一 知之者不如好之者, 아는 것은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좋아하게 되면 굳이 하라 마라 옆에서 누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열심히 하게 됩니다. 자발적으로 주동적으로 하게 되는 것. 타의에 의해, 혹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하는 일과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그 효과면에서 얼마나 차이가 나겠습니까? 게다가 억지로 배우게 되면 그건 대개 시험 치루고 나서 다 까먹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은 그렇지 않죠. 시험과는 무관하게 계속 노력하고 계속 정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축적되면 그 차이란 것이 더욱 벌어지게 되는 것이예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 이런 사람은 그 분야가 어떤 분야이든간에 항상 의욕이 넘치는 것이예요. 결과야 당연히 좋을 수 밖에 없는 것 아닙니까?
一 好之者不如樂之者. 좋아하는 것은 즐기는 것만 못하다. 어떤 일을 좋아한다. 특히 지식을 습득하는 일은 좋아한다고 합시다. 아주 노골적으로 이야기해서 공부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런 좋아함이 반드시 좋은 결과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요. 세상 일이란 게 자기 뜻대로 되지는 않으니까 말입니다. 결국 자기가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해도 결과는 나쁠 수 있는 것이예요. 요령부득이었기 때문이든 아니면 운이 나빴든 간에.. 특히 이런 결과는 대개 시험의 결과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이죠. 그런데,
그런 시험이 중간고사든 기말고사든, 아니면 외부의 어떤 자격고시든 간에 그런 시험의 결과 같은 것에 연연해 하지 않고 자기가 하는 공부 자체를 즐기는 사람, 그리하여 배움이란 것이 하나의 생활화가 된 사람, 이런 사람은 딱히 시험기간에 밤을 새지도 않고 평소에 다 합니다. 이런 사람이 시험에 떨어지고 실패할 확율이 있겠어요? 설령 그럴 가능성이 있다해도 그 확율은 극히 낮지 않겠어요? 즐기는 사람에게 당할 재간이 없는 것이예요. 이런 사람은 자기가 하는 일이 즐거워 잠을 안자도 졸리지 않고 먹지 않아도 시장기를 느끼지 않는 것이예요. 우리가 종종 어떤 일에 너무 빠져 몰두할 때 그런 경험을 느끼지 않나요? 설령 그게 고스톱이든 PC게임이든 간에..
그래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함은 즐김만 못하다. 결국 이것은 효과면에서도 그러하고 마음가짐에서도 훨씬 느긋하여 정신적인 건강에도 보탬이 되는 잠언입니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지금 하고 있는 공부, 안한다면 모를까, 기왕에 하는 것이라면 좋아하시라, 좋아하시라고.. 그리고 한걸음 더 나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이젠 즐겨요, 그리하여 생활화시켜요. 생활화 되면 그게 바로 습관입니다.
우리가 운명(運命)이란 말을 곧잘 하는데.. 자기가 애비 애미를 골라잡아 나올 수는 없지요. 이건 움직일 수 없는 부분이예요. 도저히 자기의 의지로서는 결정할 수 없는 부분, 그래서 그걸 하늘로 돌리는 것이예요, 하늘이 명(命)했다 하여 명(命)이라 합니다. 우리의 어머니나 할머니가 넋두리로 하는 말 중에... 간혹 들리지요... "아, 왜 이리 명이 모질어.." 모질다는 말 아시지요? 왜 이리 내 명이 힘드냐.. 이런 뜻입니다..
그러나 운(運)은 움직일-운.... 이건 자기가 하기 나름이예요. 이 운이란 것이 가만히 앉아 있어도 호박넝쿨이 굴어오듯 오는 게 아니지요. 이건 자기가 나서서 챙겨야 하는 부분이예요. 이 운을 결정짓는 요소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개인의 성격과 습관이라고 보고 싶어요. 왜?
개인의 성격은 그 성격에 이끌려 하나 둘 행동에 옮기게 되면 그게 바로 습관이 됩니다. 일단 습관으로 굳어지면 행동은 습관에 지배되어 반복되는 것이예요. 이렇게 하루 이틀 반복이 계속되어 10년 20년 누적되면 그게 바로 그 사람의 인생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런데 바로 이러한 습관은 우리가 우리의 의지로써 얼마든지 콘트롤 가능한 부분입니다. 그러니 습관이 곧 운이라 하는 것이예요. 얼마든지 움직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런 습관을 일컬어 "생활화"라 합니다. 생활화는 습관의 다른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자 하고, 그 알고자 하는 것을 좋아하고, 마침내는 즐기는 그런 습관을 기른다면 그리하여 생활화 된다면 비단 공부 뿐아니라 무슨 일이든 즐거운 마음으로 할 수 있지 않겠어요?
선생이라면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좋아하고 더 나아가 즐긴다고 했을 때 얼마나 좋은 연구 성과가 나오겠으며 얼마나 학생들을 열심히 가르치겠습니까? 이건 월급쟁이로서 자신을 비하시키고 시간이나 떼우는 경우와 하늘과 땅 차이 아니겠어요?
학생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죠. 배우고 그걸 응용하고 그 응용이 바탕이 되어 또 새로운 것을 배우는 이러한 일련의 돌고 도는 과정을.. 타의에 의해 억지로 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하고 그 좋은 것이 생활화 되어 즐길 때 학교 생활이 유쾌한 것은 둘째요 무엇보다 그 자신의 인생이 알차게 되지 않겠어요?
그렇다면 좋아하고 즐기지 않을 수 있나요? 그래서 아는 것은 좋아함만 못하고, 좋아함은 즐김만 못하다 <논어>에서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대학진학 예비학교에서 오로지 명문대학을 가기 위해 자신의 모든 가능성을 누르고 정해진 규칙과 정해진 진로에 따라가야 하는 학생을 향해 키팅 선생이 학생들에게 전하였던 메시지인 카르페 디엠(carpe diem , seize the day, 이날을 붙잡아라, 삶을 즐겨라)은 우리에게 무슨 메시지를 줄까? 현실을 거부하고 오늘 자신이 하고 싶은 일로 즐기라는 것이라기 보다는 오늘 주어진 나의 하루에 주인이 되라는 뜻일 것이다. 사치나 향락에 빠져 인생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어렵고 힘든 일상이라도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 만족하면서 즐겁고 긍정적인 자세로 살아간다면 그것이 천재의 삶이나 노력하는 삶보다 좀 더 가치 있는 삶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