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의 《십현담 주해》 읽기
서 준 섭 (강원대, 교수)
목차-------------------------------------------------------------
1. 우회하기와 텍스트의 상호의존성 읽기 - 《십현담 주해》를 이해하기 위하여
2 .'주해'의 원전, 김시습의 《십현담 요해》란 무엇인가
1) 동안상찰의 《십현담》- 조동종 문중에서 나온 게송 형식의 禪의 나침반
2) 김시습의 ‘요해’ - 투철한 공부/證道/걸림없는 '이류중행'의 시적 표현과, 주해자의 역사 적 실존이 투영된 '조동오위설'에 충실한 주해본
3. 삶의 기로에서의 활로 찾기, 또는 김시습 曹洞禪의 현대적 계승과 재창조로서의 《십현담 주해》-‘破還鄕’의 다른 길, ‘火中牛’, 방편으로서의 ‘爲牛爲馬’에 대한 사유
1) 실존의 응시로서의 禪과 주해자의 위치성 - 주석의 반복과 김시습과 한용운의 차이
2) 주해자의 역사적 위치와 ‘주해’의 몇 가지 특성
3) 활로와 비전 또는 몇 개의 尖點 - '화중우', '이류중행', '정위'에 머물지 않는 현실주의 의 길
4. 한용운의 《십현담 주해》의 중요성과 그 문학적 의의
-------------------------------------------------------------------
3. 삶의 기로에서의 活路 찾기, 또는 김시습 曹洞禪의 현대적 계승과 재창조로서의 《십현담 주해》- '破還鄕'의 다른 길, '火中牛', 방편으로서의 '爲牛爲馬'에 대한 사유
1) 실존의 응시로서의 禪과 주해자의 위치성 - 주석의 반복과 김시습과 한용운의 차이
禪那, 정려, 사유를 뜻하는 불가의 禪은 문자를 넘어선 체험이다. 불도는《십현담》에서 ‘空, 玄機, 一色’ 등으로 표현되지만, 그 실체는 그런 말 이전의 침묵의 세계에 속한다. 김시습이 주해가 그렇듯 한용운의 주해는 선이며 그것은 지금 이곳의 ‘나’에서 시작되어 나로 끝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가 선의 시작이자 끝이다. 선은 저마다의 실존에 대한 응시이자 고뇌와의 씨름이다. 《십현담》이 동안의 자아 탐구와 깨달음의 표현이듯, 주해는 그 ‘십현담’을 통한 자아에 대한 사유의 능동적 표현이자 證道이며, 자아의 선의 경지를 시적 언어로써 적극적으로 드러내는 행위이다. 그 점에서
《십현담》 ‘주해’란 단순한 언어의 의미 풀이 위주의 텍스트의 해석, 설명을 넘어서는 차원에 위치한다. 그것은 두 가지 차원에서 움직인다. 1) 주어진 《십현담》이라는 같은 작품과 그것이 표현하고 있는 佛法의 동일성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동일성의 표현이다. 2) 그러나 주해자 각자의 삶의 위치성, 정황, 시대 환경, 즉 그의 유니크한 맥락과 관심과 비전의 특이성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보면 주해자 각자의 차이의 생산이다. 들뢰즈가 적절히 지적한 바와 같이 ‘반복은 차이이다’. 반복은 차이 나는 반복이고, 반복이란 그 안에 벌써 간격과 ‘위반’을 간직하고 있다.
반복이란 그래서 차이이다. 동일한 것은 반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개념으로서의 차이’와 ‘차이 자체’는 구분해야 한다. '차이 자체'야말로 특이성으로서의 개체의 중요한 특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각 존재는 동일한 것이 아니다. ‘존재는 차이나는 것이다’. 따라서 반복되는 주해를 동일성의 논리로 보아서는 그 미묘한 차이를 놓치기 쉽다. 작품(불도)의 동일성과 함께 각 주해자의 위치의 차이에 따른 주해의 차이를 함께 보아야 한다.
그리고 차이나는 언어와 그 너머를 동시에 보아야 하며(선과 관련된 텍스트에서 언어는 방편적인 것이다), 개념이나 지식이 아닌 직관에 의거해야 한다. 이 직관은 텍스트 읽기의 ‘방법으로서의 직관’이다. 그런데 차이는 '차이로서의 존재' 즉 저마다의 이름을 가지고 한 인간으로 살아가는 주해자 각자의 실존의 차이이다. 비단 주해뿐만 아니라 모든 글쓰기, 시쓰기가 이 차이로서의 특이성의 표현과 그 반복이다. 그리고 이 특이성이 곧 보편성과 통하며, 보편성의 기반은 각자의 존재(하이데거)라는 공동의 지평이다. 모든 해석은 이 지평에서 움직인다. 법안문익과 김시습의 주석, 김시습의 주석과 한용운의 주해 사이에 드러나는 미세한 차이는 이런 관심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김시습은 ‘요해’에서 “산에 오르거든 반드시 정상에 이르고/ 바다에 들려면 반드시 바닥까지 내려가라”(‘달본’)고 했지만, 정상에 오르는 길과 바다 밑까지 들어가는 길과 방법은 수도자에 따라 다르다. 정상에 오르는 길도 천 가지이고, 바다에 이르는 방법도 천 가지라고 해야하리라. 예를 들면 근대의 뛰어난 선사 경허, 만공, 한암 등과 만해의 입산 수도의 길과 깨달음의 계기와 開悟 이후에 걸었던 불도의 길은 사뭇 다르다. 공부하는 책과 언어의 체계는 비슷할 수 있으나, 각자의 삶이란 체계와 거리가 멀다. 게다가 자기 앞의 삶이란 저마다의 실존의 무게를 지고 홀로 가는 것이다.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이 아니다.
