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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2) 기업 무름
7 옛적 이스라엘 중에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8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 신을 벗는 지라. 9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이던 모든 것을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10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중과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1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12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4: 7. 증명하는 전례
1] 옛적 이스라엘 중에
이 말이 의미하는 시점(時點)은 본서의 저자가 어느 시대에 속해 있는 사람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유대인 전승이나 탈무드에 의하면 사무엘이 본서의 저자라고 되어 있다. 혹자는 다윗 왕이 직접 본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하지만(Heumann) 어느 것도 확실한 근거는 없다. 알 수 있는 것은 본서가 다윗 왕의 동시대 인물 또는 그 직후의 인물에 의해 기록되었다는 사실이다(22절).
따라서 본 절은 다윗 왕이나 그 후대의 어느 한 시점에서 볼 때 옛날에 해당하는 '사사 시대'를 그 시점으로 언급하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리고 이 말은 저자가 살고 있던 시대에는 이 관습이 사라졌다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Keil).
2]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을 확정하기 위하여
이 말에 해당하는 '카옘'(히)은 '일어서다'를 의미하는 '쿰'(히)의 피엘(Piel)형으로서 '(의무를) 다하다'(fulfil), '확정하다'(confirm), '비준하다'(ratify), '(책임을) 지우다'(impose) 등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를 통해 볼 때 이 단어는 법률상의 어떤 문제가 타협되어서 그것을 공고히 할 때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본 절에서 이 단어는 '무르거나 교환하는 일', 즉 율법 상의 거래 관계에 있어서 그 거래가 완전히 성립되어 다 끝났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3] 사람이 그 신을 벗어 그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의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본래 '신을 벗기는 행위'는 상대편에게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다. 즉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에게 나아가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도록 규정된 신명기 율법에 근거한 것이다.
* 신 25:9 - 그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 형제의 집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 이같이 할 것이라. 할 것이며
이런 의미에서 1세기의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보아스가 룻으로 하여금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의 신발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도록 했다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본 절에서는 이러한 의미로 신을 벗었다가 보다는 '땅에 대한 소유권을 포기 또는 양도한다는 뜻을 상징하는 행동'으로 나타나 있다. 즉 신발은 땅을 직접 밟을 수 있는 매체이다. 따라서 이것을 벗어 상대방에게 넘겨준다는 것은 그 땅을 양도 또는 포기한다는 사실을 상징한다.
반대로 땅을 구입한 자는 자신의 소유권을 주장하고 확인하는 절차로 직접 산 땅을 발로 밟는 공증(公證) 순서를 치렀다 한다(신 25:9 참조). 또한 신발은 힘과 권위의 상징이었다.
* 시 60:8 -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이것을 벗어 상대편 사람에게 준다는 것은 자신이 지닌 권리를 양도한다는 의미이다. 이 신발을 다른 사람에 의해 벗겨지는 것은 힘과 권위를 타인에게 빼앗김으로써 수치를 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본 절은 계대 결혼 관습에서 계대 결혼을 거부당한 과부가 장로들 앞에서 상대편을 모욕하기 위해 신을 벗긴 것(신 25:5-10)과 직접 관련은 없으나(Goslinga, Patrick), 상징적 의미는 있다고 본다.
4: 8. 신을 벗다.
1]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이 말 속에는 보아스가 기업을 무르게 되면 보아스에게 이익이 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그런데 실제로 기업 무를 권리를 가진 자신은 재산상의 손해를 우려하여 그 권리를 포기했다. 그러나 보아스가 그 권리를 취하게 되면 이익이 될 것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은 다소 이상하게 보인다. 그는 기업 무르는 문제를 보아스가 먼저 제기했으므로, 이 문제에 보아스가 관련되어 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자기가 포기하는 것이 보아스에게 이익이 되는 것처럼 표현했다. 이로써 이제 보아스와 룻과의 결혼은 율법적으로나, 사회적, 도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이 모든 일의 진행은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2] 그 신을 벗는지라.
