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국의 영남좌도 역사산책] 선비문화 팔경구곡, 자연에 깃든 道 찾아 시 읊고, 그림 그리고…조선 선비들의 '버킷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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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정구의 정신이 스며든 성주 무흘구곡의 제6곡인 옥류동 정자. |
옛 선비들은 자연 속에 도(道)가 깃들어 있다고 믿었다. 도가 깃든 곳을 '승경'이라 했고 승경은 하늘이 짓고 땅이 숨겼다고 했다. 그러한 곳에 팔경과 구곡으로 이름 짓고 마음을 닦으면서 도의 이치를 깨닫고자 했다. 구곡은 퇴계의 '도산구곡'과 율곡의 '고산구곡'에서 시작되었고, 팔경은 '관동팔경'과 '단양팔경'이 명승지로 이름을 얻자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오늘날 전 국토를 팔경화해 자기 고장을 자랑하고 있다.
팔경
이상향의 풍경과 우주 원리 함축
中 소수와 상강 8개 경승서 유래
관동팔경·단양팔경도 명승지 돼
시·그림·가사문학·판소리에 등장
소설 구운몽 속 배경도 소상팔경
선비문화, 규방 통해 대중문화로
구곡
탐욕 버리고 道 찾는 아홉 물굽이
中 '주희 강론지' 무이구곡서 유래
선비사회에서 '일생의 탐승 대상'
퇴계, 낙동강 상류 '도산구곡' 격찬
영남 선비들, 퇴계 자취따라 유람
청량산, 성리학자들의 '핫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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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재 정선의 '소상팔경도'. 중국 동정호 남쪽 소수와 상강 유역의 아름다운 경치 8곳을 상상해 그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
◆팔경구곡의 시원
팔경의 시원은 중국 '소상팔경'이다. 소상팔경은 동정호 남쪽, 소수와 상강 유역의 아름다운 8개 경승을 말한다. 소수는 후난성 융저우시에서 상강에 합류되고 상강은 북으로 흘러 동정호로 흘러 들어가 장강에 합류된다.
여덟 경승은 산시청람(山市晴嵐), 연사만종(煙寺晩鐘), 소상야우(瀟湘夜雨), 원포귀범(遠浦歸帆), 평사낙안(平沙落雁), 동정추월(洞庭秋月), 어촌낙조(漁村落照), 강천모설(江天暮雪)이다. 푸른 기운이 감도는 산마을이 산시청람이고, 안개에 싸인 절집의 저녁 종소리가 연사만종이다.
높은 서정성으로 상상력을 풍부하게 만들고 4자성어로 된 이상향의 풍경을 귀로 듣고 마음으로 읽는다. 동양적 신비와 아늑함, 정중동의 우주 원리까지 함축적으로 나타내 기품있는 팔경문화를 탄생시켰다.
구곡의 시원은 중국 푸젠성의 '무이구곡'이다. 남송 때 주희가 무이산에 머물며 강론을 펼칠 때 절승지 아홉 물굽이에 옥녀봉·금계암 등의 이름을 붙이고 구곡가를 읊으면서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무이구곡을 본받아 퇴계가 낙동강 상류 경승지 아홉을 '도산구곡'이라 하고, 율곡이 황해도 석담에 머물면서 고산구곡가를 지음으로써 시작됐다. 성리학의 확산과 함께 구곡문화가 선비 사회에 깊숙이 파고들어 구곡은 일생 동안 탐승의 대상이 되었고 영남에는 정구의 성주 무흘구곡을 비롯해 문경 선유구곡, 영주 죽계구곡, 상주 쌍용구곡, 청도 운문구곡 등이 있다.
◆팔경문화
소상팔경은 우리나라와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다. 팔경은 시와 그림이 돼 팔경시와 팔경도를 낳았고 가사문학과 판소리에도 등장한다. 팔경은 고려 명종 때 우리 역사에 처음 나타난다. 이후 260여 명의 선비가 팔경시 780편 6천여 수를 지었고 대표적인 인물로 고려시대 이인로와 이제현, 조선시대 안평대군과 서거정이다.
파한집의 저자 이인로는 명종이 소상팔경에 탐닉해 궁정에서 팔경시를 짓게 했는데 그 중심인물이 이인로였다. 이제현은 개성의 명승지를 송도팔경으로 읊었고 세종의 셋째아들 안평대군은 팔경시와 팔경도를 왕실에 전파시켰고 서거정은 '대구십영'을 지었다.
팔경을 그림으로 나타낸 것이 팔경도인데 안견의 소상팔경도를 비롯해 정선의 소상야우, 심사정의 산시청람 등 팔경을 산수화로 그려 화첩으로 남겼고 국보로 지정된 것도 있다.
판소리 춘향가·심청가·흥보가·수궁가에 등장하고 송강가사 관동별곡, 허난설헌의 규원가에도 나오고 구운몽에는 아예 소상팔경을 소설 공간으로 설정했다. 선비사회의 전유물이던 팔경이 점차 평민과 규방 속으로 퍼져 우리 문화의 한 부류로 자리잡게 되었다.
◆구곡문화
사대부가 뜻을 잃으면 산림 속으로 몸을 숨겼다. 최치원이 숨은 자연 속으로 두문동 은자와 생육신이 뒤따랐다. 야사에 따르면 천하의 서거정도 매월당 김시습 앞에는 한 수 접고 들었다. 풍진 영욕이 산수 주유를 이길 수 없었고 서거정은 김시습의 속세 초월한 삶을 동경했다.
