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더운거야 당연하지만, 올해 여름은 유난히 폭염이 길고 덥다. 긴 여름을 시원하게 보내는 방법은 에어컨이나 얼음 또는 계곡으로의 피서가 아니라, 뜻이 맞는 이들과 함께 마당에 멍석을 깔고 노는 것임을 구례에 와서 절실히 느꼈다.
먼저, 말복의 주인공 닭을 잡는 것이 큰 문제였다. 윤주옥 처장님 댁의 닭은 원래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아예 집을 나가 버렸고, 민종덕 샘 닭 두 마리중 하나는 말복 하루 전에 죽고, 하늘이네 닭은 유정란을 낳는 거라 또 주인의 애틋한 사랑으로 잡을 수 없는 처지이고. 확실한 토종닭은 민샘 집 살아남은 닭 하나. 생명평화 순례단까지 온다는 소식에 최소한 닭 5마리는 확보해야 할 상황.
또 다른 어려움은 가만히 앉아 있어도 땀이 주르르 흐르는데, 닭 삶는 가마솥 앞에서 누가 장작을 넣고 두 시간 가량을 진득이 기다릴 것인지, 나는 솔직히 그것은 피하고 싶었다.
말복 모임은 구례의 진정한 농부를 지향하는 ‘깊은산 흐르는물’(부부의 닉네임) 집에서 열렸다. 말복잔치 준비팀이 도착하기 전에 안주인(정은영)은 벌써 닭 일곱 마리가 든 가마솥에 장작을 넣고, 화단청소를 하고 있었다. 하늘이네 집은 산언덕에 있어 산바람이 참 시원하게도 불었다. 안주인의 여유로 우리는 백숙에 넣을 부추를 가지러 의외의 마을구경을 가고, 장독대의 봉숭아를 감상하고, 시골아이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말솜씨에 목젖이 보일정도로 웃었다.
사람들이 서서히 모이고, 가마솥의 닭은 구수한 냄새를 풍기고, 윤 처장님의 차분하고 맑은 목소리가 섬진강 쪽의 일몰과 함께 잔잔하게 녹아들고, 진재선님의 하모니카 소리가 각자의 마음의 고향을 애잔하게 울렸고, 이어 일파만파의 자칭 에이스 멤버, 김영란님과 정태연님의 심금을 울리는 노래들이 이어졌다.
가마솥에서 장장 두 시간을 푹 삶은 백숙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모두 함성을 지르고, 일몰은 절정을 이루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더위는 그렇게 사라지고 있었다. 이어 생명평화순례단의 개념있는 노래와 박두규 시인의 답례곡, 국시모 신입간사 김민정 소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박이 나왔다.
서로의 얼굴을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이 깔리자 자연스럽게 멍석을 개고, 그래도 이대로 헤어지기 아쉬운지 하늘이네 해바라기 옆 큰 돌 위에서 남은 매실주를 비우면서 아쉬움을 달랬다. 말복이자 입추에 함께 마당에서 백숙을 먹은 이들은 마음속의 가을에 흠뻑 젖어 일몰과 해바라기가 있는 시골생활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넘어 함께하는 것의 예술에 취했으리라 여겨진다.
글 심진미 (한백생태연구소 간사) 사진 민종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