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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과 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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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아주 쉽고 명쾌한 한 구원론
개혁과진보 추천 1 조회 1,765 13.08.01 10:17 댓글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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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3.08.01 10:47

    첫댓글 15분 정도이면 성경적인 구원론을 정립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에서 400여년 이상 싸워 온 내용인데 말입니다. 스스로 생각해도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안에서 탁월한 능력(?)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 작성자 13.11.01 12:43

    계속적으로 내용을 더하고 수정하는 작업을 하였습니다. 15분이 아니라 6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정도의 양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손대지 않아도 될 정도가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 작성자 13.08.04 21:40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관계를 설명할 때 문자적으로 읽으면 어떤 방식으로 설명하든지 모순이 발생합니다. 믿음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이고 행함은 믿음에 뒤따르는 바른 행실이라고 읽으면 무조건 모순이 생깁니다. 로마서는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하고 야고보서는 믿음으로만 아니라 행함으로도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곧 로마서는 믿음에 뒤따르는 바른 행실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는데 반해 야고보서는 믿음으로만 아니라 믿음에 뒤따르는 바른 행실로도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됩니다. 모순입니다.

  • 작성자 13.08.06 12:54

    말씀사역자라면 시찰회원들과 함께 생각을 공유하고서 노회에 안건으로 상정하면 좋다고 생각합니다. 노회원들이 함께 읽게 되면 더 좋고요. 그렇게 총회에 안건으로 상정되고 신학교를 통하여 연구하게 되어 교단적으로 바른 구원론이 확립된다면 그보다 더 좋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단들이 개신교를 비난하는 빌미가 사라지고 우리 지체들이 신천지와 같은 이단의 주장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는 데에도 유익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말씀, 한 구원론이 정립되면 말씀의 터 위에 굳건하게 세워지는 계기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 13.08.06 14:30

    간략하지만 잘 정리해 주셨군요
    그런데 로마서와 야고보서의 비교에서
    로마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해서 얻는 의
    ㅡ 믿음의 시작, 바른 관계의 회복으로 인한.
    야고보서가 예수를 주님으로 모신 삶의 의
    ㅡ 곧 새계명으로 율법을 이루어 나가는 새생활의 내용이 아닐까요?
    잘 기술하시다가 그 부분에서 약간 오타가 난 것은 아닌지...
    아무튼 저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

  • 작성자 13.08.06 17:08

    로마서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해서 얻는 의는 전제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별도로 기록할 필요가 없이요.
    로마교회에게 그것은 이미 당연한 것이었으니까요.
    로마서에서의 의는 율법 준수와 대비되는 것입니다.
    여기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지요.
    로마서에서 지켜야 할 것으로 제시된 성령의 (율)법도 마찬가지지요.
    새 언약의 백성이라는 것이 깔려 있습니다.
    율법 준수가 아니라 성령의 (율)법 준수가 새 언약의 백성들에게 주어진 삶의 원리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로마서의 내용입니다.
    성령의 (율)법 준수가 바로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믿음이지요.

  • 13.08.06 20:30

    ㅎㅎ 신앙생활이란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회복이
    전제된 삶이 아니겠습니까? 로마서에는 그것을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기록하었습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계의 회복에서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믿음의
    생활이지요. 곧 율법의 속박하에 내 의지로 율법을 지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삶이 전환되어야 진정한 승리가 보장된다는 말씀이지요.
    물론 롬 6장과 8장 사이에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죽고 율법에서 해방되었음에도 거듭
    실패하고 좌절하는 바울 사도의 탄식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 13.08.06 17:47

    로마서에그리스도를 영접해서 얻는 의가 전제되어 있다는 표현은 조금 무리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가 무엇인지를 바울은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구원자, 구주로 영접한 믿음의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 삶의 주인이 되시지요?
    따라서 성령으로 말미암는 새생활의 요구가 당연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야말로 그런 내용을 담고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보다 결코 앞설 수 없는 내용이지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올린 글이었습니다!

