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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뒷모습
배달된 지육들의 상태를 살펴보니 품질이 좋다. 이럴 때 기분도 따라서 좋아진다. 이것들은 사업유지의 원천이다. 좋은 정육이 많이 나온다는 기대감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면 매달려 있는 돼지도 예뻐 보이 고기 비린내도 향기로움으로 바뀐다. 이제는 일에 제법 이력이 난 것 같다. 처음에는 천정에 매 달려 있는 지육들을 보면 머리가 쭈뼛 설 정도로 공포감을 느끼곤 하였는데 말이다.
새벽부터 시작한 발골 작업이 끝났다. 처리한 물량은 소 반 마리 그리고 돼지 양 각 한 마리다. 뼈 발리기를 마친 정육을 값비싼 부위가 좀 더 많이 나오게 조심스럽게 재단하여 잘랐다.
이때 갑자기 “열심히 해서 나처럼 성공적인 삶을 사는 인물이 돼.” 소리가 들렸다. 피곤하다며 의자에 않아 잠시 쉬고 있던 피터 가 무심코 한마디 내뱉는 말이었다. 대꾸를 하려다가 옆에서 일을 거들던 그의 파트너 캐티의 눈짓을 보고는 못들은 척 했다. 쓸데없는 얘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자는 의미가 간파되었기 때문이었다,
피터와 함께 일한 지는 6개월이 되었다. 그는 2년 전까지는 이 정육점의 주인 이었다. 노령연금을 받을 나이가 넘어서까지 운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넘겼는데 그 사람이 내게 다시 넘겼다. 은퇴 후 배운 것이 그것인지라 여러 정육점에 서 일을 엉하면 거들어주었다. 이 분야에서는 꽤 평판도 괜찮은 것 같았다. 전 주인이 가게를 인계할 때 피터에 대하여 다음 이야기를 했다. 바쁠 떄 종종 피터에게 요청하여 많은 도움이 되었으니 필요할 때 그렇게 하라고 조언했다.
가게를 인수한 후 여러 어려움도 있었지만 몇 달간 투지로 버티며 혼자서 헤쳐 나갔다. 그 때 피터를 만났다. 어느 날 초라한 기색의 한 노인이 가게로 들어오더니 자기소개를 했다. 그에 대한 명성은 익히 들은 적이 있는지라 바로 작업실로 안내하여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커피한잔을 나누면서 40년이 넘는 그의 정육 인생에 대한 경험담을 들었다. 헤어질 떄 가능하다면 여기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해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와 일할 시 발생될 장단점에 대하여 생각을 해보았다. 얻게 될 장점이 많았지만 갓 시작한 입장에서 직원을 고용한다는 것은 큰 부담으로 생각되었다. 혼자해보기로 결정하고 그의 제안은 잊고 있을 무렵인데 가게를 찾아온 그를 다시 만났다.
“잘 알겠지만 소규모라 혼자 운영해도 별 어려움아 없어.” 정중하게 거절하자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하나의 제안을 내 놓았다. 법정 최저 임금으로 하루4시간씩, 주당 3일 파트타임 일을 주면 시작 30분 끝나고 30분 정도 더 봉사해 주겠다고 했다
그래도 망설여하는 나의 기색을 보고는 1주일 동안은 무료로 일할 테니. 채용은 그 후에 생각해 보라고 말하면서 일을 와주기 시작했다
비록 몸은 늙었지만 오랜 세월 몸에 배어 있는 능숙함은 한눈에 보아도 수준급이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금방 눈치로 알고 도와주었다.
이렇게 하여 그와 일을 함께하게 되었다. 공장에 주문하는 일과 백인고객들에 대한 써빙은 자연스럽게 그의 일이 되었다. 같은 고기라도 같은 백인이 써빙하는 것을 더 믿음직스럽게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차츰 떨어져 나갔던 백인 손님 몇 명도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가 운영할 때의 고객들도 찾아왔다.