팔경은 점이고 구곡은 선이다. 점점이 박혀 있는 경승을 찾고 물줄기로 이어진 선의 구곡유람은 단순히 승경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도(道)를 찾는 길이다. 사람들이 승경을 못 찾는 이유는 탐욕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이라 했고 탐욕을 버리면 승경이 보인다고 했다. 수십 년을 풍진 속에 헤매다가 풍월 잃은 것을 후회했고 강산의 옛 모습을 나는 알지만 무심한 저 강산은 늙은 나를 어찌 알겠느냐고 노래했다.
퇴계는 청량산을 사랑했다. 육육봉을 아는 이는 나와 백구(白鷗)뿐이라 했다. 퇴계의 영향으로 청량산은 무이산에 비견되는 성리학의 탐승지가 되었다. 영남 선비들은 퇴계의 자취 따라 청량산을 유람했고 '유산기(遊山記)'를 남겼다. 안동 곳곳에 숨겨져 있는 구곡을 찾아냈다. 도산구곡, 임하구곡, 하회구곡, 와계구곡, 백담구곡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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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도산구곡도에 등장하는 고산정. 퇴계의 제자 금난수가 머물던 정자다. |
◆도산구곡
퇴계는 도산서당 앞으로 흐르는 낙동강 상류 경승지 아홉 물굽이에 구곡이라 이름을 붙이고 '도산구곡가'를 지었다. 낙동강 상류는 예부터 풍광이 빼어나기로 이름났다.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강촌이 아름답기로는 도산과 하회가 으뜸이라 했고 도산의 석벽을 벗어나야 낙동강은 비로소 강의 모습이 된다고 했다.
퇴계는 낙동강을 '물 가운데 임금'이라 격찬했고 강 따라 청량산 가는 길을 '그림 속으로 거니는 길' 같다고 했다. 그 옛날 도산서원으로 가는 도산구곡길은 조선 선비들이 평생 염원했던 도학의 길이었지만 지금은 안동댐으로 수몰돼 갈 수 없는 곳이기에 더욱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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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 '무이귀도(武夷歸棹)'. 종이에 연한 색. 111.9×52.6㎝. 간송미술관 소장. |
1곡은 구름바위 운암(雲巖)이다. 운암곡에는 군자마을로 유명한 광산김씨 예안파 오백년 세거지 외내마을이 있었다. 수몰돼 후조당, 탁청정 종택 등을 산마루로 이건해 오천 군자리 유적지가 되었지만 구곡의 출발지였다. 2곡은 월천(月川)이다. 퇴계의 큰 제자인 월천 조목이 살던 동네로 월천서당이 언덕위에 서 있다. 수몰된 1곡과 2곡 일대를 안동시에서 선비순례길 1코스로 개발해 '선성현길'이라 이름 붙였다. 선성은 예안의 옛 이름이다.
3곡은 자라못 오담(鰲潭)이다. 강 건너 우탁을 모신 역동서원이 있었는데 수몰되자 송천동으로 이건, 안동대에 흡수되었다. 역동나루의 솔밭은 명물이었고 독립운동가 10여 명을 배출한 부포마을은 물에 잠기고 계상고택만 외로이 남아 있다. 오담 대신에 비암(飛巖)을 넣기도 한다. 4곡은 분천(汾川)으로 농암(귀먹)바위로 유명한 영천이씨 부내마을이다. 이현보의 농암종택과 분강서원 등의 유적은 수몰을 피해 가송리로 이건했다.
5곡은 탁영담(濯纓潭)으로 도산서당 앞 물굽이가 도는 곳이다. 구곡의 한가운데이며 갓 끈을 씻는 못이란 뜻이다. 강마을은 안동 독립운동사의 성지, 진성이씨 하계마을로 향산 이만도의 향리다. 모두 수몰돼 향산고택은 안막동으로 이건했다. 6곡은 천사(川砂)로 넓은 강변의 모래가 아름다워 내살미라 부르고 이육사의 고향 원촌마을이 있다. 육사는 이곳에서 그의 시 '광야'를 착상했다고 하며 문학관과 목재고택이 있다. 수몰지역의 끝자락이다.
7곡은 단사(丹砂)로 벼랑이 붉다고 붙였고 8곡은 고산(孤山)으로 퇴계 제자 금난수가 머물던 고산정이 강 건너에 홀로 서 있다. 이 구간이 구곡 중 풍광이 가장 빼어났고 농암종택이 이곳으로 옮겼다. 9곡은 청량(淸凉)으로 청량산 입구다. 청량산을 사랑한 퇴계는 스스로 청량산인이라 칭하며 이곳에 머물며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다.
1곡에서 9곡까지 칠십 리 길이고 5곡까지 대부분 수몰되었다. 7곡 단천교부터 삼십 리를 '퇴계예던길'로 복원했다. 군자가 되기 위한 퇴계의 길, 도산구곡의 마지막 9곡을 읊은 시다. '구곡이라 산 열리니 눈앞이 확 트이고/ 사람 사는 마을은 긴 하천을 굽어보네/ 그대는 이곳을 유람의 끝이라 말하지 말라/ 묘처(妙處)에 반드시 별천지가 있나니'.
필자는 수 년 전 구곡팔경의 시원을 찾아 무이산과 후난성을 여행했다. 무이정사는 문화혁명 때 파괴돼 최근에 복원됐고 구곡은 내 상상과 너무 달라 실망했다. 상강은 시멘트 제방으로 된 박제된 강이었고 동정호에는 원포귀범 대신 준설선 소리만 요란했다. 우리 조상들이 가보지 못하고 그렇게 동경했던 소상팔경과 무이구곡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상상 속의 세계가 아닐까 싶다.
*여행작가·역사연구가ㅣ유선태|입력 2021-03-19 발행일 2021-03-19 제35면ㅣ수정 202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