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의 식생활(주식과 부식) ]
※ 본문설명
세기 역사기록인 『삼국지』에는 변진, 즉 가야 지역은 오곡과 벼를 재배하기 알맞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또 금관가야의 역사를 알려주는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밭’과 ‘새로 만든 논’이 있다고 하고, ‘곡식창고’가 설치되어 있었는가 하면, ‘농한기’라는 용어까지 등장하고 있어 가야인의 식생활 기반이 오곡을 위주로 한 농업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인의 식생활 재료가 곡물 위주는 아니었습니다. 패총, 주거지, 분묘 등의 고고 발굴 자료를 통해 볼 때 다양한 식생활의 일면을 알 수 있지요.
먼저, 곡물류를 보면 기록을 증명하듯이 쌀, 보리, 콩, 팥, 조, 밀 등의 다양한 곡식의 잔재가 많은 유적에서 검출되고 있어 곡식농사가 가야인의 식생활의 기본 바탕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곡물류 외에 가장 많은 흔적이 남아 있는 음식물 재료는 역시 조개류입니다. 각 지역에 남아 있는 패총은 그 자체가 하나의 식생활 흔적이나, 패총이 존재하지 않는 고령 등 내륙지역까지 조개류가 출토되는데, 이것은 조개가 가장 애용되던 식품 재료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합니다. 조개류 중에서도 굴 종류가 가장 많습니다.
또 해산물 가운데는 근해에서 잡히는 어류는 물론이고, 청어, 대구 등 한류성 어종, 내륙 지방의 민물어류와 고래나 수달, 강치 등 수중동물까지 다양합니다. 이들 해산어류는 내륙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해안지역과 내륙지역과의 원활한 교통이 이루어졌음과 소국 간에 물자교류가 활발했음을 보여줍니다. 어패류를 장기간 저장하면서 내륙지역으로 운반할 수 있게 한 것은 소금의 생산도 한 몫 하였습니다. 소금에 절인 어패류는 그 자체가 음식물일 뿐 아니라 맛을 내는 조미료 역할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어업과 교역의 전문계층이 등장하면서 각 지역간의 물자 교류가 더욱 활성화되었고, 음식물도 다양한 교류 품목의 하나로 포함되어 가야인들은 더욱 풍성한 식품 재료들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패총에서는 사슴, 노루, 멧돼지, 소, 돼지, 닭 등의 동물의 뼈들이 출토되어 가야인들이 육류도 많이 섭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 육류는 활쏘기, 덫, 함정 파기 등 갖가지 수렵에 의해 얻어진 것도 있는가 하면, 가축으로 사육하여 얻어진 것도 있었지요. 수렵한 동물 가운데서는 꿩이 가장 애용되었는데 거의 모든 유적에서 꿩의 뼈가 빠짐없이 출토된다는 것이 이 사실을 뒷받침합니다. 사슴과 멧돼지는 식용으로서 뿐 아니라 제사나 의례에서의 희생물로서 가장 많이 애용되던 수렵 동물이었고, 소와 돼지 역시 희생물로서 사육되던 가축이었습니다.
한편, 발굴 자료에서는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채소류도 재배하여 먹었다는 것을 문헌자료를 통하여 추정할 수 있습니다. 채소류는 처음에 야생상태에서 채취하여 식용으로 이용하던 것을 점차 재배단계로 발전시켜나간 것으로 보입니다. 감, 복숭아, 머루 등 과일이나, 밤, 도토리, 호두 등 견과류의 잔존물도 출토되고 있습니다. 이들 과일의 경우 야생에서 얻어진 것도 있었으나 인공으로 길러서 얻어진 것도 있었는데, 복숭아의 경우가 그렇지요.
이와 같이 가야시대의 음식물은 육류, 어패류, 과채류, 곡류 등 자연에서 얻어지는 재료들을 총체적으로 이용하여 식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모든 가야인들이 이렇게 많은 음식 재료들을 접했다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가령 내륙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평생가도 해산물을 접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상위지배층의 경우 내륙지역에 거주하고 있어도 음식물 종류에 제한을 받지 않고 여러 가지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었습니다. 가야고분 식생활에 있어서의 계층간의 차별을 볼 수 있는 것이지요.
※ 본문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권주현)]※ 이미지출처 : [
http://www.gayasa.net/gaya/index.html]야후 불러그 문화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