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학도서 요리사로 변신한 정동현 동문
군대서 재능 발견…조선일보 음식 칼럼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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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 전성시대다. 셰프들의 현란한 요리, 그들이 방문한 맛집 TV 프로그램 등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요리사들의 주가가 연일 빨간불이다. 종이 매체에서도 셰프들의 나들이가 잦아졌다. 최근 ‘셰프의 빨간노트’를 펴낸 정동현(경영01-08)동문도 조선일보에 ‘정동현 셰프의 생각하는 식탁’을 연재하며 인기를 모으고 있다.
정 동문은 해군 복무 당시 지원 병력으로 차출된 취사반에서 우연히 요리 재능을 발견하고 영국의 탄테마리(Tante Marie) 요리학교로 날아가 본격적인 공부를 통해 경영학도에서 요리사로 변신했다. 과정을 마치고 영국, 호주 유명 식당에서 2년간 현장 경험을 쌓았다. 대학 졸업 후 3년차 직장인 시절 감행한 모험이었다.
1월 21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에서 만난 정 동문은 “모든 공간과 인간에게서 음식이 보였다. 회사 책상에 앉아 있어도 요리본능을 어찌할 수 없어 버티고 버티다 떠났다”고 당시 상황을 회고했다.
물설고 낯선 외국에서 2년간의 식당 일은 쉽지 않았다. 괴팍한 헤드 셰프도 많았고 주간 평균 노동시간이 70시간 이상이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종일 주방에서 보낼 때도 많았다. 그런 혹독한 훈련 끝에 프랑스, 이태리 요리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다양한 요리법을 익혔다.
“2014년 한국에 돌아와 식당 일을 찾았지만, 쉽지 않았어요. 그렇다고 식당을 차리기엔 여유가 없었고요. 그러다 영국, 호주에서의 경험을 블로그에 남긴 게 사람들 눈에 띄어 동아일보에 처음 음식 칼럼을 연재하기 시작했어요. 유학가기 전 일했던 이마트의 한 분이 글을 읽고 ‘다시 와서 일할 생각이 없느냐, 당신처럼 요리를 아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해서 이곳에 오게 됐습니다. 제 전공인 경영과 요리 경험이 절묘하게 믹스된 일이라 즐겁게 일하고 있죠.”
정 동문의 현재 직함은 이마트 F&B기획팀 과장이다. 이마트에 입점하는 식당, 음식 메뉴 등을 기획, 개발하는 일이다. 그의 아이디어가 적용된 사업장이 일산 이마트타운 피코크 키친. 피코크 키친은 Grocerant(Grocery+Restaurant)를 기본 콘셉트 삼아 구매와 식음을 함께 할 수 있는 복합 식문화 리테일 매장으로 마치 외국의 시장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는 평이다.
요리에 대한 꿈을 잠시 미룬 정 동문은 일하는 틈틈이 음식 글쓰기에 몰두하고 있다. 학구적인 서울대 출신 요리사의 피를 속일 수는 없는 노릇. 그렇게 펴낸 책이 ‘셰프의 빨간노트’다.
“식당에서 일하던 시절 숙소로 돌아오면 그날의 레시피를 기록했습니다. 눈으로 익히고 몸으로 기억한 음식을 머리로까지 이해하니 복잡한 요리법도 차곡차곡 쌓여갔죠. 요리는 과학이 아닌 연금술이더군요. 상극이던 것들이 오래 끓고 졸면서 찰떡궁합이 됐고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제각각 자란 재료가 운명처럼 만나 하모니를 연출했습니다. 불화와 긴장이 조화로 마무리되기까지 상상할 수 없는 드라마가 펼쳐지는 것이었죠. 수천년을 이어온 그 드라마를 혼자 보기 아까워 이 책을 썼어요. 음식을 알아가는 맛을 소개해 주고 싶었죠.”
정통 코스 요리 순서로 구성된 책에는 각 요리에 대한 레시피도 제공하고 있어 읽으면서 군침을 삼켰던 요리를 따라할 수도 있다.
요리사, 음식칼럼니스트로서 정 동문은 음식 프로그램이 넘쳐나는 작금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볼까. “이런 프로그램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방증 아닐까요. 요리를 덜 할수록, 요리 프로그램을 더 보는 역설적인 현상이죠. 조리 식품이 많아지고 외식 문화가 발달하는 상황의 한 단면 같아요.”
6년간 권투를 배우며 프로권투 라이센스까지 습득했다는 정 동문은 아직 미혼이다. 조용한 훈남에 글 잘 쓰는 요리사, 이 남자의 앞날이 무척 기대된다. <김남주 기자>