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이은 무더위속 오늘은 바람이 선선하게 불었습니다.
바람이 이렇게도 고마울 때가 있을까요. 그덕에 오늘은 조금 더 덜힘들게 갈 수 있겠다라는 생각으로 움직여 봅니다.
9시 15분,
오늘도 윗집 어르신께서는 옆집 어르신께 부탁을 하고 읍에 나가셨습니다.
"어, 오늘은 살게 없대~ 근데 이것만 갖다달라네~"
밑반찬 가방통을 주시는 어르신. 어르신들께서도 입맛도 없는지, 물건을 많이 사진 않으십니다.
대신 라면을 찾는 어르신들이 늘고 있습니다. 밥이 넘어가기 힘들어서 그런지, 면을 더 찾는 것 같습니다.
여기는 신라면, 저기는 삼양라면, 누구는 진라면, 취향도 다양하게 찾으시는 어르신들.
입맛 없을 때 간편한게 먹을 수 있는 라면이 최고인듯 싶습니다.
9시 45분,
어르신께서 마당 현관문 앞에 앉아 계십니다.
손짓하시는 어르신. 올라가는 길 잠시 멈춰 섰습니다.
"계란 한 판 줘~"
점빵차 지나가는 시간 알고 문 밖에서 기다려주시는 어르신, 너무 감사했습니다. 바람이 불었다지만, 이뜨거운 날 기다려주시는 어르신의 마음이 얼마나 감사했는지요.
10시,
어르신께서 드실만한 것들 장바구니에 담아 올라갑니다. 현관문이 닫혀있습니다. 어디 갔셨을까 싶어 문을 열어보니 반갑게 손인사 해주십니다.
어르신 앞에 빵, 요구르트, 제리, 요플레, 소세지 펼쳐놓습니다. 지난번 사셨던 종합제리가 벌써 반이나 사라졌습니다. 오늘도 어르신 고르십니다.
요구르트, 빵, 요플레 모두 다 사시는 어르신. 이젠 어르신 눈빛 손짓 하나만으로도 모두 압니다.
요구르트는 빨대 꼽고, 빵과 요플레는 냉장고에 넣고.
어르신께 인사드리며 현관문도 여쭤보고 열어놓고 옵니다.
10시 20분,
점빵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동광쌤~ 저기 윗집 어르신 계란 한판 배달 요청이요~~"
해당 마을엔 오늘 식사를 하러 가신다고 했는데, 어쩐일인지 싶어 들고 갑니다.
어르신께서 집안에서 조심히 나오십니다. 계란 한판 드렸습니다. 식사를 안가시는 이유를 여쭤보니,
"나 같은 망구는 따라당기는게 죄여. 민폐여 민폐.. 어서 빨리 죽어야지." 하십니다.
그러면서 "누구라도 같이 먹자고 이야기를 해주면 좋을텐데, 그런것도 없고." 하십니다.
아마 이야기는 들어갔을텐데, 제대로 의사가 전달이 안되었던것은 아닐까 싶지만, 어르신의 외로운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도 괜찮아, 오늘 보호사한테 읍에가서 밥먹자고 했어~ 나가서 먹을꺼야~" 하시는 어르신.
어르신 마음에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싶어 한 번 꼭 안아드리며 식사 맛있게 하시고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왔습니다.
10시 40분,
집 앞에서 서 계시는 어르신. 지난번 공병 값 처리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울 양반이 그러던데, 공병 값 남아있다고~"
어르신께서 주신 공병 소주 17개, 맥주 17개 모두 처리해드립니다. 그러곤 필요하신 물건 추가로 더 사십니다.
어르신들은 공병값으로 물건을 싸게 받을 수 있어서 좋습니다.
10시 45분,
어르신께서 오십니다.
이쁜 작은 주머니를 갖고오시곤 손바닥에 털어놓으십니다.
모두 500원짜리.
그간 잔돈을 어디서 모으셨는지, 하나하나 세십니다.
'밀가루 5,200원, 콩나물 1,500원' 다해서 6,700원, 거기에 '막걸리 2,500원' 추가 총합 9,200원
어르신께서 하나하나 세시다가 제게 다 주십니다. 19개를 받고, 300원 거슬러드렸습니다.
이따금 어르신들은 동전을 모아서 물건을 바꾸시곤 합니다. 잔돈이 자꾸 발생하지만, 처리하는 것도 은행까지 가야하거나 소매점을 가야하는데, 녹록치 않으니 점빵올 때 한 번에 해결하시곤 합니다.
11시,
어르신께서 나오지 않으십니다. 창문을 두들겨보니 침대에 누워계셨습니다.
어쩐일인가 싶어 다시 여쭤보니,
"내 속이 타고 있네... " 하십니다.
뭔 말씀이신지 여쭤보니,
"울 큰사우가 아파서 죽어버렸네." 하십니다.
그간 지병이 있었다고 하시는데, 사우를 먼저 보낸 어르신의 속마음이 어쩌실지 감히 공감이 안되었습니다.
식사도 하루 종일 못하실텐데, 더군다나 오늘은 회관서 식사도 하지 않는다고해서 어르신의 건강이 더 악화가 되는것은 아닌지 걱정되었습니다.
가보지도 못하고 집에서만 소식을 듣는 어르신의 마음이 오늘 하루 무너져 내리는 기분은 아니실지.. 위로의 마음만 전하고 오게되었습니다.
11시 10분,
"지난번에 울 마누라가 음료값 덜 줬다고 하더만~" 하시는 어르신.
