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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에 내가 없다
39부 ― 책을 덮은 뒤
책을 덮자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빛도 사라지지 않았고, 누군가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다. 벽이 갈라지지도 않았고 사진 속 사람이 걸어 나오지도 않았다. 암실은 그대로였고, 붉은 조명은 조용히 켜져 있었다.
정윤은 오히려 그 평범함 때문에 오래 움직이지 못했다.
수진이 먼저 말했다.
“엄마.”
“응.”
“진짜 끝났나 봐.”
정윤은 책을 내려다보았다.
“모르지.”
수진이 피식 웃었다.
“또.”
“이번에는 정말 몰라.”
민석이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나는 그 말이 제일 무섭다.”
박미정이 말했다.
“그래도 책은 안 열 거죠?”
정윤은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책을 자신의 가방 안에 넣었다.
“네.”
“확실해?”
“오늘은.”
민석이 웃었다.
“하루 단위로 결심하네.”
“사람이 평생 결정하는 게 어디 쉬워요.”
수진은 만년필을 바라보았다.
검은 펜.
자기 이름이 새겨져 있던 펜.
그런데 어느 순간 글씨가 사라져 있었다.
수진은 펜을 정윤에게 내밀었다.
“엄마 가져.”
“왜?”
“나 이제 안 쓸래.”
“글 안 쓸 거야?”
“아니.”
수진은 잠시 생각했다.
“다른 펜으로 쓸래.”
정윤이 웃었다.
“왜?”
“이 펜은 자꾸 지 마음대로 써.”
박미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가 제일 싫어하는 펜이네.”
수진은 만년필을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내가 쓰고 싶은 거 쓸 거야.”
“뭐부터?”
수진은 아주 진지하게 고민했다.
“짜장면.”
민석이 말했다.
“소설 제목이?”
“응.”
“그냥 『짜장면』?”
“응.”
박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데.”
정윤이 웃었다.
“이번에는 사진도 없고?”
“없어.”
“사라지는 사람도?”
“없어.”
“죽는 사람도?”
수진이 얼굴을 찌푸렸다.
“엄마.”
“응?”
“왜 자꾸 무서운 거 넣으려고 해.”
모두 웃었다.
정윤도 웃었다.
그러다 문득 웃음이 멈췄다.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민석.
박미정.
서진.
혜진.
윤아.
한도현.
모두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정윤은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누구인지 생각나지 않았다.
“잠깐.”
민석이 물었다.
“왜?”
“우리 몇 명이었죠?”
민석이 사람을 셌다.
“하나, 둘…….”
그도 멈췄다.
“이상하다.”
“뭐가요?”
“한 명 더 있었던 것 같은데.”
박미정도 주변을 둘러봤다.
“맞아.”
수진이 말했다.
“누구?”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정윤의 가슴이 아주 약하게 아팠다.
익숙한 감각.
누군가 빠졌을 때.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데 자리가 비어 있는 감각.
수진이 정윤 손을 잡았다.
“엄마.”
“응.”
“또 찾을 거야?”
정윤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예전의 자신이라면 즉시 찾았을 것이다.
사진부터 뒤지고.
기억을 흔들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고.
책을 다시 펼쳤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정윤은 빈 의자 하나를 바라보았다.
“모르겠어.”
수진이 놀랐다.
“안 찾아?”
“찾고 싶어.”
“근데?”
정윤은 가방 속 책을 만졌다.
“또 모든 걸 다시 열게 될까 봐.”
수진은 한참 정윤을 바라봤다.
그리고 물었다.
“그 사람이 우리 찾고 싶으면?”
정윤이 아이를 바라보았다.
“응?”
“우리처럼.”
수진은 빈 의자를 가리켰다.
“그 사람도 우리 찾고 있을 수 있잖아.”
정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가능성을 생각하지 못했다.
항상 자신이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라진 사람도 어딘가에서 자신을 찾고 있을 수 있었다.
민석이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하지?”
박미정이 덧붙였다.
“책은 안 열기로 했고.”
정윤은 잠시 고민하다 말했다.
“기다리죠.”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다린다고?”
“네.”
민석이 웃었다.
“정윤이 기다린다는 말을 다 하네.”
“저도 이상해요.”
“얼마나?”
정윤은 고개를 저었다.
“기간 안 정해요.”
수진이 물었다.