몇주 후 피터의 요청으로 그의 파트너인 캐티도 합류했다. 그녀의 일은 매주 월요일 오전에만 나와서 청소와 제품 진열을 하는 것이었다. 이 날 티타임 시간에 피터와 캐티는 준비해 온 식빵에 햄을 곁들여 먹으며 다정하게 담소를 나누고는 했다.
함꼐 일하면서 틈틈이 그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생겼다. 그는 얘기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고 나는 그의 다양한 경험을 듣는 것이 좋았다. 먼데까지 이민 와서 정육점을 하게 된 사연도 물었다
“직장에서 매니저급으로 승진하고 금전적인 여유도 좀 생기니 갑자기 생활에 염증이 나더군. 아이들도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라게 해 주고 싶은 마음에 이민을 결정했어.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언어장벽 때문에 취직할 곳아 마땅찮아서 내 사업을 하는 쪽으로 마음을 돌렸어”
그는 별 경험도 없이 가게를 연 것은 시작부터 너무 거창하고 용감하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은 돌다리를 건널 때 두들겨 보고는 건너지 않고 포기하지. 그리고 더 완벽한 다리를 건너려고 헤매다가 낙오자 신세가 되, 남 들은 다소 위험하더라도 다 건너가 버렸기 때문이야. 뭐 큰 공장도 아니고 조그만 가게인데 실패하더라도 좋은 경험은 얻게 될 것 아니겠어.”
가게를 오픈해서 지금까지의 소감도 물었다.
사실 한국에서 관련 전공을 했고 여기 폴리텍 육가공 코스에서1년 실무 공부를 했어. 나름대로 어느 정도 준비하고 시작했지.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 공장 직영점이나 대형 슈퍼마켓은 나보다 20퍼센트 싸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지 ”
“공급자들이 빅 마켓에는 싸게주는 것이 이 업계의 가장 큰 문제야. 하지만 길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니 열심히 해보아. 나도 대형마트와 경쟁하며 살아남았거든 ”
위로까지 해 주면서 그의 정육점 인생 일대기를 시작했다.
그는 8살 때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부모가 부부 싸움으로 종종 다투었는데 어느 날 경찰이 와서 데러간 곳이 그 곳이었다. 자녀 양육에 좋지 않을 정도로 부부싸움이 심하다는 이웃집들의 신고 때문이었다. 성년이 되어 고아원을 나와 독립생활을 하게 되면서 정육점 점원으로 출발했다.
십년 넘게 그 분야에서 일했는데 마침 주위에 좋은 정육점이 매물로 나왔다. 인수를 결심하고 자금 확보를 했다. 모아 놓은 돈과 집안에 돈이 될 만한 가재도구를 다 팔았는데 그래도 천불 정도 부족했다.
삼만 불이면 변두리에 집한채 살 시절이니 지금의 천불과는 화폐가치가 달랐다.
돈을 빌려 보려고 은행을 찾아가 보았으나 거래 실적이 부족으로 거절당했다. 친척들과 지인들을 찾아가 천불을 빌려달라고 간청해보았으나 이 또한 헛수였다.
나중에는 매도자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고 가격을 내려달라고 했다. 잠시 생각하던 그는 매물이 저가라 할인은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 대신 이 가게를 꼭 사고 싶다면 백 불은 빌려주고 대금은 나중에 고기로 갖고 가겠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고나니 머리에 스치는 것이 있었다. 집에 돌아와 돈을 빌려 줄만한 사람 20명의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찾아가서는 백 불 정도의 도움을 요청했다. 만약 못 갚게 되면 정육점에 와서 고기라도 들고 가라는 말도 하면서.
이번에는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한 열 명 정도 만나니 목표 금액이 확보되었다.
듣고 보니 참 어렵게 가게를 인수했었다. 그 후의 이야기도 했다
삼년 쯤 지나서는 빚을 다 갚은 것은 물론 이고 모기지를 안고 조그만 집도 마련했다.