김시습의 ‘요해’가 그의 특이성의 표현이라면, 한용운의 ‘주해’도 다른 무엇으로 대체할 수 없는 그의 특이성, 선을 통한 그 자신의 표현이다. 동안의 시작품도 그렇다. 모두 막상 막하의 선의 고수들이다. 요해/주해를 읽어보면 원문과 주해가 서로 서로 비추면서 동시에 서로 초월하고 있다.
어찌보면 시 따로 주해 따로처럼 보인다(앞의 김시습의 예).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겠으나,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주해자 자신의 위치와 그 참선의 치열성과 현재의 각각의 자아를 뛰어넘으려는 내적 욕망의 강렬도라 할 수 있다. 불가에서는 ‘남의 문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자아의 문제를 가지고 남의 문으로 들어 갈 수는 없다는 자각이 선의 출발이다( ‘言語道斷 不立文字 直指人心 見性成佛’). 자아가 자신의 문을 열고 들어가 스스로 우뚝 서고 스스로를 해방해야 하는 것이 선이다. 김시습이 그 문을 활짝 열고 허공 위에 우뚝 선 것이,
단종의 폐위 이후의 그의 절망과 출가와 입산으로 이 그의 삶의 치열한 결단과 이후의 용맹정진의 결과라 한다면, 한용운의 《십현담》 주해 작업의 몰입은, 3,1운동 투신과 출옥 이후의 그의 설악산 행(오세암 칩거)과 당시 그가 직면하고 있었던 여러모로 절박한 그의 실존의 상황과 관계 깊다. 그와 설악산은 인연이 아주 깊다. 『조선불교유신론』(백담사)을 쓴 곳도, 제일차 개오를 하고 기념으로 ‘오도송’(1917, 오세암)을 썼던 것도 그곳, 특히 오세암이었다. 그곳은 그의 사유의 요람이자 생애의 대표작을 쓴 문학의 산실이었다.
오도송을 들고 하산하여 세상으로 나섰던 그의 오랜 후의 재입산(오세암 찾기) 행위는, 니체의 저 하산했던 짜라투스트라의 재입산을 연상시키는 점이 있다. 한용운의 재입산은 짜라투스트라 이상이다. 철학적 담론 속의 입산이 아닌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세암으로의 재입산은 다시 하산으로 귀결되지만, 당시 그는 생애의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그가 원했던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승려-독립운동가로서나, 한 자연인으로서나 그는 지쳐있었고 삶의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었다. 뭔가 새로운 활로를 찾지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있었다.
“하늘과 땅 나 혼자다”, “오직 나홀로 있다”, “운림의 큰 적막이여 관현악도 처량하구나”. 그의 ‘주해’에 들어있는 구절이다. 고독과 고뇌를 씹으며 《십현담》을 읽고 읽으며, 자신을 근본적으로 다시 돌아보는 선에 정진하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구절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김시습에 비해 더욱 불행한 시대, 앞으로의 삶의 방향에 대한 선택의 폭이 넓지 않은 시대를 살고 있었으며, 더 절박한 삶의 기로에 놓여있었다.
산 속에 숨어사는 승려로 남을 것인가, 독립운동을 계속할 것인가. 나는 누구이며 왜 여기에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거기서 오백년 전의 인물 김시습의 ‘요해’와의 만남은 그로서는 우연이었지만 동시에 운명적인 것이었다. “대저 매월에게는 지키고자 한 것이 있었으나 세상이 용납하지 않아 雲林에 낙척하여, 때로는 원숭이 같이 때로는 학과 같이 행세하였다. 끝내 당시 세상에 굴하지 않고, 천하만세에 결백하였으니 그뜻은 괴로운 것이었고,
그 정은 슬픈 것이었다(---) 수 백년 뒤에 선인을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주해’의 ‘서문’이 온통 김시습(매월) 이야기로 채워지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세상과 인연을 끊고 불도에 전념할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칠을 할까(민족 대표, 역사 개척자로서의 자존심을 버리까, 자신의 명예에 먹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취생몽사로 세월을 보낼까) 망서릴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그의 고뇌가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 시 <당신을 보았습니다>(《님의 침묵》)의 한 구절이다. 그의 오세암에서의 ‘요해’ 읽기(《십현담》 읽기, 참선 정진)는 난세를 살았던 김시습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이자, 《십현담》을 통해 삶의 활로를 사유하는 것이었다. ‘주해’의 맥락이 그것이다.