기업 무를 권리자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증인 앞에서 신발을 벗으므로 권리 포기의 사실을 확증시켜 주었다.
4: 9. 나오미에 대한 증인
1] 보아스가 장로들과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오늘의 재판 자리에 참석해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주지시키는 말이다. 이 말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하나님의 법은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2] 내가 엘리멜렉과 기룐과 말론에게 있던 모든 것을
베들레헴 성읍에 있는 기업 무를 땅은 본래 엘리멜렉의 소유였다. 그렇지만 본 절에서 저자가 그의 아들들까지 언급한 것은 상속에 관한 법적인 절차를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엘리멜렉이 죽게 되자 그 땅은 당연히 그의 두 아들들에게 상속되었으며, 이젠 그의 두 아들들조차 죽었으므로 그들의 두 미망인들에게 물려질 것이었다. 그런데 오르바는 모압 땅에 남았으므로 룻만이 법적으로는 그 땅의 소유자였던 것 같은데, 룻 역시 이방 여인이므로 기업의 땅 상속에 관해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3] 나오미의 손에서 산 일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고
따라서 과부로 남아 있는 시모(媤母) 나오미가 실제로 그 땅을 관리했던 것 같다. 따라서 보아스는 법적인 절차를 설명함에 있어서 '나오미의 손', 즉 나오미의 권위 또는 허락 하에서 모든 일이 이루어졌음을 설명했다. 혹자는 본 절에서 나오미가 언급되었다고 하여 그녀가 남편의 소유인 토지권을 양도하고 그 값을 지불받기 위해 성문에 나와 있었다고 주장한다(Hervey). 그러나 룻에게 모든 일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앉아 있으라고 당부한 나오미(3:18) 자신이 그곳에 나갔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다.
4: 10. 룻에 대한 증인
1] 또 말론의 아내 모압 여인 룻을 사서 나의 아내로 취하고
당시 기업을 무를 때 돈을 주고 물렀을 뿐만 아니라, 계대 결혼까지 이행하여야 했다. 보아스가 기업을 무름으로 해서 룻도 계대 결혼을 통해 보아스에게로 오게 되어 있으므로 이런 표현을 사용했다.
2] 그 죽은 자의 기업을 그 이름으로 잇게 하여 그 이름이 그 형제 중과
보아스는 죽은 자의 이름으로 자신이 무른 땅을 상속하겠다고 선포했다. 이것은 룻과 자신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들을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게 하겠다는 말이다. 여기서 보아스는 첫 기업 무를 권리를 가졌던 사람이 말했던 것과는 달리(8절) 자신을 위해 기업을 무른 것이 아니라, 대가 끊긴 자신의 친족 엘리멜렉의 가문을 위해서 기업 무름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보아스가 율법의 정신을 바로 이해하여 기업 무를 자의 의무를 충실히 수행했음을 의미한다.
3] 그곳 성문에서 끊어지지 않게 함에 너희가 오늘날 증인이 되었느니라.
성문(城門)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는 장소이다(1절 참조). 그러므로 룻을 통해서 태어날 아들이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으로 그 땅을 상속하게 된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왕래하는 이 성문에서 엘리멜렉 가문의 이름은 끊이지 않고 모든 사람의 입에서 오르내리게 될 것이다.
4: 11. 이스라엘을 세운 자
1] 성문에 있는 모든 백성과 장로들이 가로되 우리가 증인이 되노니
보아스의 소송자리에 참석했던 모든 사람들이 진행되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었다. 권리자가 순수히 포기 했고, 다음 권리를 갖은 자가 기업을 무르게 되었다. 보아스는 죽은 자의 이름으로 기업을 잇도록 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런 모든 일에 대하여 그들이 증언한다.
2] 여호와께서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여기서 모압 여인 룻이라 하지 않고 네 집에 들어가는 여인으로 호칭하는 것은 룻을 이방인으로 간주하지 않음이다.