그동안 잘 나가던 가게에 고객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 하루에 백명 넘는 손님이 오던 곳에 다섯 명 밖에 오지 않았다.
그 나마 소량 구매 고객뿐이었다. 원인은 인근에 대형 슈퍼마켓이 오픈했기 때문이었다. 대항할 수 없는 곳은 정육점뿐만 아니었다. 인근의 정육점은 물론 빵가게를 비롯한 식료품점들도 하나둘 문 닫기 시작했다. 폐업하고 싶은 충동이 하루 몇 번이고 생겨났다. 하지만 어렵게 인수한 가게를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
농민들의 자가 도살한 고기를 가공해 주고 인건비를 받으며 버티었다. 시간이 지나자 대형슈퍼의 조잡하게 가공한 정육에 싫증난 일부 고객들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슈퍼마켓은 큰 위협이 되지만 대신 주위에 경쟁이 되는 정육점들은 문을 닫았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정육점을 운영할 수 있는 고객도 확보 되었다.
그가 만든 햄이 좋다며 자주 가게에 오던 아가씨와 결혼, 슬하에 아들하나를 두었다. 만류했는데도 아들은 고교 졸업 후 바로 보트 정비공보조로 일했다. 하지만 6개월 후 돌아와 다시 공부하고 싶은데 지원 좀 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말 거절했고 아들은 차츰 그 분야에서 자리 잡아갔다. 그 후 아들이 오토바이가 필요하다고 자원을 요청했을 때는 절반을 지원해 주었다.
그의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 때문에 부부싸움이 종종 있었고 결국 이혼까지 갔었다. 그리고 고 얼마 후 가게 손님이던 캐티와 만나 파트너쉽으로 살고 있다. 이혼한 전 부인과는 지금도 가끔 안부를 묻고 지내며 크리스마스 때는 어김없이 그가 만든 햄을 사 가지고 갔다. 매년크리스마스 때 집으로 오는 아들과는 바비큐 파티를 즐기었다.
캐티가 매주 한 번씩 청소와 진열을 해 주는 덕분에 가게는 이전보다 깨끗해졌다. 특수부위 주문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피터 덕분에 구하기 쉬워졌다,
그는 자기 일처럼 성의를 가지고 임했으며 창의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양한마리 무게가 적든 많든 구입 가격이 같다.
바꾸어 말하면 무게가 적은 것이 배달되면 그만큼 마진도 적어지는 것이다.
너무 작은 것이 배달되면 그는 “어제 배달된 양이 너무 작아. 정상적으로 판매하면 손해 볼 것 같아 지방도 다 제거하지 않고 반면에 값은 비싸게 받았어. 특등품이라고 말했지. 모두 팔긴 했는데 고객들이 다시 고기 사러 올지 걱정 되는군.”
그럴듯한 소설을 써서 불만을 제기했다. 내용도 그때마다 조금씩 바꿔서.
공급처에 큰 소리 처 보았자 결국은 “좋은데 있으면 거기에서 구입해.” 란 소리만 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 양한마리 겨우 사는 주제에 백 마리 이상 구입 하는 곳과 같은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을의 입장에서 가장 효과적인 항의라는 것을 그는 체득한 하고 있었다.
한 백년쯤 사용했을까. 투박한 영국제 육가공 기계들도 그는 잘 다루었다.틈나는 대로 나사를 조이고 패킹을 바꾸고 기름칠을 했다. 워낙 오래된 기계들이라 덩치에 비해 성능은 별로지만 그런대로 쓸 만 해졌다.
처음에는 비프,포크 쏘시지를 ᄄᆞ로따로 만들었다. 공정을 두 번 해야 하니 많이 번거로웠다. 그의 제안으로 소,돼지,양고기를 한꺼번에 섞어 쏘시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모양이 좀 좋은 것을 골라 포크쏘시지로 조금 비싸게 팔고 나머지는 비프쏘시지로 팔았다. 하지만 쏘지지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고객은 아무도 없었다.