그런데 ‘서문’에는 ‘요해’와 그 주석에 대해서는 간단히 언급하고 넘어가고 김시습이 난세를 살았던 인물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으나, 이것이 실제로는 김시습의 주해를 정독한 후의 견해라고 보아야 한다. 《십현담 주해》의 ‘용궁의 보물’ 대목(“용궁의 가득찬 저 보물은 약방문이요”-‘연교’)에 대한 한용운의 주석(‘용수’ 보살이 바다 속에서 『화엄경』을 가져왔다는 내용), ‘卞和의 구슬’ 부분(‘진이’)에 대한 주석( ‘변화의 故事’에 대한 자세한 설명) 부분은, 김시습의 ‘요해’의 주석을 거의 그대로 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두 부분을 비교해보면 거의 같다. 그러나 '주해'와 '요해'를 비교해보면 비슷한 주석보다
다른 주석이 압도적으로 많다. 특히 '주해'의 ‘批’와 ‘註’의 내용, '주'에 간간히 삽입된 게송(이 부분은 ‘잠시 후에 이른다’, 또는 ‘잠시 후에 읊는다’는 뜻의 '良久云’, 또는 ‘주장자를 한번 치고 이른다<읊는다>’는 뜻의 ‘打拄杖子一下云'으로 시작된다) 부분은 '주해'의 독자적인 것이다. 이는 그가 김시습의 '요해'를 높게 평가한 동시에 내심으로는 오백년 전의 김시습과 천년 전의 법안 문익의 주해(선의 경지)와 자신의 그것을 겨루고자 했음을 뜻한다. 선행 주석을 깡그리 제거하고 독자적인 주해를 완성한 것이 이를 잘 말해준다. 《십현담》 주석사에서 볼 때 그의 '주해'는 여전히 주해자의 위치에서의 십현담 읽기인 동시에 이를 통한 주해자 특유의 선의 표현 - 證道이자 선의 경지의 시적 표현이다. 그리고 주해의 역사적 맥락에서 보면 그의 ‘주해’는 《십현담 요해》로 대변되는 김시습의 조동선의 재발굴과 그 현대적 재창조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십현담 주해》 읽기는 일차적으로는 ‘요해’와의 간격 즉 차이 읽기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주해' 직후에 완성된 그의 시집 《님의 침묵》과의 맥락을 염두에 둔 읽기를 병행해야 그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요해’와 ‘주해, 주석과 원문(십현담), ’주해‘와 ‘침묵’의 복합적인 관계를 보면서, ‘요해’를 앞세우되 그 뒤의 ‘침묵’을 함께 고려하는, ‘요해’-‘주해’-‘침묵’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이 맥락을 놓치면 ‘주해’를 제대로 보기 어렵다. 텍스트의 상호 의존성과 독자성을 함께 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주해’ 읽기는 그 맥락 읽기이다. 맥락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서 김시습이 특히 중요하다. ‘주해’의 서문과 본문, ‘주해’와 ‘요해’, 한용운과 오세암과 《십현담》을 이어주는 키워드가 김시습이다. 김시습은 생애의 말년에 양양에 머물렀고 오세암에 체류한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의 ‘선인(김시습)과의 만남’의 결과가 '주해'이다.
2) 주해자의 역사적 위치와 '주해'의 몇 가지 특성
'주해'는, 생애의 기로에서 산 속 암자에 들어와 자신의 절박한 실존을 응시하던 40대 중반(47세)의 독립운동가이자 승려인 인간 한용운이, 절망 속에서 《십현담》 10편 80구 하나 하나를 음미하면서 참선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고 삶의 활로와 미래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발견하고 나서 완성한 저술로 생각된다. 그의 지속적인 참선과 깨달음의 산물이 바로
'주해'이다. 그것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제대로 쓸수 없는 ‘작품’인 것이다. 이 작품은 오도송(1917) 이후의 두 번째 개오 즉 본각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이 저술에 이르러 그는 비로소 『원각경』에서 말하는 그 圓覺(始覺은 本覺에 이르러 비로소 원각이 된다)에 이른 것으로 판단된다. 주해하기는 그의 證道의 수단이기도 하다. 법안, 김시습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모두
그렇다. 이 책의 중요성이 여기에 있다. 경허와 만공은 모두 두 번의 깨달음을 얻었고, 한암은 세 번의 깨달음을 얻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해가 ‘그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십현담》 80구에 대한 주해의 투철함과, 거기에 들어있는 독창적인 ‘비’와, 주장자를 치면서 읊은 몇 편의 ‘게송’이다. 주장자는 고승들이 법석에 올라 제자나 대중들을 향하여 법어를 할 때 사용하는 도구로서, 선사에게 있어 주장자의 움직임은 곧 법이다. 주해 속에 주장자를 치며 한마디 하는 부분을 잘 보아야 한다.
뒤이어 쓴 시집(《님의 침묵》)에도 그의 깨달음을 암시하는 시가 있다. “이별의 눈물은 일천 줄기의 꼿비”라는 표현도 나온다. '일천 줄기의 꼿비'란 일체의 번뇌의 불을 끄는 ‘法雨’를 뜻한다. ‘주해’의 ‘비’에도 그의 깨달음의 즐거움이 표현되어 있지만, 이 ‘법우’로 미루어보면 일체의 번뇌가 사라진 자아의 해방감과 엄청난 法悅을 경험하면서 《님의 침묵》 시편들을 썼을 것으로 생각된다. 랭보식으로 말하면 見者가 된 것이지만, 십현담의 열 개의 관문을 통과한 覺者는 사실 견자 이상이다. 코라(크리스테바)가 활짝열려 언어들이 터져 나오는 사건을 경험하면서 주해 이후의 사유를 표현한 것이 '침묵' 시편이다. 존재의 내부로부터 솟아오르는 언어를 표현하는 진짜 시인이 된 것이다. '침묵'이 그 언어를 풀어내는 세계라면 '주해'는 고도로 응축된, 침묵에 가까운 언어로 선의 체험을 표현하는 세계이다.
김시습의 '요해'와 비교하면서 한용운의 '주해'를 정독해보면 특히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차이점이 드러난다.
첫째 형식이 정제된, 간명하면서도 원문의 핵심을 찌르는 단도직입적 주해이다. 한마디로 말해 아주 현대적인 독창적인 주해서이다. '요해'의 원문 옆에 붙인 '평어'를 '비'라는 이름을 붙여 새로 쓴다. '주'는 선행주석에서 볼 수 있는, 경전이나 고승들의 어구 인용이나 화려한 수사와 고답적인 선가의 어투를 답습하지 않고, 원문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해석만으로 채운다.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는 자신의 게송(시구)을 덧붙인다. 원문의 시구에 대한 비, 주, 게송이 어울려 삼박자(게송이 없는 곳은 이박자)를 이루는 형식이다. 독자적인 현대적 언어로 이루어진 이 주해 부분에서 본문과 비와 주의 뉘앙스는 서로 다르지만, 상호 보충대리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요해'의 김시습 서문, 동안의 원서문도 삭제해 버렸다. 전체적으로 체재가 간결해지고 현대적으로 다듬어진 형식이다.