“안 오면?”
“그럼…….”
정윤은 빈 의자를 보았다.
“빈자리 하나 두고 살죠.”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정윤은 계속했다.
“꼭 모든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엄마의 자리.
언니의 자리.
딸의 자리.
아버지.
작가.
촬영자.
그동안 빈자리만 보이면 누군가를 넣으려 했다.
사람이 없어지면 다른 사람이 그 자리를 채웠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바뀌었다.
어쩌면 빈자리는 빈자리로 남을 권리도 있었다.
박미정이 조용히 말했다.
“좋은 문장인데.”
정윤이 눈을 흘겼다.
“쓰지 마요.”
“왜?”
“또 이야기 시작될까 봐.”
“메모만.”
“안 돼요.”
박미정이 웃었다.
“알겠어.”
수진은 빈 의자 앞으로 갔다.
손으로 의자를 툭 두드렸다.
“나중에 오면 여기 앉아.”
정윤이 웃었다.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모르는 사람.”
“이름도 모르는데?”
“그래도 듣겠지.”
수진은 의자에 작은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
박미정이 물었다.
“뭐 써?”
수진은 연필을 들었다.
이번에는 만년필이 아니었다.
평범한 노란 연필.
삐뚤빼뚤하게 적었다.
우리는 여기 있었어요.
그 아래.
찾아오면 같이 밥 먹어요.
민석이 웃었다.
“뭘 먹는데?”
수진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짜장면.”
정윤은 그 종이를 바라보다 눈물이 날 것 같아 고개를 돌렸다.
그때 윤아가 말했다.
“저는 가야 할 것 같아요.”
모두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
수진이 물었다.
윤아는 2069년의 사진을 들었다.
“제주.”
“지금?”
“응.”
“2069년 제주?”
“아니.”
윤아가 웃었다.
“2026년 제주.”
정윤이 물었다.
“왜요?”
“내가 거기서 살았다는 기록이 있잖아요.”
“미래 기록.”
“그래.”
“그걸 따라가려고?”
윤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사진을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그냥 바다 보고 싶어서.”
수진이 환하게 웃었다.
“그게 더 좋아.”
윤아가 수진 앞에 쪼그려 앉았다.
“친구.”
“응.”
“나 갔다 올게.”
“언제 와?”
윤아는 생각했다.
“몰라.”
“연락은?”
“할게.”
“꼭.”
둘은 손가락을 걸었다.
정윤은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누군가 떠난다.
이번에는 붙잡지 않았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가는 것이었다.
그 둘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한도현도 조용히 말했다.
“나도 돌아가야겠다.”
윤아가 그를 바라보았다.
“2091년으로?”
“갈 수 있다면.”
“왜?”
한도현은 잠시 생각하다 웃었다.
“내 삶이 거기 있으니까.”
박미정을 바라보지 않았다.
자기 딸이라고 믿었던 사람을 붙잡지도 않았다.
“그리고.”
“뭔데요?”
한도현이 박미정에게 말했다.
“미안했습니다.”
박미정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딸 찾게 되길 바랄게요.”
한도현은 씁쓸하게 웃었다.
“찾는 것보다.”
“…….”
“기다리는 법부터 배워야겠네요.”
정윤이 말했다.
“쉽지 않을 거예요.”
“알아요.”
“그래도.”
“해 봐야죠.”
한도현도 떠났다.
혜진은 수진에게 말했다.
“나 기억나?”
수진이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금도?”
“응.”
혜진은 잠시 쓸쓸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곧 웃었다.
“그럼 처음 만나자.”
수진의 눈이 커졌다.
“어떻게?”
혜진이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나는 혜진이에요.”
수진은 잠시 손을 바라봤다.
그리고 잡았다.
“안녕하세요. 저는 수진이에요.”
두 사람은 웃었다.
정윤은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았다.
다시 만난다는 것은 기억이 돌아오는 일이 아닐 수도 있었다.
그냥 새로 인사하는 일.
그것이면 충분할 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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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상회 밖으로 나왔을 때 밤이 되어 있었다.
바닷바람이 차가웠다.
수진이 말했다.
“엄마.”
“응.”
“짜장면.”
정윤이 웃었다.
“아직도?”
“배고프다니까.”
민석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근처 찾아볼게.”
정윤이 말했다.
“아무 데나 가요.”