  • 작성자 13.08.06 17:58

    제가 님의 글을 읽으면서 위의 도표에 의에 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싶어 적었습니다.
    신자라면 A에서의 의는 지극히 당연합니다.
    B에서의 의도 그럴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됩니다.
    어떤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그 방편으로 율법 준수를 제시하였고 로마교회가 옳다고 생각하여 따르는 상황에서 바울 사도가 그것이 아니라고 한 것이 로마서입니다.
    새 언약의 교회는 옛 언약의 율법 준수가 아니라 성령의 (율)법 준수를 통하여 B에서의 의롭다하심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가 아닌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는 A, B 모두에 해당.

  • 13.08.06 18:25

    저는 위 a, b를 참 잘 정리해 주셨다고 봅니다.
    다만 b를 가능케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싶습니다. 또한
    " 성령의 법 준수가 새 언약의 법이 주어진 삶의 원리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것을 통하여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
    로마서의 내용"이라는데는 동의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의롭다고 인정하실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요즘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결국 믿음이라는 선물을 받아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조차
    의로운 생활은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부인하고 성령님의 이끄심_견인_이 없이는
    거룩한 삶이란 여전히 그림의 떡입니다.

  • 작성자 13.08.07 10:46

    성령의 법 준수가 자신의 힘과 노력의 산물로 생각하시지 않으시면 되겠지요. 성령님의 이끄심-견인-의 결과 곧 열매라고 생각하시면 문제가 없지요. 성령의 법 준수가 거룩한 삶이며 그것은 선행된 하나님의 역사 곧 우리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그러니 은혜이지요. B를 가능하게 하는 원천입니다. 은혜이면서 우리의 의가 됩니다. 우리의 의에 대해 무조건적인 거부감을 버리시면 수긍하시기에 별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선행된 은혜의 열매인데,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의라고도 보신다는 것으로요.

  • 작성자 13.08.07 10:52

    그리고 성령의 법 준수에 있어서 어느 정도이어야 의롭다함을 받느냐에 대해서는 전 모릅니다. 성경이 그것을 알려주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성경의 진술을 따라 신자가 되면 이전에 의롭다함을 받은 것으로 인해 자동적으로 또는 지속적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님의 뜻을 따름으로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 만약 현재에 하나님의 뜻을 어기면 곧 불순종하면 하나님께서 불의하다고 평하신다는 것, 그래서 자백하고 용서를 받아야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곧 현재의 우리의 삶이 현재적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 13.08.06 18:32

    저는 필자의 글을 아주 존중합니다.
    단순히 신학적논리와 머리에서 나온 글이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그런 좋은 의미에서 말씀을 드렸던 것입니다.
    로마서를 통해서 옛사람과 새사람 겉사람과 속사람
    이 네 부류를 정리하신 글이 있는지요
    있으면 알려 주시고 없으면 한번 정리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를 드립니다.

  • 작성자 13.08.07 10:45

    저는 제 글에 대해 다른 견해를 밝히시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습니다. 오히려 감사하게 생각한답니다. 앞으로도 다른 생각이 있으시면 적극적으로 밝혀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저도 연구를 하게 되고 제 생각을 더 명료하게 하는 기회가 되니 감사할 일이지요. 좋은 의미에서 말씀해 주셨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전혀 부담을 갖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 작성자 13.08.07 10:56

    그리고 위의 댓글에 적은 바와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의를 신자가 될 때에 주어지는 의로만 보는 것 그래서 로마서의 믿음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야고보서와의 모순은 피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의 믿음도 영접하는 것인데, 그것만으로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로마서는 행위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믿음으로만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믿음에 전자는 행함을 덧붙이고 후자는 그것은 결코 안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 13.08.07 14:36

    답을 주셨네요. 감사합니다.
    애초 저의 질문에서 조금 복잡해진 것같습니다.
    만약 제 글이라면, 이렇게 교열하겠습니다.
    " 로마서의 행위란 율법준수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영접함과 동시에 그를 주인으로 받아 들임입니다. ....
    야고보서의 믿음이란, 예수를 주인으로 맞아 들인 신자의 삶의 내용입니다. 행함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 들여서..."