3] 이스라엘 집을 세운 라헬, 레아 두 사람과 같게 하시고
라헬과 레아는 족장 야곱의 아내로서, 이스라엘 12지파를 형성한 12아들들의 어머니이다. 따라서 장로들과 백성들은 룻 역시 여호와께 그러한 풍성한 복을 받아 자녀의 번성은 물론 라헬과 레아와 같이 믿음의 어미가 되도록 해달라고 축복의 기원이다. 여기서 야곱의 아내로 라헬과 레아만 언급하고 그들의 여종들인 빌하와 실바의 이름은 제외되었다. 이것은 여종이 낳은 아들은 그 주인의 아들로 간주되었던 당시 이스라엘의 풍속을 보여 준다(창 30:1-13).
4] 너로 에브랏에서 유력하고 베들레헴에서 유명케 하시기를 원하며
'에브랏'은 '베들레헴'의 옛 이름이다.
* 창 48:7 - 내게 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노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오히려 격한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따라서 이 축복의 말은 유사한 내용을 시적(時的)으로 반복해서 표현하는 히브리 문학의 동의 대구법(同意對句法)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형태의 동의 대구법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다시 강조할 때 사용하는 수사법이다.
한편 보아스의 기업 무르는 일에 증인으로 참석한 장로들과 백성들의 축복은 보아스를 위하여 비는 축복의 내용이다. 곧 보아스가 근족을 위해 자기희생적인 정신으로 율법의 정도(正道)를 따라 진실 되게 행함을 축복하는 내용이다. 사사 시대의 전반적인 타락상을 고려할 때 보아스의 정신은 실로 높이 살만한 것이다. 아마도 이번 일로 인해 보아스의 덕망은 더 널리 알려졌을 것이다.
4: 12. 베레스의 집
1] 여호와께서 이 소년 여자로 네게 후사를 주사
1) 소년 여자
'나아라'(히)는 '소녀', '처녀', '혼기에 달한 여자', '여자 심부름꾼'등 다양한 의미이다. 이 말의 공통점은 '어리거나 젊은' 여자에게 사용되었다. 이 말이 룻에게 사용된 것은 아직도 '젊은 과부'였기 때문이다(Driver, Briggs). 하나님은 중생한 성도들을 소년여자로 보신다.
2) 후사를 주사
이 말은 성읍 백성들과 장로들의 고백이다. 보아스는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유력자 이므로 구태여 설명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룻은 이방 여인으로 모압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있다. 물론 모압으로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의 현숙한 모습과 시모에 대한 지극한 효성이 백성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것보다도 그의 신앙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
2] 네 집으로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1) 네 집으로
많은 증인들은 보아스의 집안 혈통의 맥을 잘 알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구속사는 모든 사람이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열어 놓았기 때문이다.
* 요 3:16-21 -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19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2) 다말이 유다에게 낳아준
많은 성경학자들이 유다와 다말의 관계를 부정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창세기 38장을 설명함으로 그릇된 우를 벗겨보고자 한다.(pp.221-251 참조)
3] 베레스의 집과 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서 '베레스'(pharez)는 다말이 그의 시아버지 유다와 동침하여 낳았던 쌍동이 아들, 곧 베레스와 세라 중 차자(次子)였다(창 38:27-30). 그런데 여기서 베레스의 이름만 언급되고 세라의 이름이 빠진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즉 18절 이하에 언급된 족보처럼 보아스가 베레스의 후사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베레스는 보아스의 직계 조상이었으므로 여기서 베레스만 언급되고, 보아스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세라의 이름은 생략된 것이다.
한편 본 절에서 장로들이 특별히 베레스의 집에 대하여 언급한 것은 베레스가 계대 결혼 법에 의해 태어나서 유력한 보아스의 조상이 된 것 같이, 장차 룻과 보아스 사이에서 태어날 아이도 이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창세기 38 장 : 유다와 다말
1. 유다의 결혼과 가정생활
1] 그 후에(히, 바에트 하히우)
'...안에'(in)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가 '때'를 의미하는 '에트'에 붙고 '저것'을 뜻하는 지시 대명사 '후'가 합쳐져 '그 때에'란 말이다. 즉 요셉이 17세의 나이로 애굽에 팔려간 그 때로 부터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른 뒤를 가리킨다(Alford, Keil).