주석은 간명하지만 단도직입적이어서 원문의 핵심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둘째 '조동오위설'에 충실했던 '요해'의 김시습적인 원문 해석 태도에서 상당히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입장에서의 주해서이다. 정편오위설에 따른, '정위에도 머물지 말고 편위에도 머물지 않는 선'의 강조는 법안 문익과 김시습 주석의 중요한 특성이다. 이 용어는 그들의 주석에서 자주 반복되고 있는 중요한 용어이다. 조동문중의 가풍을 존중하면서 그 전통 위에서 주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용운의 주석에는 이 용어가 자주 등장하지 않는다. 요체는 살리되 간단히 처리한다. 예를 들면 '전위'의 "나무사람 한밤중에 신을 신고 돌아가고/ 돌계집 날이 새자 모자 쓰고 가는 구나(木人夜半穿靴去 石女天明戴帽歸)"의 후구 주석이 그렇다. “나무사람 돌계집은 모두 본래의 진면목이다.
편, 정을 두루 얻으면 體와 用이 완전히 빛난다(偏正兩得 體用全彰)”. 정위와 편위를 두루 얻어 체와 용의 兼帶가 되어야 한다고 간단히 설명한다. 간단하지만 핵심은 다 들어있다. 주에서 ‘정,편’을 함께 말한 것은 이 대목 하나이다. 나머지는 모두 ‘정위에 머무는 선의 부정’이다. “被毛戴角入廛來” 구의 ‘비’와 ‘주’를 보자. “(비) 삼세 제불이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한다(三世諸佛 爲牛爲馬). (주)(---)이는 正位에 머물러 있지 않고 다른 무리들을 좇아 그 속에서 행함(從異類中行)을 말한다. 根機에 따라 사물을 접하고 두루두루 응용한다”. 간명하면서 단도직입적이다.
김시습이 이 부분을 조동종의 ‘사종이류설’과 관련지워 길게 자세히 설명했던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한용운의 ‘주’에는 원문(被毛戴角入廛來)에 대한 주해자의 동의와 그의 독자적 재해석과 원문에 대한 시적 재창조가 드러나 있다. “삼세제불이 소가 되기도 하고 말이 되기도 한다”는 ‘비’가 그것이다. 이는 선행주석에서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창적인 표현이다. 주해자의 선을 능동적으로 표현한 활구이다.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말이지만, 상황에 따라 ‘入泥入水’하고 노역을 감수한다는 말이다. 이 ‘비’는 주해 전체 중에서도 尖點을 이루는, 한용운 선의 방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용운사의 주해는 십현담의 선후 역사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같다. 선생의 불교 지식의 어쩔 수 없는 사정에서였을망정 한계가 있었다”. 《십현담》이 조동선맥의 적통인 동안의 작품, 즉 조동선의 요체를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 김시습이 조동오위설에 충실한 주석을 하면서 자신의 주석과 법안문익의 선행주석을 병기하여 '요해'를 저술했던 사실, 한국 조동선맥이 이엄, 일연, 김시습으로 이어져 내려왔고 『중편조동오위』, 『조동오위군신도』가 이 방면의 중요문헌이라는 사실 등을 한용운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채 《십현담》을 주해한 것으로 보는, 한 불교사학자의 평가이다. 《십현담》의 의의와 그 해석사의 맥락에서 보면, 한용운의 주해가 선행 주석을 병기하지 않고 조동오위설을 덜 강조한 것은 선례를 무시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선행 주석과의 바로 그런 차이야말로 한용운 주해의 중요한 특성이다. 주해의 반복이란 차이이고 벌써 위반이기 때문이다. 이 차이를 보지 않고 동일성의 논리로 보아서는 '주해'의 독창성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다. 하나의 텍스트를 주해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 것이다.
그의 주해에서 반복해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한용운 역시 정위와 편위 어디에도 머물지 않는 선, 특히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을 역설한다.
이는 “涅槃城이 오히려 위태롭다"('전위')고 강조하는 십현담 본문의 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라 할 수 있으나, 주해자의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의 강조는 주목할 만하다. ‘정위’란 말은 동산,조산에 의해 ‘정위/ 편위’로 구분되고 또 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해지면서, 조동오위설의 용어로 변용되지만, 정위란 용어 자체는 조동종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가 아니다. 『유마경』과 『화엄경』에서 비롯된 용어이다. 조동종문에서 정립된 조동오위설에 대해서는 수많은 해석과 논의가 있다. 그 중의 하나는 “정위는 인연과 관계하지 않는 지위, 편위는 인연과 관계하는 지위”, “편중정은 인연을 겸한채로 시설하는 지위이되 정위로 구속되는 지위”라는 해석이다. 정, 편에 대한 이런 해석은 한용운의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십현담의 두 구 “금쇠사슬 현관에 머물지 말고/ 다른 길을 따라 윤회하라”(‘회기’) 부분의 후구에 대한 한용운의 주해를 인용해보자.
(원문) 다른 길을 따라 가서 윤회하라
(비) 낚시대에 풍월이요 온 천지가 강호로다(一竿風月 滿地江湖).
