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은 ‘다사다난’이란 단어로도 못다 표현할 만큼 격동의 한 해였다. 새해 벽두에 일어나 아직껏 해결의 실마리조차 못 찾고 있는 용산참사로 시작하여,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지원을 명분 삼아 전격 단행된 삼성그룹 이건희 전 회장의 단독 특별사면과 복권으로 대미를 장식한 올해는, 집권 2년차 MB정권의 권력속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한 해이기도 하다.
힘없는 자를 더욱 힘없게 만들고, 소외된 자를 더욱 소외시키는 이 ‘명박스런 세상’
힘없는 자들을 더욱 힘없게 만들고, 아픈 사람들을 더욱 아프게 만들고, 소외된 자들을 더욱 소외시키는, 이 ‘명박스런 세상’에서 서민들의 삶의 질은 지난 2년간 급전직하 추락하고 있다. 4대강 대운하 터닦기 공사비 수십조에 비하면 푼돈 수준인 장애인을 비롯한 취약계층 관련 복지예산이 사정없이 삭감당하는 것이 온갖 편법을 동원해 추진되는 부자감세정책과 묘하게 대비되면서, ‘부우빈홀’(富優貧忽) 곧 가진 자는 우대하고 가난한 자는 홀대하는 정책을 펼치면서도 친서민대통령인양 하는 MB의 표리부동함을 재확인케 만든다.
그뿐인가. 갈수록 심화되어가는 MB정권의 반민주적 행태와 역사후퇴 현실 앞에 민주화의 상징적 인물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하늘나라로 떠나가면서 추모의 정으로 우리 모두의 가슴을 무던히도 아프게 했었다. 특히 전직대통령을 향해 자행된 MB정권의 정치적 타살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그 토대가 얼마나 허약하고 부실한가를 실감시켰지만, 추모열기 속에 비로소 깨어나고 있는 시민들의 여러 움직임들은 역설적으로 우리나라 민주주의에 대한 밝은 전망을 갖게 만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새해에 그리 희망적인 기대를 걸 수 없게 만든다. 마침 MB의 2010년 사자성어 화두가 ‘일로영일’(一勞永逸)이라는데, ‘적은 노력으로 오랫동안 이익을 봄’이라는 의미 자체가 내게는 ‘목적달성을 위해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그의 불성실하고 부정직한 실용적 가치관을 떠올려주고, 이미 우스갯말로 회자되듯 ‘모든 길은 고향 영일만으로’ 곧 ‘一路迎日’로까지 해석되니, 그의 모교 동지상고 출신자 기업들의 잔치로 전락한 4대강 토목사업을 봐서도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정권이 마피아집단이 될 때, 국리민복의 텃밭은 참혹하게 짓밟힐 수밖에 없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이래저래 안타까운 송구영신의 시간들, 그럴지라도 한 해는 어김없이 가고 또 밝아올 것이다. 20세기 터키의 위대한 시인 나짐 히크메트(Nazim Hikmet, 1902~1963)는 대표시 ‘진정한 여행’에서 희망을 미래의 가능성에서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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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짐 히크메트 묘소 |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씌어지지 않았다. 가장 아름다운 노래는 아직 불려지지 않았다.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은 날들. 가장 넓은 바다는 아직 항해되지 않았고, 가장 먼 여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불멸의 춤은 아직 추어지지 않았으며, 가장 빛나는 별은 아직 발견되지 않은 별이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그때가 비로소 진정한 여행의 시작이다.
한 개인이나 국가나 미래에 대한 희망 그 비전은 그렇게 포착될 수 있는 것이다. 누구 말대로 역행보살(逆行菩薩) MB의 정치행각을 통해 우리는 오히려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것들에 대한 가치를 새롭게 깨우쳐가고 있는 것이다. 참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깨우침은 바로 그런 것이고 여기 희망이 있다.
풍경은 갈수록 허전해지는데 숲은 더욱 깊어만 간다
갑작스런 한파에 나뭇가지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얼어버려 마치 드라이플라워 장식꽃처럼 되어 가지에 붙어있는 잎들이 가끔 보이지만 아무래도 곳곳에선 새둥지 하나씩 이고 은빛을 뿜어내는 나목(裸木)들이 우뚝우뚝 솟아나고, 풍경은 갈수록 허전해지는데 신비롭게도 숲은 더욱 깊어만 간다. 하여 봄여름을 직유(直喩)의 계절이라, 가을겨울을 은유(隱喩)의 계절이라 하는가.
수필가 이양하 선생은 수필 <나무>에서 나무를 안분지족(安分知足)의 현인(賢人)이요, 고독(孤獨)의 철인(哲人)이며, 훌륭한 견인주의자(堅忍主義者)로 비유했는데, 겨울이 시작되면서 죽음과 가난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꿋꿋하게 자기자리를 지키며 서 있는 나무들을 보면 우리 삶의 스승으로 모셔도 전혀 부족함이 없을 듯하다. 계절풍이 잎사귀를 우수수 솎아내듯 내 영혼에도 쳐낼 게 많다. 그로써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가듯 영혼도 정화와 순수의 시기로 넘어가게 되리라. 과연 코발트빛 하늘이 한없이 높아지는 만큼 이지(理智)도 높아졌으면 싶고, 계절이 깊어가는 그만큼 영성(靈性)도 깊어갔으면 싶다.
천박한 이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더 놀라운 꿈을 꾼다
살얼음 살짝 얼은 은회색 겨울나무 오솔길을 조심스레 가는데 어디선가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부활의 봄은 반드시 오리라. 아니 “추우면 추울수록, 겨울 깊어 갈수록, 마음으로 가까워지는 건, 봄, 따스한 봄.”이라는 영국 시인 셸리(P.B. Shelley)의 시처럼 봄은 이미 겨울 안에 품어져 있는지 모를 일이다. 천박한 이 야만의 시대에 우리는 더 놀라운 꿈을 꾼다. 참으로 어느 길로 가야 할지 더 이상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은 시작되는 것이다. 새해가 우리 모두에게 참된 희망의 여정이 될 수 있기를 빌어마지 않는다.
정중규(‘가톨릭뉴스 지금여기’ 편집위원, ‘어둠 속에 갇힌 불꽃’(http://cafe.daum.net/bulkot 지기, 대구대학교 한국재활정보연구소 연구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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