왜냐하면 38장의 유다 사건은 요셉이 팔린 때로부터 애굽에 정착하기까지의 기간(22년) 중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혹자(Murphy)는 이를 요셉이 애굽으로 팔려가기 전의 일로 보기도 하는데 전후 문맥상 신빙성이 없다.
2]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서 내려가서
이 무렵 유다는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독자적인 생활권을 형성하면서 가나안 사람들과 교제를 갖기 시작했는데 후에 이것이 다말 사건의 전조가 되었다. 왜 유다가 형제로부터 내려갔을까?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들(11번째)이였다.(37:3) 형제들이 시기하여 죽이기를 꾀하여(37:18) 광야 구덩이에 던져 넣고(37:20) 애굽으로 가는 미디안 사람 상고들에게 팔도록 권유(37:26-28) 하고 채색 옷에 염소 피를 묻혀 아버지를 속였다. 그는 배가 다르다고 하여 동생을 팔고 아버지를 속이는 일에 환멸을 느꼈을 것이다.
3] 아둘람 사람 히라에게로 나아가니라.
1) 아둘람
헤브론 골짜기에서 북서쪽으로 24Km 지점에 위치해 있던 가나안 31성읍 중의 하나이다(수 12:15).
2) 나아가니라.
'내려가다'란 뜻으로 유다가 당시 권속들이 살았던 헤브론을 떠나 지중해 근처의 고도가 낮은 지대로 이동하였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자기를 알아보지 못하는 이방인의 세계로 은신하였다.
2.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과 동침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취하여동침하니
이스라엘의 애굽 이거(移居)의 필연성을 보여 주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가나안 여인과의 빈번한 통혼은 선민의 주체성을 상실시킴과 동시에 저들에게 흡수됨으로써 이미 멸망이 경고된(16:16) 가나안 족속과 함께 멸절당할 위험에 빠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때가 찰 때까지 그들을 애굽에서 연단시키며 언약 백성으로서의 순수성을 보존시킬 필요성이 있었다. 보아스는 룻을 취할 때까지 율법에 정한 규례를 지켰다면 유다는 양심의 거리낌이 없이 가나안 여인과 동침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할아버지 이삭의 결혼이나 아버지 야곱의 결혼 생활을 통하여 배운 것이 없을까?
3. 첫 아들 - 엘
그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유다의 첫 아들은 엘이라 불렀다. 엘 - '감시하는 자'란 뜻.
4. 둘째 아들 - 오난
그가 다시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오난 - '힘'이란 뜻.
5. 셋째 아들 - 셀라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1] 셀라
'기도' 혹은 '평화'란 뜻이다. 이 아들을 낳을 때에 유다가 집에 없었기 때문에 아무런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마음에서 이렇게 지었던 것 같다.
2]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유다 지방 중부에 위치한 곳으로 일명 '악십'(수 15: 44)으로도 불렸다. 유다의 방랑생활은 유목민이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이름으로 보아서 아버지를 속이고 동생을 팔아버린 가책에 매였다가 셀라를 낳고서야 안정을 찾게 되었다.
6. 엘의 처 - 다말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취하니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1] 장자 엘을 위하여
유다는 어린 아들들을 일찍 결혼시킴으로써 가나안 족속의 성적 문란에 감염되는 것을 막으려 했을 것이다(Pulpit).
2] 그 이름은 다말이더라.
결혼할 때에는 여러 가지 조건들을 살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을 위한 아내를 취하면서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는다. 출신 신분이나 가정환경, 신앙 등 유다의 관심은 아주 없게 보인다.
7. 엘의 죽음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엘이 어떤 악을 행하였는지(시 90:7. 겔 18:20) 언급되고 있지 않다. 앞 절에 결혼 기사가 나와 있고 같은 표현이(10절) 오난의 결혼에 사용된 것으로 보아, 아마 성윤리에 관한 극심한 죄악과 관련된 것 같다.