(주) 정위는 갖가지 길과 떨어져 있지 않다. 열반은 곧 윤회 속에 있다. 남자 가는 곳마다 본지 풍광이니 긴 윤회 속에 있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고 소가 되고 말이 되고 현관에 머뭇거리지도 않는다. 세상에 나온 대장부는 마땅히 이래야 한다. 갖가지 길을 따라 간다는 것은 어떠한 것인가? (잠시 후에 읊는다) 雲林의 큰 적막이여 /관현악도 처량하구나.
한용운의 '정위'를 보는 눈, 열반과 윤회에 대한 사유, 대장부다운 기개와 걸림없는 선풍을 한꺼번에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비’와 ‘게송’에 묘한 차이가 들어있다. 주해에서의 게송은 지금 이곳의 주해자의 현실(오세암)에 대한 그의 사유의 표현이다. ‘비’의 자유와 게송의 처량함(자비와 연민의 표현)을 함께 읽어야 그 뜻이 살아난다. 김시습은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임제문중을 만나면 지옥(‘확탄,노탄’)이고 어디고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기개를 표현했었는데, 한용운은 ‘소가 되고 말이 되기’에 대한 사유와, 운림의 적막을 말하고 있다. 남자 가는 곳마다 ‘
본지 풍광’이란 모든 곳이 ‘고향’이란 뜻이다. 김시습의 ‘영웅호걸’을 연상시키는 ‘대장부’라는 언어는 다른 주석 부분에도 나온다. “앞에 적이 없고 뒤에 임금이 없고 진퇴가 자유롭고 책략도 없는 대장부”의 기개를 말한다. “대장부의 처세가 실로 이래야 마땅하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도를 운용할 때 씩씩하게 해야 외부의 사물에 사역되는 일이 없다”(‘진이’의 “장부자유충천지”의 ‘주’).이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학』에서 말하고 있는 그 ‘강한 자('선한 자'와 구별되는)’를 연상시킨다. 대장부는 강한자라는 뜻이다. 착하기만 하고 수동적인 서을 부정한다. 그의 선은 강인한 힘을 그 안에 간직하고 있다.
한용운이 조동오위설과 일정한 거리를 취하는 것은 오위설이 선의 방편이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이다. 그는 지나친 방편은 배우는 사람을 오히려 구속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에 비판적이다( ”방편으로서 성을 쌓으니 진실로 정토가 아니다”-‘전위’의 주석), 주해의 언어가 간단명료하고 이해하기 쉬운 말을 사용한 것은 그 때문일 것이다. 그의 주석은 경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뛰어난 수사학을 구사하는 김시습의 주석에 비해 단조롭다. 꼭 언급해야할 경우가 아니면 인용을 아낀다.
셋째 한용운 자신의 사회적 실존과 선의 경지가 곳곳에 투영되어있는 주해이다. 1) “부처님 간 길 따위 뒤밟지 말라”('진이')라는 구에 대한 그의 주석은 이렇다 - ”부처님 간 길은 이미 낡은 자취이니 다시 다른 곳을 찾아나서야 묘한 경지이다. 부처님이 가지 않은 길이 어디인가“. 이 대목은 그의 사유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주석은 단순한 낱말 뜻풀이가 아니다.
2) 생의 기로, 백척간두의 상황에 놓여있던 오세암에서의 심정과 주해 당시의 그가 처했던 사유의 곤경이 ‘주’에 투영되어 있다. 그의 百尺竿頭는 어디일까. 본문의 ‘환원’ 이후 ‘정념과 티끌이 일체 사라진 마음의 경지’를 말하는 구절(”만년 소나무 오솔길에 눈 깊이 덮여있고/ 한 줄기 산봉우리에 구름 다시 가린다”(萬年松逕雪深覆 一帶峰巒雲更遮)에 대한 주해 부분이 주목된다. “(비) 한걸음 한 걸음 내딛는데 묘미가 있다.
(주) 소나무 오솔길 통하지 않고 모든 산이 막혀있으니, 들어가는 길도 없고 나가는 길도 없어, 형세는 백척간두에 이른다. 다시 萬法 가운데서 활로를 찾지만 접촉하는 곳이 다시 막힌다. 이에 이르러서야 승지절경이라 할만하다. 이런 때는 어떤가(주장자를 한번 치며 읊는다) 구름 속의 산봉우리로다“. 《십현담》의 시적 비유와, 외부와 차단된 오세암 산속 풍경과 주해자의 사유의 곤경이 묘하게 얽혀 있다고 읽을 수 있다. 백척간두를 '승지절경'이라 하고 이를 돌파하는데서 그의 사유의 進境을 볼 수 있다. 3) 원문 ”還鄕의 노래를 어떻게 불러볼까“에 대해, ”고향집에 돌아왔다는 말은 옳지 않다”고 주석한다. 이 부분은 활로 찾기와 선 사이의 긴장과 대응 관계를 들여다 볼 수 있는 대목이다.
4) ‘달본’의 본문에 붙인 '비‘에는 ”지난 날을 돌아보니 연민이 일어난다“, ”불법은 오직 백발에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도를) 알고나면 묘하지 않다“는 ’비‘도 있다. 본문 마지막 구 ”존당에는 한 물건도 바칠 것이 없다“(更無一物獻尊堂)에 대한 ’비‘와, ’주‘에 덧붙인 게송은 다음과 같다. ”(비) 그래도 존당은 존재하네“, ”(잠시 후에 읊는다) 없는 손털고 없는 집으로 돌아오니/ 백골은 땅에 가득하고 풀빛은 청청하네“. 모두 주해자의 실존이 투영된 부분이다. 5) 본문의 “우담발라 꽃 불 속에 핀다”에 대해 “마음 속으로 사모하던 사람이 이 사람(또는 ”사모하는 저 사람이여“)이라는 ‘비’를 덧붙이고 있다. 6) 김시습처럼 임제풍이 완연한 언어 사용를 사용한다. ‘현기’의 마지막 구를 보자.