    "로마서의 믿음과... 전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 들이는 것이고, 후자는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삶의 내용입니다"
    불과 세 문장만 바꾸었습니다.
    글이 보다 분명해지지 않습니까? 제가 아직도 잘못 이해하고 있습니까?
    믿음과 순종이 동전의 양면과 같듯,

  • 작성자 13.08.07 16:46

    저의 글과는 완전히 다르네요. 믿음과 행위. 믿음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문맥에 의해 그 의미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로마서의 믿음은 B와 관련되고 야고보서의 믿음은 A와 관련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의 믿음이 B와 관련된다는 것이 님의 입장이고요. 야고보서의 행함은 그 믿음과 동전의 양면인 행함이라는 것이네요. 그렇다면 야고보서에서 말하는 바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맞아들인 신자의 삶의 내용만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여서 나타나는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받는다고 했다는 것이 되는데요.

  • 작성자 13.08.07 16:49

    앞 뒤가 전혀 다르지 않는데, 왜 앞만으로는 의롭다함을 받지 못하고 뒤를 통하여 의롭다함을 받는다는 것이지요?
    "로마서의 믿음과...~" 로마서의 믿음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인지는 알겠는데, "후자는 ~"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로마서의 행위가 의미하는 바라는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의미인가요?

  • 13.08.07 15:39

    롬과 약 역시 상호 보완적인 말씀입니다. 그러나 순서상으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 구원자로 받아 들임이 먼저라는 것이지요.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과 그 주인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것은 또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한국교회와 신자가 또 목회자들이 삶의 자리에서, 예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며 살고 있습니까?
    늘 옳은 소리만 하고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항상 옳은 사람인 양 착각하고 삽니다( 마 23" 3).

    이런 삶의 모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중요하기에, 바른 성경적 이해와 영적 분별력을 위한 논의 차원에서
    글을 올렸던 것입니다.
    로마서의 중심을, 저는 6, 7, 8장으로봅니다.

  • 작성자 13.08.07 17:11

    지금의 관점에서는 엄청난 차이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하지요. 그렇지만 성경의 관점에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과 그 주인의 다스림을 받고 사는 것의 차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만약 주인의 다스림을 받고 살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보니까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책망을 생각하시면 아주 쉽지요. 성경에서의 표현법을 따라 생각하지 않고 현재의 시각으로 생각하니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뒤의 믿음을 단순히 인식적인 차원에서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임으로 이해하면 완전히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게 되지요. 전 존재 곧 생각과 말과 행동 전부를 포괄하는 것입니다.

  • 작성자 13.08.07 17:12

    그래야 그 믿음이 순종과 동전의 양면이 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인식의 차원에서만 생각하면 순종과 동전의 양면이 될 수가 없지요. 님이 진술한 바와 같이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3.08.07 20:04

  • 작성자 13.08.07 17:06

    바울 사도의 그 진술은 신자로서의 삶에 관한 것입니다. 신자에게는 A에서의 믿음은 이미 전제되어 있습니다. 계속적으로 말하지만 로마서에서는 그 믿음은 이미 전제되어 있습니다. 신자에게 권면하는 것이니까요. 신자라면 거듭난 사람입니다. 양심이 아니라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되었지요. 성령님도 선물로 받았고요. 그렇지만 육체의 소욕도 있습니다. 속사람이란 거듭나서 선한 양심을 소유한 존재로서의 신자, 하나님의 법이란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법, 한 다른 법이란 육체의 소욕 곧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기 생각과 욕심과 의지대로 살려는 상태의 내면, 죄의 법이란 신자를 죄로 이끄는 힘.

  • 작성자 13.08.07 17:10

    선한 양심을 소유하게 된 존재로서의 신자가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법을 즐거워하되 지체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자기 생각과 욕심과 의지대로 살려는 상태의 내면이 성령님께서 주관하시는 법과 싸워 신자 안의 죄의 법 곧 신자를 죄로 이끄는 힘으로 사로잡는 것을 본다. 그래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다. 이 이해에 무슨 문제나 부족함이 있는가요?

  • 13.08.07 15:29

    여기에서 자아에 대한 성경적이해가 필요합니다
    먼저 롬 6" 1~11과 갈2" 20에 대한 구체적인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사람에서 영혼의 폭포수를 이해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합니다.
    제자도와 훈련을 거론하기 전에, 팬인가 제자인가부터 읽어야 합니다.
    영적성장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신앙인은 영적성장 깊이 체험하기와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체험하기가 바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얕은 물가에서 노니는 수준에서 벗어나
    영의 깊은 물 속에 잠겨야 할 싯점입니다.
    그런데도 한기총이 나서고 오늘은 부천시 기독교 총연합회까지 나서서
    이미 ceo가 되어 버린 한사람의 구명을 위한 서명에 나서야 합니까?