틈날 때 손님들과 담소도 하며 나름대로 고객관리를 했다. 가게의 매출이 오르지 않으면 걱정을 많이 했다, 이럴 때는 내가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었다. 이럴 때는 누가 주인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비싼 치장을 하고 휘발유 값보다 비싼 생수에 돈을 잘 쓴다. 하지만 고기 값은 단 1불만 올라도 너무 예민하게 반응하는 현상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
가게의 고질적인 문제점 하나가 재고 처리다. 제때 못 팔아 품질이 좀 저하된 정육제품은 버리자니 아깝고 그때로 그대로 팔다가 보면 고객의 불만을 사기 십상이다.
아무리 신경 써도 5%정도는 버려야 되는 것을 쫌 줄여 보기로 작정했다. 우선 며칠 숙성 시켜서 파는 것을 바로 주문해 팔려고 시도했다. 숙성 감소 기간만큼 보존기간이 길어질 뿐만 아니라 수분증발로 인한 무게 감소의 손실도 없기 때문이다.
피터는 펄쩍뛰며 그렇게 하면 고객들을 슈퍼마켓에 다 빼앗긴다며 반대했다. 다음은 윈도 진열대를 사용하지 말고 가게 안에서만 진열하자고 했다. 윈도 진열대는 냉장 성능이 좋지 않은 구형이라 햇빛이라도 비치면 진열 제품이 너무 빨리 변질되기 때문이었다.
길을 걸어가다가 쇼 윈도우를 보고 충동 구매하는 고객을 놓친다며 안 된다 고 했다.
빨리 안 팔리는 제품 진공포장 판매하자고 했으나 이것마저도 부정적이서 몇 가지 빼고는 하지 않았다.
그가 출근하지 않은 날 윈도 진열 없이 판매를 해보았다. 그날 매상은 평소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다음날 출근한 그는 자기 고집대로 예전처럼 진열부터 했다.
도매상이 문 닫은 토요일 갈비 50킬로를 다음날까지 해 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다. 절반 정도의 비축 물량이 있으니 나머지는 다른 소매상에 구해서 가공하기로 작정 했다. 피터는 물량이 있는 가게와 가격을 알아보았다. 마침 인근 정육점에 좋은 질에 물량도 충분한 갈비가 있지만 가격이 문제였다.
“그곳은 주 고객이 백인들이라 갈비는 가공육으로 밖에 쓸 수 없을 텐데 가격이 너무 비싸군. 제발 가격 협상 좀 해봐.” 그는 가격이 비싸다는 말에 일치는 하면서도 가격 협상은 못했다. “거기도 나름대로 운영 체계가 있어 너 하나만 특별히 봐 주지 않아. 그러니 얘기해도 소용없어.”자기는 못하니 해 보려면 너가 하라는 그의 말에 화를 꾹 참고 직접 나서서 대폭 할인된 가격의 갈비를 구입해 왔다
부가가치신고를 하는 달이 되었다. 서류 뭉치를 정리하며 납부세액을 조금이라도 줄여볼까 궁리하고 있었다. 그때 “빠뜨리지 말고 성실 신고해. 잘못하면 감방갈 수도 있어.”
옆에서 작업하던 피터의 한마디 던지는 말에 심통이 났다.
“감방 같은 건 하나도 두렵지 않아. 나는 다만 규정 다 지키고 낼 것 다 내다가 가게 문 닫게 되고 무능한 사람으로 찍히는 것이 무서울 뿐이야.”
가게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내 뱉어 버리는 그의 말이 몹시도 야속하게 들렸다.
며칠 곰곰이 궁리한 후 조심스럽게 여기서 일하는 것이 좋으나 고 물어 보았다. 그는 규칙적으로 일할 때가 있으니 건강관리도 되고 쓸 수 있는 돈도 더 생기니 아주 만족하다고 했다.
아주 고지식한 사람이지만 당분간 같이 더 일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었다. 갈등은 시간이 가면 대화로도 해결 여지가 있을 테니까.