계산이 철저합니다. 지난번 음료수값 계산 추가로 해서 어르신께 말씀드렸습니다.
점빵 생각해서 하나라도 더 팔아주시는 어르신들 늘 고맙습니다.
11시 20분,
회관의 마스코트, 동네 어르신들도 다 아는 강아지입니다. 이름은 뭔지 모르겠으나 사람을 워낙 잘 따릅니다.
지난번 상처가 보였는데, 상처도 모두 아물었네요. 어르신들은 이 강아지만 보면 좋다고 한 번씩 쓰다듬고 가십니다.
강아지도 그 사랑 받는걸 아는지, 사람들에게 이쁜 미소 한 번씩 지어주고 가네요.
11시 30분,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
술을 달라고 하시는 어르신. 공병도 주신다고 합니다.
일단 내려고 공병을 실고 맥주를 내렸습니다. 그 사이 옷은 다 젖었습니다. 일단 급한대로 결제하고 바로 차에 탔습니다.
11시 45분,
우산쓰고 기다리고 계시는 어르신,
어르신께서도 잎새주 6팩 2개를 달라고 하십니다.
비가 더 많이 옵니다. 한 번에 2개를 다들고 가실수있나 싶었지만, 어르신 괜찮다며 드십니다.
근데, 양손을 부들부들 떠십니다. 불안하나 싶었으나, 어르신 챙겨서 가십니다.
제 옷과 머리는 홀딱 젖었습니다.
12시, 점빵,
비가 거의 그쳤습니다. 잠시 내렸던 소나기.
여름입니다.
13시 30분,
오늘로서 건강체조 마지막입니다.
"어르신들! 오늘 장사 안해도 되요~! 오늘 뽕뽑으셔요~!" 하고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강사님, 웃으시며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십니다.
그 사이 우리 어르신, 강사님 가방에 복숭아 하나 넣어주십니다.
강사님이 너무 고맙다며 모두 감사 인사전해주시는 어르신.
어르신들의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14시 15분,
어르신 집에 가니 고추가 가득합니다.
고추농사가 풍년인가요. 최근 뉴스에서는 고추 농사가 점점 사라진다고 합니다. 워낙에 고된 노동이 필요한 농사이기에 점점 농가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 저도 영농팀에서 고추농사를 함께 했었는데,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수확도 일일이 손으로 해야하고, 세척하고 말리는 모든 과정에 사람 손이 모두 필요하니 정말 힘든 농사였습니다. 그런 농사를 묵묵히 하시는 우리 어르신들의 부지런함과 근면성은 정말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14시 40분,
오랜만에 나온 회장님,
"두부 두개, 콩나물 두개 주세요~ " 하시며 "커피 한 잔 하고 가요~" 하십니다.
조금 늦었지만, 들어가서 커피 한 잔 받습니다. 회관에가니 옛날 아내가 살던 집주인 어르신이 계셨습니다.
"얼씨구~ 눈웃음 살살 치며 사람 보기는 좋네~" 하시는 어르신.
"사람 착한건 알아도 속에 구렁이가 얼마나 있는진 모르지~" 하십니다.
어르신 덕분에 아내가 잘 살았고, 아내덕분에 제가 동네 살이 한다고 하니, 어르신들 모두 웃으십니다.
그 와중에 밀가루 한개 주문해주시는 우리 어르신.
어르신 덕분에 장사도 잘하고 갑니다~ 하며
"커피 한 잔 마시며, 엉덩이 눌러 앉아있으니 장사가 되네요~" 하니 어르신들이 재밌어 하십니다.
어제 옆동네에서 들었던 이야기로 "엉덩이 힘으로 장사하는거래요~" 라고 말씀하드리니,
"이렇게 들어와서 이야기하고 차 한 잔 하고 가니 얼마나 좋아~ " 하십니다. 그러면서 "고맙네~" 해주시는 어르신들.
별거 아니지만 이렇게 사람간에 정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일이 귀한일이고 좋은 일임을 어르신들 통해서 매일 느낍니다.
15시 10분,
오늘은 며느리가 계셨던 어르신.
며느리님은 어르신이 드실 간식들을 이것저것 고르곤 어머님께 드립니다.
자주오진 않지만, 점빵차 올 때마다 간식을 많이 사십니다. 그 덕에 마을 매출이 조금씩 올라가니 감사합니다.
아랫집 어르신은 최근 몇주동안 못보고 있어서 집에가니,
집안에 며느리 신발이 보였습니다. 평소 같으면 그냥 들어가지만,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 무턱 들어가긴 죄송해서 조용히 나왔습니다.
15시 30분,
너무 덥고 힘들었지만 회관에 어르신들 모두 반겨주시니 편안하게 들어갑니다.
"물 떠가~! 커피 타먹어~!" 하시는 어르신.
갈 때마다 늘 이야기해주십니다. 마을 회관마다 이렇게 내 집처럼 편안하게 들어갈 수 있다는 것, 생각보다 쉬운일이 아닙니다.
저는 어딜가나 우리 어르신들이 손주처럼 맞이 해주시니 참 편안하고 내 집 같습니다. 어르신들이 퉁명스럽게 이야기를 해도 다 저를 위한 마음이라고 생각하며 함께 웃고 나옵니다.
무더위에 뜨거운 날이지만,
매출이 많이 나오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어르신들을 이렇게 만나뵙고 오니 좋습니다.
어르신들의 환대를 받으니 제가 기운이 더 납니다.
우리 어르신들, 오래오래 함께 더 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