  • 13.08.07 20:00

    과연 현 싯점에서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바로 알고
    제대로 전하고 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설교가 또 다른 하나님의 예언이라고 믿고
    말씀을 전하는 사역자들이여!
    지금 이시각에도 참된 말씀의 기갈과
    바른 목자를 찾아 헤매는 성도들의 방황과 탄식이
    이 땅을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아십니까?
    철저한 회개와 진정한 회복은
    나로부터!
    그것이 참된 의와 믿음이요 변화된 새생활과 행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평안을 기도 드리면서...

  • 13.08.07 17:32

    16" 46에 대한 답 글입니다.
    저는 애초부터 a,b를 약과 롬에 연결해서 읽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신학적인 많은 문제가 도출되어 무척 복잡해질 듯합니다.
    각설하고 님께서는 무엇이 성령의 법이며 어떻게 준수하고 언제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혹시 우리가 서로 논점을 잘못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이곳의 회원이나 주변 분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13.08.08 11:05

    저는 단순하고 쉬운데요. 그렇게 읽어야 모순이 발생하지도 않고요.
    성령의 법이란 새 언약 시대에 주어진 삶의 원리 전부입니다. 산상수훈, 로마서12장 이후의 나오는 삶에 대한 교훈 등등.
    내 안의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는 역사를 행하시는데, 항상, 그때에 육체의 소욕을 좇지 않고 성령의 역사를 따름으로 준수하게 되지요.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의롭다함을 받는 길이고요.
    내가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불의한 것이지요. 자백하고 돌이키면 의롭다 함을 받고요.

  • 13.08.07 17:51

    다시 답을 주신 내용 중에서
    처음에는 a를 야고보서로
    나중에는 a를 로마서로 말씀하시는 것같습니다.
    그리고 롬 7" 23~24의 이해가 피상적이면 전혀 자신의 문제를
    알 수없습니다. 그야말로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격이 되고 맙니다.
    언젠가 원하시면 제가 정리한 롬 원고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 작성자 13.08.08 13:39

    로마서의 믿음은 B에 해당되고요.
    야고보서의 믿음은 A에 해당된다는 것입니다.
    일관되게 그렇게 적었습니다.

    원고를 보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이곳에서 차례로 글을 올리셔도 좋겠네요.
    다른 분들도 보고 생각할 수 있게요.

  • 13.08.08 14:15

    네 보잘 것 없으나 제가 묵상한 롬 원고를 조금씩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입은 신자(신분의 변화)가
    믿음과 부합한 순종의 생활(삶의 변화)을 이루어 가는
    새사람의 새생활에 촛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는 것(당위)과
    주인이신 예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현실) 사이에서
    너무 큰 괴리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성령의 법을 준수하고 살아가는 일은
    자동적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고 인정받는 일은 은혜로 그저 누리는 구원의 복이지만,
    의로운 생활을 이루어 가는 성화의 과정은 무임승차가 아니잖습니까?
    어쩌면 롬과 약 사이에서 수많은 갈등을 겪다보니 관심이

  • 13.08.08 14:05

    커졌나 봅니다.
    제가 컴퓨터를 안하기 때문에 좀 답답하실 때가 있더라도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님을 연단하시는 그 과정에 있는 수 많은 복이
    글 속에 담겨 있는 것으로, 제 눈에는 보입니다.
    끝까지 인내하셔서( 약 1" 2~4) 귀하게 쓰임받기를
    기도합니다.

  • 작성자 13.08.08 15:21

    감사합니다.
    님의 글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겠습니다.
    말씀의 교제가 얼마나 큰 복인지를 아니까요.

  • 15.05.12 11:43

    <십일조는 다른 복음이다> 책의 부록인 '쉽고 명쾌한 한 구원론'을 요약한 글이네요^^
    책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읽었고 대부분의 내용에 깊이 공감하였습니다.

  • 16.07.23 09:21

    잘 읽었습니다. 구원을 설명하기에 참으로 유용한 자료입니다. 잘 소화하여서 좋은 자료로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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