여가는 어떻게 보내는지 물어보았다.
카지노에 가는 것이 제일 큰 낙이라는 것이었다. 그 것은 패가망신의 지름길이라며 놀라는 나에게 그는 낡은 수첩을 꺼내 보여주었다. 수십 년 동안 카지노에 다닌 역사가 수첩 안에 정리 되어 있었다. 일자, 배팅금액 딴 금액. 식비 등 놀라운 것은 한 번 갔을 때 20불 이상은 절대로 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수십 년 동안 잃은 것과 딴 금액이 거의 비슷했다.
“이정도 투자하고 즐겼으니 손해 본 것 없지.”
의기양양해 있는 그에게 휴가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매년 크리스마스 기간 에는 한 달간 가게 문 닫고 쉬면서 여행도 했다고 해서 해외여행은 어디어디 가보았나 고 물었다. “여기도 좋은 곳이 많고 아직도 못 가본 곳도 많은데 무슨 해외는.”쓸데없는 데에 시간과 돈 낭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그의 반응이었다.
크리스마스가 2주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부터 햄, 케밥등 크리스마스 때 판매할 제품을 만들어야 해. 그러니 나는 2주간, 캐티는 1주간은 풀타임으로 일 해야 할 것 같아. 노동 강도도 세 지니까 시간당 임금도 1불 올려주고,”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판매할 제품 준비가 착착 시작되었다. 손님들은 방문 또는 전화로 햄 ,바베큐 등에 필요한 제품을 주문했다. 그 중 햄 만드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다. 돼지 뒷다리에 주사 바늘로 양념을 주입하여 3일간 숙성 시키고 훈제하여 삶으니 그럴듯한 햄이 되었다. 제품을 주문한 크기로 잘라 진공 포장하여 보관했다. 10킬로 짜리 뒷다리 햄 하나를 거의 오차 없이 세분하는 피터를 보니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다.
한창 바쁘게 손을 움직이고 있는데 피터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캐티와 언쟁을 하고 있었다, “ 그까짓 음식 좀 맘대로 꺼내먹고 집안 어지럽혀 놓은 것 갖고 그래. 내 아들은 그래도 낡은 전자렌지를 보고는 새 것으로 사 주었잖아. 내 나이가 많다는 이유 하나로 우리가 같이 사는 것을 못마땅하게만 생각하는 당신 딸 보다야 백배 낫지.”
캐티에게 곧 눈짓을 했다. 알아차린 그녀가 아무 대꾸를 하지 않자 사태는 곧 잠잠해졌다.
크리스마스 전 날은 손님맞이에 매우 분주했다. 써빙 하던 피터가 어떤 중년 부부를 소개했다. 남자를 가르키며 “이 사람은 남의 마누라를 뺏어간 응큼한 사람이야. 하지만 멋있는 나 싫다고 가버린 까다로운 여자와 지금까지 같이 사는 것을 보니 그래도 좋은 사람이야.”
피터와는 달리 시골 농부의 순진함이 얼굴에 배어 있는 그는 그저 담담하게 미소 지었다. 캐티와 그 남자는 자리를 비켜주었고 피터와전 처는 조용히 몇 마디 인사를 나누었다, 잠시 후 주문한 햄을 가지고 그들 부부는 떠났고 캐티도 퇴근했다.
오후가 되니 분주하던 일이 거의 끝나갔다.
올 만한 고객은 거의 다녀간 것 같았다. . 피터는 캐티에게 줄 선물을 만지고 있었다. 반대로 그녀로부터 받을 선물은 무엇인 궁금해서 물었다. “그녀는 아마 아무 것도 주지 않을 것이야. 기대도 안하고 . 나는 젊은 여자와 함께 사는 행운을 누리고 있으니 그자체가 큰 선물이지. 선물이란 아쉬운 쪽이 주는 것 이고 또 주는 즐거움도 받는 것 못지않게 크니까.”