“맛없는 데 걸리면?”
수진이 대답했다.
“배고프면 맛있어.”
박미정이 웃었다.
“철학자네.”
네 사람은 가게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정윤이 마지막으로 안을 돌아보았다.
빈 의자.
수진이 남긴 종이.
우리는 여기 있었어요.
그것만 보였다.
책은 가방 안에 있었다.
정윤은 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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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장면집은 정말 평범했다.
벽에는 달력이 걸려 있었고, 주방에서는 웍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텔레비전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아무도 사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수진은 짜장면을 먹다 입 주변을 까맣게 만들었다.
민석이 웃었다.
“거울 봐.”
수진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거울 싫어.”
모두 순간 굳었다.
수진이 곧 웃었다.
“농담.”
정윤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농담 하지 마.”
“엄마 놀랐어?”
“엄청.”
“복수.”
“뭐가?”
“엄마가 맨날 나 놀라게 했잖아.”
민석이 말했다.
“그건 맞다.”
정윤이 눈을 흘겼다.
식사가 끝날 무렵 박미정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사진 찍을까?”
세 사람의 젓가락이 동시에 멈췄다.
박미정이 얼른 말했다.
“아니면 말고.”
정윤은 수진을 바라보았다.
수진도 정윤을 봤다.
잠시 침묵.
수진이 먼저 말했다.
“찍자.”
정윤이 놀랐다.
“괜찮아?”
“응.”
“왜?”
수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밥 먹은 사진이잖아.”
정윤은 웃었다.
“그래.”
박미정이 휴대전화를 세웠다.
타이머.
사람들이 붙었다.
민석.
박미정.
수진.
정윤.
수진이 말했다.
“엄마 좀 가까이 와.”
정윤이 아이 어깨에 팔을 둘렀다.
찰칵.
플래시도 없었다.
세상이 바뀌지도 않았다.
휴대전화 화면에 네 사람이 나왔다.
모두 있었다.
정윤도.
수진도.
민석도.
박미정도.
아무도 사라지지 않았다.
수진이 화면을 보고 웃었다.
“엄마 사진에 있어.”
정윤도 화면을 봤다.
“그러네.”
“기분 어때?”
정윤은 잠시 생각했다.
“별거 없네.”
수진이 웃었다.
“그게 좋은 거야?”
“응.”
정윤은 처음으로 사진이 사진일 뿐인 순간을 경험했다.
무언가를 증명하지 않았다.
사람을 가두지도 않았다.
죽은 사람을 살리지도 않았다.
기억을 옮기지도 않았다.
그냥.
네 사람이 짜장면을 먹은 어느 밤.
그뿐이었다.
⸻
집으로 돌아온 것은 밤늦게였다.
수진은 씻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엄마.”
“응.”
“내일 뭐 해?”
정윤이 이불을 덮어 줬다.
“네가 정해.”
“놀이공원.”
“그건 너무 갑작스러운데.”
“엄마가 정하라며.”
“다른 거.”
“치사해.”
수진은 금세 잠들었다.
정윤은 거실로 나왔다.
가방을 내려놓았다.
책.
『사진 속에 내가 없다』.
한참 바라보다 꺼냈다.
열지 않았다.
그냥 표지만 보았다.
제목은 그대로.
그런데 이상했다.
저자 이름이 생겨 있었다.
정윤은 숨을 멈췄다.
수진
그 아래 작은 글씨.
그리고 이 이야기를 끝내지 못한 사람들
정윤은 웃었다.
“끝냈는데.”
책은 대답하지 않았다.
정윤은 책을 책장 가장 아래에 꽂았다.
그리고 불을 끄려 했다.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문자.
윤아.
사진 한 장.
제주 바다.
그리고 짧은 글.
도착했어요. 바다가 진짜 있네요.
정윤은 웃었다.
답장을 썼다.
사진 말고 직접 많이 봐요.
전송.
잠시 뒤.
윤아.
네.
끝.
정윤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평범했다.
정말로.
그런데 현관 쪽에서 종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정윤의 몸이 굳었다.
천천히 갔다.
문 아래.
종이 한 장.
사진이 아니었다.
수진이 동해상회 빈 의자에 남긴 메모였다.
우리는 여기 있었어요.
정윤은 숨을 멈췄다.
왜 이게 여기 있지.
종이를 뒤집었다.