8. 계대 결혼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의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계대 결혼(繼代 結婚)이란 제도에 관한 것이다. 이 제도는 상속인이 없이 죽은 형제의 대(代)를 이어주기 위하여 죽은 자의 형제나 그 친척이 죽은 자의 처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아주던 관습으로 수혼(嫂婚)이라고도 불린다. 이 제도의 목적은 자식 없이 죽은 형제의 가문을 일으켜 세우고 그의 가족과 이름을 기억케 하며 보존케 하려는 데 있다. 따라서 다른 형제는 긍휼과 희생 그리고 형제애로써 이 의무를 준수해야 했다. 이 계대 결혼을 통하여 후사를 보게 되면 그 아들이 법적으로 죽은 아버지의 모든 권한을 정식으로 이어받게 된다. 훗날 이 제도는 모세의 법전에도 나타난다(신 25:5, 6). 시동생이 과부인 형수와 결혼하기를 싫어할 때는 공중 앞에서 심한 모욕을 주었다. 오난은 계대 결혼에 의한 형수와의 결혼에 대하여 거부 행위가 나타나지 않았다. 전혀 마음에 내키지 아니한 행동을 찾아 볼 수 없다.
9. 땅에 설정하다.
1]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와의 계대 결혼에 의해 낳은 아들은 법적으로 자신의 자식이 아닌 형의 자식이 되는 것을 가리킨다.
2]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형에게 아들을 얻게 아니하려고
아버지의 권유에 따라 형수와 결혼한 오난은 다말과의 성행위 중에 아들을 얻지 않으려고 계획하였다. 사회 제도에 의한 피할 수 없는 제약 때문에 결혼하게 되었다면 오난은 부모님에게 사정을 이야기 하여야 했다. 앞 절에서도 본인 의사와 상반된 일이라면 물어서라도 계대 결혼의 목적이 성취되어야 한다.
3] 땅에 설정하매
설정하매(히, 쉬헤트 아르차) - '멸하다'란 뜻을 가진 동사 '솨하트'의 과거형과 '땅'인 '에레츠'가 합쳐져 '그가 땅에 멸했다'란 의미이다. 즉 정액을 체외(體外)에 사정하였다는 말의 완곡한 표현이다. 여기서 수음(手淫)이란 뜻의 오나니즘(onanism)이 유래되었다. 오난은 형수와의 육체적 결합은 즐기면서도 씨를 퍼트리는 일은 무시한 것이다. 이 행위는 이런 제도를 베푸신 하나님 여호와에 대한 도전이 된다. 달란트 비유에서 해답을 찾자.(마 25:14-30)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은 그것을 땅에 감추었다가 주인에게 가져왔다.
* 마 25:26-30 -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10. 죽임당하다.
그 일이 여호와 목전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도 죽이시니
오난이 죽은 이유는 형에 대한 애정 결핍과 상속 기업(자식)에 대한 이해 타산적 탐심 그리고 신적 기원을 가진 결혼의 신성함을 모독하는 죄를 범했기 때문이다.
11. 다말이 소박 당하다
1] 유다가 그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묶다', '벙어리가 되다'란 뜻을 지닌 '알람'(히)에서 유래한 말로 '과부로 지내다'란 뜻이다. 유다는 두 아들이 죽은 이유를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악했기 때문이라고(7, 10절) 생각지 않고 조혼 (早婚)의 탓으로 돌렸거나 어느 정도 다말을 불길한 여인이라고 간주했던 것 같다. 그러기에 기다리라는 막연한 기약만을 주어 소박(蔬薄)을 놓아 내쫓듯 친정으로 보내 버렸을 것이다(Kalisch).
2] 네 아비 집에 있어서
먼저 하나님의 결혼의 법을 알자.
* 창 2:24 -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찌로다.
* 마 19:5,6 - 5 말씀하시기를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찌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찌니라. 하시니
여자가 출가하면 남자의 집에서 생활해야 한다. 여자의 집에서 생활한 적도 있지만 이는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다. 특히 남편이 죽었다고 결혼 전의 집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 유다는 이것도 지키지 않고 있다.
