데, 첫 미사를 봉헌할 때 그의 형제인 카롤루스(Carolus)와 세례자 요한(Joannes) 신부가 옆에서 그를 도왔다.
1800년대 프리울리는 기근과 전쟁 그리고 페스트로 말미암아 극심한 가난으로 고통 받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형제인 카롤루스가 운영하던 고아원의 운영을 도와 우디네와 그 주변 지역의 가난하고 버려진 소녀들을 모아 교육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는 그의 모든 재물과 힘과 애정을 그들에게 쏟아 부었다. 소녀들을 위해 더 큰 시설이 필요해지면 우디네와 인근 지역의 거리를 돌며 구걸하듯이 사람들의 지원을 호소하면서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가 하느님께 대한 굳은 신뢰 속에서 소녀들의 교육에 헌신하는 모습은 인근 지역에서 가난하고 버려진 이들을 위해 활동하던 몇몇 여성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 여성들은 재봉과 자수에 숙달된 기술을 갖고 있었고, 읽고 쓰고 계산하는 법을 가르칠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 다른 연령대와 다양한 출신 배경을 갖고 있었지만 하느님의 손길에 이끌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 살며 하느님을 섬기고자 했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의 영적 지도를 받으며 봉사하던 9명의 여성들은 마침내 1837년 2월 1일 모든 소유에서 벗어나 가난 안에서 하느님께 전적으로 자신을 헌신하는 삶을 살기로 선택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가 설립되었다. 계속해서 다른 이들이 동참했는데, 그들은 부자, 가난한 자, 교육 받은 자, 문맹자, 귀족 출신, 비천한 출신들이 모두 섞여 있었다.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는 이들 모두에게 열려 있었고, 설립자는 그들이 자기희생을 바탕으로 소녀들을 사랑으로 대하도록 격려하며 이끌어 주었다.
그러면서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의 가난에 대한 이상과 보편적 형제애에 매혹되어 하느님께 전적으로 헌신할 필요성에 대해 고심했다. 하지만 그의 삶은 그를 기쁨과 자유의 시인, 기도의 성인, 겸손과 사목적 열정의 소유자였던 성 필리푸스 네리(Philippus Neri, 5월 26일)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이끌었다. 결국 그는 1846년 42세의 나이에 오라토리오회(Oratoriani)에 가입하여 성 필리푸스 네리의 영적 아들이 되었고, 그로부터 온순함과 다정함을 배웠다. 이는 그가 하느님 섭리의 수녀회 설립자이자 사제로서 더 합당하게 처신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는 수녀들의 자기 개발과 성덕의 성장을 위해 깊은 관심과 존경을 갖고 충고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는 수녀들의 성소를 조심스럽게 살피고 그들이 더욱 강인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때때로 그들의 신앙을 시험하기도 했다. 또한 허영과 공명심에 빠지지 않도록 인도하고 위선과 천박한 태도를 보일 때는 엄하게 대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항상 아버지다운 자애로써 수녀들의 약점을 바라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지원하고 위로하였다.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베들레헴의 육화에서 드러난 겸손과 가난, 나자렛의 노동자로서의 단순함, 십자가 위에서 바친 온전한 희생, 성체성사의 침묵 안에서 수녀회를 이끌 영성의 기초를 만들어갔다.
그는 일생 동안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가장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에 대한 우선적인 선택을 추구했다. 그는 죽기 전에 열두 개의 수녀원을 세울 것이라고 말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열두 개의 공동체에서 생활하는 수녀들은 겸손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들의 도움이 필요한 젊은 소녀들과 가난하고 병들고 버림받고 늙어 홀로 남겨진 이들을 위해 봉사했다. 또한 그는 수녀들이 선의를 지닌 사람들과의 폭넓은 공동 협력을 통해 가난한 이들을 지원하도록 했다. 교회의 모든 활동에 적극 협력했던 그는 우디네 신학교의 젊은이들, 특히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보다 특별한 관심을 보였다.