“(원문) 뭇 성인들 저끝에서 손을 털어 버렸으니(撤手那邊千聖外)”-“(비) 부처도 쳐버리고 조사도 쳐버려서 천지 가득 한 물건도 없음이여/(주) 초연히 우뚝서서 의지할 물건이 필요 없으니, 이것이 대장부의 사업이다”. 여기서 “부처도 쳐버리고 조사도 쳐버린다(佛也打 祖也打)”는 말은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보면 조사를 죽이라”고 한 임제의 말투 그대로이다. 이어지는 대목. “(원문) 돌아오는 길 불 속의 소나 되어볼까(廻程堪作火中牛)”-“(비) 가는 것도 평안이요 오는 것도 평안이다./ (주) 돌아오는 길이란 말이 끝난 사업 이후이다(---) 불 속의 소(火中牛)란 무엇인가( 주장자로 한번 치며 읊는다) 방초도 먹지 않고 집도 없어야/ 비로소 천하를 다 얻어 경작할 수 있다“.
넷째 김시습의 '요해'의 《십현담》 10편의 본문을 텍스트로 삼아 본문 9편의 제목은 그대로 사용하되, '환원'편 하나만은 그 제목을 '破還鄕'으로 바꾸어놓은 주해이다. 1) 한편의 제목 바꾸기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요해’의 김시습 주석에 의하면 ‘환원’편이 ‘파환향’으로, ‘일색’ 편이 ‘定位前’, 또는 ‘一色過後’로 명명되기도 하고 또 그렇게 된 異本들이 있다고 한다. '환원'이라 하든 '파환향'이라 하든 이런 편명 바꾸기는 십현담 본문의 내용에 크게 저촉되지 않는다는 뜻이겠다. 그러나 요해의 '환원'편을 ‘파환향’으로 바꾸어 놓은 것 그 자체가 주해자의 본문에 대한 해석이요 주해의 내용을 이룬다고 보아야 한다. ‘환원’
이라는 제목을 ‘파환향’으로 고친 후의 그 제목에 대한 한용운의 ‘비/주’를 보자. “(비) 어느곳인들 고향이 아닌가”. “(주) 말단은 이미 空하고 근본도 有가 아니다. 근본에 이르고 고향집에 돌아오는 것은 어제밤 꿈과 같다“. 환원(고향에 돌아온다는 뜻)이라는 편명에 대한 거부감이 나타나 있다. 2) ‘파환향’의 본문 부분에 대한 ‘주’에서, ‘취하고 버리는 선’을 비판하고, ‘처소도 머물 것도 없는’, 말 그대로 ‘파환향’의 경지에 도달한 한용운 자신의 선이 거침없는 언어로 적극적으로 표현된다. 그가 '파환향'이라 고친 이유도 '환원'과 관련된 그의 사유를 적극적으로 펼치기 위한 것임이 드러난다. 이어지는 본문 해석을 보자.
(원문) 본원에 돌아가면 사업은 이미 틀린 것(返本還源事已差)
(비) 금이 귀하지만 눈에 들어가면 눈병난다.
(주) 말단을 버리고 근본에 돌아온다. 지류를 버리고 본원에 돌아온다. 이것은 취하고 버리고 나아가고 물러남이 있다는 것이다. 어느새 취하고 버리는 것이 다시 잘못된 길(도)를 만든다. 어찌 어긋나지 않겠는가.
(원문) 본시 머물곳 없고 집 또한 없는 것(本來無住不名家)
(비) 온몸에 가득한 청풍명월이여.
(주) 불법은 내외, 중간이 없고 정해진 곳도 없다. 미리 정해진 곳이 없는데 왜 집이라 이름 붙이는가. 처소도 머물 곳도 집도 없으니 고향집에 돌아온다는 것은 틀린 것이다.
앞 구의 ‘주’는 ‘환원’(근원, 고향, 불성으로서의 자성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라는 말 자체에 대한 부정의 태도가 분명히 드러나 있다. 본원을 말한다는 것은 어느새 취하고 버리는 것을 말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벌써 분별심이 작용했다는 해석이다. 후구는 본문의 ‘집’이라는 말에 대한 부정적 해석이다. 처소도 머물 곳도 집도 없는데 그런 표현을 쓰는 것은 잘못이라는 뜻이다.
그가 ‘파환향’이라고 바꾼 이유를 여기서 알 수 있다. 이 대목은 선행 주석에 대한 이의 제기이자 원문에 대한 이의 제기이다. 한마디로 주해자의 독창적 해석이다. ‘서문’에서 언급한, 선행 주석에 대한 ‘말밖의 뜻에 대한 이견이 있다’는 부분이 특히 이 부분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그가 이미 분별심에서 벗어나 분별심을 볼 수 있는 자유인이라는 의미도 된다. 분별심이 없는 경지를 ‘일색’이라 하지만, 이 부분의 제목 바꾸기에는 ‘환원’이라 했을 때와 다른 미묘한 차이가 있다. 3) ‘파환향’ 또는 ‘고향’이라는 기호는 주해와 주해자 양쪽에서 모두 복합적인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다. 본문에서 자아의 근원으로서의 불성(마음)을 뜻하지만, 주해자와 관련지워 보면 한용운의 현실적인 고향(홍성), 조국, 불법 공부의 고향(설악산), 지금 이곳, 이 오세암(몸을 의지하고 있는 곳), 불자의 도량(절), 십현담의 본문에 나오는 ‘집’, 오도송(1917)의 '고향' (오도송 7언절구의 첫구 ‘男兒到處是故鄕'에서의 ‘고향’) 등의 복합적인 의미도 있다.