그는 다음 말을 이어갔다. “매상이 생각보다 좋군. 지금부터 휴가 기간이라 한가할 거야. 앞으로 한 달간은 가게에 백인 고객들은 별로 없을 테니 나도 휴가를 갈 생각이야. 내 손이 필요하면 연락하면 한 달 후에는 다시 일 할 수 있어. 하지만 그 땐 지금의 임금으로는 안 돼.”
“잘 알았어. 그 동안 같이 일하면서 많이 배웠어, 그렇잖아도 앞으로 혼자서 헤쳐 나가 볼까 생각 중이었어. 힘이 부치면 연락할 테니 그때는 꼭 도와 줘.” 진작부터 먼저 하고 싶었던 말을 꾹 참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해결 할 기회가 온 것이었다.
“그래 열심히 해서 나처럼 성공적인 삶을 살아야 돼.”전번에는 이 말을 들고 캐티 때문에 참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진짜로 자신이 성공한 사람이라고 믿느냐고 물었다 “ 일찍 고아원을 나와 별 문제 없이 가게를 운영 하면서 찾아오는 고객들을 만족하게 했으며 세금도 많이 냈다. 누추하지만 살 집도 마련했고, 지식이 오토바이 살 때 보태준 적도 있다. 전처와 이혼할 때 공평하게 재산 분배도 해 주었다. 이제 은퇴하여 노령연금을 받고 살게 되었으니 이만하면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말할 수 있지 않아.”
“앤드류는 너하고 비슷한 시기에 정육점 일을 했는데 시내 빌딩도 있고 직원300명 규모의 육가공 공장을 운영하잖아. 그 정도면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그의 의중을 떠 보았다.
.“앤드류는 돈은 많을지 모르지만 나보다 많이 골치 아플 거야. 돈은 적지만 골치 아픈 일이 없는 내가 더 행복하지.”그 특유의 칼칼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했다.
“글쎄 남들은 한번 가기도 힘든 장가를 두 번이나 갔으니 그것 하나만은 성공한 것이라 인정해 줄 수 있지만 나머지는 인정 못하겠어.”
“난 미처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것도 성공이군.” 좋은 지적에 감사하다며 웃었다.
몇 년 후
슈퍼마켓에서 나오는 그와 만나 안부를 나누었다. 그는 캐티와는 헤어지고 혼자 살고 있어다, 하지만 시니어 클럽에 가면 많은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전혀 외로움을 느끼지 않고 산다. 틈날 때는 카지노 가는 것도 여전히 즐기고 있었다.
나의 안부를 물었다.
“좀 더 크고 따뜻한 집을 찾아 뉴타운 지역으로 이사했어. 모기지에 생활비를 감당하려면 몇 년간 풀타임으로 더 일해야 될 것 같아
슈퍼마켓에서 일하는 아들 녀석을 2년 동안 달래어서 대학 졸업하게 만들었어. 지금 무역회사 다니는데 집 살 때까지는 같이 살면서 보살펴 줄 생각이야. 처는 미술 공부 차 2년 동안 이태리에 가 있다가 돌아와서는 미술대에서 공부를 하고 있어. 가끔 말썽꾸러기 딸 데리고 있다고 생각될 때가 있어.“
“그런데 왜 이혼 않고 아직까지 같이 살아.” 그는 의아해하며 물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어. 굳이 이유를 찾는다면 결혼할 때 이혼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기 때문이야. 하늘과 땅의 이름께나 있는 모든 신에게 말이야.”
칠순이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말에 이해가 안가는 모양이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슈퍼마켓 봉투를 힘차게 들고 가는 보았다. 그 속에는 다음 연금 받을 때까지 먹을 충분한 빵과 햄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것들은 대폭 세일하는 품목들을 골라 산 물건일 것이다. 하지만 그는 행복할 것이다. 다음 연금을 받으면 소비한 식품을 다시 살 수 있고 시니어 클럽과 카지노에 갈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