19세기 후반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들이 통일의 역사를 걷게 되었다. 정치적 · 군사적 측면에서 이러한 통일은 유럽의 북부와 남부, 동부와 서부의 국경이자 교차로인 프리울리 지역 전체에 고통스런 시련을 가져왔다. 통일의 결과물 중 하나는 불행하게도 반성직주의(反聖職主義)였다. 이러한 풍토는 고아원과 오라토리회 사제들을 억압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래서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자신들의 활동과 고아들의 선익을 지키기 위한 힘겨운 싸움을 시작했다. 고아들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불행히도 그는 우디네의 오라토리회의 파괴를 막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하느님과의 깊은 일치와 오랜 세월의 경험을 통해 성 루이지 스크로소피 신부는 영적인 지혜와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특별한 직관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1883년 말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자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 병마와 싸웠다.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고 그는 모든 수녀들에게 마지막 인사말을 썼다. “나의 죽음 이후 수녀회는 많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그러나 그 후에 새로운 삶이 주어질 것이다. 애덕! 애덕! 이것은 수녀회 가족의 정신이다. 영혼들을 구하고 애덕으로 그들을 구하여라.”
1884년 4월 3일 목요일 밤, 그는 마침내 예수님을 만나러 떠났다. 우디네 전체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마지막을 보기 위해 서둘러 모였고, 하느님께서 그를 보호해 주시기를 간청했다. 가난하고 어려움 중에 있는 젊은이들의 선익을 위한 그의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모든 이들에게 하느님과의 일치, 동정과 사랑의 길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지금도 하느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걷는 이들의 발걸음에 동행하고 있다. 그는 19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1년 6월 10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알로이시우스 스크로소피(Aloysius Scrosoppi)로도 불린다.
성 리카르도 (Richard)
활동년도 : 1197-1253년
신분 : 주교
지역 : 치체스터(Chichester)
같은 이름 :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잉글랜드(England)의 위치(Wych)에서 태어난 성 리카르두스(Richardus, 또는 리카르도)는 옥스퍼드를 비롯하여 파리(Paris)와 볼로냐(Bologna)에서 수학했고, 1235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사무국장이 되었으나, 당시 캔터베리(Canterbury)의 대주교인 애빙던(Abingdon)의 성 에드문두스 리치(Edmundus Rich, 11월 16일)를 만나 그를 돕기 위해 즉시 사무국장의 직책을 사임하였다.
그 후 1240년 성 에드문두스 대주교가 프랑스의 퐁티니로 망명했을 때 그를 수행한 성 리카르두스는 에드문두스 성인이 사망한 후 오를레앙(Orleans)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은거하며 신학을 연구하고 서품을 받은 후 영국으로 돌아왔다. 1244년 성 리카르두스는 치체스터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의 업적은 교구의 완전한 개혁으로 교회 내의 친족 등용과 성직매매를 적극 반대하고 금지시킨 것이다.
성녀 부르군도파라 (Burgundofara)
활동년도 : +657년
신분 : 수녀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파라
앙네릭(Agneric) 백작의 딸인 성녀 부르군도파라는 결혼하라는 아버지의 권유를 물리치고 수녀원으로 들어가 원장이 되었다. 그녀는 손수 수녀원을 세우고 37년이나 지도하였다. 에보리아쿰(Evoriacum)이라 부르는 이 수도원은 그녀의 사후에 개명된 것으로, 지금은 파르무티에(Faremoutier)의 유명한 베네딕토 수도원이 되었다. 그녀는 파라(Fare, Fara)로도 알려져 있다.
복자 간둘포 (Gandulf)
활동년도 : +1260년
신분 : 수사
지역 : 비나스코(Binasco)
같은 이름 : 간둘푸스, 간둘프
간둘푸스(Gandulphus, 또는 간둘포)는 이탈리아 밀라노(Milano) 교외 비나스코에서 태어나서 성 프란치스코 생존시에 입회한 사람 중의 하나이다. 그의 일생은 극기로 유명하다. 그러나 얼마 동안은 은둔생활을 하려는 헛된 꿈을 꾸기도 하였다. 이리하여 그는 파스칼 수사와 더불어 팔레즈모를 떠나 황야로 갔으나,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려는 열망을 저버릴 수 없었다. 폴리치에서 행한 그의 설교는 성공적이었다. 그는 자신이 예언한 날인 성 토요일에 운명하였는데, 한 무리의 새들이 지붕 위에 날아와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