이 중 마지막 오도송과 관련 지워보면, 오도송에 나오는 ‘고향’이라는 말에는 그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직 어떤 분별심이 남아 있었던 셈이다. 한용운이 주해에서 ‘환원‘을 굳이 ’파환향‘으로, 즉 고향이란 말 자체를 깨뜨려보이고 있는 것을, 과거의 그 오도송과의 맥락에서 보면, '주해'는 오도송의 세계보다 훨씬 진전된 사유라 할 수 있다. 그는 이 ’고향‘이라는 말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오도송에서 진일보하는 進境/眞境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를 그의 실존과 연결 시켜보면 이제는 어디에도, 머물지도 매이지도 않겠다는 뜻이다. 그는 뒤에 절에 머물지 않고 서울로 간다. 사람 사는 세간이 그가 가는 길이 될 것이다(그러나 그의 선택에는 시대라는 제한이 있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하지만, 이 길이 그에게는 '정위'에 이르렀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는 선의 태도와도 상통한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다섯째 '주해'는 한용운 자신의 독자적인 십현담 읽기(주석) 쪽에 그 주안점이 놓여있는 저술이다. 동안의 원서문과 법안의 선행주석을 포함시켰던 김시습의 '요해'와 비교하면 이 점이 두드러진다. '요해'에 포함된 《십현담》 원문 이외의 설명과 주석들은 이 책으로 통하는 ‘사다리’에 불과하다. 비트겐슈타인의 말대로 일단 지붕에 오르면 ‘사다리’는 불필요하다. 한용운은 이 사다리를 치우고 '서문'에 그 흔적(김시습의 이름)만 남겨놓았다. '주해' 본문에는 '십현담' 원문과 한용운의 주해 밖에 없다.
후학들(법보회 회원)을 위한 교육적인 배려도 있는 저술이지만, 이 작품은 김시습의 조동선의 계승이자 독자적 재창조, 즉 선사로서의 독립 선언의 의미를 띤 것이다.
3) 활로와 비전 또는 주해의 몇 개의 尖點 - ‘화중우’, ‘이류중행’, ‘정위’에 머물지 않는 현실주의의 길
'주해'는 실존의 백척간두를 넘어서 해탈에 이르는 한용운의 사유의 산물이지만, 거기서는 열반과 그 이후의 사유가 공존한다. 주해의 역점은 다음과 같이 재정리 할 수 있다. 1) ‘불 속의 소’(화중우)에 대한 공감과 관심이 나타나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다. 2) 때와 장소, 상대방의 근기에 따라 '정위'와 '편위', 체와 용을 두루 아우르는 兼帶의 선, 참으로 대장부다운 ‘이류중행’(피모대각)의 사유가 적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굴하지 않는 임제풍의 선, 김시습도 좋아한 임제풍에 매료되고 있다.
3) ‘정위(열반, 공계)에 머물지 않는 선’을 강조한다. ‘삼세제불이 소가 되고 말이 된다(爲牛爲馬)’. 정위에서 내려와 기꺼이 소나 말이 되고 노역도 감수하는 길을 사유한다. 4) ‘파환향’의 다른 길에 대한 적극적인 사유가 나타나 있다. 이 네 가지는 서로 조응한다.
고뇌로부터의 해방(열반)되면서 그가 도달한 사유의 첨예한 지점들이 이것이다. 그 사유의 에너지는 《십현담》과 김시습의 '요해'이다. 그가 삶의 기로에 서서 1925년 여름 설악산 오세암으로 들어가 십현담을 읽으며 마침내 발견한 삶의 새로운 활로가 이 첨점 주변에 있다. 번호를 붙였지만 이것은 시간적 순서가 아니라 동시적인 것이다. 그 중에서 정위(열반)의 부정과 정, 편의 겸대 또는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과 ‘이류중행’(피모대각)의 방편은 주해에 나타난 한용운 선의 에센스라 할만하다.
이것은 김시습의 선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김시습은 조선조의 떠돌이 승려-지식인(시인)이고, 한용운은 국권상실기의 독립운동가-승려인 만큼, 사회적 위치와 풀어야 할 과제와, 걸어야 할 삶의 길이 서로 다르다. 한용운에게는 김시습에게 없는 민족문제라는 무겁고 절박한 화두가 하나 더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침체된 불교계가 있고 가슴이 뜨거웠던 그로서는 절에만 머물러 있을 수도 없었다. 민족문제라는 공동체의 짐이 김시습에게는 없었다. 따라서 한용운은 김시습보다 더 멀리 나가야 한다. 현실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용운 선사상의 현실주의적 성격은 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렇기는 하나 '주해'와 '요해'는 상호의존적이다. 김시습의 요해가 없었다면 한용운의 주해가 나오기 어렵다. 주해는 요해로 대변되는 김시습의 조동선의 현대적 재해석, 재창조이다. 진정한 깨달음이란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보는 것이다. 실존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깨달음이란 깨달음으로 미흡한 것이다. 한용운의 주해에는 이후의 그의 모든 길이 그 안에 ‘주름’ 잡혀 접혀져 있다. 주해 이후의 그의 행각은 그 주름을 조금씩 펼치며 그것을 현실화(실천)하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십현담의 현관은 거대한 바다와 같아서, 그 안에 수많은 가능성(방편, 길들)을 내장하고 있다. 주해 작업은 그 현관에서 헤엄치며 필요한 고기를 낚는 것과 같다.
조동오위설은 선의 경지를 다시 다섯 가지로 세분하여 가르치는 조동 종문 특유의 섬세함을 지닌 교설이라는 점에서 보면 그 나름의 장점이 있지만, ‘오위’라는 언어 자체에 집착하게 하여 선의 근본 취지를 저버리게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보면 자체의 문제점도 있다.