3]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유다가 표면으로 내세운 이유이다. 성적 문란으로 인한 교육상의 안전을 위한 핑계에 불과하다. 가정의 가풍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다. 유다는 두 아들의 죽음이 다말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4]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유다가 제일 두려워한 이유다. 두 자녀가 죽은 것은 다말의 욕정으로 생각하고 아직 어린 셀라는 형수를 감당할 수 없는 어린이로 본 것 같다. 그러나 이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다말은 성에 굶주린 여자가 아니다.
5] 다말이 가서 그 아비 집에 있으니라.
다말은 시아버지의 말에 이유를 대지 않고 무조건 복종한다. 모든 일이 자신의 죄로 알고 있다. 그러므로 소박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변명 한마디 못하고 있다. 아들이 죽었다고 결혼을 파기하거나 본가로 되돌려 보내는 제도는 없다. 유다는 다말과의 결혼에 대하여 나쁜 인상을 느끼게 한다.
12. 수아의 딸의 죽음.
1]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 죽음
죽음은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됨으로 육체적 생명이 종결된 상태이다.
* 전 12:7 -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신은 그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 약 2:26 -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 요 19:30 -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 가라사대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시고 영혼이 돌아가시니라.
* 행 7:59,60 - 59 저희가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60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
* 빌 1:23,24 - 23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24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이것이 육체의 기능이 정지되는 것이지 존재 자체의 멸절이 아니다. 죽음은 인간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처벌이다.
* 창 2:17 -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 창 3:19 -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 롬 5:12,17 -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 롬 6:23 -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 고전 15:21 -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 약 1:15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즉 죽음은 신적 진노의 표현이다.
* 시 90:7,11 -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를 두려워하여야 할대로 주의 진노를 알리이까?
심판이다.
* 롬 1:32 - 저희가 이 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정죄이다.
* 롬 5:16 -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저주이다.
* 갈 3:13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신 21:23) 하였음이라.
필연적인 것이다.
* 히 9:27 -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죽음은 좋은 의미보다 나쁜 의미가 강하다. 집안에 흉사가 겹칠 때에는 자신과 가정을 돌이켜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성도에게 있어서 죽음의 의미는 다르다. 죄책에서 벗어난 성도 역시 불신자와 마찬가지로 죽어야 한다. 그러나 끝없는 심판 상태에 처할 불신자와 엄청난 차이를 지닌다. 죽음은 성도로 하여금 겸손하게 한다. 육적 욕심을 억제토록 한다. 속된 생각을 없애고 영적 성장을 도모하여 성스러운 단계로 나아가게 한다.
2]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는 애통 기간(24:67)이 다 지나간 후를 가리킨다.
3] 그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밸세메스 부근의 유다 족속 영토의 경계지에 위치한 성읍이다(수 15:10).
4] 자기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유다는 위로를 받은 후에 자신의 목장을 찾아 나선 것 같다. 상처로 인하여 오랫동안 가업을 돌보지 못하여 순환하여 보살피며 괴로움을 잊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13. 딤나에 왔다.
1] 혹이 다말에게 고하되
다말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시아버지에 대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여기서 전달자가 누군지 불분명하다. 다말의 시아버지를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같은 동네 사람이거나 일가친척일 수 있다. 여기서는 그가 누구든 중요하지 않다.
2] 네 시부가 자기 양털을 깎으려고
유목민들에게 이 양털 깎는 행사는 매우 바쁜 축제일로서 큰 잔치와 함께 여러 날이 걸린다.
* 삼상 25:4,11 - 4 다윗이 광야에 있어서 나발이 자기 양털을 깎는다 함을 들은지라. 11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를 가져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한지라.
* 창 31:19 -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 아비의 드라빔을 도적질하고
특히 이런 날에는 모든 사람이 술에 취해 분별력을 상실하기도 한다.
3]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다말이 살고 있는 동네와 가까운 지역으로 보인다. 따라서 다말의 집에도 다녀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