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체성혈 대축일 강론 : 성체성혈(루카 9,11ㄴ-17) >(6.22.일)
* 오늘은 예수님의 몸과 피, 성체성사의 신비에 대해 기념하고 공경하는 날입니다. 죄 많은 우리가 예수님의 몸과 피를 모실 수 있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오늘 미사를 봉헌합시다.
오늘 대축일을 위해, 이태리 란치아노 성당에서 일어난 성체성혈 기적에 관한 캘리그라피 작품을 제대 앞에 비치해놨는데, 오늘 저녁미사 후에 정리할 예정입니다.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는, 우리에게 맛있는 음식처럼 먹히며 희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 집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 혼자 미 8군에 다니시며 버셨기 때문에, 가족 부양하느라 고생을 아주 많이 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아버지의 취미는 돈 안 드는 바둑과 낚시였고, 37년간 미 8군에 근무하셨어도, 제 기억으로 하와이만 한 번 가셨을 뿐, 미국 본토에 가신 적은 없었습니다.
부친은 5남매 중 맏이, 모친은 7남매 중 맏이, 그리고 저는 4남매 중 맏이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은 우리 가족뿐만 아니라, 어린 삼촌, 외삼촌, 이모들을 챙기느라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모친은 없는 살림에 고생하셨고, 어떤 음식이든 함께 먹자고 하면 “난 괜찮다. 배부르다.”라고 하셨습니다. 배부르기는 뭐가 배부르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이 좀 더 먹으라고 하는 소리였죠!
저에게 부모님이 살던 시대에, 부모님과 똑같은 상황에 살아라고 하면 도저히 그렇게 살 자신이 없습니다. 모친은 72세, 부친은 82세에 돌아가셨지만, 고생하고 희생한 것으로 산출해보면 적어도 2-3배는 더 힘들게 사셔야 했습니다. 그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만 바라보며 정말로 훌륭하고 거룩하게 사셨고, 어떻게든 아끼고 절약하며 온 정성을 다해 가족을 부양했는데,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나 임종하셨을 때 여전히 배은망덕한 친척들을 보니 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장손인 제게 못하는 건 상관없지만, 친부모처럼 헌신적으로 사셨던 부모님을 홀대하는 모습은 참을 수 없었습니다.
모친 서거 후, 안식년 때 일본 동경에 사는 이모에게 물어봤더니, 제가 갓난아기였을 때 모친은 왜관 시댁에 살았는데, 시댁에서 모친에게 밥을 주지 않아, 저를 업고 가까운 왜관 외갓집에 가서 찬밥 달라해서 물에 말아 드셨다길래, 마음이 짠했습니다. 제대로 드셨으면 지금도 살아계셨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없는 형편에도 가족들을 위해 제 모친이 굶고 배고프셨던 것처럼, 예수님도 우리를 위해 당신 몸을 아낌없이 내어주셨습니다.
오늘 제1독서는, 멜키체덱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봉헌하는 장면에 대해, 제2독서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 때 빵과 포도주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는 장면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또 오늘 복음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오병이어의 기적에 대해 알려줍니다. 이처럼 오늘 독서와 복음의 주제는 ‘성체 성혈’입니다.
언젠가 어떤 교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미사 중에 성체를 그냥 상징처럼 여겼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슬픔에 빠져있을 때 무릎 꿇고 영성체하자, 말할 수 없는 평화가 느껴졌습니다.” 어쩌면 여러분도 신앙생활 중에 그런 순간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 적이 없다면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은혜를 청하십시오.
성체성혈의 신비는 우리 신앙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이고, 다섯 가지 이유에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1) 예수님의 실제 현존 : 성체성혈은 예수님의 몸과 피, 영혼과 신성 전체가 실제로 현존하는 성사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는 내 몸이다”, “이는 내 피다”(루카 22,19-20)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합니다.
2) 십자가 희생의 영원한 재현 :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최후의 만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고, 미사 때 성체성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현재로 불러오는 거룩한 제사입니다. 예전에 있었던 사건을 단순히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여기서 구원이 실제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3) 교우들과의 친밀한 일치 : 영성체함으로써 그리스도와 영적, 육적 일치를 이루고, 교우들은 한 몸이 됩니다. 1코린 10,17에서 “우리는 한 빵을 나누기에 한 몸입니다.”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성체를 함께 모심으로써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4) 영혼의 양식, 생명의 빵 : 예수님은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요한 6,54)라고 하셨습니다. 성체는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고, 죄를 이기며, 하느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힘을 줍니다.
5) ‘성체성사’는 그리스어 ‘에우카리스티아(감사의 제사)’에서 유래했습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때마다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예수님 사랑에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성체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 했고, 성녀 클라라는 “성체를 모실 때마다 하느님과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신부가 된다.”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성체는 살아계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셨지만, 배은망덕한 우리를 먹이고 살리기 위해 미사 때마다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그분께 드려야 할 말은 “주님, 감사합니다. 저를 치유해주시고, 당신의 자녀로서 충실히 살아가게 하소서.”입니다. 성체를 모시면서 이 말을 계속 되뇌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 생명이 잘 자랄 수 있게 자주 영성체할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주일미사뿐만 아니라 평일 미사에도 열심히 참석하면 좋겠습니다.
우리를 먹여 살리는 영적 양식으로 오시는 성체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면서, 예수님이 하신 것처럼 사랑하고, 나누며 살아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