한용운이 선행 주해자와 달리 이와 일정한 거리를 취하면서 《십현담》을 주해한 것은 이런 문제점을 스스로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주해는 겸대와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이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나치게 방편에 갇히는 선을 부정한다. 오위라 하지만 "오위는 一位"이며, "일위 가운데 오위가 具藏되어 있다"는 한국불교계의 해석이 나오는 것도 지나친 방편에 대한 경계의 의미로 이해된다. 학승 김탄허는 조동오위설을 주해하면서, 오위 자체보다도 군신오위설에 나타난 불교와 유교(주자태극도, 주역)의 상호 회통의 가능성과 그 논리에 주목하면서 이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있다. 조동오위설이 오늘날 한국불교계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 것은 묵조선(조동종) 보다 간화선을 중시하는 조계종의 오랜 전통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조동오위설이 당초의 그 방편적 취지를 잃어버리고 하나의 교설로 굳어짐으로써, 배우는 사람들이 자칫하면 이에 집착하여 선의 본래 목적을 잊어버릴 수도 있는 자체의 문제점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류중행과 겸대와 정위에 머물지 않는 선을 강조하는 한용운의 선이 조동선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렵다. 여기서 한용운의 조동선과 조동종 자체는 구분하여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연보에 의하면, 그는 일본 조동종 대학에 잠시 유학한 바 있으나(1908, 6개월 정도 체류), 돌아와 범어사에 조선임제종 종무원을 창립하고 관장에 취임
(1911)한 바 있는데, 그의 선에 나타나는 임제풍은 이와 관련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주해' 서문은 김시습에 대한 추모의 말로 채워져 있다. 일연-김시습-한용운의 조동선맥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의 선사상이 한국의 전통적인 선불교에 대한 현대적 해석의 한가지라는 점이다. 피모대각과 현실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는 일찍부터 불교유신을 주장한 바 있고, 설악산을 떠나 환속한 이후 재가불교의 경전인 『유마경』 번역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주해는 그의 지속되는 불교적 사유의 중간 단계를 이루지만 그것이 《십현담》의 조동선사상과 관련되어있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조동선은 당시 불교계의 만공이나 한암의 선풍과는 뚜렷이 구분되는 것이다.
주해의 마지막 대목 ‘일색’의 주에도 그의 현실주의가 나타나 있다. 주에 덧붙인 게송에서 “(환한) 달빛이 세상사람을 밝혀줄 수 없다”는 표현은 이 현실주의와 관계 깊다. 이 게송이 주해의 마지막 부분이라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현실주의적인 《님의 침묵》 시편의 싹은 이 게송 속에 이미 들어 있다. 다음에서 보듯 원문(비)과 게송의 분위기는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서로 겸대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
(원문) 그대 위해 남몰래 玄中曲을 부르노니(慇懃爲唱玄中曲)
(비) 삼세의 불조마저 귀먹겠구나.
(주) (--생략--)
(원문) 허공 속의 저 달빛 움켜 잡을 수 있겠느냐(空裡蟾光撮得麽)
(비) 천개의 손이 이르지 못하니 만고의 명월이다.
(주) 달빛을 움켜 잡을 수 있는 사람은 곧 '현중곡'을 이해할 수 있다. 어떻게 달빛을 움켜 잡을 수 있겠는가? (주장자로 세 번 치고 읊는다) '달빛이 세상 사람을 밝혀줄 수 없으니 /한가로이 아이 불러 반딧불이 모아오게 하네.'
[후주]
27) 질 들뢰즈, 『차이와 반복』(파리: P.U.F, 1968), ‘서론‘ 참조
28) 같은 책, 56면 참조.
29)‘방법으로서의 직관’이라는 용어에 대해서는 질 들뢰즈, 『베르그송주의』(번역판, 문학과지성사) 참조. 한국문학에서의 직관적 해석학의 문제에 대해서는 졸고, 「조연현의 문학비평에 대하여」,『한국학보』,107집, 일지사, 2002. 참조.
30) 그는 이 오도송을 써가지고 당시의 선사 송만공에게 갔고, 거기서 만공과의 선문답을 주고 받았다. 만공은 ‘다만 한 조각 땅을 얻었다(只得一片地)’라고 했다. 만공문대회,『보려고 하는 자가 누구냐』,묘광, 1983. 134-5면 참조.
31) 민영규, 앞의 논문 참조.
32) 일연, 『중편조동오위』, 30-31면 참조.
33) 같은 책, 98면.
34) 『임제록』, 一指 옮김(고려원, 1988), 175-174면 참고. 조동종, 임제종 등 선문 5종의 선풍의 특성에 대한 이해하는데 다음과 같은 평이 도움이 된다. “위앙의 근엄함, 조동의 세밀함, 임제의 통쾌함, 운문의 高古함, 법안 스님의 간명함”이 있으나, “5가는 사람에 따라 풍이 달라진 것이지 道가 다른 것은 아니다”(『조동록』머리말).
35) ‘주해’는 ‘요해’을 텍스트로 삼고 있어 두 텍스트의 《십현담》 원문을 비교해 보면 서로 일치한다. 다만 ‘현기’의 첫구 ‘迢迢空劫勿能收’(‘요해’)의 ‘迢迢’가 ‘주해’에서는 ‘超超’로 표기되어있음이 발견되는데, 이것이 원고의 오기인지 교정 상의 오식인지 단정하기 어렵다.
36) 성철, 「선문정로」, 『산은 산 물은 물』(밀알. 1983), 392면 참조.
37) 김탄허, 앞의 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