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
성집(性集) |
호 | 초강(草岡) |
생졸년 | 1880 (고종 17) - 1944 |
시대 | 일제강점기 |
본관 | 순흥(順興) |
활동분야 | 항일/국방 / 독립운동가 / 독립운동가 |
자 | 성집(性集) |
호 | 초강(草岡) |
생년 | 1880(고종 17) |
졸년 | 1944 |
시대 | 일제강점기 |
본관 | 순흥(順興) |
활동분야 | 호국 > 독립운동가 |
부 | 안병호(安秉浩) |
조부 | 안종수(安宗洙) |
처부 | 권형규(權瀅奎) |
외조부 | 한규병(韓圭炳) |
출생지 | 전라북도 임실(任實) |
공훈 | 애족장 |
1880년(고종 17)∼1944년 3월 13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자는 성집(性集)이고, 호는 초강(草岡)이다. 본관은 순흥(順興)이며, 전라북도 임실(任實)에서 태어났다.
조부는 안종수(安宗洙)이고, 아버지는 안병호(安秉浩)이다. 외조부는 한규병(韓圭炳)이고, 처부는 권형규(權瀅奎)이다.
1919년 3월 19일 장수군 산서면(山西面) 동화리(桐花里) 관내 동화시장(桐花市場)장날을 이용하여 박정주(朴政柱) 등과 함께
군중 수백명을 모아 3·1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때 일본헌병의 추격을 받아 동지 박권영(朴權永)·이길선(李吉善)·정봉수(丁奉洙) 등 5명과 같이 피신하여
전라북도 일원을 내왕하면서 부일(附日)하는 무리에게 경고문을 발송하고 민족정기의 건재성을 강조하였다.
이날 시위 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 행진을 하다가 박정주가 일본 경찰에게 연행되자
군중을 이끌고 주재소로 달려가 그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며 농성하던 중 체포되었다.
같은 해 6월 14일 고등법원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순흥안씨족보
독립운동사
독립운동사자료집
전라문화의 맥과 전북인물
공훈전자사료관(http://e-gonghun.mpva.go.kr/)
유공자명(한글) | 안성섭 | 유공자명(한자) | 安成燮 |
호적명 | 이명 | ||
생존여부 | 사망 | 성별 | 남 |
생년월일 | (양)1880년 10월 17일 | 사망년월일 | (양)1944년 03월 13일 |
본적 | 1. 전라북도 임실 只沙 寧川 203 | ||
독립운동당시 주소 | 全北 任實 只沙 寧川 203 | ||
관리번호 | 3942 | ||
훈격 | 애족장 | 포상년도 | 1990 |
운동계열 | 3.1운동 | 소속 및 지위 | |
독립운동기간 | 2월 | 활동지역 | 全北 長水 |
수형년수 | 징역 1년 |
복역년수 | 1년 0개월 0일 |
공적개요 | 1919.3.19 長水郡 山西面 桐花里 시장에서 시위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 시위하고 日憲兵駐在所에 연행된 동지의 구출을 위하여 同주재소를 습격하고 다시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 체포되어 징역 1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
안성섭(安成燮) [ 상세서지보기 ]
구분: 독립운동자공적자료 날짜: 1880-10-17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
날짜 | 1919년 03월 19일 | ||||
제목 | 전남 任實郡 只沙面의 儒生 朴政柱.安成燮 등이 山西面 | ||||
내용 | |||||
| |||||
제목 | 全州地方法院에서 지난 2일부터 오 | ||||||||||||||||||||||||
년월일 | 1919-04-18 | ||||||||||||||||||||||||
주제분류 | 민족해방운동,대중운동 > * 시위운동 > 삼일운동 > 삼일운동 | ||||||||||||||||||||||||
출전 | 每日申報 1919.4.24 | ||||||||||||||||||||||||
내용 | |||||||||||||||||||||||||
|
成燮 성섭
字는 성집(性集)
號는 초강(草岡)
1880년庚辰生 애국지사 국민훈장애족장(國民勳章愛族章)을 수훈하다
묘실전
配안동권씨(安東權氏) 父는 영규(榮奎) 祖는 팽수(澎壽)이고 동흥군 상(常)의 후손 外祖는 고령신택구(高靈申澤求) 忌4월4일
묘영천 안산 계좌(癸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