뒷면에 처음 보는 글씨가 있었다.
짜장면 좋습니다.
정윤의 심장이 세게 뛰었다.
두 번째 줄.
조금 늦었네요.
세 번째.
그래도 찾아왔습니다.
정윤은 즉시 문을 열었다.
복도.
아무도 없었다.
엘리베이터 표시등도 움직이지 않았다.
정윤은 문밖으로 한 걸음 나갔다.
“누구세요?”
침묵.
그리고 계단 쪽에서 아주 작은 소리.
“정윤아.”
정윤의 몸이 얼어붙었다.
남자 목소리.
낯익었다.
너무 낯익어서 가슴부터 먼저 반응했다.
“누구야?”
사람이 천천히 계단을 올라왔다.
발.
다리.
몸.
얼굴.
정윤은 숨을 멈췄다.
정호.
진짜 정호의 얼굴이었다.
1981년 가족사진 속 열네 살 소년.
하지만 지금은 중년 남자가 되어 있었다.
그가 웃었다.
“오래 기다렸지?”
정윤은 말을 하지 못했다.
“오빠?”
남자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응.”
정윤의 손이 떨렸다.
수진을 데려오려고 사진 속으로 들어갔다가 돌아오지 못했다던 오빠.
모두가 잊었던 빈자리.
그 사람이었다.
정윤이 한 걸음 다가갔다.
“진짜…… 오빠?”
정호가 웃었다.
“그 질문부터 할 줄 알았다.”
정윤도 눈물이 났다.
“미안.”
“뭐가?”
“너무 많이 속아서.”
“알아.”
“어디 있었어?”
정호는 복도 끝을 바라보았다.
“책 밖.”
정윤의 얼굴이 굳었다.
“무슨 뜻이야?”
“너희는 계속 사진 안과 밖만 찾았잖아.”
“응.”
“그런데 책에도 밖이 있어.”
정윤은 숨을 멈췄다.
“거기가 어디야?”
정호가 웃었다.
“독자가 책을 덮은 다음.”
정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정호는 메모를 가리켰다.
“네가 빈자리 하나를 그냥 두겠다고 했지.”
“응.”
“그래서 처음으로 나갈 수 있었어.”
“왜?”
“내 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채우지 않았으니까.”
정윤의 눈물이 흘렀다.
그랬다.
자신은 늘 잃어버린 사람을 찾으면서 빈자리를 다른 기억으로 채웠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빈자리 그대로 두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가진 사람이 스스로 돌아왔다.
“오빠.”
“응.”
“수진 자.”
“알아.”
“깨울까?”
정호는 고개를 저었다.
“내일.”
정윤이 웃었다.
“왜?”
“나도 좀 자야지.”
너무 평범한 대답이었다.
정윤은 한참 웃다가 울었다.
정호도.
그리고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안았다.
그 순간 집 안에서 수진의 잠꼬대가 들렸다.
“짜장면…….”
정호가 웃었다.
“얘는 그대로네.”
정윤이 고개를 들었다.
“기억해?”
“응.”
“어디까지?”
정호의 웃음이 아주 조금 사라졌다.
“많이.”
정윤의 가슴이 긴장했다.
“또 뭔가 있어?”
정호가 동생을 바라보았다.
“있지.”
“말해야 해?”
“아니.”
정윤은 놀랐다.
정호가 말했다.
“오늘은 안 해도 돼.”
“왜?”
“내일도 있잖아.”
정윤의 눈이 젖었다.
그 한마디가 이상하게 깊이 들어왔다.
내일도 있다.
지금까지 이 이야기에서는 언제나 지금 알아야 했다.
지금 열어야 했다.
지금 구해야 했다.
지금 선택해야 했다.
그런데 처음으로 진실이 내일까지 기다릴 수 있었다.
정윤이 말했다.
“그래.”
정호가 물었다.
“뭐가?”
“내일 얘기하자.”
“응.”
둘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정윤이 현관문을 닫았다.
복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사진도.
글씨도.
발자국도.
그런데 책장 아래 꽂혀 있던 『사진 속에 내가 없다』의 마지막 장에 아주 작은 문장이 하나 생겼다.
아무도 보지 못했다.
이야기가 끝난다는 것은 더 이상 사건이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다음 줄.
모든 사건을 당장 이야기로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정윤은 마침내 내일까지 살아 보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